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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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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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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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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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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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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17화




모든 전사는 죽음과 친하기 마련이다.

죽음에 친숙하지 않고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인 전장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고, 죽음에 달관하지 않고서는 수비를 풀고 공격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죽음을 뛰어 넘지 않고서는 승리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니까.

전사 중에서도 ‘권사’는 가장 죽음과 가까이 위치한 부류들이었다. 맨몸뚱이 하나 믿고, 온갖 병장기가 난무하는 적진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간한 담력과 안법, 신법, 체술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권사는 슬기에게 꽤나 어울리는 계열이었다.

과거 그녀는 꽤나 적극적, 아니 차라리 저돌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무모한 성품을 지녔었는데, 그런 그녀의 특성은 그녀가 속한 집안의 계층적 우위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녀 자신의 월등한 선천적, 후천적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질만한 것은 다 가졌고, 가지고픈 것도 어떻게든 다 가질 수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가지게 된 성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의 그런 성품은 시온의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권사’라는 직업을 추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시온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호기롭게(라고 쓰고 무모하게라고 읽는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분명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집안의 지원을 일체 거부하는 결단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슬기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엘리트 코스가 아닌 그저 그런 무관의 기본 무공들만을 익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권사들은 그렇게 시작했고, 또 그렇게 살아갔으니까.

슬기는 오히려 자신이 다른 권사들보다 하나도 나을 것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했다. 항상 잘해야 했던 현실보다 아무것도 잘하지 않아도 되는 시온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강하고, 또 강한 천마군 같은 큰 위협들과 맞닥뜨릴 때면 꼭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미친년이야!!! 뭐, 좋은 게 있다고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렸을까!!’

과거의 자신을 욕하기 여념 없는 그녀에게 천마가 전수해 준 상승 무공은 가뭄 끝의 단비이자, 급똥 가운데 찾은 공용 화장실이었다. 그야말로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마침, 눈앞의 적이 근처의 탱커에게 눈을 돌렸다. 몇 번째 상대하는 녀석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모처럼 상대하는 권사형 천마군이었다.

“병신아, 나라도 너 같은 병신 모지리랑은 손절한다!”

왠지 익숙한 탱커의 목소리에 도발에 걸린 천마군이 “크아!”하고 괴성을 내지르며 탱커를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그 천마군의 손에 끼인 장갑은 온통 까만 철조각으로 울퉁불퉁한 형상을 띄고 있어, 저것에 맞았다가는 정말 면상 다 터질 것 같아 보였다.

투캉-

둔해보이던 탱커는 겉보기와 달리 대단히 신속한 방패질로 천마군의 철주먹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슬기의 날카롭게 세워진 손날이 팔을 아직 회수하지 못한 천마군의 겨드랑이를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천마군이 급히 팔을 내리며 방어하려 했지만, 슬기의 팔꿈치가 적의 팔꿈치를 마주쳐 나가고, 이어서 손목이 적의 삼두근을 튕겨내고, 마지막으로 텅 비어버린 급소를 손끝으로 강하게 박아 올렸다.

“크어!!”

슬기는 적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에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단 생각에 기뻐했다. 하지만 완전히 죽일 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는 법. 곧 들이닥칠 적의 반격을 대비하려는데, 탱커의 도발 효과가 여전히 남아있었는지 적은 슬기를 돌아보지 않고 탱커만을 공격했다.

그 분노에 찬 모습이 마치 여기서 뺨 맞아놓고, 저기서 화를 푸는 것처럼 보였다.

천마군의 팔꿈치와 무릎의 연속 공격이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탱커에게 꽂혀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탱커는 수준급의 방패질을 선보이며 그 두 번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다만 충격의 여파가 상당했는지 탱커는 무릎을 꿇고 말았고 그 순간, 그 빈틈을 노린 또 다른 적의 쇠도리깨에 어깨를 맞고 말았다.

