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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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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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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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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91. 나무아미타불 3

DUMMY

7.


분명 짐승이 다가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여우.

승냥이.

고라니.

멧돼지.

어쩌면··· 들개?


하지만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생각은 점점 바뀌어갔다.


“설마··· 사, 사람인가?”


지팡이를 움켜쥔 스나이퍼 박의 손이 떨렸다.


만약, 사람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기도 전이었다.


오솔길 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흠칫 놀란 스나이퍼 박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른 삿갓을 눌러썼다.


삿갓의 성긴 틈새로 모습이 보였다.


사람···!


사람이었다.


그런데 차림새가 좀 괴이했다.


자신처럼 승복 비슷한 걸 입고 있긴 한데 머리는 장발이었다.


스나이퍼 박의 눈이 살짝 찌그러진다.


뭐 하는 놈이지?


이런 곳에서 만날만한 사람이라면, 길을 잘못 든 등산객이거나.


어쩌면 산에 사는 마을주민일 테다.


아니 그런데, 요즘에 누가 저런 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닐까?


상대도 스나이퍼 박의 모습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발걸음이 느려졌고, 고개가 바로 섰다.


스나이퍼 박의 등줄기를 타고 굵은 땀이 흘렀다.


“나··· 나··· 나무··· 나무아미타부우울~ 관세음~보사아아알~”


순간 자신이 스님임을 자각하며 뱉은 염불이었는데, 어색하기만 했다.


목소리의 톤도 그렇거니와.


온화한 낯을 드러낸 채로 합장을 하든가 목탁이라도 쳤어야 했는데.


그저 삿갓에 얼굴을 감춘 채 무미건조하게 웅얼대니, 수상한 게 당연했다.


가짜 티를 내려고 작정한 것처럼 말이다.


상대는 스나이퍼 박의 옆을 지나치다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걸었다.


다행인지 딱히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발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히유유우우우···.”


삿갓 틈새로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 스나이퍼 박은 겨우 안도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의문이 여전했다.


“약초꾼인가?”


산에서 약초 캐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간혹 언급되던 사람들.


하지만 차림새는 분명 저렇지는 않았다.


“간첩?”


얼핏 보였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의 남자.


께름칙함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 채로 막 발걸음을 내디디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집중호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강상태였던 장맛비가 다시 활성화된 것이었다.


“이런 젠장···.”


삿갓을 고쳐 쓴 스나이퍼 박.


순식간에 진창으로 변해버린 오솔길을 더듬어 길을 헤쳐 나갔다.


발이 푹푹 빠질 때마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토사가 허물어져 쏟아질 때는 굵은 나무 위로 잠시 피해 있기도 했다.


군대에서 산악행군을 할 때는 그저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앞에 닥친 이 난관과 시련은 군 시절이 겨우 보이스카우트 캠핑쯤으로나 여겨질 만큼 살벌했다.



“사람 살려!”


어둡고 눅눅한 숲은 수렁처럼 스나이퍼 박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래도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사력을 다해 길을 헤쳐 나간다.


마침내 그는 오솔길의 막다른 지점에 다다라서 멈춰 섰다.


“뭐야? 길이 끝난 건가?”


빽빽한 나무 때문에 앞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그사이 길이 다 허물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감함에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등산화 안으로 이미 물이 흠뻑 들어와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이대로 더 지체하면 정말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염불이 튀어나오려던 때였다.


갑자기 조밀하던 나무숲 한쪽 구석이 허물어지면서 스나이퍼 박의 몸이 그리로 쏠렸다.


“흐아아아아앜···.”



8.


일성은 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아까 지나쳤던 삿갓 쓴 중!


아무래도 수상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일성은 상대의 차림새와 반응에서 어색함을 감지했었다.


비와 땀에 젖어있었으나, 삿갓이며 승복은 새것이었다.


들고 있는 지팡이도 보통 중들이 쓰는 게 아니라 기념품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게다가 염불은 또 왜 그리 어설플까.


아무리 의외의 장소에서 낯선 이와 마주쳤기로서니 그리 더듬다니.


