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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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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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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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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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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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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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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126화





새하얀 보름달 아래 두 남녀가 마주보고 나란히 섰다. 천마와 슬기였다.

“본좌가 너에게 전할 것은 소요공이라는 무공이다.”

“파천무가 아니라?”

슬기의 목소리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하지만 천마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파천무는 양기가 너무 강한 무공이라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고, 반대로 이 소요공은 음기가 너무 강해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을 뿐, 두 무공의 고하는 순전히 숙련의 정도에 달렸느니라.”

천마는 그 자신이 소요공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천마교의 모든 교내 무학뿐만 아니라 천마교가 입수한 교외 무학들에도 달통하였고, 특히나 천고의 기학인 ‘소요공’, 달리 ‘소요신공, 소요신마공, 소요신녀공’으로 까지 불리우는 이 무공에 대해서도 익히 연구한 기억이 있었다.

“그럼 그 소요공인지 뭔지 하는 무공을 익힌 사람 중에서도 아저씨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 여자가 있다는 거야?”

“당치도 않은 소리! 본좌는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고수다. 본좌에 버금갈 만한 자는 존재하지 않느니라!”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천마에 놀란 슬기가 입을 꼭 다물자, 곧 둘 사이에 적막한 침묵이 흘렀다.

“네가 이 무공을 열심히 수련하기만 한다면 제자 놈에게 그리 뒤처지지는 않으리라.”

천마의 독백 같은 말에 슬기가 처음 이 얘기들을 꺼낼 때부터 걱정되던 사안을 꺼냈다.

“그럼.. 나도 아저씨한테 이제 사부라고 해야 해?”

하지만 천마와 사제지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슬기였다. 뚫어져라 천마를 쳐다보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꼭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예전에 중국 드라마 보니까, 부부끼리도 남편이 아내한테 무공 전수해주고 막 그러던데. 그치?”

그렇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주절대던 슬기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입을 때렸다.

‘미쳤나, 이게?!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야!?’

천마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슬기가 벌개진 얼굴로 소리 없이 입을 놀리며 방금의 발언을 후회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드립은 너무 갔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퍼뜩 고개를 든 슬기가 변명을 늘어 놓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말야. 그러니까 가족이지, 가족! 그래, 가족끼리는 꼭 사제관계를 안 맺어도 무공 전수가 가능하잖아? 아저씨, 생각해봐. 형제끼리 무공을 전수한다고 사제 관계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치?”

그러자 가만히 듣던 천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족이라면... 본좌가 오빠인가?”

“지랄하네, 이 아저씨가!!”

머리도 거치지 않고 의식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반사 작용, 무조건 반사처럼 슬기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숙인 슬기는 다시 한 번 주둥이를 때리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내 입이 미쳤나? 막 나가네, 아주!!’

그렇게 짧게 후회를 마친 슬기가 얼른 낯빛을 싹 바꾸고서 소리쳤다.

“아, 흰소리는 그만하고 얼른 무공이나 가르쳐 줘! 소요공도 틀림없이 대단한 무공이겠지? 본 아가씨를 실망시키지는 않는 거겠지? 진짜, 실망 시켰다간 아주 그냥..”

그런데 그 뒤에 어떻게 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주.. 그냥..그냥..”

생각해보니 천마를 위협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때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고. 대체 어떤 협박을 해야 천마에게 통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놔, 나 왜 자꾸 말실수를 하는거지??’

하지만 이미 뱉은 말들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천마에게 슬기가 빼든 협박은, “..못 볼 줄 알...아..” 였다.

하지만, 이 협박을 하면서도 슬기는 과연 이 협박이 협박으로서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탓에 저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대체 이딴 식으로 생긴 추녀가 앞으로 못 보게 될 거라고 위협한다고 해서 대체 어느 누가 그걸 두려워할까?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을까?

결국 협박을 한 슬기가 도리어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졸였다. 천마가 과연 이 협박을 인정해줄지 너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천마의 대답이 들려오길 슬기는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언제까지 곱등이 마냥 쪼그리고 있을게냐? 본좌를 바라보고 정자세를 취해라.”

천마의 서슬퍼런 목소리에 슬기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미 천마는 ‘옆 서기’ 자세를 취하며 두 손을 펴고 앞으로 곧게 뻗고 있었다.

“아, 이렇게?”

“제자놈한테도 경고했었지만, 수련 중에 이빨 보이면 이빨을 다 부숴버리겠다.”

“헙!!”

“일체의 소리도 내지 말고, 오직 눈으로 본좌의 행동을 좇으며 귀로 본좌의 호흡을 훔쳐라. 소요공은 천하에 존재하는 음공 중 으뜸인 기공이라 반드시 새벽 1시경부터 한 시간 동안 수련을 해야만 한다...”

천마의 설명과 함께 소요공의 동작이 이어지자, 슬기는 입을 앙다물고 천마의 움직임을 따라했다. 천마의 진지하면서도 엄숙한 시범동작들이, 마치 제대로 따라만 한다면 틀림없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 없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슬기는 천마 몰래 소리 없이 웃으며 천마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했다.

새벽 한 시, 단 둘만 있는 성벽 위에서 둘은 그렇게 몇 번이고 달밤의 체조를 되풀이 했다.


*


닷새 전에 도우미 아줌마에게 앞으로 하루 일과의 시작을 여섯 시간 늦추겠다고 전했던 슬기가 다시 조건을 바꾸었다.

-아주머니, 앞으로는 아침 8시에 자고, 오후 1시에 일어날 거에요.

