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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어느날 님의 서재입니다.

대통령이 제일 쉬웠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오월어느날
작품등록일 :
2023.10.21 18:28
최근연재일 :
2024.02.01 23:30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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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96
추천수 :
857
글자수 :
652,510

작성
23.11.16 11:30
조회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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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35) 사회 주택

DUMMY

후려치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워딩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선전 국회의원일 때도 내 이런 표현을 좋아해서 지지를 한 사람도 많았다.


“후려치다니요. 설마 반값 아파트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기자 여러분. 아파트 짓는데 돈 그리 많이 안 들어갑니다. 저기 지방으로 내려가면 서른 평이 넘는데 일억에 매매되는 아파트도 있어요. 그렇게 팔아도 남는다는 소립니다. 원가가 여러분이 아시는 것보다 훨씬 낮다는 뜻이예요.”

“그럼 얼마를 제시했다는 말씀인지요?”

“저는 어제 만난 회장님들께 떨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떨이요?”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지는 기자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길게 할 게 아니다.


“네. 그런데 질색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썩어가도 안팔 거면 그렇게들 하시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이번 정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대체 그게 뭡니까?”

“앞으로 정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질 공공 임대주택의 입찰에 해외 건설 회사들에게도 문을 열어주려고 합니다. 이미 이전부터 이런 상황을 감안하고 컨택한 몇 개의 회사들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자들이 타이핑치는 소리로 춘추관이 가득 찼다.


“잠깐만요. 왜 국내의 건설사들을 굳이 배제를 하고 해외 건설사에게 일감을 주려고 하시는 건가요?”

“배제를 한다는 말은 안했습니다. 국내를 포함해서 해외에도 입찰 허용을 한다는 말입니다. 공정하게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는 뜻입니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도태가 되겠지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입찰에 실패한 업체들의 도산이 우려되는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이 말이 나올 줄 알고 작심하고 적나라한 표현들을 준비했다.


“건설회사들 뒷돈 많이 빼돌리는 거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집을 지어놓고 이십년이 지나기 무섭게 부수고 또 짓고 하니까 건설사들 겁이 없는 겁니다. 어차피 일감은 계속 돌고 도니까요. 갈수록 업체는 늘어납니다. 자기들끼리 뭐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입찰에 비리가 들어갑니다. 비리에 들어간 돈 회수하기 위해서 정작 집 짓는 재료는 안 좋은 걸 씁니다. 얼마 전에 짓던 아파트 한쪽 벽면 허물어져 내리는 거 다들 보시지 않았습니까. 들어가야 할 곳에 안 들어간 돈이 다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다 대기업 건설회사 뒷주머니로 들어가는 겁니다 여러분.”


말을 하고보니 기사가 어떤 식으로 포장돼서 나갈지 정말 궁금해진다.

제발 있는 그대로만 나가도 좋으련만.


“앞으로 지어질 공공주택은 서울에만 집중시키질 않을 예정입니다. 물론 인구 밀집도를 고려해야하니 서울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몰리는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집무실도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역시 이전부터 생각해온 일입니다.”

“대통령실 이전요? 그거 이미 예전 대통령 때 욕을 엄청 먹지 않았습니까.”

“돈을 쓸데없는데 쓰니까 욕을 먹었지요. 세종 시 인근에 정말 일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집무실과 몸만 누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할까 생각중입니다.”



###



내친김에 난 비서실장에게 지난번 반지하 사태처럼 국민과의 생방송 토론 일정을 잡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이틀 후 ABC 방송국.


“안녕하세요. 국민 대표 여러분.”


반지하 주거 문제로 방송국에 온 후 두 번째이다.

모든 걸 국민대표를 선출해서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 방법이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꽤 강경해 보이는 내 정책이 독단적이라고 욕을 먹는 불상사에서는 최대한 피할 수 있으니까.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들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생방송 중계다.

사람들이 이상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소통은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절대 미루거나 물러설 생각은 없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로라도.