하지만 탱커가 그렇게 두 세 번의 공격을 대신 받아주는 바람에 슬기는 왼쪽 무릎을 적의 옆구리에 제대로 박아 넣을 수 있었고, 곧장 연이은 연속 공격으로 천마군의 가슴과 목을 가격해 마침내 죽여 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더 기뻤던 것은 죽은 적이 남기고 간 아이템이었다. 졸라 아파보이던 그 철장갑 두 짝을 든 슬기는 살짝 후방으로 빠지며 재빨리 그것들을 착용했다.

‘그 귀하다는 권사 무기를 드디어 얻네! 이름이 파금강이야? 금강석도 부순단 말이겠지?’

권사는 맨손으로 싸우는 게 기본인 터라 뺏어먹을 것도 없고 뺏길 것도 없었다. 적들 역시 권사형 몹인 경우는 대부분 그렇게 빈손들이었다. 그렇기에 마침내 적을 죽이고 전리품으로 권사의 무기를 손에 얻고 만 슬기의 감회는 자못 새로웠다.

잠깐 열어본 상태창에 뜬 그녀의 장갑 ‘파금강’에 대한 정보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그간 부족하게 여겼던 공격력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개토에 비하면 부족해.’

광개토는 그녀보다 렙도 많이 부족한 주제에 천마군을 보통 두세 방에 죽여 버렸고, 가끔은 치명타가 제대로 터졌는지 한 방에 보내버리기도 했다. 아직 천마군을 죽이는데 적어도 네다섯 방은 맞춰야 하고, 직목의 수법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았을 때는 예닐곱 방까지 늘어나기도 하는 슬기로서는 광개토의 공격력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볍게 정비를 끝낸 슬기는 다시 전방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방금 도움이 되었던 탱커에게 또다시 천마군 네 놈이 바글바글 붙어있었다., 역시 탱커는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였다.

주먹을 불끈 쥔 슬기가 가장 가까운 적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갈기며 외쳤다.

“약속하자, 세 방 만에 죽어주기로, 알겠지!?”


전투가 시작되고 한동안 최전방의 바로 뒤쪽이 가장 안전한 지대였다. 강한 고레벨 유저들이 전방의 적군들을 막아줬고, 일부 천마군들은 그들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저 뒤쪽의 아군을 공격하는 등, 어쩌다보니 적들의 공격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바람에 광개토의 인근까지 따라붙은 잭키와 수지, 빅터도 뜻하지 않게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되었다.

일단 안전이 확보되자, 잭키와 빅터는 관중 모드에 들어갔다.

“광개토님!! 파이팅!! 왼쪽에, 왼쪽에!! 그렇죠!! 역시 한방! 멋지다!!”

“발차기, 강주먹! 강발!! 그렇죠. 무조건 강공격 가는 겁니다!!”

근접 딜러인 남자 둘이 그렇게 응원만 하는 동안, 수지는 장총을 꺼내 천마군에게 쏘았다. 조금이라도 전투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천마군들은 그녀의 공격을 여간해서는 맞지 않을뿐더러, 간혹 맞았다하더라도 그리 아픈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쏘면 쏠수록 분한 마음이 들었고, 하루빨리 고렙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의 분한 마음과 결심이 하늘에 닿았을까.

공교롭게도 그녀가 쏜 탄환이 한 천마군의 목울대를 제대로 치고 지나갔다. 아직 200렙 초반에 불과한 쪼렙의 공격에 치욕적인 고통을 느낀 천마군이 단단히 화를 내며 고렙 시온군들을 무시하며 전선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버렸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크아!!” 하는 적의 괴성에 광개토를 응원하던 잭키와 빅터가 깜짝 놀라며 수지 앞을 막아섰다. 엉겁결에 수지를 지키려던 그들은 상대를 확인하고서 크게 놀라며 후회했다. 둘은 떡 벌어진 입으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어떻게 들어왔지?”

“왜 들어왔지?”

남자들의 질문에 수지는 차마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곧 천마군이 쌍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잭키와 빅터는 이를 악물고 각자의 검으로 각각 천마군의 도를 하나씩 막아내었다. 아니, 막아냈다고 생각한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잭키는 검을 떨어뜨렸고, 빅터는 손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으윽!!” 하고 둘이 거의 동시에 신음을 내질렀고, 천마군은 절도 있으면서도 신속한 몸놀림으로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좌우를 향해 동시에 내리쳐지는 쌍도.

