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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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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78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23 11:30
조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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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51) 변화의 바람

DUMMY

“알고 계셨습니까?”


sg카드 사장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당신회사에서 일어났던 일이야, 라는 표정으로.


‘억울하겠지. 여기나 저기나 대충 비슷하게 돌아갈테니까.’

“돌아가는 대로 매뉴얼 점검하겠습니다.”

“아뇨.”

“네?”


매뉴얼 점검해봐야 그때뿐이다.

협력사를 선정해서 고객센터 일을 맡긴 건 번거로운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툭하면 관두고 떠나는 상담직원을 매달 새로 채용해서 교육하는 건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점검한다 해도 뭐 얼마나 바뀌겠습니까.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요. 출근해서 욕먹고 퇴근할 때까지 욕먹고.”

“...”

“친절을 강요하고 부당함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너 같은 거 낳고도 니 엄마는 미역국 먹었냐, 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을 먹어야 하고.”

“...”

“사장님들 자식들이면 그런 일 계속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장 자체 직원으로 채용하는 건...”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일중 가장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하던 일인데 교육을 새로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소속만 바꾸면 되는 일이잖아요. 고생하는 게 미안하면 급여라도 좀 올려주시구요. 힘든 일 하는데 일하는 곳에 대한 자부심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 대기업 정직원이 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지금 있는 협력사보다는 대기업 직원인 게 낫겠지.’


내말에 모두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이니 당연하다.


“힘들겠습니까?”


사실 나도 이 사람들을 굳이 여기까지 부른 이유가 협력사 직원들을 카드사, 통신사 정직원으로 직접 고용하라고 말하는 게 포인트는 아니다.


“그럼 조금씩 양보할까요?”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이 중요하다.



###



“생각보다 약하게 마무리를 하셨네요.”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공무원들도 아닌데 공산국가처럼 무조건 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정말 강경하게 나가면 정권 눈치를 보느라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

협력사에서 자체직원으로의 전환은 근로계약서만 다시 쓰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일의 발생을 막기 위한 일이니까요. 대기업 직원이라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맞습니다.”


내가 각 회사 대표들에게 요구한건 매뉴얼 수정이었다.

물론 형식적인 수준을 원한 건 아니었고...


“현장 상담원들은 과연 잘 적응을 할까요?”

“지켜봐야 되겠죠.”


내가 사장들에게 말한 건 스트레스 방지 매뉴얼이었다.

쉽게 말하면 욕을 하는 경우에는 그냥 끊어버리도록 하는 매뉴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도 너무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는 매뉴얼, 실수를 하는 건 당연히 잘못이지만 부당함에는 참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매뉴얼.


“재미나겠네요.”


생각만 해도 웃기다.

욕과 화를 입에 달고 사는 소위 진상들은 전화로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가 되니 소위 멘붕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화가 너무 많아요.”

“욕망이 커서 그런 거죠.”


강한 욕망은 못 살던 나라를 빠른 속도로 잘 살게 만드는 나라로 만드는 데는 강한 동기가 되지만 경제 수준이 일정수준으로 올라온 후에는 많이 달라진다.


“이만하면 먹고 살만한데 왜 다들 올라가기 힘든 곳을 그렇게 올라가려 하는 걸까요.”

“어쩔 수 없죠. 그건 본능이니까요. 그나저나 업체들이 눈치 보기 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고객센터에서 친절을 강요하는 이유는 불친절로 이탈한 회원들이 경쟁사의 제품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걸 막으려고 매번 비슷한 제품을 짧은 간격으로 출시하고, 똑같은 제품을 이름만 바꿔서 내놓는 거다.


“진짜 눈치 보기만 하다가 약속을 안 지키면, 그 후에 사고가 터지면 그때는 본보기를 보여줘야죠.”



###



“정말 그렇게 하라구요?”


양지순은 귀를 의심했다.

매주 열리는 협력사 매니저들의 회의.

회의 진행은 원청의 관리자가 한다.


“대표이사님 지시사항입니다. 무조건 그렇게 하셔야 해요.”

“아니 그래도 고객이 요구를 하면...”

“안돼요. 근로자 보호를 위해서 무조건 욕하는 고객은 끊고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일부러 굽신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을 것 같으면 오히려 당당하게 상담하세요.”


양지순을 제외한 다른 매니저들은 좀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쟤네들은 저 말을 믿는 거야? 바보들아 그렇게 해서 업체들끼리 은근히 경쟁하게 만드는 거라고.’


양지순은 회의를 진행하는 카드본사 직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이십년 콜센터 생활동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앞에서는 사근사근하게 말을 하다가도 민원이 생기거나 서비스 품질이 떨어졌다고 평가되면 무조건 패널티가 부여됐다.


