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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의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밤길
작품등록일 :
2013.09.06 23:05
최근연재일 :
2014.12.19 00:05
연재수 :
1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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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094
추천수 :
13,047
글자수 :
683,299

작성
14.09.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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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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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1쪽

제11장 역류(4)

이 글은 가상의 이야기이며 등장인물,사건등 모든 내용은 실제와 관련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

그는 바로 4년 전 원전폭발 현장으로 뛰어들었던 휘였다. 머리는 많이 자라서 덥수룩했고 수염도 새까맣게 얼굴을 덮고 있었지만 강인해 보이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크흑!”

밖으로 나섰던 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 휘는 다시 또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들과 사투를 벌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광기에 찬 봉황은 휘에게 패도적인 힘을 안겨 주었다. 휘의 몸을 완전체에 가깝게 재구성하며 진화를 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든 그 결과에는 대가가 따르듯이, 휘의 죽어버린 몸을 살리기 위해 사악한 기운을 받아들인 봉황은 맑고 정순한 기운을 버리고 악조(惡鳥)로 변해야 했다. 악조로 변한 봉황은 휘의 의지마저 장악하고자 했다. 자신이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원전지하에서 몸을 재구성하며 4년이란 기간을 보낸 휘와 악조는 그렇게 서로의 의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나긴 사투를 벌였다.

“이익!”

휘가 이를 악물었다. 이미 눈은 붉게 충혈 되어 핏발이 섰고,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좀 전에 집안에서 살펴본 물건들은 낯이 익었다. 만지다보니 용도도 알 것 같았다. 문을 열어본 냉장고 안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던 생각도 떠올랐다. 그리고 못생기고 뚱뚱한 놈의 얼굴도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었다.

TV리모컨을 들고서는 자연스럽게 TV를 향해 전원을 눌렀다. TV는 켜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물건 같았다. 그런데 곧 두통이 밀려왔다. 기억의 층층이 쌓인 잔재들이 혼재되어 서로 뒤엉켜가며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어느 것이 현실이고 과거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4년이란 긴 시간동안 지워진 많은 기억과 지키려 노력했던 또 다른 많은 기억들이 이젠 참인지 거짓인지도 모를 정도로 혼탁해져 버렸다.

악조로 변한 봉황은 왜 그렇게 주체가 되려하는 것인지, 자신의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의지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대화도 불가능했다.

봉황은 오로지 휘의 의지에만 거칠게 반응했다.



도쿄의 외곽

낡은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는 변두리의 골목길을 한 소녀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녀의 옷차림이 지금의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예전 조선 여자들이 입었을 법한 흰색 한복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유~ 얼른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지. 불안해.’

소녀 은미는 학교에서 있었던 행사 때문에 옷차림을 이렇게 하고 등교를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서 옷을 갈아입고 한복은 가방에 넣어서 하교를 했는데 자신은 아침에 늦는 바람에 그 생각은 못하고 그냥 왔던 것이다.

등교할 때는 아빠차를 얻어 타고 왔지만 집에 갈 때는 혼자 걸어서 가야했다. 언젠가 재특회 놈들에게 린치를 당한 선배얘기가 떠올라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어이! 조센징!”

그때 불안해하던 은미의 발걸음을 붙잡는 소리가 기어이는 들려왔다. 은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느새 골목길 앞 쪽을 사내들이 나타나며 막아서고 있었다. 은미가 달아날 생각에 주춤거리며 뒤를 돌아보니 뒤쪽에도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사내가 다가왔다.

“조센징 계집! 그따위 복장으로 누가 돌아다니라고 했나. 여긴 일본 땅이란 말이야.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니려면 너희나라로 꺼져. 그전에 잠시 우리를 즐겁게 해줘야겠지만. 흐흐흐!”

“하하하! 조센징 계집은 가지고 놀라고 있는 거지.”

“그럼, 원래 노예족속들 아닌가. 킬킬킬!”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지껄이며 사내들이 다가오자 은미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까악! 왜 왜 그래요.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그러자 사내들이 다가와 은미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 벽으로 강하게 밀쳤다.

“아악! 사람 살려...읍! 으읍!”

은미의 말은 이어지질 못했다. 양팔을 사내들이 한 명씩 붙잡고 벽에 밀어놓은 후, 다른 사내가 앞에서 손바닥으로 입을 털어 막은 것이다.

