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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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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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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781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24 17:00
조회
384
추천
5
글자
12쪽

130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30화






불길하고 불안한 어둠이었다.

그가 주위를 인지한 순간부터 주변의 광경은 오직 그 불안한 암흑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내세가 있다고들 많은 사람들이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곳까지는 와보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만일 이 곳을 와보았다면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내세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압도적인 죽음의 감정 앞에서 그는 무기력하게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여긴 누구, 난 어디?’

이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허공을 부유하던 그는 한참 후에야 질문조차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긴 어디, 난 누구?’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하려 해봐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난 뭐지? 난 뭐지? 난 대체 뭐였던 거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그를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존재 자체가 먼지만도 못한, 애당초 그 무엇도 아니었던 것 같다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불길하고도 불안한 감정들이었다.

‘으아아악!!! 난 뭐냐고!!’

그때, 갑자기 쩌렁- 하고 벼락이 쳤다. 오직 암흑만이 전부였던 공간에 일순간 온 사방으로 샛노란 벼락이 떨어졌다.

“으악!!”

육신이 느껴지지 않아 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순간 그는 환상을 보았다.

그의 옆으로 급격히 커져 오는 두 개의 밝은 빛!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어디론가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 그가 튕겨 날아가는 것보다도 그의 등 뒤에 있던 목숨보다 소중했던 존재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환상이었다. 재차 떨어지는 벼락과 함께 다시 그를 찾은 환상은 막 그의 가슴으로 꽂혀 들어오는 새까만 검 한 자루였다. 지독하게도 느린 그 검은 천천히 천천히 그의 가슴을 찌르고 속으로 들어왔다.

“안돼!!”

저 멀리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그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의 목소리였고, 사사건건 그에게 욕을 해대던 목소리이기도 했다.

“...지혜야.”


문득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이 웬 의자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그의 신체에 맞추어 제작하기라도 한 듯이 엉덩이의 형태나 등의 기댐 정도가 완벽한 의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의자가 아니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듯이, 누군가가 그의 몸을 의자 삼아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응? 뭐냐 이건?!”

무릎에 느껴지는 타인의 엉덩이 감촉에 매우 기분이 나빠진 그가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자, 거의 동시에 그의 위에 앉아 있던 자도 벌떡 일어나며 동시에 외쳤다.

“무엇이냐, 네 놈은?!”

벌떡 일어선 놈이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본좌의 용좌에 무슨 볼일인가?!”

“본좌가 니 의자냐?”

각자 자신을 본좌라 칭한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놈과 의자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다. 천마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았었던 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천마가 보기에 그 놈은 그와 꼭 같은 키에 꼭 같은 체형, 하지만 일곱 개의 구슬에 여덟 개의 반지를 끼고서 검은 아지랑이가 뭉글뭉글 일어나는 망토를 착용한 것이 영락없는 나르시스트였다.

한편, 평소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천마도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 같은 의자 녀석을 살펴보았다.

꼭 같은 키에 같은 체형, 그리고 장비로는 구슬이 하나 달린 목걸이에 어울리지 않는 여덟 개의 반지, 거기에다 왠지 갖고 싶어지는 검이 한 자루 있었다.

“넌 대체 누구냐?”

“넌 뭐하는 병X이냐?”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욕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였다. 병X 소리를 들은 천마가 일순간 가만히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좌는 병X이 아니라, 천마니라.”

그 말에 욕을 할 줄 아는 천마가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냉랭한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본좌야 말로 천마거늘.”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하, 네가 바로 여섯 머저리의, 으득!! 덜떨어진 큰 머저리 사부로구나!”

욕잘 천마가 욕못 천마에게 버럭 화를 내며 욕 잘함을 뽐내자, 욕못 천마는 영문도 모른 체 같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곧 기분이 나빠진 욕못 천마도 냉소를 터뜨렸다.

“크흐흐흐,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인다만, 되었다!! 본좌의 비처에 허락도 없이 기어 들어왔다는 것은 곧 목숨을 포기하겠다는 소리!! 잡설은 거기까지 하고, 그만 죽도록 하여라!!”

“지랄하고 자빠졌네!!”

욕못 천마가 말 끝내기 무섭게 손가락을 튕기자, 욕잘 천마도 욕설로 받아치며 거의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서로의 기공에 각기 면상을 강타당한 둘은 각기 반대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쿠쿵-

벽에 처박히자마자 튀어나온 욕잘 천마가 욕못 천마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욕못 천마가 벽에서 몸을 빼냄과 동시에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기공을 날렸지만, 욕잘 천마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두 팔을 휘저어 욕못 천마의 기공을 일일이 튕겨내며 방어하더니 결국 욕못 천마의 코앞까지 날아가 기어코 그의 복부에 주먹을 한발 꽂아 넣었다.

쿠웅-

주먹과 복부, 살과 살이 만났는데도 온 대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욕잘 천마의 연속 공격이 이어졌다. 욕못 천마를 벽으로 몰아 세운 욕잘 천마의 주먹이 욕못 천마의 복부와 가슴, 목, 턱, 뺨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격타하고 지나가자, 투타타타타하는 연속 타격음이 마치 연발로 터지는 기관총 소리처럼 대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려댔다.

“으으으으윽.”

욕못 천마가 신음을 흘리면서도 양손으로 욕잘 천마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욕잘 천마의 왼쪽 다리를 오른발로 강하게 쓸어 차면서, 잡고 있던 욕잘 천마의 머리를 우측 하단으로 힘껏 내리 꽂아 버렸다.

