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일반소설

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최근연재일 :
2019.05.15 02:56
연재수 :
103 회
조회수 :
12,048
추천수 :
185
글자수 :
577,838

작성
19.03.27 01:07
조회
74
추천
0
글자
11쪽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DUMMY

유엔이 핸드폰을 켰다. 위치 추적을 의식해 꼭 필요할 때만 전원을 켜던 핸드폰으로 서슴없이 긴 통화를 이어갔다. 이제는 추적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규진이 사라졌다.


“이모, 아직도 소식 없어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혹시나 해서 규진이가 탄 차를 정 대리가 뒤쫓아 갔는데 가평휴게소에 차만 주차돼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구나. 안 실장이라는 사람도 안 보인다니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구나. 일단은 정 대리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는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워.]


“그러게 볼모로 잡아간다고 할 때 왜 순순히 따라간다고 해서, 겁도 없이. 이모 이제 어쩌죠?”


[안 그래도 네 엄마랑 가평으로 가볼 생각이다. 넌 따라올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지영이 너를 노리고 있다는 걸 명심해. 알았지?]

“네, 소식 들어오면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았다.]

오은명은 긴장한 목소리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지영이 위임장을 손에 넣었으니 일주일 동안 규진만 잡아 두면 금고 속 물건은 이지영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아니, 아예 아무도 찾지 못하는 깊은 땅속에 규진을 묻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지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규진을 찾아야 하는데.


유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우린 어쩌지? 규진이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원래 계획이었잖아.”

규진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시노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니. 모든 걸 포기해야 할 정도로 최악의 비상 상황이 생기면 지난주까지 같이 지냈던 펜션에서 다시 만나는 게 계획이었어. 시노 미안하지만, 충남 태안에 있는 그 펜션 위치는 너에게도 말해줄 수 없어. 아무리 패밀리라고 해도 말이야.’

유엔은 속마음을 숨기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직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그 순간 시노 손에서 진동이 울렸다.

“박재열인데?”


“일단 받아 봐. 규진이 어디 있는지도 꼭 물어보고.”

유엔이 시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안녕하세요. 박 대표님.”

시노가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후 반갑게 인사했다.


[이러다가 나만 낙동강 오리 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만 빈손이야, 나만.]

박재열은 태연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규진이 사라졌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다는 걸 직감한 시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문에 듣자 하니 진짜 중요한 건 박 대표님 손에 있다던데요.”

[그것만 있으면 뭐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사겠다는 사람만 나타나면 팔아먹을까 싶기도 하네. 둘 중 아무에게나 말이야.]


유엔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지영과 박재열이 한 편이 되면 모든 게 허사다. 부부를 이간질하는 게 쉽지 않다고 예상은 했지만, 달리 대책이 없다.

(일단, 만나자고 해.)

다급해진 유엔이 입 모양으로 시노에게 말했다.


“전화 주신 거 보니까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은데, 일단 만나서 얘기할까요?”

[좋지. 아침에 만났던 그 호텔 어때요? 나 오늘 거기 벌써 세 번째네.]


“잘됐네요. 저희도 근처에 있거든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희’라고 했겠다. 그러면 지금 유엔이랑 같이 있다는 말이겠군. 박재열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녁은 아직 이르고, 커피나 한잔할까?]


* * *


양은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 박재열과 최자현이 강남 S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박재열의 핸드폰은 며칠 전부터 도청당하고 있었다. 나나미가 이지영을 찾아온 다음 날 양은주가 긴급 투입된 직후부터 양은주는 박재열의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도청했다. 물론 양은주의 긴급 투입은 이지영의 요청이 아니었다. 이지영이 나나미를 만나 오은명에게 거래를 제안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김시란이 직접 개입한 것이다. 양은주는 김시란의 그림자다.


“여기서 10분 거리야.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 있어.”

이지영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지만, 양은주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이지영에게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찾으시는 세자빈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무수리보다는 세자빈이 낫겠죠?”

양은주의 차가운 질문에 이지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자빈은 어떻게 잡을 건가요?”

“일단, 나가시죠.”

양은주는 은행 밖으로 걸어 나가며 모든 일행을 향해 모이라는 손짓을 했다.


은행 앞에서 건달들을 불러모으더니 양은주가 상황을 지휘했다.


