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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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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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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2,510

작성
23.11.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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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DUMMY

“하여간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요. 처음부터 잘해주질 말아야 된다니까.”


동네의 한 고기 집.

자정이 넘어간 늦은 시간.

남자 둘이 불판에 고기를 구우며 뭐가 그리 속상한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나도 하도 사정하길래 며칠 휴가 줬거든. 얼마 안 되지만 휴가비까지 좀 주면서. 그런데 그길로 잠수 타더라. 더 웃긴 건 안 나온지 보름정도 지났는데 갑자기 전화 와서는 한다는 말이 뭔지 아냐? 월급이 입금이 안됐다고. 더 기가 찬 건 일 년 넘었으니까 퇴직금도 달래.”

“그래서 넌 뭐라 그랬는데?”

“뭐가 그러긴. 원래 일도 열심히 하고 싹싹한 애였거든. 그대로 열심히 잘했으면 퇴직금 정도는 생각을 해봤을 수도 있어. 그런데 막판에 그렇게 개판을 치고 나갔는데 뭐가 이쁘다고 퇴직금을 줘? 월급도 입금 못해주니까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직접 받아가라 그랬어. 그날 손님 얼마나 많았는데 하필 그 자식 안 나오는 바람에 바빠 가지고 서빙하다가 사고 나서 손님한테 병원비도 물어줬다니까.”


말을 마친 남자는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린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퇴직금은? 못준다니까 뭐라는데?”

“노동부에 신고하겠단다. 그래서 신고하라 했어. 벌금도 얼마 안 되는데 그냥 벌금 물고 말지뭐.”

“야 그거 조심해야 돼. 대통령이 근로 기준법 손본다고 앞으로 일인사업장 제외하고 전 사업장 일괄 적용한다는 거 공문 못 봤냐? 과태료가 네 배에서 매출 규모에 따라서 더 얻어맞을 수도 있겠더라.”

“더러워서 업종을 바꾸던가 해야지.”

“지랄. 바꾸기는. 넌 그래도 애들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이잖아. 나 같은 술집은 애들도 못 받아서 코 묻은 정부지원도 못 받는다고. 복에 겨운 줄이나 아셔,”

“암튼 과태료 얻어맞더라도 내가 그 자식한테 퇴직금은 절대 못준다.”


새로 손을 보고 있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기업화되지 않은 보통의 상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당장 사대보험으로 나가는 비용 지출보다 아이들 밥값을 청구해서 받는 게 더 많았지만 원래 사람 심리라는 게 받은 것보다는 뺏기는 것만 생각하는 법이니까.



###



“이야 이건 기발한데요?”


한명이 넘어가면 그게 가족이든 친지든 완전히 남이든 무조건 전 직원을 사대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을 하게 해야 한다고 법을 고치려 하니까 상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편법을 써가며 창의적인 대응을 해왔다.


“정말 좁은 땅덩어리에서 잔머... 아이고 말이 나도 모르게 막 나오네. 암튼 이거 정말 기발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걸 또 법으로 막을 수도 없고 막을 법규도 없는 거 같은데.”


사업주들이 직원들을 어떻게 꼬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동업의 관계로 변신을 한 사업장이 상당수가 발견됐다.


“뭐라고 꼬셔서 이렇게 진행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근로자의 적극적인 동의하에 이렇게 진행이 됐다면 할말이 없다.

사업자 명의만 내주고 동업 식으로 하자고 하면 좋다고 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을지 모르니까.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쨌든 단순 근로자인 것보다는 득이 되는 게 있겠죠?”

“최저시급 알바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들 하겠지요. 나름대로 전망이 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사대보험 가입을 안 하게 하려고 이렇게 파트너쉽을 생각하다니. 정말 센스가...”


감탄이 나오는 잔머리였다.

이래서 ‘편법’이라는 단어가 생겼겠지.

법을 교묘히 피해갈 뿐 어기는 건 아니니까.

어쨌든 근로자에게 긍정적인 쪽으로 발전을 해나간다면 그 역시 딱히 제지를 할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취지는 근로자의 권익을 위함이었으니까.


“아직 기업화 되지 않은 수준의 자영업자들은 이런 식으로 대응이 용이한 편입니다. 바꾸고 고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죠. 단 시간 내에도 얼마든지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일이 쉽게 된 건가.

개인사업자의 규모를 넘어서는 회사들.

