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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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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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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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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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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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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1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21화




어두운 밤, 검마와 권마, 염마, 그리고 삼천의 천마군은 멍하니 대로에 서 있었다.

천마가 떠나기 전에 권마가 물었었다.

“새벽과 황혼은 알겠소만, 아침 점심 저녁은 언제 드시는 거요?”

설마하니 아침 내내 식사하고, 점심 내내 식사하고 그러진 않을 것이니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면 그 시간은 피하겠다는 의미로 질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마의 대답은 딱 한 마디였다.

“알아서 알아봐.”

그런 무책임한 말 한마디만 남기고 천마는 날아가 버렸다.

한동안 흐르던 침묵은 염마가 터뜨린 분통에 의해 깨졌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자가 나타나서는!! 에잉!”

염마는 가슴이 터질 듯 한 심정에 뭔가 한마디를 더 붙이고 싶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NPC라서 욕을 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머릿속에 간질간질하며 떠오를 듯 말 듯 하다 끝내 떠오르지 않는 욕설 한마디를 제껴두고 염마가 사형들에게 하소연했다.

“저 괴물의 말대로 시와 때를 지켜가며 공격했다 후퇴했다 그럴 거요? 사사형, 오사형? 이게 무슨 전쟁이요, 소꿉장난이요?”

“우리 목숨이지.”

하늘을 쳐다보던 검마가 어딘가 처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나직이 대꾸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려 두 사제를 바라봤다.

“일단 여섯째의 말 중에서 한마디는 틀림없구나. 괴물, 그래 저 자는 내가 만나 본 자 중에 가장 괴물이다. 어쩌면 대사형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의 탄식에 두 사제가 흠칫, 하고 어깨를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도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대사형 소천마는 스승인 천마 다음가는,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강자. 하지만 그도 사형제 셋의 협공을 이긴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저 자처럼 그렇게 농락하듯 쉽게 이길 수는 없었다.

검마가 둘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셋으로는 저 자를 꺾을 수 없다.”

“저 자는 무슨 저 자요, 저 괴물이지!”

염마가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툭 끼어들었지만, 검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봉인은 셋. 우리가 여기서 저 자와 실랑이를 벌리는 동안, 다른 세 사형제들이 중앙의 봉인을 깨뜨린다면 결국 우리 여섯 사형제는 모두 이곳으로 모이게 될 것이야. 저 자가 제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 여섯 사형제의 협공에는 당랑거철과 같은 신세만 될 뿐이다.”

“그렇군. 사형 말대로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니, 우리는 그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만 때우면 되겠소.”

남자다운 생김새에 곰같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내내 불안한 표정이던 권마가 비로소 밝게 웃으며 안도했다.

“그래, 비록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우리라지만, 결코 즐거운 경험은 아니니 당분간은 저 자의 말을 들어주도록 하자.”

그렇게 검마의 마무리를 통해 천마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자체 합의를 본 세 사형제는 그럼에도 한동안 그대로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권마가 입을 열었다.

“언제 출발하면 되오?”

“아직 저녁 식사중일까?”

“마군을 한 놈 보내 보오?”

“아니, 아직 정찰병도 하나 안 보낸거요? 아놔, 답답해서 정말!”

염마가 분통을 터뜨리고 일련의 정찰 과정을 거쳐 대략 30분이 지나서야 천마군은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


저녁을 먹은 후, 애써 풀리려는 긴장을 다잡으며 시온군의 지도부들이 다시 천마에게 몰려왔다.

“이제 귀하의 말대로 수련도 끝나고, 식사도 했으니 더 이상은 참고 넘어갈 수 없소! 우리 한번 잘잘못을 따져봅시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크로우였건만, 실제로 입에서 나온 말은, “천마님, 우리의 계약에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 데, 같이 풀어봄이 어떻겠소?” 였다.

