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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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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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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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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36화






배가 출항하자 빌은 곧바로 로그아웃 해버렸다.

“이 주 뒤에 보자.”

빌의 마지막 인사에 눈이 동그래진 광개토가 슬기를 쳐다보자, 그녀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배를 타면 저렇게 로그아웃 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래도 됩니까, 누님?”

이제는 아가씨 대신 누님이라는 표현이 입에 착착 달라붙은 광개토였다. 현실에서 누나가 없다보니 괜시리 더 애정이 가는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배에 저장도 했겠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계속 배에 붙어서 바다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싫은 사람들도 있는거지. 그래서 배에 타자마자 로그아웃하는 유저들도 꽤 있는 편이야. 그 시간 동안에 여기서 멍하니 있을 바에야 현실에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겠다는 거지.”

“그럼 누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 나야, 뭐. 나가봐야 할 것도 없고, 뭐, 바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계속 접속하고 있겠지, 뭐.”

어딘가 처연한 분위기를 풍기는 슬기의 모습에 광개토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푸르고 넓은 바다는 마치 현실의 바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너무 느리지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많이 벌어놓는 건데...에이션트 패쓰라는게 그렇게 비쌀 줄은 몰랐지 말입니다.”

광개토의 말대로 빠르게 대륙 간 이동을 시켜주는 에이션트 패쓰는 비싸도 너무 비쌌다.

“그건 왕족이나 고위 귀족, 아니면 재정 빵빵한 상위 길드들이나 쓰는거지.”

이렇게 목돈이 필요할 때면, 슬기는 시온을 시작하며 집안에 손 벌리지 않았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달리기라도 빨라서 빠른거야. 그리고 배도 느린 건 아니거든. 달리 탈 것도 없고.”

“그래도 이 주나 걸릴지는 몰랐지 말입니다. 전에 사부님이랑 같이 건너올 때는 몇 시간 안 걸린 거 같았는데.”

“그래, 그랬지. 대신 얼어 죽을 뻔했지만 말야.”

슬기의 말에 둘은 함께 가볍게 킥킥거렸다. 잠시 그렇게 웃던 슬기가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실리엔을 보고는 광개토에게 말했다.

“개토야, 망토 잠시만 쟤한테 줘라. 꼬맹이가 할 말이 많은데 못해서 답답해하잖아.”

그러자 광개토가 두르고 있던 망토의 깃을 더욱 여미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리엔이는 입 다물고 있을 때가 제일 예쁘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리엔이가 키도 더 큰데, 꼬맹이라고 하시니 좀 이상하지 말입니다.”

“야, 원래 꼬맹이라는게 덜 컸으니까 꼬맹인거지! 적어도 스무 살은 되야 꼬맹이가 아닌거라고. 아니꼬우면 진작에 좀 더 키우지 그랬니?”

광개토는 이제 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실리엔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열 살 남짓해 보였었는데, 어느덧 그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모습으로까지 성장해버린 실리엔의 모습에 이제 더 이상 상처 전이를 해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절대 우리 리엔이를 나보다 더 늙게 만들 수는 없어!’

실리엔의 성장 동력원은 상처 전이를 통해 전달되는 ‘천마기’. 다행인지 불행인지 광개토와 슬기가 급속히 강해짐에 따라 상처 전이를 할 일도 점점 없어졌다.

빌헬름이 종종 처 맞고 오긴 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빌의 상처는 그 스스로 감당해야 할 상처라고 광개토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누님. 그럼 저도 좀 나갔다가 와도 되겠습니까?”

“응, 그냥 바다에 콱 빠져 죽어 버릴 거니까 천천히 다녀와.”

“..아닙니다.,누님.”

광개토는 슬기의 눈치를 살피며 나가려던 마음을 접었다. 천마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 광개토가 보기에 그녀는 왠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곤 했다. 지금처럼.

잘은 몰라도, 아마도 슬기에게는 과거 인간관계에 있어 큰 상처가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별. 그리고 이번에 천마까지 그렇게 사라지자, 살짝 사람이 뒤틀려진 것처럼도 보였다. 천마가 있을 때보다도 훨씬 욕도 많이 하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사부님은 어딘가 계시겠지 말입니다. 히~.”