“강직한 아나운서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대통령님.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자, 그럼 생방송 천분토론을 이제 시작할 텐데요. 이번에도 설문에 응하신 다음 방송출연에 기꺼이 응하신 국민여러분께 감사말씀 드리면서... 이번에도 지난 방송과 비슷한 주제입니다. 지난번 반지하주거민에 관한 정책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세제도, 과연 이대로 좋은가에 대해서 국민들 의견을 들어볼 텐데요. 일단 방송에 앞서 무작위 설문조사로 진행된 전세제도 유지에 대한 조사결과는 찬반이 비교적 팽팽하게 갈린 걸로 확인됐습니다.”


반반이라.

그래도 사람들 인식이 많이 바뀐 건가? 아무래도 피해 사례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발언 순서는 지난번처럼 진행자인 제가 무작위로 지목을 하겠습니다. 일단...”


강직한 아나운서에게는 초대된 사람들의 명단이 아예 없다.

지난번 방송과 다르게 익명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한 장치다.

얼굴까지 다 공개되는 마당에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 사는 누구라고 모조리 오픈을 하는 것보다는 발언할 때 심리적 불안이 덜 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직한 아나운서의 지목으로 발언 기회를 얻은 첫 번째 국민대표.


‘오스트리아?’


한채만 국장과 회의할 때 본 자료가 기억난다.

유럽 국가에서도 사회주택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정부와 비영리 기업의 협력 하에 부동산 정책이 잘 통제되고 있는 나라.


‘우연인가? 너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잖아.’


물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곧 나오겠지만, 일단은 출발이 좋다.


“오스트리아. 저도 오기 전에 공부를 좀 하고 왔는데요. 오스트리아는 주택정책이 어떻습니까?”

“오스트리아는 사회주택으로 유명합니다.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하고 비슷한데요. 주택을 한국처럼 개인재산 개념보다는 공공재로 보는 경향이 강해서 정부의 주도하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는 편입니다.”

“사회 주택요?”


사회주택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사회주의하면 아직도 공산주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상한 건 아니다.


“네. 정부와 조합의 협조아래 근 백 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한국의 공공임대 주택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많이 다르죠.”

“어떤 부분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일단 한국은 공공이나 임대주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소득층이 사는 아파트,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디자인도 시설도 구리고, 위치도 비교적 중심이 아니라 후미진 곳에 있구요. 물론 모든 임대나 공공주택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아직 인식이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스트리아의 사회주택은 뭐가 많이 다릅니까?”

“일단은... 없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많이 살구요.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를 해서 이쁘게 짓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닭장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요.”

“아... 그렇군요.”


나도 오기 전에 공부를 많이 했다.

대통령은 참 알아야 할 게 많은 자리다. 제대로 일하는 대통령이라면.

오스트리아에서 온 건축가의 말이 한동안 이어졌다.

오스트리아가 한국만큼 경제대국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살기 팍팍한 한국에 비해서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끔 배려하는 정책 같다는 이미지에 긍정적인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전 서울 사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얼핏 봐도 평범해 보인다.

나이는 몇 살이나 됐을까.

방송에 출연하느라 미뤄두고 온 회사일이 계속 신경 쓰이는 저 표정.

고등학교까지 십이 년을 공부하고도 모자라 다시 대학에서 직장에서 끊임없는 공부에 시달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집장만 한다고 허리가 휘어지고 있는 것 같은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아파트 값이 너무 비쌉니다. 제가 직장생활 십이 년차에 월급이 세금제하고 삼백만원쯤 되는데요.”


집값 잡아달라는 말을 하려고 나왔나보다.

그런데 어쩌나.

집값은 시장의 유동성에 맡겨야 되는 부분이다.

그런 것까지 통제를 하려면 말 그대로 사회주의가 돼야 한다.

한국 부동산 시장 역사상 정부의 의도대로 굴러간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하려고 하는 부분이 시장의 지나친 유동성 때문에 생긴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것이긴 하지만.’


가방끈도 긴 사람들이 반도를 반으로 쪼갠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살려다보니 잔머리만 느는 것 같다.

어떤 정책을 내놔도 강제를 하지 않는 이상, 그 안에서 편법을 계속 찾아낸다.

정말 한민족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아파트가 너무 비싸다... 이건 뭐 저로서도 딱히 드릴말씀이 없네요. 저도 대출을 받아서 전셋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음 말을 생각하는 듯 고민하는 강직한 아나운서.