둘이 덤볐음에도 적에게 단 일합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 모습에 수지는 그저 비명만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잭키의 예측대로 기적이 일어났다.

이른바, 주인공의 오지랖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다.

어느새 달려온 광개토가 달려오던 그 기세로 쌍도를 든 천마군의 엉덩이를 강하게 밀어 차버렸고, 천마군은 그대로 앞으로 처박히듯 넘어지고 말았다.

“저 레벨 분들이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한 차례 위기상황을 넘기고서 광개토가 정작 자신이 더 저 레벨이면서 잭키와 빅터 그리고 수지를 나무랐다.

나무라는 와중에 한 번 더 발길질을 가해 천마군을 죽여 버리며 광개토가 덧붙였다.

“여기는 위험합니다. 후방으로 빠지시지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예견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잭키가 흥분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주인공 근처야말로 가장 안전하지요. 그리고 광개토님,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네?”

어안이 벙벙해진 광개토가 반문하자, 그것이 쑥스러워 빼는 태도인 줄 알고, 잭키가 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원래 주인공의 조건 중 하나가 동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는 거죠. 아무리 사소한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바로 저희 같은 사람들 말이죠.”

“에이, 모든 사람은 각자 삶의 주인공인거죠. 누구는 엑스트라고 누구는 주인공이라는 말은 정말 당치도 않습니다.”

광개토가 정색을 했지만, 잭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런 소리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강한 사람이 주연, 약한 사람이

조연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약한 사람은 아무리 주인공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영향력도 없고, 힘도 없는데 어떻게 주인공이 되냐고요. 안 그렇습니까, 네? 먼저 강한 힘이 있고, 그 다음으로 저처럼 위기에 처한 조연을 구할 수 있는 정의감이 있으면 그게 바로 주인공인겁니다, 주인공인거예요.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이 열사, 당당하게 외치는 바입니다!!”

유치원 때 2년 정도 다닌 후로 그냥 길바닥에 돈만 갖다버린 줄 알았던 웅변 학원의 경험이 이 순간 잭키의 세치 혀를 통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광개토는 그의 생각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그것에 동조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그의 과거를 모두 한낱 조연의 연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쳐다도 보지 않는 그런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저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 뿐, 결코 주인공이...”

“거기다가 겸손함까지, 햐!”

잭키가 광개토의 말을 끊으며 감탄사를 내뱉던 중에 갑자기 어색한 신음을 흘렸다.

“흡..!!”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잭키의 머리가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방금 그들에게 닥쳤던 유일한 위협을 제거했던 광개토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마를 발견했다.

“아, 사부님! 방금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혀 감지도 못했는데 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건 마치..마치...”

“마치, 뭐?”

사부의 반문에 광개토는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마치.. 마치...”

그러다가 광개토가 말을 멈추고는 천천히 천마에게 물었다.

“사부님이셨지 말입니다?”

“저녁때가 다 되어가서 말이지.”

천마는 가타부타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대었다.

“사부님이셨지 말입니다!?”

광개토가 터질듯한 가슴을 억지로 눌러가며 되묻자, 천마가 다시 말했다.

“저녁때가 다 되어가니 어쩔 도리가 없었구나. 아무래도 본좌가 손수 청소를 하는 수밖에.”

“청소라 함은...”

광개토는 머리가 뜨거운 가운데서도 직감적으로 천마가 하겠다는 청소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방금 눈앞의 유저가 죽은 것은 청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았다. 불처럼 뜨거웠던 그의 머리가 순식간에 남극 한복판에 선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눈을 돌려 천마군과 시온군의 전투를 쳐다보던 광개토가 말했다.

“사부님, 여기에 사람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광개토는 유저들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했지만, 천마는 그 사람이라는 존재들을 천마군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본좌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밖에 없느니라. 나머지 요괴나 사람이나 있으나마나 한 것들이지.”

천마는 손가락을 풀며 본격적으로 청소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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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19.12.22 4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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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화 19.12.21 408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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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화 19.12.20 400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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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15화 19.12.19 40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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