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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님의 서재입니다.

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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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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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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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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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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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7장 박쥐 사냥 (1)

DUMMY

“설마 저한테 열쇠를 돌려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죠?”

박재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래조건이 복잡해서 그것도 고민이네요.”

오은명이 풀죽은 목소리로 던진 말에 박재열이 바로 대꾸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저만 낙동강 오리알 되겠네요. 설마, 지난번 모여서 작당하신 대로 최대식 시켜서 저 죽이고 열쇠라도 뺏으려는 건 아니겠죠? 섭섭하네요. 사람 만나자고 불러놓고.”


다른 대안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내 딸을 구해야지. 손에 피 묻히겠다는 사람 없으면 내가 직접 하지. 이희경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속말을 억지로 감추고 박재열을 노려보았다.


“저는 농담으로 한 말인데, 그쪽은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까?”

박재열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하겠다는 표정으로 최대식을 바라보며 몸을 슬금슬금 뒤로 뺐다.


“그때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마지막 길을 욕보였던 박재열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고 최대식이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오은명이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다른 대안을 제시해보세요.”


“인질구출 작전. 단, 조건은 동일합니다. 인질과 유산의 일대일 맞교환.”

박재열이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눈을 굴렸다.


“그래서야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최소한 인질이 배는 안 굶겠죠. 최대식 씨가 인질 옆을 지킬 테니까.”

박재열의 대답에 오은명이 바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뭘 간단한 걸 그렇게 못 알아듣나, 답답한 마음에 박재열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오늘 인질을 구출합니다.

구출한 인질은 아무도 모르는 안전한 장소로 옮깁니다.

최대식 씨가 인질을 돌봅니다.

최대식 씨 핸드폰은 압수하고 저는 CCTV로 두 사람을 감시합니다.

유산이 준비되면 인질과 일대일 교환합니다.”


박재열은 한문장 한문장 끊어서 말한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최대식 씨가 배신할 위험을 없애기 위해 시노는 안전한 장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대기해야 합니다. 만약, 유산과 인질 일대일 교환이 실패하면, 시노의 위치는 자동으로 집사람에게 알려지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오은명, 이희경, 최대식이 모두 머리를 굴려 박재열의 제안을 곱씹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궁지에 몰린 박재열이 진심으로 자기가 살아남을 궁리를 찾은 것이리라. 모두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엔을 구한 다음에는 제가 인질이 될게요.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시노가 제발 유엔을 구해달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박재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해요. 행여나 병원 간다고 밖에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집사람 눈에 띄기 좋으니까. 그리고, 인질 무게도 좀 다르고. 아무래도 한번 인질이 끝까지 인질 되는 거로 합시다.”


박재열의 대답에 시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강민수라고 저장된 발신자 정보를 모두 보았다.


“모두 동의하시면, 인질 구출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박재열의 질문에 오은명이 고개를 끄덕여 지금까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박재열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강 과장, 그렇지 않아도 전화 기다리고 있었는데.”

[건달 세 명은 여기서 밤새울 생각인가 봅니다. 저 말고 다른 쪽에서 명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강민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 과장이 도와준다면 그게 뭐 어렵겠습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제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사모님이 절 가만두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러면 거기 주소만 알려주고 강 과장은 자리를 피하세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강민수가 불러주는 주소를 수첩에 받아적으며 박재열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사모님 오해받기 전에 저는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데, 명분을 좀 만들어주시겠습니까? 작은 사장님이 급히 부르는 거로 구색을 갖추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똑똑한 친구군. 박재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규태한테 전화할게요. 위험하니까 안전한데 피해 있으라고 하면서, 강 과장에게 전화하라고 일러두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박재열이 전화를 끊자 시노가 서둘러 가방을 열어 묵직한 봉투 몇 개를 테이블에 올렸다. 지금까지 박재열에게 받은 돈 봉투였다.

“유엔 구할 때 혹시 필요하면 요긴하게 쓰시라고.”

