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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방패 님의 서재입니다.

정기룡(육지에 이순신이라고 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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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칼과방패
작품등록일 :
2021.09.18 09:58
최근연재일 :
2021.10.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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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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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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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 8 장 남겨진 은장도(3)

DUMMY

“꼬박 하루를 놈들의 작전에 끌려 다녔다. 다시 말해 당한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거다. 또한~! 죽지마라. 매 순간 집중하고 동료를 믿는다면 너희 목숨은 너희들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몸을 뒤로 빼라. 그래도 힘들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라.”


주섬주섬 무언가를 입에 넣고 있던 대원들이 대답대신 눈빛을 쏘아 붙이고 있었다.


“어제 하루 동안 잃은 대원이 3명이다. 상주성에 돌아갈 때 여기 있는 모든 대원들과 같이 간다. 돌아가서 같이 밥 먹을 거고, 술 한 잔 할 거다. 여기 있는 춘호가 만든 숭늉도 나눠 먹을 거다. 더는 안 된다 알았나?”


춘호가 턱을 매만지자 담이가 침을 삼키고 있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간다.”


짜르르르. 짜르르르.


넘어가는 해에 겨우 얼굴 형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귀뚜라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주변에 작은 울림을 주고 있었다.


변변한 막사 하나 없이 나무기둥사이에 이슬정도만 피할 수 있는 작은 천막 아래 간이 나무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모리의 오른팔 이츠라였다.


최정예 무사들로만 천을 내준 모리, 죽이지 않더라도 발만은 묶어만 놓으라는 명령이었다.


조선의 왕이나 뒈진 신립, 아니면 이순신쯤 죽이라는 명령이었다면 내 몸 하나 죽겠다는 일념으로 해내고 말거라는 굳은 의지가 솟구칠 텐데 정기룡이라는 일개 장수하나를 발이라도 묶어 놓으란 명령이다.


잠시 유람이나 다녀오라는 소리인가 싶었다.


자존심 하나로 지금껏 살아왔고, 진주성 전투에 참가해서 공을 세울 수 만 있다면 싶었는데 아쉬울 뿐이었다.


서둘러 놈을 제거하고 진주성으로 돌아가서 진주목사 서예원을 제거하면 된다.


일석이조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상주성으로 수하를 이끌었다.


기습을 할까 살짝 고민도 했지만 요란하게 자신의 출연까지 내비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조선의 왕도 아니고 일개 장수를 상대로 말이다.


놈을 유인해서 토끼몰이 훈련 삼아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쌓인 피로나 풀고 갈 심산인데 해가 저물고 캄캄한 밤이 왔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는 만큼 수색을 벌일까 하다가 이내 맘을 접었다.


50명씩 10부대, 그것도 최정예 무사들이다.


본국에서 무술 좀 한다는 놈들도 휘하로 못 들어 올만큼 실력들이 쟁쟁한 놈들이다.


부러움에 대상이고 선망에 대상인 부대다.


투입된 인원이 500명인데 그깟 조선의 장수 하나 정도면 지금쯤 발가벗겨져 몸통이 분리되었어도 벌써 됐을 거다.


아마도 조선의 여인들 잡아다가 회포를 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몸을 숙여 호리병에 들었고 반쯤 차있는 술이 입 안으로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 * *



쿠쿵! 쿠구쿵~!

거대한 성벽을 두들겨 대고 있는 포탄들, 흐릿한 하늘에 검은 빗방울처럼 끊임없이 내려오는 탄환들, 매캐한 연기와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진주성이었다.


남강을 제외한 사방어디를 둘러봐도 새까만 왜놈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이었다.


진주성에서 눈을 감고 아무대고 활을 쏘아도 왜놈 중 어느 한 놈은 무조건 맞을 것 같이 빽빽하게 대열을 갖추며 둘러싸고 있는 무지막지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한 번의 전투를 경험한 진주성안의 백성들은 침착한 모습으로 일사분란 몸놀림을 보이고 있었고, 그에 반해 새로 부임한 진주목사 서예원과 관군들은 다소 격양된 얼굴로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며 분주한 성내 한가운데에서 우두커니 머리를 숙이고 있던 김형문이었다.


그냥 산속에 파묻혀 있어야 했는데 괜히 나왔나 싶었다.


