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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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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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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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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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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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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9장 사건의 전말 (1)

DUMMY

<2018.09.18. 화요일 / 서울 논현동>


은행대여금고에서 꺼낸 유산을 든 규진은 안 실장과 함께 S 호텔로 들어갔다.


8일 만에 다시 찾은 중식당에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구석 자리에 규진과 오은명 둘이 앉았고, 반대편에 이지영과 안 실장이 앉았다.


경호원 조 씨를 비롯해 이지영의 운전 기사, 비서는 한 테이블 건너 다른 자리에 앉았다. 건달들은 까마귀 떼처럼 호텔 로비에 무리 지어 있었다.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왔네.”

이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지만, 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이지영이 삐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조카. 예의상 알은척이라도 좀 하지?”

“작은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규진은 또박또박 발음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지영은 들리지 않게, 아이 재수 없어, 혼잣말을 하더니 규진 앞에 놓인 누런 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금고에서 꺼낸 거 정말 이게 다야?”

“네, 봉투 하나만 들어있었습니다.”


이지영이 봉투를 향해 손을 뻗자, 규진이 냉큼 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슨 짓이야?”

“이건 제가 물려받은 유산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그거 넘기기로 거래한 거 아니야?”

“거래 대가가 뭐죠?”


규진이 보인 반응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이지영은 눈을 날카롭게 고쳐 떴다.

“대가? 유산과 인질의 맞교환이 조건 아닌가?”


이지영은 아직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지 못한 건가? 경찰이 유엔을 구출되었다는 걸 이지영이 모르는 건 아닐까?


규진은 능청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인질은 어디 있죠?”


유엔을 감금한 장소를 알고 있던 박재열은 이미 죽었다. 가까스로 박재열이 유엔을 숨긴 창고 위치를 찾아낸 이지영이 강 과장을 보냈지만, 어젯밤부터 갑자기 연락 두절. 이지영이 인상을 찌푸리자 옆 테이블에서 양은주가 다가왔다.


김시란이 파견한 이지영의 수행비서 양은주, 낯빛에 살기가 가득하다. 규진은 정 대리가 보여준 이지영 주변 인물 분석 보고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성큼성큼 다가온 양은주는 다짜고짜 문건이 든 봉투에 손을 뻗었다. 규진이 팔로 양은주를 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경호원들이 모여들었다.


“모르는 여자 손을 그렇게 잡으면 쓰나. 부모 없이 자라서 그런가 영 행실이 나쁘네.”

이지영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빈정거렸다.


규진이 대꾸하려는 걸 오은명이 손으로 막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잘 가르치도록 하지, 더러운 걸 만지기 전에는 꼭 장갑을 끼라고 말이야.”


“식당 주인에게 빈 접시라도 하나 달라고 해야겠네요. 죗값으로 내놓을 피와 고기부터 담아 놓고 거래를 시작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손에 피 묻히는 버릇은 어디서 배운 건지 참 궁금하네. 아, 그러고 보니 집안 내력인가? 증조부가 조선인 강제징용 전문이었다지?”


“무슨 그런 오해를. 먹이고 입혀준 머슴이 은혜도 모르고 날뛰면 교화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약을 먹인 거야? 교화가 필요해서?”


평소에 신중함을 잃지 않던 오은명이 이리저리 주제를 바꾸며 거친 말을 연발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을···


“가짜 뉴스가 사람 잡는다더니, TV 뉴스도 안 보고 사세요? 범인이 잡혔다는 소문도 있던데···”

약 먹인 건 어떻게 알았지? 당황한 이지영이 말을 얼버무리자 오은명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동서, 향수를 좀 바꿔보는 건 어때? 피비린내 지우려면 어지간한 향수로는 안 되겠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이지영이 독사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유산, 넘기겠다는 겁니까, 말겠다는 겁니까? 무슨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오은명은 초조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정 대리는 아직인가? 지금 상황이면 정 대리보다는 경찰이 먼저 도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오은명은 화제를 돌렸다.


“대가라··· 그런데, 회사는 어쩔 생각이야? 동서가 사장으로 앉는다는 소문이 벌써 자자하던데.”


“형님! 남편 무덤에 아직 흙도 안 말랐어요. 그런 얘기는 다음에 하시죠.”

이지영은 상중이라는 의미로 머리에 꽂은 하얀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든지.”


약이 바싹 오른 이지영은 얼굴을 붉히며 달려들었다.

“말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도대체 누가 남편 목에 칼을 휘두른 거죠?”