“전 진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공지 내용과 관련해서 위반했다는 상담원 민원이 접수되면 관리자 패널티예요.”

“알겠습니다.”


양지순은 겉으로만 그렇게 말을 하고는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두 시간 후.


“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다고 끊어버리면 어떻게 해?”


형식적으로 전 상담원을 모아놓고 조회도 하고 메신저로 공지를 쪽지로도 발송했다.

그렇게 해야 어찌됐든 지시대로 이행을 했다는 증거가 되니까.


“내가 얘기했잖아. 그건 말일뿐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식으로 고객 응대를 하면 안 된다고.”

“휴...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상담원들이 제 말을 안 듣는 걸 어떻게 해요.”


상담원을 열 명쯤 관리하는 팀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매니저님 아침에 뉴스 못 보셨어요?”

“뉴스? 무슨?”

“아침 일찍 대통령 비서실장이 감정노동자 사고방지 관련 대책 발표 했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말한 내용이 고객사에서 말한 거랑 똑같아요. 고객사도 그냥 형식적으로 한 말이 아닌 것 같다니까요.”

“이 바보야. 너 월급 어디서 받어?”

“갑자기 월급은 왜?”

“협력사 도급비는 어차피 원청사에서 나오는 거잖아. 우리 월급을 대통령이 주니? 청와대에서 줘? 대통령 볼일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애? 길어봐야 임기 오년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하다가 임기 끝나면? 우리는 어차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그럼 정말 원래대로 하라구요?”

“그래. 당장 상담원들한테 긴급 전달해!”



몇 시간 후.


-양지순 매니저님. 아침에 제가 한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신 거예요?


아침에 협력사 매니저 회의를 주관했던 고객사 관리자에게 내선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공지대로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거 대표이사님 지시 사항이라구요!

“아. 알죠. 그래서 저희도 눈치껏...”

-매니저님! 눈치껏 말구요! 공지한 그대로라구요! 제가 아침에 그렇게 신신당부를 드렸는데!

“아...”

-거기 상담원들이 청와대로 민원 넣었대요. 한두 명이 아니예요! 대표이사님이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 받았답니다!


그제야 양지순은 뭐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왜 이런 거지?’


하지만 오십이 넘은 콜센터 경력자인 양지순은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늘 해오던 대로 했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려 하고 있지만 양지순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부터라도...”


어떻게든 수습해야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늦었어요. 내일부터 매니저님 회사 업무 배제될 거예요. 아니 정확히는 업체가 바뀔 겁니다. 상담원들은 그대로 일하고 근로계약서만 다른 업체 계약서로 새로 쓰게 될 겁니다. 퇴근하는 길에 책상 정리해주세요.

“아니 잠깐만요!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이러시면...”


양지순은 인정에라도 매달려 보려 했다.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라 반찬도 싸서 갖다 바치고 틈만 나면 커피에 과일에 뇌물 아닌 뇌물도 많이 바쳤다.

매달리면 그래도...


-늦었어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도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아요.



###



변화의 바람은 콜센터에만 분 것은 아니었다.

주요 대기업 대표이사들이 돌아가며 청와대에 들어갔다 온 후, 현장마다 기존에 없던 공지가 내려갔다.

호의로 제공받는 게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대해서였다.


“축하해!”


애진은 오랜 친구인 지현의 둘째 출산을 축하하러 간 참이었다.


“얼굴 좋은데? 애 낳은 지 얼마 안 된 사람 같지가 않아.”

“그래? 마음이 편해서 그런가.”

“마음이 편해? 아, 너 출산휴가 별 문제없었어?”

“응. 아주 떠 밀더라. 애 잘 낳고 오라고.”

“그전에는 눈치 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첫째 어린이집 졸업식 날 연차 썼다고.”

“아. 그 사람 다른 부서로 갔어.”

“그래?”

“그 사람이 꼰대였던 건지. 그 사람 가고 나니까 내가 처음 생각하는 다이버던데? 연차 같은 거 눈치 안보고 쓰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도 기대했던 대로고. 넌 어때?”

“나야 뭐...”


애진은 여전히 sg카드에 근무하는 중이었다.

퇴원 후 퇴사를 생각했지만 매니저와 팀장이 바뀌어 있었고, 전과는 다를 거라며 계속 근무를 권장해서였다.


“좋아.”


바닥까지 추락한 자존감에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었지만, 언제 그랬나 싶었다.

가족들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기에 일상으로의 복귀가 쉬웠다.


“지현아 너 최근에 콜센터 전화... 아니다. 넌 해당 사항이 없겠다.”

“왜? 무슨 일인데?”