“허허! 떠든다고 도와줄 놈들이 있을까? 여기 조센징들은 모두 겁쟁이들 밖에 없잖아.”

그때 다른 놈이 다가와 은미의 아직 여물지도 않은 가슴을 손바닥으로 꽉 쥐었다.

“오오! 이년은 아주 괜찮네. 탱탱해. 그런데 이런 옷은 왜 걸치고 있는 거야. 이 옷만 보면 엄청나게 꼴린단 말이야. 하핫!”

놈이 은미의 저고리를 잡아 재꼈다. 투둑 소리를 내며 윗도리가 손쉽게 뜯어지자 은미의 하얀 속살이 들어났다.

“읍. 읍읍...”

은미가 몸을 비틀며 반항을 했지만 억센 남자들의 손길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하하하! 오늘 여기서 우리 대 일본남성들의 은혜를 제대로 한번 입어보라고. 그러고 싶어서 이렇게 입고 나왔잖아? 우린 이 옷만 보면 꼴린다니까.”

놈이 말을 하며 치마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치마도 뜯어지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읍! 으읍!”

은미가 몸을 비틀며 더 거세게 반항을 해 보았지만 다섯 명의 사내에게 붙잡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입이 틀어 막힌 은미의 눈은 공포에 질려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야! 이 개새끼들아! 저리 비켜!”

그때, 작은 골목길에서 한 사내가 크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각목이 들려있었다.

“어어, 저 새끼는 뭐야? 막아!”

“야야! 마 막아!”

은미를 붙잡고 있던 놈들은 손을 놓지 않고 소리만 크게 질렀다. 앞쪽의 두 명이 돌아서며 손을 들어 올렸지만 크게 휘둘러진 각목은 그 중 한 사내의 팔목에 맞으며 부러졌다.

휘익! 딱!

“아악!”

각목을 팔로 막은 놈이 팔을 붙잡고 신음을 흘리자 다른 놈이 각목을 휘두른 사내를 얼른 붙잡았다.

“뭐야, 이 미친 새끼.”

그러자 각목에 맞은 놈이 얼른 달려들며 각목을 휘두른 사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우, 아파! 이 새끼 뭐야. 너 죽어봐라!”

퍽 퍼퍽!

“윽! 놔! 놓으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그 얘를 놔 줘!”

각목을 휘둘렀던 사내가 맞으면서도 소리를 쳤다. 그런데 목소리도 그렇고 덩치도 조그만 게 왠지 어려 보였다.

“이 새끼 뭐야? 죽여 버려!”

두 놈이 서로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자 곧 어린 남자아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으으으...”

그 쓰러진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은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은미가 더욱 거세게 몸을 비틀며 반항했다.

“오호라~ 이년이 아는 놈인가 보군.”

“어린놈의 새끼가 덤벼들었던 거야? 에잇, 퉤!”

“조센징 애새끼가 겁 대가리 없이 말이야.”

놈들이 쓰러진 소년은 팽개치고 다시 은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나까무라, 여긴 너무 시끄러워졌으니 저년 끌고 저리 들어가자고.”

한 놈이 후미진 골목길을 가리키자 나머지 놈들도 호응을 했다.

“그래. 피까지 봤는데 저리 끌고 가서 후딱 재미 좀 보고 끝내버려. 하하핫!”

놈들이 은미의 팔을 뒤로 꺾으며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악! 안 돼. 승호오빠! 승호오빠! 흑흑!”

은미가 입을 가렸던 손이 풀리자 악을 쓰며 쓰러진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바로 이웃에 사는 같은 학교 선배였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평소 자신을 따르던 은미가 당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덤벼들었을 것이다.

“으으... 은미야! 은미. 윽!”

“이 새끼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시끄러!”

퍽퍽!

“으윽!”

쓰러졌던 승호가 은미를 부르며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놈들의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다. 놈들은 그 순간 은미와 승화가 한국말을 하자 알아듣지 못했다.

“어서 움직여. 돌림빵 하려면 시간이 없어.”

“헤헷! 오늘은 내가 먼저야. 이런 맛에 따라다니는데. “

“시꺼! 빨리 움직이기나 해.”