피난길에 비어있는 마을들, 겨우 수소문 끝에 진주성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진주성에 들어왔건만, 들어오자마자 굳게 닫힌 문에 오도 가도 못한 상황이었다.


정무수라는 이름은 정기룡이로 불리고 있다고 했고 며칠 전에 상주성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나마 어머니와 며느리가 남아있다고 했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소식이라도 전해 줄까 싶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다.


수없이 많은 인파 속에서 한양에서 김서방 찾는 꼴에 허무할 지경이었다.


이러다가 비명횡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힘을 내보자는 생각에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김형문이었다.


짧은 키에 두꺼비를 연상시키는 한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이 난리 통에 쯧쯧쯧. 포기하슈.”


김형문의 말에 핀잔만 주고는 몸을 돌리던 병사였다.


“정기룡장군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멈칫.


“당신 뭐야?”


돌변한 태도에 병사가 천천히 몸을 돌려 김형문을 의심에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김형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보던 병사의 머리가 살짝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남루한 복장, 호리호리한 몸, 입에서 귀까지 늘여져 있던 흉터,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정기룡장군과 의형제입니다. 물론 제가 형이지요.”


“의형제?”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였다.


누굴 만나든지 매번 이런 상황이다.


생긴 게 이런데 뭐 어떻겠냐.


하지만 거짓으로 의형제라고 말하자 놈의 행동이 뭔가 안다는 반응이었다.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모처럼 여기 귀한 산삼하고 약초, 버섯들을 캐는 바람에 건네주려고 멀리서 나왔다가 이 난리에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봇짐에서 주섬주섬 꺼내놓은 귀한 약초들의 풍겨오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게 송이요. 임금님 수라상에만 올라가는 버섯이지요. 자. 자.”


송이를 반쯤 잘라 병사에 입에 우겨넣어 주던 김형문이었다.


반색을 하던 병사가 입에 들어온 송이를 한입 베어 물자 눈이 동그래지기 시작 있었다.


“워메, 워···.”


말을 제대로 못하던 병사였다.


진주성전투에 숨은 영웅을 모를 리가 있나, 그의 가족은 특급으로 보호를 받고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건 성 내에 병사들 포함해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데, 그의 가족을 찾는 사람이 귀한 송이를 입에 넣어주기까지? 웬 횡재인가 싶었던 병사였다.


밖으로 풍겨나가는 냄새까지 모조리 입안으로 밀어 넣던 병사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가만 보자 어디에 있었나?”


반쯤 남은 송이에 시선을 살짝 돌리던 병사가 뒷짐을 지며 말을 돌리자, 남은 송이를 입에 다시 넣어주던 김형문이었다.


“일단 따라와 보슈.”


한껏 기분이 좋아진 병사가 산속에서만 있어서 소식을 모른다는 김형문에 사정을 듣자 의심에 눈초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멈추질 않았다.


진주성전투에서 왜놈들의 폭탄을 적진에 몰래 침투해서 제거한 숨은 대승의 주역, 거창에서는 상관인 조경을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구한 조선의 조자룡이라는 칭호를 얻은 사실, 최근에는 상주성을 조선최초로 탈환한 영웅담을 늘어놓던 병사였다.


이런 영웅의 가족들을 지키고 있는 진주성병사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고, 더불어 이번 전투 또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거침없는 입담과 힘찬 발걸음으로 수많은 인파를 가로질러 가던 병사가 정갈하게 정리가 잘 된 초가집을 가리키고는 짧은 인사를 하고는 먼발치에 병사들에게 몸을 돌려 나가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세 여인이 밥을 돌돌 뭉쳐 연잎에 하나씩 말고 있는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머쓱한 김형문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불쑥 찾아가면 놀래지 않을까 싶었고 무슨 말을 어떻게 뭐가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이를 발견한 한 여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뉘신데 제 집 앞에서 그리 서성이고 계신가요? 혹시 이거?”


여인이 건넨 건 다름 아닌 주먹밥이었다.


아뿔싸.


이 집안과는 정말이지 질긴 악연에 연속이다. 매번 받기만 하니 말이다.


