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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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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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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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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82. 미연이의 남자 1

DUMMY

1.


경부고속도로.


한 피디는 운전대를 잡은 채 연신 통화 중이다.


“브라이언하고 제이디는 어디 갔어?”


표정이 그리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피디가 없는 동안 기존에 진행하던 작업을 계속 보고해 달라고 전하려던 거였는데,


“뭐라고? 게네들까지 전부 데려갔다고?”


아무래도 노망이 난 게 분명한 한 회장이 한 피디가 아끼는 두 작곡가까지 신규사업에 강제로 투입한 모양이었다.


“아니, 힙합하고 시티팝하는 애들 불러다가 무슨 트로트를 시킨다고 난리야? 미치겠네, 진짜···.”


버럭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보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든다.


아직 해소되지 못한 그의 화는 결국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고 만다.


띠링-!


마침 도착한 카톡을 확인한 한 피디는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었다.


발신자는 아내 미연···.


언제부터인지 그녀와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게 불편한 한 피디다.


아니···.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신인 여배우 유선영과의 은밀한 만남을 들킨 뒤부터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달이 한 피디 때문인 게 맞긴 하지만.


부부 사이가 틀어지게 된 데에는 아내 미연이 원인 제공한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한 피디는 생각한다.


결혼 전에는 몰랐는데, 아무리 봐도 아내는 다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사는 사람 같았다.


가끔가다 흐려지는 멍한 눈.


대화 중에도 맥락 없이 엉뚱한 얘기로 새버리고.


음식을 하다가도 황당한 실수를 반복하고.


TV를 보다가도 갑자기 이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까지.


신혼 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생기는 스트레스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던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아내를 보고는 한 피디는 깜짝 놀라고 만다.


술이야 마실 수 있는 거지만, 문제는 취중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는 거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이 김씨였던 것 같다.


그게 남자임을 직감하고 누구냐고 물어봤을 때 당황하며 떨리던 아내의 눈동자!


지금도 한 피디의 눈에 선하다.


풋풋하던 결혼생활이 한순간에 어색함으로 바뀌고, 어색함은 다시 거리감으로 굳어졌다.


서로 거리를 두고 사는 부부는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한 피디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항상 생각했다.


언젠가 아내가 한 피디의 문제를 지적하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한 피디는 미연이 보낸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우리 이런 식이면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


한 피디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전방에 보이는 차는 하나도 없었지만, 갑자기 경적을 빼액, 하고 울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갑자기 순간 가속까지 한다.


속력이 100에서 금세 120··· 130··· 140을 넘더니.


급기야는 200까지 올라갔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차가 놀랐는지 경적을 한번 울리고 지나쳤다.


운전대를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은 한 피디는 멀리서 다가오는 휴게소 표지판을 보고는 다시 속력을 줄였다.


휴게소 진입로에 들어선 후 분식코너가 바로 보이는 자리에 차를 주차했다.


한 피디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카톡에 답장부터 날렸다.


[원하는 대로 해줄게. 변호사 선임하고 다시 연락해]


차 문을 열고 나온 한 피디는 차 앞바퀴를 한번 거세게 걷어찬 후 어묵 판매대 앞으로 갔다.


술이라도 한잔 들이켰으면 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술을 팔 리가 없다.


대신 어묵 국물을 마시면서 포장마차에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하··· 그래···. 애도 없겠다. 그냥 깨끗하게 갈라서자고!”


마음이 정리된 듯 말을 뱉고 나니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어묵꼬치를 하나 집어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데 옆 가판대에서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왔다.


“휴우··· 그나저나 이게 뭔 짓이냐. 하다 하다 이젠 트로트 신동으로까지 아이돌을 기획 하다니.”



2.


지리산, 유정의 아지트 주변 길.


유정은 마음이 다급했다.


청운당에서 나온 지 시간이 꽤 흘렸다.


일성이 슬슬 의심하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었다.


몸에 쑥을 발라두어 당장 의심받지는 않겠지만, 언제까지 그런다는 보장은 없다.


유정은 빨리 돈을 찾아서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유년 시절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서울.


구불구불 산길이 아닌 반듯한 도로.


초가가 아닌 번듯한 빌딩.


후줄근한 법사들이 아닌 말끔한 정장 차림의 도시 남녀들.


그런 환경 속에서 잃어버린 세월을 다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러면···.


어서 빨리 돈을 수중에 넣어야 한다.


유정은 앞서 길을 걷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저놈!


자꾸 뺀질대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길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누가 모를 줄 알고.


유정은 남자가 내딛는 발을 바라보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래!


절벽에 매달아 놓고 돈이 있는 곳을 불라고 하는 거다.


헛소리를 하면 그땐···.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리는 거고.


굳이 도술을 쓸 필요도 없다.


“세세세세상 사람~

모든 이가 대박이야~

형님도 대박 언니도 대박~

너도나도 우리 모두 대박이야~”


노래를 흥얼대며 걷던 남자는 이제는 어깨춤까지 덩실대고 있었다.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보는 게 자신을 놀리는 것 같자, 유정은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남자가 슬쩍 발을 한번 잘 못 디디자 바닥이 허물어지면서 토사가 길옆으로 흘렀다.


용케 중심을 잘 잡은 남자는 멋쩍게 웃으면서 방향을 틀었다.


유정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 길로 가면 벼랑이 나온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걷던 유정이 남자의 등 뒤로 바짝 다가갔다.