그것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부터 들여다봐야 되겠다.


“그런데 이런 전례도 있습니다.”

“뭘 말씀하시는 거죠?”

“칼 퇴근 시켜서 저녁 있는 삶을 살게 했더니 생활비가 모자라다고 부업을 하는 가장들요.”

“요즘에도 자의든 타의든 있을 겁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욕심이다.

내 집을 가지겠다고 무리해서 대출을 받고, 자식 앞날을 위해서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붓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동네에 살고, 좋은 것만 먹고 싶고...


‘욕심만 버리면 상당부분 해결될 문제들일 텐데 말이야.’


하지만 욕심이 없으면 세상의 발전은 더뎠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발전을 하지 않았다면 덜 행복했을까.


“일단은 조사를 좀 해봐야 되겠네요. 정말 일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일을 많이 하고 잘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갈수록 워라벨을 찾고 일보다 돈보다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에 말도 안 되는 혹사를 시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도 제대로 안주는 회사가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휴가 문제도요. 디테일하게 업종별로 업무와 급여, 복지에 대한 만족도를 최대한 자세하게 조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



가장 좋은 설문 조사 방법은 역시 무기명 온라인 조사다.

일주일의 기간을 주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카테고리를 만든 후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았다.

무기명이니만큼 기업의 이름도 원치 않으면 비공개였다.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능할까요?”

“글쎼요. 까봐야 알지 않을까요. 국민을 믿고 가는 거죠.”


나와 비서실장은 청와대콜센터에서 접수된 국민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온라인 접근 취약계층은 원하는 경우 청와대콜센터로 의견 접수도 가능하도록 광고를 했기에 전화로도 꽤 접수가 되는 상황이었다.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식사라도 하고 오실까요? 조리실장님은 라면을 정말 맛있게 끓이시는 것 같던데요.”


라면은 왜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가 않을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조리실장님이 끓여주시는걸 기대하신다면 다음에 드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 혹시 오늘 휴무이신가요?”

“아닙니다. 집에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 건지 아까 얼굴이 사색이 돼서 부랴부랴 조퇴를 하셨습니다.”

“사색이요?”


사색이라는 표현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



sg카드 광남 사옥 고객센터.


“민원 통화를 못 나가겠다구요?”

“... 네.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애진은 팀장의 서슬 퍼런 물음에 고민을 잠깐 했지만 결국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잘못한 게 왜 없어요? 고객이 기분 나쁘거나 화가 나면 잘못 한 거 아닌가요?”

“제가 불친절하게 한 것도 아니고 안내를 잘못한 것도 없어요. 다만...”


애진은 거기서 또 말을 망설였다.

그건 아직도 고민 중인 문제였다.

자신은 어떤 진상으로부터 폭언과 욕설로 점철된 말을 십여 분 들어야 했다.

그건 또 참을만했다.

이미 콜센터 근무경력이 수년째다.

그 정도 진상은 일상인 게 이쪽 바닥이었으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임신이라도 하면 태교를 욕으로 하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난 잘못한 게 없어.’


정안되면 경위서를 쓰거나 감봉 혹은 퇴사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고객이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우리는 화를 내면 안 됩니다. 그건 기본인데 벌써 수년째 경력자인 애진님이 그걸 잊고 있을 줄 몰랐네요. 막말로 고객이 집까지 찾아와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하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차라리 그랬다면.

그런 일도 처음 겪는 일이라 가벼운 에피소드로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수도 있다.


“팀장님은 엄마, 아빠 욕을 하면 참을 수 있으세요?”

“뭐요?”


애진이 차마 그 말까지 입 밖으로 꺼낼지는 몰랐다는 듯 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같은 거 낳아놓고 니 애미는 그래도 자식새끼 낳았다고 미역국을 처먹었겠지? 라고 하는데 참으실 수 있냐구요.”

“...”

“녹취 다 들어보셨을 거 아니예요.”

“그거야...”

“그래서 전 사과 전화는 못하겠습니다.”

“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민원 통화는... 그래요. 팀장이니까 내가 나갈께요.“


애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래도 고객이 본사 쪽으로 민원을 걸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해당 상담원 징계를 하라고 하니까...”

“징계요?”

“그래요. 고객이 애진님 이름 언급하면서 이대로 넘어가면 가만히 안 놔두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네요.”


민원 통화 내용까지 애진이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일이 복잡하게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뿐.


