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9,374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21 11:30
조회
258
추천
7
글자
12쪽

(47) 휴가도 눈치 보고

DUMMY

“애 어린이집 졸업식을 갔다 왔다고?”


팀장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작은 IT회사에서 근무를 하던 지현이 업계1위인 대기업 ‘다이버’ 로 이직한건 대기업다운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법정 휴가 같은 건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고 쓰는 게 당연한.

그런데 연차를 쓰고 복귀를 했더니 팀장 반응이 시큰둥한 것 같았다. 마치 말도 없이 어딜 갔다 왔냐는 듯 한.


‘에이. 기분 탓이겠지.’


이직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 회사에서 이런 일로도 항상 눈치를 보다보니 괜한 주눅이 든 건지도 모른다.

좀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바빠서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난 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네. 그래서 한 달 전에 연차 신청해놨는데요.”

“그래...?”

“네. 혹시 어제 무슨 문제라도... 아니면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지...”

“아니야. 됐어, 가서 일봐요.”

“네 그럼.”


지현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때였다.

뒤에서 이어서 들려온 말에 지현은 귀를 의심했다.


“이래서 애 엄마들은 안 돼. 애를 키우든 회사를 다니든 하나만 해야지.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저 배봐. 둘째 낳으면 또 출산 휴가 쓴다고 자리 비울 거 아니냐고.”


지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거 같았다.

이전 직장에서도 눈치는 많이 봤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대놓고 민망하게 하는 일은 없었고, 휴가 눈치보고 쓰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늘 했으니까.

그저 작은 회사라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다음 달이 둘째 출산인데 어쩌지?’


지현은 잔뜩 부른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걱정거리가 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



“밥값 청구는 많이 들어옵니까?”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되고 있나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이 들어옵니다.”

“어느 정도나요?”

“허리가 휠 지경이네요.”

“하이고. 엄살은. 비서실장님 허리가 휠 지경이면 전 세계 기아를 구제해야 되는 거 아니예요?”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티도 안날지도 모른다.

그만큼 유대인들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비서실장님은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보다 더 대단하다고 본인 입으로 직접 말을 했으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죠.”

“응?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실까요?”

“아프리카로 대변되고 있는 굶주리는 나라들. 그곳의 사람들은 차라리 사는 사람들을 다른 나라로 옮겨서 도와주는 게 나을 겁니다.”

“아... 그 말씀은 아프리카 대륙은 희망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희망이 제로라기보다는 효율을 따지면 그 땅에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비옥한 땅을 찾는 게 나을 거란 뜻입니다.”

“음...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군요.”

“우리는 우리 문제를 신경 써야죠. 대한민국도 금 나와라 뚝딱 한다고 바로 원하는 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요. 계속 일합시다.”

“공공 주택 부지를 꽤 확보했습니다. 공사업체 선정 끝났고, 곧 첫 삽을 뜰 예정입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비 협조적인가요 또?”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한다.

뭔가 또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회귀를 한 사람이라 그런가.

늘 보는 얼굴이지만 별다른 감정이 얼굴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지으려구요. 한번 지어놨으면 최소한 오십년, 아니 백년 이상은 멀쩡하게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죠.”


예전에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 통에 불타 없어지고 현대에 와서는 자꾸 짓고 부수고 하는 바람에 유서가 오래된 건물이 거의 없지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만 가도 백년 이상 된 건물은 수두룩하다는 걸.

멀리 유럽까지 가면 백년 이상 된 주택도 우습게 보인다.


“국내 건설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건축 환경이 좋지 않은 외국에 나가서 수주도 따오는걸 보면 기술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설마... 내진 설계 같은 거 염두에 두고 계시는 건가요? 하긴... 그건 당연히 해야 되겠죠 이젠 우리도 미룰 수 없으니까요.”

“물론 그런 것도 그런 건데...”


비서실장님의 얼굴에 살짝 짜증이 서린다.

호... 이런 건 또 보기 힘든 장면인데.


‘하긴 긍정보다는 짜증이 참기가 힘들겠지.’


백번 욕을 하더라도 한번 칭찬해주는 사람은 좋게 보이고, 늘 좋은 말만 해도 한번 욕하면 그 사람은 욕쟁이로 보인다고 하지 않나.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말씀을 좀 해보세요.”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일단 이거부터 말씀드려야 되겠네요. 첫 번째는 내구성 문제입니다. 최고 재벌이 짓는 아파트에서 짓자 마자 누수와 벽 갈라짐, 그리고 짓는 도중에 벽이 무너져 내리고, 살고 있는데 비가 줄줄 새고... 그런 아파트를 몇 억씩 주고 분양을 받습니다.”