“아까 있었던 S 호텔로 다시 갑니다. 주차는 각자 따로 합니다. 호텔 주차장에 한 대, 호텔 뒤 H 아파트 단지에 한 대, 호텔 앞 길가에 두 대, 운전자만 차에서 대기하고 나머지는 3인 1조 네 팀으로 나누어 행동합니다. 조수석에 앉는 사람이 각 조 조장입니다. 차에 타면 각자 저한테 메신저 보내세요. 제가 개별적으로 연락하겠습니다.”

양은주의 말이 끝나자 열여섯 명의 건달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은주는 차가 한 대씩 출발할 때마다 호텔, 아파트, 길가, 길가,라고 말하며 각자 목적지를 말해주었다.


이지영은 양은주의 딱 부러지는 말투를 들으며 그녀가 김시란의 친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용의주도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 특히, 압도적인 통솔력은 유전적으로 타고 나지 않고서는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지영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먼저 답을 해 주시죠? 남편분이 진짜 열쇠를 가진 것 같은데 어쩔 생각이십니까?”

양은주의 눈빛은 서늘하고 차가웠다.


“그래도 남편인데, 우리 쪽에서 피를 묻힐 수는 없지. 아직은.”

아직은, 이라고 덧붙인 한 마디가 모든 말을 우유부단하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이지영은 결심을 망설였다. 계획대로 최대식이 나서주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건데, 라는 뒷말은 꺼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호텔 안으로는 진입하지 않겠습니다.”


이지영은 기가 눌린 표정으로 양은주의 뒤를 따라갔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냥 지켜보기나 하자고 마음먹으니 이지영은 오히려 편해졌다.


* * *


“아무래도 불안해. 약속 장소를 바꾸자.”

몽마르뜨 공원에서 중앙도서관 옆길을 걸으며 시노가 걱정스러운 말을 던졌다.


“규진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해.”

“나는? 규진이가 나 보고 안전한 데 숨어 있으라고 했단 말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은 내가 가진 패가 하나도 없어.”


“네가 바로 그 패야. 고립무원인 박재열에게 힘이 되어줄 유일한 사람.”

“너 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박재열이 날 인질로 잡으려고 할지도 모르는데.”


“호텔이라서 보는 눈이 많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한 건 바로 너였거든. 반나절 만에 마음이 바뀐 거야?”

“정말 못됐어. 자기는 같이 들어가지도 않을 거면서. 혼ㅈㅅ ㄴ만 이ㄱ ㅁㅇ.”

말이 통하지 않자, 시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불평을 담아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난 바로 옆에 편의점에 있을게. 아까 봤지? 거기 어딘지.”

“몰라.”

시노는 팩, 소리를 내며 앞질러 걸어갔다.


하지만, 호텔로 들어가는 시노를 걱정하느라 정작 자기 주변을 살피지 못한 유엔은 이미 신중함을 잃고 있었다.


* * *


“츄리닝 입은 여자가 호텔 옆 편의점에서 혼자 삼각김밥 먹고 있다고 하는데요.”


골목길에 주차한 차에서 양은주가 이지영에게 핸드폰 화면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세자빈 맞네.”

이지영이 검지를 까딱거리며 사진 속 유엔을 가리켰다.



몇 초간의 정적, 양은주의 눈빛은 빠르게 돌아갔다.


양은주는 각 조 조장에게 사진을 보내며, 조별로 지침을 하달했다.


1조 호텔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대기

2조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려와 골목길에서 대기

3조 편의점에서 목표물 확보 후 주차된 차로 이동. 4시 정각 행동 개시.

4조 호텔 로비에서 대기


“일단 세자빈부터 잡고 뒷일은 다시 생각하시죠. 생각 말입니다, 생각.”

양은주는 이지영을 향해 아랫사람을 대하는 말투로 딱딱하게 말했다. 새파랗게 어린 게 얻다 대고, 이지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억지 미소를 지었다.


* * *


점심도 거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에 유엔은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삼각김밥과 박카스 한 명을 골랐다.


호텔로 같이 들어갈 걸 그랬나? 후회가 들다가도, 박재열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시노 혼자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어떻게든 공동작전으로 규진을 찾아내야 한다. 박재열과 손잡는 건 딱 거기까지다. 유엔은 갑작스러운 두통에 머리를 주먹으로 쿵쿵 쳤다.


그 순간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세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아차!’

유엔은 머리를 징으로 맞은 듯한 표정으로 낮게 탄식했다.


검은 옷을 입은 저 사내들은 아침에 봤던 얼굴이다. 유엔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시노에게 전화를 걸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다.