천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도저히 강경하게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지만, 이 천마라는 괴물을 잘못 상대했다가는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지고, 꺾여도 형편없이 꺾일 것 같았다.

‘애초에 부러지면 꺾인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크로우가 애써 웃는데, 옆에 선 슬기가 쓸데없이 끼어들었다.

“오해? 지랄하시네. 아까 동맹 맺을 때는 오예~ 하더니만. 오해는 무슨.”

슬기의 못나디 못난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크로우는 입안의 이빨과 잇몸들이 욱신욱신거리는 듯한 환각통을 느꼈다. 과거에 저년이 입 안에 쑤셔 박아 넣었던 짱돌의 흙먼지 맛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 했다.

“하하하, 오해가 맞는 듯한데.”

크로우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슬기도 같이 웃으며 대꾸했다.

“호호호, 어디서 헛소리를 하시나, 그 작은 입을 가지고. 짱돌도 제대로 안 들어가더구만.”

“뭣, 뭣이!? 이 간악한 년이!”

“헐, 이 아저씨가 지금 동맹더러 간악한 년? 간악한 녀어언? 밤이 돼서 눈에 뵈는 게 없나, 아니면 돌멩이 먹고 돌머리가 되셨나?”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슬기의 욕설에 크로우는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지고, 귀에서 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단언코 시온을 시작하고 10년 이래 이런 험한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예전에도 들었던 거 같긴 한데, 그때도 ‘이년’이었다.

“네 이..!!”

‘네 이년!!’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어느새 천마의 손아귀에 턱을 붙잡힌 크로우는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귀신같은 몸놀림이었다.

“영감. 우리 아가씨한테 이딴 소리 하려고 찾아온 것이냐?”

천마의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는 항변할 의지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어 크로우는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참담한 광경에 뒤에 서 있던 미스란디르는 시시각각 깎여 나가는 더원의 이름값을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 역시 앞에 나선다고 해서 어떻게 상황을 바꿀만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모름지기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나 통하는 것이지, 천마처럼 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제 하고 싶은 짓만 하는 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천마가 아까 했던 말, “본좌는 성좌를 탈환시키고 지켜주겠노라고만 했을 뿐이니라. 조건에 언제 같은 편 목숨 구하기도 있었더냐?” 라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납득 당한 상태였다.

만약에 그가 천마의 입장이었더라면 그 역시도 계약의 허술한 부분을 악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간 약육강식, 힘의 논리 아래에서 강자중의 강자로써의 위치를 즐기며 살아왔던 크로우는 지금 더 큰 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로우가 간신히 입을 열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본.. 나는.. 전혀 귀하의 아가씨..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지 않소, 아니 하지 않겠소...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소.”

천마는 이참에 손아귀에 붙잡힌 영감으로부터 제대로 존댓말을 들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신음까지도 존댓말로 하게 말이다. 하지만 곧 기감망을 통해 무엇을 느낀 천마는 크로우를 풀어주었다.

잔뜩 얼어붙은 지도부 인사들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천마군들이 오고 있다. 몇 분 후면 이 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니라.”

“몇 분!?”

“천마군들이 오고 있다고?!”

다들 놀라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그 누구도 천마가 한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그만큼 천마는 잔인하고 포악한 심성과 언행과 별개로 그 능력과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지도부들이 황급히 흩어지며 공격대원들을 찾았다.

“야, 탱커, 탱커 나갔지? 얼른 다시 접속하라고 해!! 천마군이 온다!”

“그 새끼, 밥 먹으러 간다더니 아직도 안 왔어? 얼른 나가서 직접 데리고 와!! 일 분이다! 일 분 만에 튀어 갔다 와!”

저녁이고, 밥 때인지라 많은 공격대원들이 접속을 해제한 상태였다. 시온군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공격대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던 슬기가 천마를 향해 물었다.

“아저씨, 좀 더 일찍 알려 줄 수 있지 않았어? 엄청 멀리 있는 것도 막, 응? 다 느끼고 그러잖아.”