“징계 수위는 본사 징... 고객사 말고 우리 본사 회의를 거쳐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다른 상담원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가서 일단 업무 시작 하세요.”


사과나 위로의 말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팀장은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으로 다시 업무 모드로 들어갔다.



###



“애진아!”


한정식이 응급실 안으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딸처럼 여기는 며느리가 근무하던 회사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 식사준비도 뒤로 하고 온 참이었다.


“여보!”

“애진이는? 우리 며느리는!”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걱정 안 해도 돼.”


아내가 며느리의 현재 상태를 말해줬다.


“하아...”


청와대 조리실장 한정식은 며느리가 괜찮아졌다는 아내의 말에 긴장이 풀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모르겠어. 애진이가 깨어나 봐야 무슨 일인지...”

“무슨 소리야! 회사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며!”

“그거야 그런데... 회사에서 책임자라는 사람도 조금 전까지 있다가 갔어. 이런 일 생기게 해서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하고.”

“사과하면 장땡이야? 사람 하나 죽일 뻔 해놓고 사과하면 장땡이냐고!”


서슬 퍼런 한정식 실장의 말에 아내는 별다른 말을 못했다.

애초에 딸 같은 며느리지만 아내보다는 한정식 실장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가 더 길길이 날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뭐 그런 일 있었던 거 아냐? 그 책임자라는 양반은 뭐래?”

“그게... 글쎄... 나도 경황이 없기도 했고... 그 사람도 그냥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하니까 물어볼 경황이 없기도 했고.”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직장에서 목을 맸으면 그 안에 문제가 있는 거지! 그 책임자라는 사람 당장 불러! 내 이것들을 그냥!”



그 시간.

sg카드 고객센터 광남 사옥.

양지순 매니저는 대회의실에서 전 상담원을 모아놓고 상당히 조심스러운 얼굴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저기 밑에 경찰차 여러 대 와 있는 거 보셨죠?”


직원 한명이 스트레스로 화장실에서 자살시도를 했다.

최초 목격자가 119에 신고를 하고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경찰서까지 자동으로 신고 접수가 됐다.


“지금 응급실에서 오는 길인데 애진님 다행히 괜찮다고 하네요. 여러분 너무 놀라셨죠...”


평소에도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상담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한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케어 하기에는 양지순 매니저도 일이 너무 많았다.

지금 ‘이 일’도 양지순 매니저에게는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이었다.

일단은 바깥에 새어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하는 게 먼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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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최대한 심플하게 23.11.25 227 7 12쪽
56 (55) 예외는 없습니다 23.11.25 223 6 11쪽
55 (54) 생계형 운전자 23.11.24 224 6 14쪽
54 (53) 범퍼카 방지법 23.11.24 225 6 12쪽
53 (52) 주차시비 23.11.23 236 6 13쪽
52 (51) 변화의 바람 23.11.23 235 6 13쪽
51 (50) 매뉴얼의 문제 23.11.22 233 6 12쪽
»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23.11.22 247 7 12쪽
49 (48) 명백한 노동착취 23.11.21 253 7 11쪽
48 (47) 휴가도 눈치 보고 23.11.21 259 7 12쪽
47 (46) 이제 때가 온 겁니다 23.11.20 267 7 13쪽
46 (45) 온라인 이원생중계 23.11.20 263 9 13쪽
45 (44) 기회를 주는 겁니다 23.11.19 272 7 12쪽
44 (43) 꼭 필요한 것 23.11.19 289 7 12쪽
43 (42)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23.11.19 291 6 13쪽
42 (41) 라방 23.11.18 291 7 12쪽
41 (40) 시행착오 23.11.18 304 7 12쪽
40 (39) 눈먼 돈 찾아오기 23.11.18 319 9 13쪽
39 (38) 첫 국무회의 +1 23.11.17 319 7 11쪽
38 (37) 애들이 밥을 굶고 다니지 않습니까 23.11.17 319 6 13쪽
37 (36) 월세 지원 23.11.16 316 7 12쪽
36 (35) 사회 주택 23.11.16 320 7 12쪽
35 (34) 안전장치 23.11.15 336 8 12쪽
34 (33) 배를 째라면 째줘야지 23.11.15 347 7 12쪽
33 (32) 언젠가는 없어져야할 제도 23.11.14 363 9 11쪽
32 (31) 도움이 된다면 작은 것이라도 23.11.14 376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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