“그래도 아나운서면 월급을 일반 직장인보다는 많이 받으실 거잖아요. 한 달에 세금제하고 월급 삼백만원을 받으면 이것저것 떼고 한 달에 얼마가 남는지 아세요? 혼자서는 살수가 없어서 맞벌이를 해야 되고, 맨날 야근에 부업에... 후...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을 해서요.”


본인 말대로 누가 화를 돋운 것도 아닌데 혼자 말하고 혼자 흥분을 한다.

그래도 분노조절이 안되지는 않나보다.

적당히 끊는걸 보니.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내가 끼어 들 차례다.


“네?”


화들짝 놀라는 표정.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자신에게 말을 거니 놀라기는 한다.

저 사람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일까.


“혹시 아파트에 거주하시나요?”

“아뇨. 빌라입니다.”

“아, 저는 아파트값 잡아달라고 하셔서 아파트에 사시는 줄 알았네요.”


객석에서 가볍게 웃음이 나온다.


“너무 비싸서 못 사니까요. 아파트값을 좀 잡아줘야 저 같은 사람도 아파트 살죠.”

“아파트에 굳이 왜 살아야 합니까? 지금 사시는 빌라가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습니까. 저희 같은 사람들한테는 선택지도 별로 없는데요.”

“왜 선택지가 없습니까? 실례지만 지금 거주하시는 빌라는 몇 평일까요?”

“지금... 서른다섯 평쯤 됩니다.”

“방이 세 개에 화장실이 두 개 이구요? 아, 실례지만 아이는... 요즘 트렌드가 한 자녀니까.”

“네. 아들 하나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집은 전세인가요?”

“맞습니다. 그것도 겨우 찾은 거예요. 요새는 빌라 전세도 만만치 않아서.”

“그렇군요. 세 식구가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인 서른다섯 평짜리 빌라에 전세.”


저 정도면 괜찮지 않나?

빌라는 아파트처럼 가격이 널뛰기를 하는 일도 별로 없다.

물론 대출을 받은 전세일 것이니 이자가 만만치 않게 나가겠지만.

대출을 받아서 아예 자가로 구매를 했다면 앞으로 이십년은 갚아야 할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한숨이 나온다.

이건 내가 예전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부분이다.

왜 집은 이렇게 비싼가.

왜 평생을 집 한칸 가지려고 빚만 갚다가 늙어야 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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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최대한 심플하게 23.11.25 228 7 12쪽
56 (55) 예외는 없습니다 23.11.25 224 6 11쪽
55 (54) 생계형 운전자 23.11.24 224 6 14쪽
54 (53) 범퍼카 방지법 23.11.24 225 6 12쪽
53 (52) 주차시비 23.11.23 237 6 13쪽
52 (51) 변화의 바람 23.11.23 235 6 13쪽
51 (50) 매뉴얼의 문제 23.11.22 233 6 12쪽
50 (49) 그저 처리해야할 일일뿐 23.11.22 247 7 12쪽
49 (48) 명백한 노동착취 23.11.21 253 7 11쪽
48 (47) 휴가도 눈치 보고 23.11.21 259 7 12쪽
47 (46) 이제 때가 온 겁니다 23.11.20 267 7 13쪽
46 (45) 온라인 이원생중계 23.11.20 264 9 13쪽
45 (44) 기회를 주는 겁니다 23.11.19 272 7 12쪽
44 (43) 꼭 필요한 것 23.11.19 289 7 12쪽
43 (42)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23.11.19 292 6 13쪽
42 (41) 라방 23.11.18 291 7 12쪽
41 (40) 시행착오 23.11.18 304 7 12쪽
40 (39) 눈먼 돈 찾아오기 23.11.18 319 9 13쪽
39 (38) 첫 국무회의 +1 23.11.17 320 7 11쪽
38 (37) 애들이 밥을 굶고 다니지 않습니까 23.11.17 319 6 13쪽
37 (36) 월세 지원 23.11.16 316 7 12쪽
» (35) 사회 주택 23.11.16 321 7 12쪽
35 (34) 안전장치 23.11.15 336 8 12쪽
34 (33) 배를 째라면 째줘야지 23.11.15 347 7 12쪽
33 (32) 언젠가는 없어져야할 제도 23.11.14 363 9 11쪽
32 (31) 도움이 된다면 작은 것이라도 23.11.14 376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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