‘느낀다’는 표현에서 슬기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몸을 배배 꼬자 천마가 가만히 입을 벌렸다.

그동안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광개토가 끼어들었다.

“사부님, 저희도 준비해야지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광개토가 끼어들고서야 겨우 천마의 입이 닫혔다. 천마가 북서쪽에 위치한 외성의 성탑 하나를 가리켰다.

“저 성채를 지키도록 해라. 저 곳이라면 건물 구조를 이용하여 너희만으로도 능히 수백의 천마군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천마의 말에 따라 슬기 일행은 곧 북서 성탑에 자리 잡았다.

천마는 일행과 떨어져 하늘로 올라갔다. 그 모습에 크로우와 미스란디르를 비롯한 많은 유저들이 소리를 쳤지만, 천마는 역시나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동끝별의 성좌는 꽤나 튼튼해 보였다. 삼천여 명에 이르는 시온군의 병사들은 주로 외성의 성탑과 성벽에 배치되었다.

10 미터 높이에 이르는 성벽 위에는 수많은 마법사, 궁수, 총사 등의 원거리 딜러들이 포진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혹시나 들이닥칠 천마군의 육탄공격에 대비해 근접 딜러들이 예비 병력으로 섞여 있었다.

북쪽 대로를 따라 열려있던 강철 성문은 어느새 굳게 닫혔고, 그 주위로도 수많은 시온군들이 포진해 있었다.

밤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워졌지만, 동끝별의 성좌는 곳곳에 저마다 피워 올린 횃불과 램프, 그리고 마법사들의 조명 마법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특히나 여덟 성탑과 내성 꼭대기에 피워진 붉은 성화가 주변을 붉게 물들이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편, 남문 쪽으로는 계속해서 시온군들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접속을 해제했다가 연락을 받고는 다시 접속한 유저들이었다.

성좌가 ‘퀘스트 이벤트 장소’이다보니 성좌에서 로그아웃했던 시온군들은 모두 남쪽으로 다소 떨어진 시온 군의 캠프에서 로그인 되어 버렸고, 그 바람에 열심히 달려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곧 천마군들이 남문까지 에워싸든지, 혹은 단 한 차례라도 서로 간에 충돌이 생겨난다면, 이벤트가 발동 될 것이고 이 일대는 결계막으로 봉쇄되어 어떤 출입도 불가능해질 것이었다.

원래 시온군의 인원은 오천, 지금 모인 인원은 삼천 오백여명, 결계막이 세워지기 전에 속히 천오백 명이 더 접속을 해야만 했다.

성채를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살짝 들어 성채 너머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삼천 명의 천마군과 세 수장이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다가오고 있었다.

천마는 가공할 청력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처먹고 있진 않겠지요?”

염마의 말에 검마가 대꾸했다.

“진즉 식사들이 끝났다고 하더구나.”

“그렇지만, 간혹 다른 사람보다 늦게 먹는 자가 있지 않소?”

“크크크, 말은 똑바로 해야지. 늦게가 아니라 많이 아니요? 사형이 오래 먹고 앉은 건 많이 먹으려고 하다보니 그런거잖소.”

염마가 권마를 크게 비웃자 검마가 제지했다.

“조용해라. 다 왔다.”

그리고 잠시 성채를 살피던 검마가 클클 거리며 웃었다.

“다들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식사 때는 제대로 피한 것 같구나.”

“짜고 치는 전쟁이라지만, 열심히만 하면 우리 목숨은 건드리지 않겠지요?”

“싸움이 끊이지 않는 걸 원한다고 했으니, 그 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한 그러지 않겠느냐.”

검마의 말에 염마는 아까부터 계속 하고 싶었던 한마디를 하려고 했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였다.

그가 하고팠지만, 끝내 하지 못한 그 한마디, 그것은 “지랄병 하네, 미친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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