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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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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3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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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6.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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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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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프롤로그

DUMMY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에서 환상의 모험을 겪었다.


초등학생 때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는 장면을 보고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는데, 그건 굴속으로 들어가 버린 그녀가 만약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햇빛을 보지 못한 탓에 앨리스가 제대로 크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였다.

과학 시간에 배운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인 줄 알았던 시절이다. 태양에 관련해서 아는 과학지식이 막연하게 광합성밖에 없으니 그저 광합성, 광합성 하던 것이기도 하다.


이와 상관없게 앨리스를 향한 감정은 결국 노파심이었던 것으로 결론 났지만.


지금에 와서 나는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다르게 나는 굴 밖으로 던져졌으니까. 내가 살고 있던 이 세계가 굴속이었다고 치자. 굴속에서 사는 게 지겨웠던 게 아니냐고? 아니다. 혈액형을 나누는 것만큼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혈액형을 나누는 것만큼 재미는 있는 게 인생이었거든.

아무튼, 삶에 대해 그럭저럭 만족했다는 소리다. 무엇보다 앨리스를 걱정했을 때처럼 햇빛이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름 괜찮은 굴속이니까.

정말로 걱정해야 했던 건 굴속이 아니라 굴 밖이었다. 굴속에서 햇볕을 쬘 수 있었다면, 굴 밖에서는 그럴 수 없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제대로 크지 못하는 것은 굴 밖의 사람들이 된다.


불쌍한 앨리스, 아니, 불쌍한 백나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고뇌는 의미가 없게 된다.


사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앨리스가 굴속으로 토끼를 따라간 바람에 이상한 나라를 발견했다지만, 나중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결국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도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거울 나라'도 결국 '이상한 나라'의 한 모습인 것이다.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문득 나는 거울 속에선 충분히 햇볕을 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게 다 반대라고 해도, 태양의 모양이 다를지언정 태양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기에 해가 있고 없고는 논제거리가 아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무엇을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였던 거지?


그렇다면 앨리스는 필히 그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어야 할 운명이었다. 경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단 말이 된다. 나의 경우는? 나는 필히 굴 밖으로 던져졌어야 할 운명이었을까? 굴 밖으로든 세계 밖으로든 나는 던져졌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걸까? 경로는 나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이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문제로 삼아야 했던 것이 경로라고 친다면, 지금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결론이다.


결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이상한 나라에서든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서든 앨리스는 필히 앨리스여야만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어디에 있어도 앨리스는 앨리스다. 앨리스가 아닌 앨리스는 말도 안 된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앨리스는 어디까지나 앨리스니까.

그리고 두 번째이자 허무하게도 마지막으로 확실한 것은, 백나나는 굴속에서든 굴 밖에서든 필히 백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느 곳에서든. 정녕 백나나가 백나나이기를 바란다고 해도.


그럼 시작은 어땠지?


나는 나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무려, 나 자신에게서.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만약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살이 아니다. 명백한 타살이다.


왜냐고?


그야, 백나나는 백나나가 아니니까. 백나나는 백나나를 사랑해도 백나나가 백나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백나나가 백나나를 원망해도 그건, 백나나가 백나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 아주 간단하면서도 정말 복잡한 명제가 된다.


다시 처음을 생각해보는 거야.

그래, 앨리스부터.


나는 앨리스가 아니다. 백나나는 앨리스가 아니니까.

앨리스도 백나나가 아니다. 앨리스는 앨리스이며, 백나나는 백나나다.



타인으로부터의 분리,

그 다음은 백나나다.



백나나는 백나나다.


그렇지만 백나나가 곧 백나나인 것은 아니다.


때로 백나나는 백나나가 아니다.


그러나 백나나는 백나나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백나나와 백나나가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백나나는 백나나가 된다.


그래서 백나나와 백나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백나나는 백나나가 아니기도 하다.


결국 백나나는······.



아주 거짓된 명제도 없다.

아주 참된 명제도 없다.


그저 나 자신, 백나나 한 명만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죽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무려, 나 자신에게서.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명백한 욕심이다.


왜냐고?


나는 여전히 태양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게 없다. 내 꿈은 과학자가 아니었기에 특별히 태양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대해 새로 안 것이 하나 있지만. 그것은 지식의 범주에도 들지 못할 어떤 한 개인의 소견에 불과하다.


그것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제대로 크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햇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앨리스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이 걱정이 결국 노파심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앨리스와 나의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앨리스와 나의 상황은 너무도 다르다.