“뉴스 안 봤어? 김여원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긴급 수배한다고 날마다 신문, 방송에 시끄럽게 나오는 거 못 봤어?”

오은명은 모른 척 딴청을 부렸다.


정말인가? 이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납치한 유엔을 박재열이 훔쳐내듯 데려갔다면 역시 인질로 잡아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편 목에 칼을 댄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이지영의 얼굴은 불편한 방향으로 일그러졌다.


“창고 안에 김여원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조금만 늦었어도 굶어 죽을 뻔했지.”


이지영이 모르는 걸 오은명은 알고 있다. 초조해진 이지영의 안색은 여러 빛깔로 변했다.


“그런데 왜 그 애가 용의자예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야?”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며 오은명은 계속 시간을 끌었다.


그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호텔 로비는 건달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이지영과 오은명은 반사적으로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식당 입구에 곽 경사와 조 순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이지영 앞에 섰다.


“이지영. 당신을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네? 누구를 살인교사 했다고요?”

“살인교사가 처음이 아닌 모양이네요. 누굴 말하는 건지 묻는 걸 보면.”

누굴 죽인 게 들켰는지 헷갈린다는 건가? 조 순경은 불쾌한 기분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눈을 똥그랗게 뜬 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이지영은 말을 더듬었다.

“내··· 내가 남편을 왜, 왜 죽여요?”

“저는 이지영 씨가 남편분을 죽였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조 순경은 속으로 이지영을 욕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을 살인 교사한 혐의도 수사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이 교활한 살인마. 조 순경은 뒷말은 입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이지영 씨를 김홍석 씨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체포하겠습니다.”

곽 경사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이지영이 안색을 파르르 떨며 몸을 뒤로 젖혔다.


수갑을 꺼내는 곽 경사를 앞을 이지영의 경호원이 막아섰다.


“뭐야, 이것들은?”

조 순경은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경찰 배지를 보이며 경호원의 팔을 비틀었다. 건달도 아닌 것들이 겁도 없이.

“영장 안 보여, 공무집행방해로 같이 경찰서 구경 좀 하러 갈까?”


호텔 로비는 둔탁한 구둣발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출동한 경찰이 호텔 로비에 모여있던 건달을 모두 연행한 후 강력계 형사들이 중식당으로 들어와 주위를 봉쇄했다.


안 실장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경찰을 피해 뒷걸음질 쳤지만, 경찰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다.


* * *


순식간에 주변이 정리되고 나자 곽 경사가 테이블에 앉았다.


오래 기다려온 반가운 손님이라도 만난 표정으로 곽 경사는 규진을 쳐다봤다.

“박규진 씨, 시간 괜찮으시면 참고인 신분으로 수사 협조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오은명이 규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신호를 보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유엔과 시노가 있는 경찰서로 가는 건가요?”

규진의 물음에 곽 경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만 시간을 주세요.”

정 대리가 호텔에 모습을 보이자 규진이 곽 경사에게 문건이 든 봉투를 들어 보였다.

“한 부 복사한 다음에 원본은 은행에 다시 보관해야 하거든요.”


“그게 뭔가요?”

“내일 아침 K 신문을 읽어보세요. 친일파 재산 환수 특별 기사가 실릴 겁니다.”


흐린 날의 연속이다.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을장마는 날마다 비를 뿌려댔다.


* * *


일주일 만에 규진, 유엔과 시노가 다시 모였다.

저녁 9시, 경찰서 앞이었다.


모두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명백한 알리바이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유엔도 피의자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전환되었고, 조사 후 귀가를 허락받았다.


“고생 많았지?”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규진과 시노가 경찰서에서 나오는 유엔을 맞이했다.


유엔은 험한 일을 하는 사내처럼 시노를 끌어안았다.

많이 힘들었지? 시노가 물어도 유엔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밥 먹으러 가자. 저녁 먹고 계속하자길래 밥 먹지 말고 빨리 끝내자고 했거든.”

유엔이 탈진한 얼굴로 배를 움켜쥐었다.


“나도.”

짧게 대답하는 규진의 손을 유엔이 꼭 잡았다.


“나만 설렁탕 먹었네.”

밥 시켜 준다길래 그냥 먹었는데 괜히 미안하네, 시노가 어색하게 웃으며 둘이 잡은 손을 떼어놓으며 끼어들었다. 유엔은 시노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누가 누굴 위로하는 거야? 시노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시노가 물었지만, 유엔은 서늘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유엔, 너 표정이 왜 그렇게 비장한 거야?



“잠깐만요.”