“음.”

“그렇게 돈을 벌던 사람들이 얼마 전 그때의 이슈로 저희한테 협력을 약속은 했지만... 훨씬 후려친 가격에 공사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믿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또 어디서 무너지기라도 했습니까?”


그렇다면 이건 패널티를 줘야 할 문제다.

아니 그전에 혹시 생겼을지도 모를 피해자부터 챙겨야 되겠지.


“아니요. 설계 도면부터 일단 의뢰를 맡겼는데 개판이라고 하더군요. 날림으로 설계한 티가 너무 난다구요.”

“잠깐만요 실장님. 의뢰라니요? 어디에요?”

“제가 두 번씩이나 오래 살기는 했지만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제 전문 분야는 아시겠지만 고대 유대인들처럼 금융업입니다. 아파트 설계도면 같은 건 봐도 알 수가 없지요. 굳이 그걸 보겠다고 건축 공부를 하는 건 시간 낭비구요.”

“암튼... 개판이다.”

“네. 설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제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에게 의뢰 맡겨서 오십년 백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받을 것을 요구했더니 비용 문제로 난색을 표하더군요.”

“결국 국내 재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건가요.”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 걸레는 걸레라는 건가.

비가 쏟아지면 잠시 피하면 그뿐이다.

그들에게 지금 내가 대통령인 이 정권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로 보일 지도 모른다.

내 임기가 끝나면 늘 그랬듯 자신들이 몇 십 년을 봐온 그저 그런 대통령이 또 선출되기를 바라겠지.


“이거 골치 아프네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골치 아픈 건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아까 부지 확보하고 시공업체 선정 끝났다고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잠깐만 내가 모르는 내용인건가.


“미처 보고 드릴 시간은 없었습니다. 요새 결식아동, 아니 결식 미성년자와 미혼모 정책 문제로 너무 바쁘셔서.”

“그건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깜빡하고 미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네요.”

“바쁘신 거 같아서 중요한 거 아니면 보고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독단적으로 처리해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못한 걸 대신 하게 해서 제가 죄송하죠,”


대통령이 두 명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유사시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아무 일이 없을지도.

어쩌면 내 다음으로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참. 조리 실장님은 휴가 잘 갔다 오신건가요? 오실 때가 된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는 한 달씩 주고 싶지만 여기가 개인 회사도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휴가 같이 가기로 한 아들도 이틀밖에 짬을 낼 수 없어서 고작 주말포함 4일 아니었나.


“일단 복귀는 하셨습니다.”

“짧아서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출출한데 라면이라도 좀 먹고 올까요?”

“음... 네. 일단 가시죠. 잘 다녀왔냐고 인사는 하셔야 하니까.”



###



지현은 고등학교 동창인 애진과 간만에 회포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만삭이라 회포를 풀어봐야 수다를 떠는 게 전부였지만 멀리서 출산 축하 선물까지 들고 온 친구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어서 아이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겨우 짬을 냈다.


“너 그 업계 1위 회사 아냐? 다이버면?”

“그렇지.”

“연봉도 많이 준다면서.”

“대기업의 함정이 뭔지 아냐? 많이 주는 만큼 뼛골까지 우려먹는다는 거야. 작은 회사만 다니다가 육아 때문에 복지 좋다는 대기업으로 옮겼는데 이런 대접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무려 한 달 전에 신청했고, 애 어린이집 졸업식인데 눈치를 보며 휴가를 쓴다는 게 말이 돼 요즘 같은 세상에? 결근을 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법정 휴가 아니냐고,.”


지현은 차라리 이직전의 작은 회사를 다닐 때가 더 좋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래도 대기업인지라 친구의 눈에는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걸까.


“야. 그래도 니네는 돈이라도 많이 주잖아. 난 최저시급이야. 내가 원해서 다니고는 있지만. 아 그리고 우리도 연차 같은 거 마음대로 못써. 콜센터는 칼 퇴근에 법정휴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더니 이거 뭐...”

“그래도 콜센터는 문 닫는 시간이라도 있을 거 아냐. 우리는 프로젝트 큰 거 하나 잡히면... 휴 말도 못해. 그냥 경쟁업체인 ‘타다오’나 갈걸 그랬나봐.”


서로의 불만을 두서없이 얘기하다보니 자잘한 얘기로 대화가 길어졌다.

그러다 지현은 애진에게 경악할만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



“여행지에서 첫날 바로 돌아오셨다구요?”


라면 한 그릇 얻어먹을 겸, 휴가는 잘 다녀오셨냐고 인사도 할 겸 찾은 식당.