시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열이 밥 먹다가 돌 씹은 표정으로 시노를 노려보았다. 이희경마저도 살짝 경멸 섞인 표정으로 시노를 보았다.


최대식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받은 돈이에요. 작전상 거래하는 척 연기했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박 대표님.”

시노가 불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희경 눈치를 봤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더니 박재열이 의외로 시원하게 대답하며 돈 봉투를 챙겼다.

“오케이, 그 사과 받아들일게요. 다음부터는 우리 이러지 맙시다.”

시노는 휴~ 하고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최대식 씨?”

경기도 광명에는 우리 둘만 가겠습니다, 하는 의미로 박재열은 다른 사람에게 앉아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너무 늦은 밤에 작전을 벌이다간 의심받기 쉽다. 서둘러야 한다. 박재열은 마음이 급해졌다. 인질을 손에 넣은 사람이 유리한 게임이다. 이건 제가 남는 장삽니다, 박재열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인질을 구했다는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거래조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열쇠를 가진 지금 인질까지 손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시노 발까지 묶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 박재열은 선심 쓰는 표정으로 한 마디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젊은 사람 구하려고 제가 목숨을 걸었다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박재열이 멀어지자 오은명이 덥썩 시노의 손을 잡았다.

“약속한 대로 안전한 곳에서 너는 좀 쉬도록 해라.”

“유엔 구했다는 소식 듣고 움직이면 안 될까요?”


오은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 움직이는 게 좋겠다. 내가 직접 데려다줄 테니까 안심해.”

차분하지만, 여지를 주지 않는 말투였다.


* * *


강민수가 알려준 문 닫은 공장 앞에서 박재열은 잠시 정차했다.


공장 뒤편 산등성이로 저녁 해가 붉은 꼬리를 남기며 지고 있었다.


흉가 체험으로 쓰일 법한 낡은 공장은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사람이 찾지 않았던 흔적이 보였다. 인도 블록 사이에는 웃자란 잡초들이 삐죽 자라 있었고, 철문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뿌옇게 먼지가 낀 유리창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더했다.


텅 빈 공장 2층에는 생뚱맞게 불이 켜져 있었다.


박재열의 시선은 건물 앞 주차장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로 향했다. 박재열은 잠시 고민하더니 거침없이 차를 몰아 일부러 거칠게 급정거했다. 모래에 자동차 바퀴가 쓸리는 소리가 빈 공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차에서 내린 최대식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주차된 승용차로 다가갔다. 차에는 아무도 없었다.


박재열이 고개를 들어 불 켜진 2층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틈으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건달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박재열은 오른손을 들어 사내에게 인사했다.



잠시 후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건달 둘이 박재열 앞에 멈춰 섰다. 앞서 내려온 키큰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려다 말고 쭈뼛쭈뼛한 몸짓으로 박재열의 눈치를 살폈다.


뒤이어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최대식에게 소주를 얻어먹은 적이 있는 건달이다. 최대식이 가볍게 손을 들어 건달에게 알은척했다. 박재열과 이지영을 따라다니는 건달, 용역 깡패, 경호원, 비서 중 최대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가장 오래 박재열 근처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온 최대식이다.


건달은 최대식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을 너무 빨리 발음해서 아릉함까, 정도로 들리는 인사였다.


최대식이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사모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니까 안가로 옮기라고.”


박재열 가까이에 선 건달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최대식을 쳐다봤다.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방금 말한 거니까.”

박재열이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건달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박재열은 씨익 웃으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 고생 많았다고 집사람이 전해주라고 하더군.”


한 눈에 봐도 묵직한 봉투를 받아들며 건달은 만원권 지폐인지 오만원권 지폐인지 권종을 확인하려는 듯 봉투 안을 흘끔 들여다보았다.


건달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눈이 커지기도 전에 박재열은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식사라도 하세요.”


