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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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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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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22 23:30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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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50) 매뉴얼의 문제

DUMMY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으면 된다.

상담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의욕이 떨어질 정도로 큰일이 벌어진 건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잊혀 질 것이다.

열한 개 층이 있는 건물 전체 중 소문이 몇 개 층까지 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초 발견으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단도리를 잘 해두면 괜찮을 것이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한테 늘 말씀드리는 거 알죠? 상담원들 건강이 먼저라고요. 스트레스 받으면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들어오시고, 흡연자들은 옥상 가서 담배도 좀 피고 오시라고 늘 그러잖아요.”


거짓말이다.

양지순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대기가 길어지면 이석금지라고 소리까지 지를 정도로 평소에 윽박지르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흥분된 분위기 수습하는 게 우선이야.’


근무인원의 구십 퍼센트가 아줌마 상담원들이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겠지만 그만큼 다른 화제 거리가 생기면 금새 그리로 넘어갈 거라는 건 너무 잘 안다.


“레드콜 들어오면 담당자가 다시 연락드린다고 하고 종료하시고 팀장한테 넘겨주세요. 팀장이 콜백 나갈 거니까. 여러분들 건강이 우선입니다.”


대회의장에서 상담원들을 다독이고 나면 다음은 팀장들 차례다.

여러 겹으로 단속을 해놔야 소문이 나지 않는다.

경찰까지 왔다간 마당에 혹시 누가 방송국에 제보라도 하면...


‘그건 절대 막아야 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 신경도 안 쓰겠지만 다른 콜센터의 전적이 있지 않은가.

실습 나온 어린 상담원을 가장 어려운 해지방어 부서에 배치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고 한동안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걸 알기에 고객사 쪽에서도 출근하자마자 자신을 불러서 주의를 줬을 것이다.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돼.’


힘든 일인 건 양지순도 상담원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너무 잘 안다.

버티는 사람은 버티는 거고, 나가떨어질 사람은 나가떨어진다.

적자생존.

나가떨어진 사람과 그럴 예정인 사람들까지 챙길 여유 따윈 없었다.



###



“목을 맸다구요? 출근하고 얼마 안 있다가 회사 화장실에서요?”

“그런 것 같습니다. 가족들끼리도 쉬쉬하고 있는데 조리실장님 아드님한테 살짝 얘기가 들려왔어요.”


문득 예전에 본 기사가 생각났다.

열아홉인 고등학생이 취업실습을 나갔다가 가장 난이도 높다는 해지방어 부서에 배치된 후 사흘 정도 온갖 욕을 다 먹고 나서 회사 옥상에서 투신자살 했던 그 사건.


“연상 되는 게 있으시죠?”


비서실장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물어왔다.


“네... 안타깝게도요.”


반복이 자꾸 된다.

더욱이 이런 케이스는 현행법으로 규제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고객센터라는 곳이 불만을 가진 채 전화를 하는 곳 아니던가.


“콜센터다보니 사대보험이나 연차 같은 건 당연히 있지만...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조리실장님의 며느리에게 아무도 그것도 못 하냐, 나가 죽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니 그보다 회사 측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책임자인 매니저라는 사람이 바로 왔다갔다고는 합니다.”

“왔다갔는데요?”

“그냥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그게 다는 아니죠?”

“답니다. 그게.”

“네? 같이 일하던 동료가 회사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 시도를 했는데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구요?”

“그렇습니다.”

“와... 어이가 없네. 그 회사는 다음에 또 사람이 죽을 뻔 하거나 죽어나가도 사과만 할 거랍니까?”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었기에 비서실장도 별 말을 못했다.


“조리실장님을 만나봐야 되겠어요.”


고쳐야 할 문제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극단적인 선택은 본인의 문제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게 몰려갔다고는 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있다고는 해도 업무의 특성이 원래 그래서 그걸 회사의 탓으로 돌리기도 애매하다.


“어쩌시려구요,”

“어쩌긴요? 최대한 도와드려야죠.”

“개인의 일에 대통령께서 직접 개입을 하시면...”

“뭐 언제는 개입 안했습니까? 사람이 죽을 뻔한 큰 사고였습니다. 챙길 수 있으면 최대한 챙겨야죠. 더욱이 청와대에서 제 밥을 챙겨주는 조리실장님이예요. 이럴 때 대통령 빽 안 써보면 언제 써보겠어요?”

“...”

“당장 연락 취해보세요. 제가 좀 보자고 한다고,”



###



“왜 말씀을 안 하십니까.”


한정식 조리실장님은 나와 대면한지 십 분이 넘도록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당사자인 애진이도 다행히 이제 안정을 좀 찾은 것 같구요.”

