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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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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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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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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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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62화

DUMMY

“돌아오지 않았지?”


기이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초영이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 삐딱하게 섰다가 또 자세를 바로잡았다가, 끊임없이 동장 속에서 방황한 끝에 꺼낸 말이자 행동이었다.


“웬 껌이야?”


질문에 대답을 하려다가 말고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이끌린 주화가 초영의 입놀림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아, 너무 피곤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잠들 것 같았거든. 그렇다고 말을 하자니 그건 또 힘이 빠지는 일이라. 대안으로 생각해낸 거야. 정말이지, 품위 없게 이렇게 턱을 딱딱대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겠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 피곤하면 더 자도 돼.”

“그럴 순 없지. 그랬다가는 금방 게을러지고 말 거야. 잠은 적당히, 조금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자는 게 제일 좋아. 그래야 밤에 미련이 생겨서 두고두고 고민 없이 바로 잠들 수 있을 테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네.”


주화가 흙을 한 줌 푸더니 화분 안에 담아 일어섰다. 죽어가는 나무는 그래도 그늘을 내어주는 데에 인색함이 없었다.


“흙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


목을 내밀어 화분을 들여다본 초영이 질끈 묶은 머리가 낯선지 뒷덜미를 매만지며 주화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혹시 천일나무를 특별히 자라나게 하는 성분이라도 있나 싶어서.”


아이를 품에 안 듯이 다정하게 화분을 끌어안으며 주화가 대꾸했다.


“그랬으면 이 나무가 영원히 살았겠지 않겠어? 나는 평범한 흙이기 때문에 매번 이렇게 죽었을 거라고 보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무슨 방법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우리 열두 명이 모두 힘을 합치지 않아도 나무 스스로 살아날 방법이.”


심연도에 줄곧 머무는 동안 더 굳건해진 것인지 아니면 더 누글누글해진 것인지 주화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법을 배운 듯했다. 혹은 그 이전의 일이 일종의 기폭제가 되어 그녀를 이러한 경지로 이끈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누구에게도 직접 말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음은 이를 되도록 비밀로 두려고 했다.


“정말로 살아날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 나무는 우리를 살리지만, 또 우리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 텐데. 우리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태어날 천일나무가 과연 천일나무가 맞을지 그런 의심이 들어.”


초영이 그늘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월계의 달은 언제나 보름달이었기에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 또한 올려다본 그 동그란 울타리 안에서 언제라도 몸을 웅크려도 되는 것 같은 일종의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늘을 찾은 것이다.


“만약 새로운 방법이 있고, 그래서 다시 자라난다고 해도 그건 분명히 그대로 천일나무일 거야.”

“어째서?”

“그 나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무일 테니까.”


자신 역시 그늘을 벗어나는 동시에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음을 주화가 깨달았을 무렵에 터벅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초영이 껌을 씹는 소리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또 소리가 지니고 있는 거리가 점차 좁혀지는 것으로 인해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숨이 차서 내가 먼저 죽겠네.”


초영과 주화가 조금 마중을 나온 덕분에 수고는 줄어들었으나 흑석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달려온 끝에 숨을 들이마쉬고 내쉴 때마다 피를 토해내는 것 같은 고통이 동반해서다.


“그 팔찌는 어디다 쓰려고 그렇게 두 발로 직접 뛰어오고 그러니?”


이제는 어깨를 만지작거리면서 초영이 멋쩍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 깜빡했어. 완전히 깜빡했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거든.”


흑석이 턱부리에 고드름처럼 맺힌 땀을 닦으려고 손등을 그 부근에 갖다 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초영의 톡 쏘아대는 말투 때문은 아닌 모양으로, 무릎을 짚은 채로 잠시 쉬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하늘을 다소 원망스러운 눈길로 대했다.


“뭐야, 그런 걸 깜빡할 정도라니. 설마 백면이 돌아오기라도 했니?”

“비슷해. 아니, 같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여기로 돌아온 건 아니니까 비슷하다고만 말할게.”

“뭐?”


마지막 대답은 초영과 주화가 동시에 외친 것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농담이기는 했으나, 이에 흑석이 곧이곧대로 응할 것이라고는 역시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주화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세 사람은 빛보다는 빠르더라도 어둠보다는 느린 속도로 양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기대했던 얼굴은 전혀 보이지를 않았고, 달랑 달목과 영월만이 창가 쪽에서 소곤소곤거리며 수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뭐야?”


껌을 꿀꺽 삼켜버린 초영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옆에 화분을 올려놓는 주화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창가를 향해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달목이 저번과 같이 가장자리에 앉으려고 발을 내딛으며 시선을 피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너무 터무니없는 거 알지? 무슨 애도 안 믿을 소리를 하고 있니? 흑석이 이야기해서 온 건데.”


끝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서 묵묵히 뒷모습을 보인 건 영월이었다. 초영의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모두가 자리에 앉은 후 입을 다물고 기다리는 중에도 끝까지 뒤돌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백면이랑 관련된 일인 것 같던데.”


이런 때는 좀처럼 나서지 않던 주화가 화분을 자꾸만 건드리며, 이내 옆의 초영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녹수를 찾았다.”


영월이 그제야 앞으로 걸어오면서 용건을 이야기한다.


“먼저, 백면을 만났다고 해야겠으나······ 이미 너희 모두 알고 있겠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일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백면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하지.”

“잠깐만, 흑석. 너는 백면이랑 관련이 있는 것처럼 말했잖아.”


초영이 잠시 도중에 끼어들어 맞은편에 앉은 흑석을 배신자를 보듯이 매섭게 흘겼다.


“비슷하다고 했지, 그게 맞다고 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나인들 뭘 알았겠나?”


그동안 그녀에게서 종종 당한 것들이 있던 그는 이참에 고소해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뭐라 맞서지 못하며 끙끙거리던 초영이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화를 종결하자, 영월이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녹수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숨소리도 함께 멈춘 것처럼 양실 안이 한꺼번에 고요해졌다. 차츰 잡음이 줄어드는 기척도 없었거니와, 애초에 주의를 끌 만한 소리는 나지 않았음에도 이 적막은 상당한 충격을 가져왔다.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니? 누구한테? 우리한테?”


초영이 너무도 놀라서 가슴팍에 두 손을 얹고는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일인 양 겁먹은 얼굴을 했다.


“아니,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것으로 해야 옳겠지.”


영월이 무심코 바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복잡한 사연이 있었나 보네. 황호랑.”


흑석이 깍지를 낀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며 빈둥거리듯이 말했다. 그러다가 좋은 수가 생각나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영월에게 대고 외쳤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던 거야? 죽은 거로 되어 있다니, 죽은 척을 했다는 건가?”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게 제일 좋겠다만, 우선은 그렇다고 말해야겠군. 황호에게서 들키지 말아야 하는 게 있었으니.”

“여기저기에 있는 비밀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홍연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래서 그게 뭔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서 영월 네가 돌아오지는 않았을 거잖아.”


그의 예상은 옳았다. 영월이 이토록 오래 심연도를 떠난 데에는 그만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은 그만큼 반드시 달성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월이 아니라 뒤쪽에서 갑작스레 달목이 목을 가다듬고 나서야 이들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백면이다. 역시나 둘은 계속해서 만나고 있었더군. 특히 녹수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지금에도 말이야. 아마 백면이 귀천으로 달아난 이후로 제일 먼저 만난 게 녹수일 거다. 다음이 나였을 테고, 또 그다음은 녹수였으니.”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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