이지영의 지시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명령은 들었지만, 박재열을 무시하라는 지시는 받은 바가 없다. 게다가 최대식은 같은 식구나 다름없는 사람 아닌가. 사내는 밝은 표정으로 돈 봉투를 받아들며 허리가 접히도록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강민수가 빠진 건달은 오합지졸일 뿐이다. 박재열은 별말씀을, 이라고 말하며 사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시간 없으니까 서두릅시다. 위에 있는 물건 우리 차로 좀 옮겨 주겠어요?”

최대식이 어깨를 건들거리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기다리긴 뭘, 같이 올라가면 되지.”


세 사람이 2층으로 올라간 지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2층에 있던 마지막 건달이 총알같이 내려와 박재열에게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박재열은 헛웃음을 감추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막내 건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빈 공장을 울렸다.


뒤이어 의식 없는 유엔을 부축하며 예의 건달 둘이 내려왔다. 최대식이 차 뒷좌석 문을 열자 유엔은 가로로 눕혀졌다.

“아마 몇 시간 동안 못 깨어날 겁니다.”

유엔을 차에 태운 건달이 손으로 컵 모양을 만들어 뭔가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워낙 거친 여자애라서.”


“오케이. 지금부터는 내가 맡지.”

박재열이 운전석에 올라타자 건달은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젊은 여자 하나 잡으려고 온종일 뛰어다닌 불편한 기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얼마 만에 만져보는 목돈인가. 공장에서 멀어지는 박재열의 차를 바라보며 건달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막내 건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강 과장님께 보고는 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꼭 그래야 하나? 같은 식구 아니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았지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건 선배 건달도 마찬가지였다.

“보고는 우리 형님에게 하는 게 보고지. 강 과장은 그냥 옆집 아저씨야, 아저씨. 오케이?”


박재열의 차는 이미 어둠이 내린 언덕길로 미끄러지듯 내려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모두 각자 손에 쥔 패에 자신이 있었지만, 패밀리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기세등등하던 이지영의 계획에도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나마, 밤잠을 설치며 달달 떨었던 박재열만이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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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2부 5화. 다락방 비밀의 문 19.05.15 54 1 14쪽
102 2부 4화. 새덕 마을의 비밀 19.05.13 55 1 15쪽
101 2부 3화. 푸른 곤룡포 19.05.09 48 1 12쪽
100 2부 2화. 광산의 실 소유주 19.05.08 52 0 15쪽
99 2부 1화. 사고로 위장한 살인 19.05.07 58 0 13쪽
98 단편 외전-4. 유엔의 각성 19.05.02 61 1 13쪽
97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하) ※공포 주의※ 19.04.30 52 1 13쪽
96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상) ※공포 주의※ 19.04.29 62 1 13쪽
95 외전-2. 크고 예쁜 도토리 19.04.28 56 1 13쪽
94 외전-1. 죽은 자의 혼령 19.04.26 66 1 12쪽
93 32장 마지막 질문 (1부 최종화) 19.04.25 72 2 16쪽
92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2) 19.04.24 72 2 14쪽
91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1) 19.04.23 70 2 15쪽
90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2) 19.04.21 72 2 15쪽
89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1) 19.04.20 70 1 14쪽
88 29장 사건의 전말 (3) 19.04.19 84 1 12쪽
87 29장 사건의 전말 (2) 19.04.17 68 0 11쪽
86 29장 사건의 전말 (1) 19.04.15 73 1 12쪽
85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9) 19.04.12 77 0 13쪽
84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8) 19.04.10 64 0 13쪽
83 27장 박쥐 사냥 (3) 19.04.08 73 1 13쪽
82 27장 박쥐 사냥 (2) 19.04.05 83 0 12쪽
» 27장 박쥐 사냥 (1) 19.04.03 78 0 11쪽
80 26장 위험한 갈림길 (2) 19.04.01 74 0 13쪽
79 26장 위험한 갈림길 (1) 19.03.29 80 1 13쪽
78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19.03.27 74 0 11쪽
77 25장 볼모가 된 세자 (2) 19.03.25 79 1 13쪽
76 25장 볼모가 된 세자 (1) 19.03.23 87 0 12쪽
75 24장 가짜 열쇠 (3) 19.03.20 8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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