“저도 대충 다 들었는데요.”

“네? 뭘... 말씀이십니까?”

“뭐.... 건너 건너 들은 게 있습니다.”


아무리 편하게 하려해도 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집안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게 좋은 일이 아니라 우환이 생겨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하는 관심이라면 백배는 더 부담스러울 것이고.


“걱정해주시는 마음. 만 받겠습니다.”

“허허... 어쩌죠? 전 그러기가 싫은데.”

“네?”

“전 대통령입니다. 조리실장님께서는 절 찍으셨는지 안 찍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투표권이 있는 국민 대부분이 뽑아서 오년동안 이 나라의 국민들의 민생과 안전을 책임져야 되는 사람이예요.”

“전 투표를...”

“저를 찍으셨건 안 찍으셨 건, 아니 아예 투표를 안 하셨건 상관이 없어요. 조리실장님도 제 국민 아닙니까.”

“...”

“그러니 제가 책임을 져야죠. 그것도 이렇게 매일 얼굴을 보는 분의 일을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계속 부담을 느끼는 표정이다.


“화도 안 나세요?”

“...”

“며느리지만 딸처럼 아끼는 사람이라면서요? 내 딸을 목 매달 정도로 힘들게 한 사람인데 저 같으면 칼이라도 쥐고 찾아갔을 겁니다. 내 딸이 죽을 뻔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음... 사실...”


조금은 내 압박에 의해 입을 여는 분위기였다.

충분히 이해를 할 수가 있었기에 난 기다려줬다.


“변호사가 찾아왔습니다.”

“...?”


사과까지 하고 갔다면서 변호사?


“그리고 말을 하더군요. 그 찾아왔었다는 매니저라는 여자가 따로 보낸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데요?”

“혹시 모르니 언론 같은데 제보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네요. 무고로 고소를 할 수도 있다면서.”



###



“sg 카드? 여기가 제일 많네요. 이거 조리실장님 아드님 내외가 근무한다던 거기 맞죠?”


설문조사 첫날부터 의견 접수가 상당히 많이 됐다.

혼자서 일일이 다 볼 수가 없는 지경이어서 콜센터 상담원들을 통해 의견별로 요약정리가 돼서 보고서가 올라왔다.


“맞습니다.”

“많다 많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러네요.”

“아무래도 청와대가 편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비서실장은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표정이었다.

물론 지금 해결해야 하는 일이 긍정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근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매니저 연봉이 삼천이 조금 넘는데, 언론에 제보돼서 사건이 뉴스가 탄다고 이렇게 변호사까지 동원할 일입니까? 그 돈이면 차라리 피해자 가족들한테 보상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음... 제 생각에는 선례를 가급적이면 남기지 않으려고.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요?”

“선례요? 이미 몇 년 전에 통신사 고객센터 열아홉 여고생 자살사건도 있는데 무슨.”

“그건 그 회사구요.”

“아직 자기들한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뭐 그런 거예요?”

“일단 업종이 다르고요. 통신사하고는 다르게 카드사는 콜센터 상담원들 전원이 도급업체 직원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이유가 됩니까?”

“원청인 고객사의 눈치도 봐야하고, 같은 고객센터 안에 있는 다른 업체들 눈치도 봐야하고... 아무튼 이런 일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우리는 아무 일없이 잘 넘어갔다. 뭐 그런걸 보여주고 싶겠죠. 그게 매니저로서 원청에 능력을 보여주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아무 일 없이...”


그 말이 거슬렸다.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이럴 리가 없다.

아무래도 나라가 미쳐 돌아가나 보다.


“결국 중간 관리자들이 본인들 실적을 위해서 알아서 눈치를 봐서 그런다는 거잖아요.”

“현장이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견이 대다수니까요.”

“그럼 원청에 그런 눈치를 안 보게끔 원인을 차단하면 되겠네요.”




###



고객센터라는 곳이 원래가 위험한 곳이다.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a/s센터 정도로만 했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을 텐데.


“바쁘신데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객센터라는 곳을 운영하는 업종 중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곳의 대표들을 호출했다.

확인해본결과 고객센터를 운영은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클레임까지 들어주지는 않는 곳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주로 업계에서는 대기업 급 소리를 듣는 곳만 호출한 셈이다.


“이렇게 오시라고 한 이유는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원래 이런가.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 하게 된다.


“현재 각자 운영하시는 콜센터 말인데요.”


갑자기 불러서 콜센터라니.

이 말 많고 탈 많고 일 벌리기 좋아하는 젊은 대통령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일순 긴장들을 한다.


“상담원들을 전부 정직원으로 채용할 수는 없습니까?”