“몸도 아직 성치 않은데 제법 산을 잘 타시오.”


마음에도 없는 말까지 더하니 남자는 신이 난 듯 더 경쾌하게 걸었다.


“생각보다 길이 험하지 않은 것 같네요.”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데 미끄럽지 않으시오?”

“뭐, 그럭저럭요. 근데··· 저보다는 그쪽이···.”


남자는 또 힐끔 고개를 돌려 유정의 발을 보았다.


고무신 같은, 부실해 보이는 유정의 신발을 비꼬는 것이었다.


유정은 속으로 웃으며 남자가 걷는 길을 계속 주시했다.


드디어 벼랑과 붙은 오솔길이 드러났을 때였다.


갑자기 유정이 남자를 불러 세웠다.


“꽤 걸은 것 같은데 아직 멀었소?”


남자는 이마에 땀을 훔치며 씨익 웃었다.


“거의 다 왔어요.”


아까부터 계속 같은 소리의 반복이다.


유정은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도 그쳤는데, 우리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저기 저 바위에 잠시 앉아서 경치나 좀 구경하면서 숨 좀 돌리지요.”


유정이 가리키는 바위는 벼랑 끝에 붙어있는 바위였다.


남자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오! 저런 절경이 있었네요. 그러자고요.”


남자는 별다른 저항 없이 유정의 말을 따랐다.


어느새 유정이 앞서더니 벼랑 끝 바위로 향하고 있었다.


유정의 발 옆으로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다.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정이 막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에이익···!”


그림자는 갑자기 유정의 옆구리에 걸려있던 가방을 낚아채면서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대로 공중에 붕 떠오른 유정의 몸은 순식간에 벼랑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우헤헤헤헤헷.”


남자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벼랑 끝 습한 공기 중으로 퍼졌다.


분명 사람을 죽이고 웃는 웃음인데 이상하게도 세상을 다 얻은 자의 웃음처럼 보여서 더 소름이 돋았다.


그는 웃음이 다 그치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3.


김 지배인은 벼랑 밑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산속에 숨어 사는 놈이면 조용히 살다가 때 되면 뒈질 일이지··· 어디서 욕심을 드러내고 지랄이야?”


자신이 밀어버린 그 이상한 놈은 머리가 박살이 나서 계곡 바위틈 어딘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것이다.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면 마음이 어지러울 법도 한데, 김 지배인은 끄떡도 없는 듯했다.


돈을 지켰는데 사람 하나쯤 죽은 게 뭐 대수인가.


그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 지배인은 유정에게서 다시 빼앗은 삼억이든 가방을 야무지게 둘러맸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잠금화면 해제패턴을 풀었다.


갤러리 폴더에서 돈을 숨기고 찍은 사진을 찾아 열자 미소가 다시 살아났다.


“나머지 돈은 여기에 있다고! 이 병신 새끼야···.”


검지와 중지로 사진을 확대하며 돈이 묻힌 자리를 뚫어지게 보자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그래··· 여기였지!”


심장이 콩닥거렸다.


“아이씨··· 이상한 새끼를 만나서 어렵게 얻은 돈 다 날릴 뻔했네.”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의 김 지배인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뿌연 수증기가 흐물흐물 일렁이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려 절벽을 떠나려던 김 지배인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휙 하는 바람까지 일었고,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 지배인의 눈앞에 방금 떨어져 죽었던 그 이상한 남자, 유정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김 지배인의 입은 떡하니 벌어졌다.


다시 살아난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그는 땅에 발도 딛지 않는 채로 공중에 붕 떠서 김 지배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 뭐··· 뭐야?”


김 지배인은 잘못 본 건 아닌지 놀라 자꾸만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결코 꿈이거나 환영이 아니었다.


“너··· 어떻게···? 죽었잖아?”


당연했다.


이 정도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졌으면 뼈도 못 추리고 박살이 나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찌 저리 멀쩡한 몰골이란 말인가?


유정은 놀라는 김 지배인의 모습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은 마치, 소설 속의 도인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김 지배인은 얼마 전까지 버려진 산장에서 저 남자와 함께 있던 때를 생각했다.


거기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뭔가 이상한 힘에 제압당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었다.


그때는 그저 꿈결이거나, 유치한 마술 같은 트릭에 속은 거라 생각했었는데.


“뭐야···? 그럼 이 모든 게··· 다 현실이었단 말인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김 지배인은 자꾸만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다가와 다시 절벽의 끝에 발을 디딘 유정이 얼굴을 김 지배인의 코끝 가까이 들이댔다.


“죽여줄까? 살려줄까?”


나긋한 음성이었지만, 김 지배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유정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김 지배인은 벌써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 일부러 이 주위를 빙빙 돌면서 날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지?”


김 지배인의 볼살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유정은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불쑥 들어 올렸다.


“어··· 어··· 어!”


김 지배인의 몸이 붕 떠올랐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


김 지배인은 비명과 함께 허공에서 허우적대다가 핸드폰과 가방을 놓쳤고, 유정은 그걸 잽싸게 낚아챈다.


벼랑 끝 튀어나온 돌을 겨우 붙들어 추락을 모면한 김 지배인이 십 년 감수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그 바로 앞에는 유정의 발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정은 김 지배인의 손가락을 눌러 밟으면서 외쳤다.


“이젠 네가 떨어질 차례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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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NEW 18시간 전 1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6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5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8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1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8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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