“우리 이제 일이 쉬워졌어. 업무 숙지만 제대로 하면 쓸데없이 굽신거릴 필요가 없거든. 고객이 야 이 새끼야! 그러잖아? 그럼 바로 끊어버려. 같은 고객이 연달아 나한테 계속 연결이 되는데 그때마다 욕을 하거든? 그때마다 바로 끊어버리니까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잘됐다. 너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심했잖아.”

“내말이. 이게 진짜 현실인지 가끔은 실감이 안 난다니까? 어쩜 고객센터가 이렇게 되는 날이 올수가 있는 거지?”



###



“생각보다 업체들 협조가 잘 돼서 좀 놀랐습니다.”

“본인들도 장기적으로 보는 거겠죠. 기업이미지도 생각해야 될 거구요. 문제점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굳이 해결할 필요를 못 느끼다가 이번을 기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고객센터의 변화에 따른 기업의 손익과 이미지에 대한 계산을 안했을 리가 없다.


“어쨌든 잘 된 일이네요. 다 못쓴 연차 휴가 신청 때문에 지금 여행 업계가 엄청 바빠졌다고 하던데요.”


뉴스에 보도된 내용이었다.

갑작스런 연차 사용이 늘면서 여행업계가 수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보다 많이 곪아 있었나 봐요.”


더 잘살고 싶은 것만큼이나 일을 하기 싫고 쉬고 싶은 것도 인간의 욕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일을 너무 많이 하니까요. 옆에서 안하면 나도 안할 텐데 안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예요.”


주변에 돌싱이 많으면 이혼이 이상한 게 아니게 된다.

주변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걸 보면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되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렇게 행복하게.



###



“얘들아 잘 놀았어?”

“네!”

“아빠 너무 재미있었어요!”


재혁은 아이들과 간만에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어린이날에 같이 가기로 한 걸 급한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해 내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밀린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아빠도 너희들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웠어요.”


엄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라 신경을 아무리 써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었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먹고 자자!”


도로도 한산했다.

이 상태면 십 분이면 집에 도착할 것 같았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과 별개로 하루 종일 아이들 신경 쓰느라 녹초가 된 상태였기에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이고 하필...”


저 앞에 있는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는 게 보였다.

총각시절에는 신호등이 노란색이면 오히려 빨간색이 되기 전에 지나가려고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지만, 아이들이 생긴 후로는 브레이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우우웅! 바아앙!


“어?”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알피엠이 올라가면서 차에 가속이 붙는 걸 느꼈다.


“뭐야? 왜 이래?”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지만 차는 점점 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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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0) 음주운전 원아웃 23.11.28 220 6 12쪽
60 (59) 검찰놀이 23.11.27 217 7 11쪽
59 (58) 범죄자는 여러분이 처음 23.11.26 213 6 12쪽
58 (57) 나쁜 놈들의 공통점 23.11.26 220 7 13쪽
57 (56) 최대한 심플하게 23.11.25 227 7 12쪽
56 (55) 예외는 없습니다 23.11.25 223 6 11쪽
55 (54) 생계형 운전자 23.11.24 224 6 14쪽
54 (53) 범퍼카 방지법 23.11.24 224 6 12쪽
53 (52) 주차시비 23.11.23 236 6 13쪽
» (51) 변화의 바람 23.11.23 235 6 13쪽
51 (50) 매뉴얼의 문제 23.11.22 232 6 12쪽
50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23.11.22 246 7 12쪽
49 (48) 명백한 노동착취 23.11.21 252 7 11쪽
48 (47) 휴가도 눈치 보고 23.11.21 259 7 12쪽
47 (46) 이제 때가 온 겁니다 23.11.20 267 7 13쪽
46 (45) 온라인 이원생중계 23.11.20 263 9 13쪽
45 (44) 기회를 주는 겁니다 23.11.19 272 7 12쪽
44 (43) 꼭 필요한 것 23.11.19 289 7 12쪽
43 (42)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23.11.19 291 6 13쪽
42 (41) 라방 23.11.18 291 7 12쪽
41 (40) 시행착오 23.11.18 304 7 12쪽
40 (39) 눈먼 돈 찾아오기 23.11.18 318 9 13쪽
39 (38) 첫 국무회의 +1 23.11.17 319 7 11쪽
38 (37) 애들이 밥을 굶고 다니지 않습니까 23.11.17 319 6 13쪽
37 (36) 월세 지원 23.11.16 316 7 12쪽
36 (35) 사회 주택 23.11.16 320 7 12쪽
35 (34) 안전장치 23.11.15 335 8 12쪽
34 (33) 배를 째라면 째줘야지 23.11.15 34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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