한마디에 전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각 회사의 대표들.


“제가 방금 한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아시죠? 정규직이라도 도급업체 정규직 말고 각 회사 브랜드에서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 바꾸시라는 말입니다.”

“대통령님. 그 많은 인원을 저희가 직접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협력사를 따로 두는 거구요.”

“맞습니다. 원래는 자체 계약직으로 운영했지만 아무래도 관리에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의 형태로 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다보니 이렇게 된거겠지.


“무슨 말씀인지는 압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반복해서 발견되면 시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네 그래서 저희가 문제 되는 업체들이 없게끔 우량업체들로 선정...”


난 바로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우량한 업체들을 고르다보니 협력업체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과도하게.”


맞는 말인지 순간 모두 입을 다물었다.


“sg카드 도급업체들. 거기서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네?”


내말에 sg카드사장이 고개를 든다.

보고받은 게 없다는 저 얼굴.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시겠지. 밑에서 알아서들 할 테니까.’


일차적으로는 도급업체 자체적으로 그것도 안 되면 원청인 카드사 본사로 넘어오기는 하겠지만 대리나 과장들이 괜히 있겠는가.

본사에서 도급업체 관리를 하는 담당직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들 선에서 커트가 되는 것이다.


“한 달 내내 교육을 한답니다. 그런데 워낙 많은 카드사 업무를 그 짧은 시간에 다 외울 수는 없다보니 첫 달에는 결제 업무에만 투입을 한다고 하더군요. 적응을 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이죠.”

“현장 교육은 각 도급업체에서...”

“조금 더 제 말을 들어보시죠.”


카드사 대표들 정도 되면 기업 카드는 재벌가 오너들이 보통 사장이다.

은행권 카드는 조금 다르겠지만 어차피 그 밥에 그 나물. 현장은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콜이 몰리는 상황이 되면 이것저것 다 받아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죄송합니다만 반복하고요. 이건 뭐 훈련소 마치고 나온 이등병에게 분대장 자리를 맡기는 거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요?”


이 사람들도 카드 회사 사장들이면 기득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대선에서 나에게 표를 주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더 큰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듣고 어이가 없었던 케이스였다.


“도급업체끼리 누가 더 많이 콜을 받는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수치가 떨어지면 일단 쳐내기를 한다더군요. 받자마자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는 바로 끊고 다음 전화를 받는 거죠. 이거 도급업체의 고과를 평가하는 카드사 본사의 매뉴얼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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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1 (60) 음주운전 원아웃 23.11.28 220 6 12쪽
60 (59) 검찰놀이 23.11.27 217 7 11쪽
59 (58) 범죄자는 여러분이 처음 23.11.26 213 6 12쪽
58 (57) 나쁜 놈들의 공통점 23.11.26 220 7 13쪽
57 (56) 최대한 심플하게 23.11.25 227 7 12쪽
56 (55) 예외는 없습니다 23.11.25 223 6 11쪽
55 (54) 생계형 운전자 23.11.24 224 6 14쪽
54 (53) 범퍼카 방지법 23.11.24 225 6 12쪽
53 (52) 주차시비 23.11.23 236 6 13쪽
52 (51) 변화의 바람 23.11.23 235 6 13쪽
» (50) 매뉴얼의 문제 23.11.22 233 6 12쪽
50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23.11.22 246 7 12쪽
49 (48) 명백한 노동착취 23.11.21 253 7 11쪽
48 (47) 휴가도 눈치 보고 23.11.21 259 7 12쪽
47 (46) 이제 때가 온 겁니다 23.11.20 267 7 13쪽
46 (45) 온라인 이원생중계 23.11.20 263 9 13쪽
45 (44) 기회를 주는 겁니다 23.11.19 272 7 12쪽
44 (43) 꼭 필요한 것 23.11.19 289 7 12쪽
43 (42)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23.11.19 291 6 13쪽
42 (41) 라방 23.11.18 291 7 12쪽
41 (40) 시행착오 23.11.18 304 7 12쪽
40 (39) 눈먼 돈 찾아오기 23.11.18 318 9 13쪽
39 (38) 첫 국무회의 +1 23.11.17 319 7 11쪽
38 (37) 애들이 밥을 굶고 다니지 않습니까 23.11.17 319 6 13쪽
37 (36) 월세 지원 23.11.16 316 7 12쪽
36 (35) 사회 주택 23.11.16 320 7 12쪽
35 (34) 안전장치 23.11.15 336 8 12쪽
34 (33) 배를 째라면 째줘야지 23.11.15 347 7 12쪽
33 (32) 언젠가는 없어져야할 제도 23.11.14 363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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