광개토가 슬며시 웃으며 말하자, 슬기가 역시나 슬며시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 왜, 니 마음속에라도 있니? 심장 갈라서 한번 찾아볼까? 아님, 머릿속에 있어? 대갈통 한번 열어봐?”

“아, 아닙니다. 아마도 엄청 아주 멀리 계시지 싶습니다.”

분명 농담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는 슬기의 발언에 광개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사부님 얘기는 당분간 안 해야겠다!’


슬기의 말대로 선상 생활은 지루했다. 바다는 잔잔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뿐 순풍에 돛 단 범선은 쭉쭉 정해진 항로를 따라 순항하는 듯 보였다.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꽤 규모가 있는 배를 한 바퀴 둘러 온 광개토가 입을 열었다.

“누님 말대로 로그아웃한 유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할 때만 접속해 있으면 되니까.”

“그럼 만약,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로그인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광개토의 질문에 슬기가 킥킥거렸다.

“어쩌긴, 다시 돌아오는 거지. 키키키.”

“헐, 그럼 시간 낭비가 장난 아니겠습니다.”

“그래서 보통 일행 중 한명은 남아서 상황을 살피다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이나 되면 일행들보고 얼른 접속하라고 하지.”

그리고 입을 다문 둘은 한동안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


“개토야, 오늘도 대련이나 할까?”

“그러시지 말입니다.”

선상 생활이 따분했던 두 사람은 곧 대련을 준비했다. 서로 마주보고서 자리에 앉은 둘은 각자의 손을 교차시켰다. 오직 상반신만을 사용하여 공수를 주고받는 좌식 대련이었다.

비록 대양을 항해하는 큰 범선이라고는 하지만 둘이 대련을 펼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고, 또한 하반신을 사용하지 않아야 그나마 슬기가 광개토를 상대할 만 했다.

슬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

마주친 살갗을 통해 서로의 근육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슬기의 수도가 광개토의 인중을 향해 뻗어 나갔다.

흡, 헛바람을 삼키며 광개토가 고개를 젖혔지만, 슬기의 수도는 멀어진 인중 대신 광개토의 인후를 찔러버렸다.

“컥!”

“..작!!”

한차례 기습을 성공시킨 슬기가 그제야 구령의 뒷부분을 마저 내뱉었다.

슬기의 반칙에 광개토가 소리쳤다.

“이건 사기..!!”

하지만 광개토로서는 성토할 시간도 없었다. 슬기의 수도가 기묘하게 꺾이며 양 쇄골과 명치로 이어진 삼각 라인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들어오자, 광개토로서는 완전히 방어에 몰두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탁

둘의 손날과 손날, 팔뚝과 손목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엉키고 설켰다.

그 모습과 소리에 갑판에 나와 있던 몇몇 유저들이 관심을 가졌다.

“저저..앉아서 또 앉은뱅이 용 쓰는구만.”

“다리는 안 쓰고 상반신만 까딱까딱해서 수련이 되겠어, 저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둘이서 앉아서 양손으로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만약 슬기와 광개토가 하반신까지 사용했더라면, 그들은 난생 처음보는 화려한 경공과 공중전을 보게 되었을 것임을.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슬기와 광개토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했을 거란 사실을.

“몹을 잡는 것도 아니고. 경험치가 생겨, 레벨이 올라? 저딴 필요 없는 짓을 도대체 왜 하는지, 원.”

역시나 그들은 몰랐다. 비록 레벨은 오르지 않을지언정, 이 격렬한 대련을 통해 광개토의 파천무와 슬기의 소요공, 그리고 직목의 수법이 더욱 더 성장하고 완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둘은 그렇게 항해하는 내내 짤막한 말의 대화와 길고 진득한 몸의 대화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꾸준히 성장해 나갔다.


항해한지 일주일 째,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별들로 모든 것이 눈부시기만 한 밤이었다.