승호를 발길질로 잠재운 놈들이 은미를 끌고 후미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그들이 떠난 자리에 소리도 없이 한 인영이 내려섰다. 척 보기에도 건장한 사내였다.

그 사내가 쓰러져있는 승호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떨어져있는 은미의 옷을 주워들었다.

사내가 은미의 한복 윗도리를 펼쳐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검정색 치마도 펼쳐서 살펴보았다.

“으음...”

잠시 사내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내. 바로 휘였다.



폐허가 된 원전부근 마을에서 벗어난 휘는 지나가는 큰 버스위에 무턱대고 올라앉았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목적지는 없었지만 가야할 곳은 생각이 났다.

신주쿠. 그리고 한국식당.

생각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아려오며 그 곳에 꼭 가야할 것 같았다. 다만 어떻게 가야할 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을 깊이하면 봉황이 튀어나와 방해를 했다. 그것은 두통으로 찾아왔다. 아무 생각이 없어야 머리가 편했다.

그저 버스위에 몸을 누이고 편히 쉬고 있었다.

여기가 일본이란 것은 주변을 조금만 돌아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일본 군인들의 총탄을 맞고 죽어 천종 놈들의 손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왔다. 머릿속에 소종주의 기억도 일부 남아있었다.

그런데, 헬기가 쫓아오며 갈겨대던 총탄의 궤적들도 선연히 떠올랐다. 헬기의 소음 속에 이모의 애타는 고함소리도 들려왔다. 예쁜 여자군인이 옆에 앉은 남자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도 떠올랐다. 그런데 그 여자가 들고 있는 칼이 눈에 익었다. 봉황의 칼이었다.

버스위에 누워 휘가 손을 뻗었다. 기운을 일으키자 휘의 손에서 칼이 쑤욱 자라났다. 그것은 핏빛 봉황의 칼이었다.

휘가 가볍게 칼을 뻗었다.

봉황의 칼이 붉게 일렁이더니 칼이 쑤욱 늘어났다. 아니, 칼이 늘어난 게 아니라 칼에서 붉은 빛이 쏘아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칼끝이 향한 곳. 버스가 지나친 길옆에 커다란 전신주가 서 있었다. 그 전신주에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굉음이 울렸다.

콰콰쾅!

우두두두...쿵!

커다란 전신주가 폭발을 하며 쓰러지고 있었고 버스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었다. 전신주 주변으로 건물들의 불빛이 사라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으으으...“

쓰러져있던 승호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은미의 옷을 들여다보던 휘가 승호에게 다가갔다.

“넌 조선 사람이더냐?”

승호가 힘겹게 눈을 뜨며 올려다봤다. 건장한 사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으... 누 누구세요?”

휘가 승호의 옆에 쪼그려 앉으며 다시 물었다.

“넌 어찌 조선말을 하고 있느냐?”

“으... 내가 조선 사람이니 조선말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 은미야. 흐흑! 여기 붙잡혀있던 여자애, 그 애는 어딨습니까?”

승호가 몸을 일으키며 급하게 물었다.

“놈들에게 끌려갔다.”

‘아~ 안돼요. 으윽, 제발 도와주세요. 경찰에 신고라도 좀. 으으...“

휘가 승호를 일으켜 세웠다.

“그 아이도 조선 사람이냐?”

“네, 맞아요. 재특회 놈들이 은미를. 크흑!”

“으음... 기다려라.”

스윽!

“으윽!”

털썩.

승호가 일어서려다 휘가 손을 놓자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깜짝 놀란 승호가 주위를 돌아봤지만 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질 않았다.

“뭐 뭐야? 어디 갔어? 으으...”

승호가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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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제12장 살육(4) +4 14.10.02 1,701 6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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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제12장 살육(2) +9 14.09.25 1,615 54 12쪽
90 제12장 살육(1) +2 14.09.22 1,851 59 11쪽
89 제11장 역류(6) +6 14.09.18 1,660 59 12쪽
88 제11장 역류(5) +4 14.09.15 1,732 58 11쪽
» 제11장 역류(4) +4 14.09.11 1,542 54 11쪽
86 제11장 역류(3) +2 14.09.08 1,582 5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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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제10장 위기(12) +4 14.08.25 1,653 6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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