뺨을 두서너 번 치던 김형문이 손바닥을 펼친 후 여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대문 안으로 성큼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낯선 이에게 시선을 주던 여인이 곱게 빗겨진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훔쳤고, 세월에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완숙함과 선해 보이는 인상을 지으며 무수어머니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수어머님 되시죠?”


“뉘신데 막내를 이름을 부르시나요?”


“김형문입니다. 무수는 저더러 입술귀신이라고 하죠.”


가볍게 목례를 하던 김형문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그렇게나 많은 손님들에도 불구하고 무수의 본명을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아니 단 한 명도 없는 듯 했다.


그런데 불쑥 들어와 무수의 이름을 말하고는 길게 난 흉터를 씰룩거리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무수어머니와 미선이 그리고 형수가 서로 멍한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자, 천천히 자초지정을 설명하던 김형문이었다.


두서없는 말주변에 길어진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아무튼 늦게 찾아봬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상심이 클 텐데 이런 난리 통에 찾아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미선이가 어머니 눈치를 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몰랐던 무수의 과거에 꽤나 흥미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참. 이거.”


주섬주섬 봇짐에서 꺼내든 산삼과 약초들이었다.


“빈손으로 올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귀한 약초들을 이렇게나 많이 주시면 저희가 미안합니다. 적당히만 받겠습니다.”


반쯤 갈라 다시 봇짐에 넣으려는 무수 어머니, 서둘러 비어진 봇짐을 어깨에 둘러맨 김형문이었다.


“안됩니다. 전 할 말 다했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뒷걸음을 치며 손사래를 치던 김형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총각.”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던 김형문에게 한마디 건넨 무수어머니였다.


“갈 때는 있는가? 성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 말이야.”


일순간 동작이 멈춘 김형문이었다.



* * *



추적추적 내리는 비,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마 밑에서 멍석을 깔아 반쯤 말아 올린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옆으로 묶어 놓은 은아가 두 손을 모아 다시 절을 하고 있었다.


진주성에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했고 상주에서도 왜놈과 전투 중에 있다는 소식이 한꺼번에 몰려온 상황이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떨리는 가슴을 진정이라도 시켜 보려 천지신명께 정화수를 떠다 놓고 서쪽방향을 바라보면 절을 하고 있었다.


하동에서 곡성으로 피난 온 은아였다.


혼례를 치르지 않았고 정식 며느리도 아니기에 아버님의 명을 따라야 하는 만큼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몸이 떨어져 있다한들 마음까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도를 해야 맘이 놓을 것 같았다.


모은 두 손 안에 은장도를 매만졌다.


저잣거리에서 어머님과 한 개씩 주고받았고 칼등 양면에 한 글자씩 무(茂)수(壽)의 이름을 새겨 넣었던 은장도.


오랜 기간을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가락지 하나 선물도 못하고 그저 은장도 하나 밖에 남겨져 있지 않음에 한숨만 흘러나오고 있던 은아였다.


더군다나 무수한테는 아무것도 준 게 없었고 받은 게 없었다.


너무 무심했다.


품을 뒤져 주머니에서 은반지 하나를 꺼내 손에 끼어 펼쳐 보인 은아, 어머님이 주신 반지다.


며느리로 인정하는 정표, 나중에 혼인하고 며느리를 받는다면 다시 물려줄 반지다.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마음을 굳혔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무조건 혼례다.


그간 좋지 않던 시선도 어느 정도 누그러든 상태이니 이번만큼은 밀고 나가야겠다는 다짐에 젖은 몸을 이끌고 아버지에게 발걸음을 옮기던 은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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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 6 장 진주성(4) 21.10.07 64 2 12쪽
33 제 6 장 진주성(3) 21.10.07 65 2 12쪽
32 제 6 장 진주성(2) 21.10.06 7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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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3) 21.10.05 77 2 12쪽
28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2) 21.10.04 84 2 12쪽
27 제 5 장 일어서는 조선 21.10.04 83 2 12쪽
26 제 4장 단기필마(5) 21.10.02 86 2 12쪽
25 제 4장 단기필마(4) 21.10.02 86 2 12쪽
24 제 4장 단기필마(3) 21.10.01 84 2 12쪽
23 제 4장 단기필마(2) 21.10.01 90 2 12쪽
22 제4장 단기필마 21.09.30 9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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