컴퓨터를 통해 전해지는 슬기의 의사에 도우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알겠다고 말했다. 도우미는 어차피 돈만 잘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녀에게 내려진 유일한 명령은 첫째 아가씨의 편의를 돌보는 것이었다.

“아가씨가 게임에 단단히 빠지셨네요. 하긴 달리 하실 일도 없으실 테니. 그렇게 해드릴게요.”

도우미는 시온 안의 시간과 현실 시간 사이에 6시간이나 시차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그저 슬기가 게임에 너무 깊게 빠져 버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병약하고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신세인 아가씨가 그나마 게임에라도 빠져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여겼다.


*


여섯째 날.

슬기가 현실 시각으로 오후 1시에 접속을 하니, 시온 속은 이제 아침 7시였다. 슬기는 얼른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지각이시지 말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광개토가 슬기를 보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시온 시각으로 새벽 4시에 접속했다고 말했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잘 안되지 말입니다. 보통 사흘이면 적응된다고 하던데.”

간밤에도 전투 때문에 늦게 잤는데, 괜히 일찍 일어났다가 더욱 피곤함을 느끼는 광개토 였다.

“시온의 면적이 지구보다도 크다고 하니 시차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역시 세상은 둥글지 말입니다.”

광개토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시차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맥락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천마가 갑자기 광개토를 쳐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이 평평하기 그지없는 땅덩어리를 두고 둥글다니?! 설마하니 네놈들 요괴의 눈에는 이 땅이 평평치 않고 공처럼 둥글게 보인단 말이냐?”

천마의 놀란 반응에 광개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슬기를 쳐다봤다.

“아니, 이건 뭐...제가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 놈아, 눈이 있으면 보거라. 세상이 둥근지 평평한지?”

천마의 어처구니없는 근시안적 반론에 광개토가 처음 생각한 것은, 처음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하는 것이었고, 다음으로 든 생각은 마젤란을 불러다가 한 번 더 항해를 보내기라도 해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과거 16세기 당시, 마젤란은 3년간의 항해 끝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직접 입증 했었다. 심지어 마젤란은 항해 도중에 목숨을 잃어 남겨진 그의 탐험대가 결국 임무를 완성했었다.

“아가씨, 사부님이 이 세상이 둥그냐고 묻는데 뭐라고 해야 합니까? 이건 뭐, 너무 기초적인 상식이라 당황스럽지 말입니다.”

그러자 슬기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지구는 둥근 게 맞는데, 여긴 안 둥글어. 평평해.”

“네?!”

이번에는 광개토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슬기는 광개토가 게임을 시작한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도 시온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찬찬히 현실과시온의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개토야, 하늘을 봐봐. 해가 어느 쪽에 있어?”

“그야, 당연히 동쪽...헐? 서쪽에 있네? 뭡니까?”

광개토는 그동안 예순여 번의 일출과 일몰을 보면서도 해가 당연히 동쪽에서 뜬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버젓이 아침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해가...서쪽에서 뜬 겁니까? 와, 진짜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이네?”

“시온의 NPC들은 그래서, 해가 동쪽에서 뜰 노릇이다, 라는 격언을 사용하지.”

그리고 이어진 슬기의 지구 과학 대신, 시온 과학 강의는 광개토에게 여러모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온의 세계는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는 것, 하늘의 해와 달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하늘을 운행하며 밤과 낮을 만들어 낸다는 것, 그래서 해와 달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는 것, 각 대륙마다 여섯 시간의 시차가 있고, 세계의 한 가운데 위치한 미들랜드는 항상 저녁과 같은 백야 상태라는 것.

“미들랜드에 사는 사람들은 밤낮 구분이 안 되겠지 말입니다.”

광개토의 말에 슬기가 살풋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자. 그럼 거기는 어떻게 밤낮을 구별하는지 알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건데, 정말 아름답고 멋진 광경일거야. 진짜, 100프로, 무조건 내가 보장해!”

슬기의 눈빛 속으로 눈부시도록 황홀한 세계수의 금빛 찬란한 잎사귀들이 아른거렸다.

그제야 그동안 잠자코 슬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천마가 입을 열었다.

“밥을 다오.”

천마는 세상이 평평하다는 슬기의 말에 크게 안도하며 곧 원래의 관심사, 아침 식사를 찾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힘을 내어 힘껏 시온군과 천마군의 전투를 방관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아침 식사 도중에 변고가 일어났다.

일전에 몇 차례 그랬듯이 이번에도 갑작스레 예고 없이 또 하나의 구슬이 파삭 하고 깨져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깨진 구슬 파편의 상당수가 천마의 밥 위로 떨어졌다. 천마는 이제 단 두 개만 남은 구슬은 아랑곳없이, 밥그릇만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감히 본좌가 먹고 있는 밥에 들어가?!”

그러면서도 천마는 혹시나 먹을 수 있는 건가 싶어 구슬을 살짝 입에 넣었다가는 곧 퉤, 하고 뱉어 버렸다.

슬기가 깨진 구슬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설마.. 어딘가에서 또..?”

슬기가 떨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광개토 역시도 똑같은 눈빛으로 슬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슬기와 광개토의 우려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더 원’의 마스터와 군사가 천마 일행을 찾아왔다. 그리고 마스터, 크로우가 대뜸 천마에게 말했다.

“미들랜드에 있는 배꼽별의 봉인이 깨졌다는 소식이오. 이제 남은 성좌는 여기 동끝별, 성 엘리나의 성좌와 운명의 별, 성 시온의 성좌 단 둘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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