쿠웅-

잘 때리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진 욕잘 천마는 일어설 틈도 없이 욕못 천마의 강력한 발차기를 맞고 뒤로 쭈욱 밀려 나갔다. 아니, 5미터 가량 밀려 나가던 욕잘 천마의 몸이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스르르 90도 회전을 하면서 오뚝이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호오, 좀 하는구나?”

“병X인줄 알았는데, 상병X이었군.”

일단 말은 섞었다 하면 욕못 천마가 무조건 손해였다. 하지만 NPC의 특성상 욕을 할 줄도 모를뿐더러 알지도 못하는 욕못 천마는 자신이 손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상대의 말 중에 의미를 알수 없는 말들이 종종 끼어 있어 다소 답답할 따름이었다.

“상.병.신.이 무엇이냐?”

욕못 천마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지만, 욕잘 천마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욕잘 천마가 손가락으로 우측을 가리키자, 갑자기 욕못 천마의 몸이 우측으로 쏠렸다. 마치 욕못 천마만이 중력이 다르게 작용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중력 역전 현상에 욕못 천마가 반응하고 버티려 하자, 욕잘 천마는 이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가 좌측을 가리켰다가 하면서 마구 중력을 흐트렸다.

하지만 몇 차례 허우적대던 욕못 천마가 이윽고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중력을 무시하자, 욕잘 천마는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을 내렸다.

“병X도 상병X쯤 되니까 쓸 만하군.”

욕잘 천마가 그렇게 이죽거리는 순간, 욕못 천마가 그의 코앞으로 갑자기 다가왔다. 그리고 번개처럼 희번뜩이는 그의 손날! 욕잘 천마도 급히 팔을 들어 방어동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쑤앙, 소리와 함께 그제야 들이닥치는 일진광풍. 욕못 천마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랐기에 바람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턱턱턱턱.

욕못 천마의 번개같은 손놀림에 욕잘 천마가 벼락같이 대응하며 일일이 다 막아내었다.

이어 욕잘 천마의 날카롭게 세워진 손가락이 욕못 천마의 얼굴을 할퀴어가자, 욕못 천마는 어느새 한걸음 물러서며, 욕잘 천마의 수공을 불과 1센티미터의 여유만 남기고서 여유 있게 피해버렸다.

하지만 이어진 욕못 천마의 인후를 노린 손날 찌르기 역시도 불과 1센티의 거리 차이로 명중하지 못하였다. 욕잘 천마가 순식간에 우측으로 살짝 이동한 까닭이었다.

“크흐흐, 이거 참 재미있군. 재미있어.”

욕못 천마가 흥분으로 목소리를 떨며 즐거워하자, 욕잘 천마도 그와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본좌를 이토록 재미있게 해주다니, 상병X 상이라도 내려야 겠구나.”

그렇게 한차례 미소를 주고받은 둘은 곧 다시 격돌했다.

주먹에는 주먹으로, 발차기에는 발차기로, 기공에는 기공으로, 주술에는 주술로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공방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근접전에서는 욕잘 천마가, 원거리에서는 욕못 천마가 유리한가 싶었지만, 전투가 이어질수록 둘의 갭은 줄어갔고, 결국 둘의 대결은 거울을 보고 싸우는 듯한 형국으로 이어졌다.

서로 빈틈없이 공방을 펼칠 때는 우박이 쏟아지듯 연속적인 타격음이 끊이지 않았고, 가끔 강력한 공격을 서로 허용할 때면, 천둥벼락이 떨어진 듯한 타격음이 대전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조금씩 욕잘 천마가 밀리기 시작했다. 호적수를 상대하다보니 욕잘 천마의 무한할 것만 같던 천마기가 조금씩 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대로 욕못 천마는 무한한 천마기를 공급해주는 ‘천마의 망토’ 덕분에 처음의 쌩쌩함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다.

또 다시 한차례의 충돌이 끝난 후, 살짝 헐떡이는 욕잘 천마의 모습을 보며 욕못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구나. 본좌와 이렇게까지 손을 섞은 것은 네 놈이 처음이다. 너는 스스로를 고금 제 이의 고수라 불러도 될 것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본좌는 고금제일이다.”

욕잘 천마가 이를 악물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도 내심 여전히 싱싱한 상대의 모습에 살짝 기가 질린 상태였다. 완벽하게 동일한 전투력이었지만, 유지력에서 그가 딸리는 모양새였다.

욕잘 천마는 허리춤에 달린 천마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에 욕못 천마가 빈정대듯 말했다.

“본좌는 적수공권이거늘, 네 놈은 무기를 들겠다는 것이냐?”

그 말에 욕잘 천마는 천마검을 허리에서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니, 이게 걸리적거려서 말이지. 진작에 풀어 놓을걸 그랬구나. 그랬다면 네 놈의 그 웃는 낯짝에서 이빨 몇 개쯤은 빼버렸을 텐데.”

쿵쿵.

그때, 누군가가 대전의 문을 두드렸다.

“사부님! 대제자, 소천마이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철문을 뚫고 안까지 들려왔다.

욕잘 천마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지는 순간, 욕못 천마가 말했다.

“들어오너라.”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면서 흑의에 꼭 천마랑 비슷한 옷차림을 한 다소 호리호리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바로 천마의 제자들 중 으뜸이자, 여타 제자들로부터 공히 한수 위의 실력으로 인정받는 소천마였다.

안 그래도 기력이 딸려가는 참에 적의 쪽수가 늘어나자 욕잘 천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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