세 친구가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경찰서에서 곽 경사와 조 순경이 달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둘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인 부탁인데, 조금만 더 시간 내주시면 안 될까요?”

곽 경사의 얼굴빛은 간절했다. 세 친구가 다른 누구와 접촉하기 전에 꼭 물어볼 말이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낙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탁드립니다, 하며 곽 경사는 고개를 숙였다.


“개인적으로요?”

규진이 두 팔을 뒤로 뻗어 유엔과 시노를 감싸며 앞으로 나섰다.


“잘 아시겠지만, 아직 살인사건 용의자가 검거되지 않았습니다. 같이 조금만 더 얘기할 수 없을까요?”

“왜 공식적으로 수사 요청을 하지 않으시고?”

규진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여원 씨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게다가 납치사건 피해자로 밝혀진 상황에서 밤늦게까지 공식 조사를 하기에는 경찰 입장에선 부담이 큽니다. 잠깐만 시간 내주시면 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반 정도만 진실인 말을 뱉으며 곽 경사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부탁했다.


“좋아요. 창고에서도 병원에서도 여러 가지로 배려해주신 분이니까 저도 보답할게요.”

유엔이 승낙했지만, 규진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유엔 너 무슨 생각인 거야? 눈치를 줬지만, 유엔은 규진의 시선을 모른 척했다.


“그런데, 저기 저분. 제 팔에 수갑 채우려고 했던 조 순경 아저씨는 좀 그런데요.”

유엔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쌀쌀맞은 소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절차대로 한다는 게 그만.”

조 순경이 깜짝 놀라며 유엔에게 사과했다.

“농담이에요. 잘못하신 거 없어요. 같이 가요. 근데 뭐 좀 먹으면서 얘기해도 되죠?”

조 순경이 황당한 표정으로 유엔을 바라봤지만, 대화를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기선을 제압당한 기분이었다.


작가의말

K 신문 편집국장이 광수대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친일파 재산 환수를 주제로 특별 기획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요. 그런데, 경찰에서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최근 일어난 살인사건과도 관련있는 주제라서 먼저 알려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요. 네? 염곡동 살인사건 말씀입니까? 네, 경찰이 먼저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소문 듣자 하니 살인사건이 한 두 건이 아니었다면서요? 어떻습니까, 지금 바로 작업하시죠? 친일파 후손에 살인 사건 용의자,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있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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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2부 5화. 다락방 비밀의 문 19.05.15 54 1 14쪽
102 2부 4화. 새덕 마을의 비밀 19.05.13 55 1 15쪽
101 2부 3화. 푸른 곤룡포 19.05.09 48 1 12쪽
100 2부 2화. 광산의 실 소유주 19.05.08 52 0 15쪽
99 2부 1화. 사고로 위장한 살인 19.05.07 58 0 13쪽
98 단편 외전-4. 유엔의 각성 19.05.02 61 1 13쪽
97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하) ※공포 주의※ 19.04.30 53 1 13쪽
96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상) ※공포 주의※ 19.04.29 63 1 13쪽
95 외전-2. 크고 예쁜 도토리 19.04.28 56 1 13쪽
94 외전-1. 죽은 자의 혼령 19.04.26 66 1 12쪽
93 32장 마지막 질문 (1부 최종화) 19.04.25 72 2 16쪽
92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2) 19.04.24 72 2 14쪽
91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1) 19.04.23 70 2 15쪽
90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2) 19.04.21 72 2 15쪽
89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1) 19.04.20 70 1 14쪽
88 29장 사건의 전말 (3) 19.04.19 84 1 12쪽
87 29장 사건의 전말 (2) 19.04.17 68 0 11쪽
» 29장 사건의 전말 (1) 19.04.15 74 1 12쪽
85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9) 19.04.12 77 0 13쪽
84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8) 19.04.10 64 0 13쪽
83 27장 박쥐 사냥 (3) 19.04.08 73 1 13쪽
82 27장 박쥐 사냥 (2) 19.04.05 83 0 12쪽
81 27장 박쥐 사냥 (1) 19.04.03 78 0 11쪽
80 26장 위험한 갈림길 (2) 19.04.01 74 0 13쪽
79 26장 위험한 갈림길 (1) 19.03.29 80 1 13쪽
78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19.03.27 75 0 11쪽
77 25장 볼모가 된 세자 (2) 19.03.25 79 1 13쪽
76 25장 볼모가 된 세자 (1) 19.03.23 87 0 12쪽
75 24장 가짜 열쇠 (3) 19.03.20 8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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