여전히 내가 누군가임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이 내가 누군가 하는 문제다.



“오랜만이에요.”



초등학생 때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다 읽은 후, 그 두 권의 책을 책장의 가장 위쪽에 꽂았다. 아직 키가 다 자라지 않았던 나였기에, 꺼내기 가장 편한 곳은 아니었지만, 경관을 고려한다면 그 자리에 있는 책이 언제나 눈에 잘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학 시간에는 광합성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난다.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햇빛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바로 식물의 광합성 원리였다. 그러면 뒤에 무언가가 만들어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기억에 잘 없다.


지금에 와서야 기억이 나는 것은 하나 있다. 그때 나는 그 단 한 가지를 제대로 머리에 담아두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눈치채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왜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광합성에 필요한 것은 특정한 빛이 아니라, 빛의 에너지라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 작성자
    Lv.35 쏙소리
    작성일
    20.06.14 23:37
    No. 1

    잘 읽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6.15 16:34
    No. 2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4 네메시스81
    작성일
    20.07.27 02:43
    No. 3

    어렵다 어려워..당최 무슨말을 하는건지 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7.27 23:00
    No. 4

    아마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자아'를 소재로 삼아 이와 관련하여 철학적 반성과 심리적 성장을 주제로 두고 쓰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재미가 없는 소재지만.. 최대한 재밌게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젊은 나날을 채운 사념(思念)과 사념(邪念)이 모두 담겼기에 정말 재미가 있다고 하기에는 저조차도 이야기하기 참 부끄럽지만, 그래도 읽으시는 분들이 흥미를 느끼실 수 있도록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프롤로그는 작품의 시작이 아니라 작품의 상징으로 놓고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난해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소중한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하고자 하는 바가 보다 잘 전달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52 슐레지엔
    작성일
    20.09.29 14:00
    No. 5

    근데 인간에게 햇빛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외선을 피부로 흡수하여 콜레스테롤을 이용하여 비타민D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쨋든 내용은 난해합니다. 당최 뭔 소리인지를 알아먹지를 못하겠어요.ㅠ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9.30 22:13
    No. 6

    중요한 정보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햇빛에 관해서는 제 의도대로 표현되고 있다고 자부할 순 없으나 작품 진행과 함께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햇빛이 왜 꼭 필요한지 고민하며 구상하게 된 작품이라 이 부분은 항상 유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지적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마 저의 글솜씨가 아직 부족하여 그럴 수 없었나 봅니다.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주세요!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바라며 고견 한 번 더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김성진
    작성일
    20.10.23 05:08
    No. 7

    일단 한가지는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 이름은 백나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10.24 00:21
    No. 8

    안녕하세요! 제 첫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아 약간의 후회가 드는 것 역시 저의 심정이지만, 최대한 성의 있게 짓고 싶었던 이름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7 aight
    작성일
    21.02.22 20:45
    No. 9

    프롤로그 요약:


    결국... 백나나는 바나나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1.02.22 22:55
    No. 10

    안녕하세요! 재치 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뭐라 맞받을만한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그래도 덕분에 웃었다는 감사의 말씀 드리고자 밋밋한 답글을 다네요.
    좋은 밤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양공자룡
    작성일
    21.04.15 00:10
    No. 11

    감히 제가 판단을 내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플롯의 문제가 아닌가 싶소.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를 시작부터 풀기에는 너무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게 아닌가...
    시간순을 뒤집어서라도 조금 더 쉽고 와닿는 이야기라든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을 선배치하였으면 좋았을지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1.04.15 01:28
    No. 12

    안녕하세요!

    먼저 진심 어린 충고 고맙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돌아보면서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것을
    명확히 지적해 주셔서 기쁜 마음도 감사한 마음만큼이나 큽니다.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꼭 유의하겠습니다.

    제 문학적 취향으로는 이러한 서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서문에도 종류가 있다고 저 역시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되겠지만,
    제가 심오한 자기반성과 난해한 문체를 즐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제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좋은 글의 정의와도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첫 작품이기도 하니 아무래도 제가 제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변명을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만, 아무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네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전개 과정에서 저도 여러모로 반성과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제 문체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았었고 많은 부분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보인 저에게는 이 서문이 길잡이 역할을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흡족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 좋아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오늘 제게 남겨주신 값진 조언은 항상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작품을 마무리하는 중이라 이를 토대로 재구성할 수 없다는 게 송구스럽습니다.
    후에 더 재밌고 나은 작품 보여드리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늘 실천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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