도망가기에는 출입문이 너무 작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유엔이 걱정하는 사이 시노 목소리가 어렴풋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통화 중인 걸 건달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조용히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 하나가 어깨를 꿈틀거리며 유엔에게 다가왔다. 나머지 둘은 입구 좌우에 서서 유엔을 노려보고 있었다.


도망을 치더라도 일단 편의점에서는 나가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유엔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네’ 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마시던 박카스 병을 왼손에 쥐고 유엔은 건달을 따라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서 빠져나오자 입구 오른쪽에 선 남자가 유엔의 팔뚝을 잡았다. 불쾌한 기운이 전해졌지만, 유엔은 내색하지 않고 팔에 힘을 쭉 빼고 하자는 대로 끌려갔다. 길가에서 유엔은 날카롭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 명이 전분가?


유엔은 입술을 단단하게 다물었다.


잡힌 팔을 뿌리치겠다는 시늉을 하며 유엔이 슬그머니 몸을 움직이자 남자는 더욱 세게 유엔의 팔을 잡아끌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유엔은 재빠르게 반격했다. 당기는 힘을 반동으로 이용해 사내의 옆 허벅지를 무릎으로 찍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사내가 주저앉자 유엔은 바로 왼쪽에 선 남자의 목울대를 겨냥해 발을 높이 들었다. 뒷발을 뻗은 옆차기는 정확하게 왼쪽 남자의 턱 아래를 꽂혔다. 캑캑,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를 뒤로하고 유엔은 몸을 숙였다.


맨 처음 다가왔던 스포츠 머리 사내의 빈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유엔은 몸을 틀어 그 남자의 무릎 뒤 오금을 발로 내리 찍었다. 남자는 그대로 무릎을 꿇는 자세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상황을 모면한 유엔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핸드폰에 충분히 전해질 만큼 큰 소리로 소리쳤다.

“시노, 위험해. 도망쳐.”


작가의말

규진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절망한 유엔은 침착함을 잃고 더한 위험에 빠져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노는 구해야 한다고 결심한 유엔은 심장에 고인 피를 남김없이 짜내며 거친 사내들 틈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일곱 개의 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개요 18.11.19 239 0 -
103 2부 5화. 다락방 비밀의 문 19.05.15 54 1 14쪽
102 2부 4화. 새덕 마을의 비밀 19.05.13 55 1 15쪽
101 2부 3화. 푸른 곤룡포 19.05.09 48 1 12쪽
100 2부 2화. 광산의 실 소유주 19.05.08 52 0 15쪽
99 2부 1화. 사고로 위장한 살인 19.05.07 58 0 13쪽
98 단편 외전-4. 유엔의 각성 19.05.02 61 1 13쪽
97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하) ※공포 주의※ 19.04.30 53 1 13쪽
96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상) ※공포 주의※ 19.04.29 63 1 13쪽
95 외전-2. 크고 예쁜 도토리 19.04.28 56 1 13쪽
94 외전-1. 죽은 자의 혼령 19.04.26 66 1 12쪽
93 32장 마지막 질문 (1부 최종화) 19.04.25 72 2 16쪽
92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2) 19.04.24 72 2 14쪽
91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1) 19.04.23 70 2 15쪽
90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2) 19.04.21 72 2 15쪽
89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1) 19.04.20 70 1 14쪽
88 29장 사건의 전말 (3) 19.04.19 84 1 12쪽
87 29장 사건의 전말 (2) 19.04.17 68 0 11쪽
86 29장 사건의 전말 (1) 19.04.15 73 1 12쪽
85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9) 19.04.12 77 0 13쪽
84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8) 19.04.10 64 0 13쪽
83 27장 박쥐 사냥 (3) 19.04.08 73 1 13쪽
82 27장 박쥐 사냥 (2) 19.04.05 83 0 12쪽
81 27장 박쥐 사냥 (1) 19.04.03 78 0 11쪽
80 26장 위험한 갈림길 (2) 19.04.01 74 0 13쪽
79 26장 위험한 갈림길 (1) 19.03.29 80 1 13쪽
»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19.03.27 75 0 11쪽
77 25장 볼모가 된 세자 (2) 19.03.25 79 1 13쪽
76 25장 볼모가 된 세자 (1) 19.03.23 87 0 12쪽
75 24장 가짜 열쇠 (3) 19.03.20 81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