광개토가 착용하고 있던 잿빛 망토를 풀어 슬기에게 건네자, 슬기가 그 망토를 등에 착용했다.

“주무실 때 아시지 말입니다?”

광개토가 실리엔을 가리키자, 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로그아웃할 때는 꼭 꼬맹이한테 맡겨놓을게.”

망토의 효능을 아는 광개토가 수련 중에는 망토를 착용하고 있는 게 좋다며 슬기에게 알린 이후로, 둘은 번갈아 가면서 만겁돌파의 망토를 착용해 왔었다. 수련 시간에 따라 아침과 저녁에는 광개토가, 밤에는 슬기가 착용해온 것이었다.

이제 곧 자정을 지나 새벽 한 시경이 되면, 슬기가 소요공을 수련해야 할 시간이었다.

“전에도 그래놓고, 그냥 로그아웃 하셔가지고 망토 없이 새벽 수련했지 말입니다.”

“아, 이제 절대 안 까먹는다고!”

두어 차례 더 신신당부를 하던 광개토가 선실로 내려가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대기가 가볍게 떨리며 아주 낮은 저음의 울림이 바람처럼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지, 이 소린?”

슬기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데, 선실로 들어가려던 광개토도 슬기에게 돌아왔다. 한켠에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실리엔도 어느덧 둘 옆으로 왔다.

“분명히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소리 같은데..?”

슬기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데, 갑자기 위쪽에서 누군가 목청껏 외쳤다.

“해신이다!! 열시 방향으로 해신이 나타났다!!”

그러자 갑자기 갑판 위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여든 스물에 다다르는 선원들이 갑판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정체불명의 나무통들을 힘껏 배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해신이 노여워하기 전에 얼른 서둘러!!”

선원 중에서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내가 큰 목소리로 작업 중인 동료들을 독려했다.

그 모습에 슬기와 광개토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얼른 뱃전으로 달려갔다.

쏟아질 듯한 별빛으로 인해 밤의 바다는 생각보다 검지 않았다. 오히려 별빛이 반사되어 바다도 무척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리고 저 멀리 해수면으로 뭔가 시커먼 것이 보였다. 좁고 길쭉하게 생긴 그것은 몸체의 대부분을 물속에 두고 일부만 수면 밖으로 꺼내었는데 마치 상어처럼 보였다.

“저게 뭐지? 상언가?”

꽤 먼 거리임에도 단번에 상어인줄 알아볼 수 있다니?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광개토 역시도 슬기의 말대로 그 물체가 상어처럼 보였다.

“근데, 상어가 저렇게나 빠릅니까?”

상어로 추정되는 거대한 그것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슬기와 광개토가 탄 범선 주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중이었다. 그 민첩하고 빠른 몸놀림에 슬기가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 배보다 훨씬 빠른데? 마치 물고기 같아!”

‘맞지, 물고기!’

속으로 그렇게 대꾸하던 광개토는 상어같은 그것이 점점 가까이 옴에 따라 점점 입을 벌리고 말았다.

“상어가...저 크기가 진정 실화입니까?”

그들이 탄 범선 근처로 상어가 오자 그제야 상어의 정확한 크기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배의 크기와 거의 맞먹는 상어의 압도적인 크기에 슬기와 광개토는 해연히 놀라고 말았다.

“상어가 저게 진짜 레알 실화가 맞습니까? 저렇게 큰 상어가 정말로 존재하긴 한단 말입니까?”

광개토가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침을 마구 튀겨댔다.

하지만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잠자코 상어를 주시하던 슬기는 결국 그녀가 원하던 특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맞네, 저놈. 그놈이네.”

“그..놈?”

슬기가 되묻는 광개토의 머리를 잡아다가 상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잘 봐. 저 놈, 주둥이 보이지? 뭐, 일단 주둥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물이 중요한 건데 말야. 그래!! 방금 입 벌릴 때 봤지?! 이빨 하나 없는 거! 분명히 없었지, 그치?!”

“이빨...없는 게 뭐 중요한 겁니까?”

광개토는 갑자기 만난 괴물 상어의 치아 건강까지 신경 쓰는 슬기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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