반갑게 인사하는데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 말았다.


“... 네.”


가족여행 차 찾은 휴양지.

도착하고 한 시간 있다가 복귀를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단다.

그것도 해외에서.


“아니 그걸 그렇다고 그냥 돌아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티켓도 그렇고, 숙소도 전부다 예약을 해놓고 가신 걸 텐데요.”

“어쩔 수 없지요.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직장이라...”


내가 더 어이없어 하는 반응을 보이자 주방실장님이 괜한 말을 한 거 같다며 오히려 미안해하신다.


“아이고 저런...”


어처구니없지만 이미 일어난 일 어쩌겠는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예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어서, 귀국한 다음에 아들놈 급한 일만 마치고 바로 돌아와서 근처에 바람이라도 잠깐 쐬고 왔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었길래. 해외까지 가족여행 간 사람을 전화해서 당장 들어오라고 할 정도로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답니까?”

“하하... 그게...”


난처한 듯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에서 말하기 곤란한 표정이 느껴진다.

뭐가 곤란한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봐야 되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



SG카드 고객센터.

애진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입사 석 달째지만 아직도 업무는 어렵기만 하다.

오늘따라 소위 ‘레드콜’이라는 부르는 진상도 하루 종일 연결이 된다.

지금 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벌써 이십 분 째 통화를 하고 있다.


“고객님께서 지난번에 본인인증까지 하시고 온라인으로 결제를 하신 걸로 확인이 되는데요. 자주 결제하시는 곳인데 모르는 게 맞으신 거예요?”

-아, 글쎄. 난 거기 간적이 없다고! 간적이 없고 카드는 나한테 있는데 이게 왜 결제가 되는 건데!

“온라인 결제라구요 고객님! 오프라인, 그러니까 매장에 가서 직접 하는 결제가 아니고요.”

-나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모르겠고!

“인터넷을 보통 온라인이라고 하고요. 만나거나 가서 결제하는 걸 오프라인이라고 하잖아요.”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업무에 회의를 느끼고 분통이 터지려고 할 때였다 .


-아 씨발! 뭐 이런 멍청한 년이 다 있어? 너 같은 멍청한 년 말고 니 윗대가리한테 직접 전화하라고 해!


그 말만 하고 이십분을 넘게 통화하던 고객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애진의 두 눈에서는 여태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1 (60) 음주운전 원아웃 23.11.28 220 6 12쪽
60 (59) 검찰놀이 23.11.27 217 7 11쪽
59 (58) 범죄자는 여러분이 처음 23.11.26 213 6 12쪽
58 (57) 나쁜 놈들의 공통점 23.11.26 220 7 13쪽
57 (56) 최대한 심플하게 23.11.25 227 7 12쪽
56 (55) 예외는 없습니다 23.11.25 223 6 11쪽
55 (54) 생계형 운전자 23.11.24 224 6 14쪽
54 (53) 범퍼카 방지법 23.11.24 224 6 12쪽
53 (52) 주차시비 23.11.23 236 6 13쪽
52 (51) 변화의 바람 23.11.23 234 6 13쪽
51 (50) 매뉴얼의 문제 23.11.22 232 6 12쪽
50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23.11.22 246 7 12쪽
49 (48) 명백한 노동착취 23.11.21 252 7 11쪽
» (47) 휴가도 눈치 보고 23.11.21 259 7 12쪽
47 (46) 이제 때가 온 겁니다 23.11.20 267 7 13쪽
46 (45) 온라인 이원생중계 23.11.20 263 9 13쪽
45 (44) 기회를 주는 겁니다 23.11.19 272 7 12쪽
44 (43) 꼭 필요한 것 23.11.19 288 7 12쪽
43 (42)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23.11.19 291 6 13쪽
42 (41) 라방 23.11.18 290 7 12쪽
41 (40) 시행착오 23.11.18 304 7 12쪽
40 (39) 눈먼 돈 찾아오기 23.11.18 318 9 13쪽
39 (38) 첫 국무회의 +1 23.11.17 319 7 11쪽
38 (37) 애들이 밥을 굶고 다니지 않습니까 23.11.17 319 6 13쪽
37 (36) 월세 지원 23.11.16 315 7 12쪽
36 (35) 사회 주택 23.11.16 320 7 12쪽
35 (34) 안전장치 23.11.15 335 8 12쪽
34 (33) 배를 째라면 째줘야지 23.11.15 347 7 12쪽
33 (32) 언젠가는 없어져야할 제도 23.11.14 363 9 11쪽
32 (31) 도움이 된다면 작은 것이라도 23.11.14 375 9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