제대로 교육받지 않았거나 수련이 한참 부족한 보살들도 그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성의 눈을 찌푸리게 했던 건,


“그래, 등산화!”


시선을 확 잡아끄는 등산화였다.


험한 산을 타는 중들이 등산화 좀 신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 마는.


지나치게 비싼 걸 자제하는 불가의 수칙에 그런 고급스러운 브랜드는 확실히 어울리지 않았다.


“MㆍOㆍNㆍCㆍLㆍEㆍR···!”


일성은 등산화 옆 등에 새겨진 알파벳을 기억해 내며 한자씩 읊어보았다.


딱 봐도 수입 고가품임을 직감한 일성은 입술이 비틀렸다.


속세에선 그런 신발 한 켤레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던데.


비싼 금액과 삿갓 쓴 중의 이미지를 매칭시키자 수상한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그놈 혹시··· 유정과 함께하는 놈인가?”


움직이는 방향이 그 비밀 장소 쪽으로 보였다.


뭔가를 가지러 다시 나타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흔적을 지우거나, 염탐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맞다면, 그냥 두면 안 되지!”


일성은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나올 때보다 더 빨랐다.


그때였다.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잦아들었던 장맛비가 다시 살아나는 거였다.


순식간에 한증막에 갇힌 것처럼 뿌예진 주변은 제대로 걷는 게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일성은 두 손을 눈썹 앞에 붙이고는 얼른 큰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오솔길은 금세 진창에 잠겨버렸고, 여기저기 지반이 허물어지는 게 보였다.


괜히 걷는 걸 고집하다 뭔 일이라도 날까 봐 조심스러워졌다.


“어쩔 수 없다.”


결국 일성은 경공을 쓴다.


서 있던 자리에 토사가 밀려드는 순간, 일성의 몸이 하늘로 솟았다.


순식간에 구름 위까지 올라간 일성의 몸이 한동안 부르르 떨었다.


흠뻑 젖어있던 몸을 말리는 것이었다.


습하고 눅눅한 공간에서 해방되어 몸은 금세 쾌적해졌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건 바로 유정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기가 발하는 걸 어디선가 감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유정.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은 다시 다급해졌다.


“일단 그놈을 잡아 족쳐보자!”


뜨끈한 햇볕에 얼추 몸을 다 말린 일성은 더운 바람을 탔다.


마침 바람이 흐르는 방향이 비밀스러운 구축물이 있는 쪽이었다.


영기를 감춰야 했기에 구름 속을 들락날락하는 수고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구름이 성긴 틈으로 지상이 보였다.


폭우 속에서 그 유정의 구축물은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입로 초입 부근에 놈이 보였다.


삿갓을 쓴 정체불명의 중!


“저기 있구나!”


일성은 빙글빙글 선회하면서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9.


진창에 얼굴을 처박았던 스나이퍼 박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퉤··· 퉤···.”


몇 번을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졌는지 모른다.


분명 막다른 오솔길 끝에 빽빽한 수목 앞이었던 것 같은데.


짧은 시간 동안 퍼붓는 빗줄기는 모든 지형을 다 비틀어놓았다.


아마도 그틈에, 나무 사이로 미끄러졌던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보이긴 해도 제법 평평한 공간.


그나마 평지여서 다행이긴 한데, 어둑하고 스산한 게 분위기는 기분 나빴다.


스나이퍼 박은 저만치에 떨어져 있던 삿갓을 주우면서 흙탕물에 엉망이 된 승복을 털었다.



그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굵은 빗줄기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가는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갇혔다는 생각에 또 낭패감이 밀려들 때였다.


그의 시야 끝에 낯선 무언가가 걸렸다.


“뭐야 저거···?”


눈을 찡그리자 수증기에 흐릿하게 가려있던 피사체가 조금은 선명해졌다.



산장···?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그런 건가?”


한 지상파 방송에 등장했던, 그런 산속 산장의 모습을 한 작은 목조건물이었다.


버려진 지 오래되어서 낡은 티는 많이 났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도 꿋꿋이 서 있는 걸 보면 당장에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스나이퍼 박의 얼굴이 순간 밝아진다.


“빙고! 찾았다 절···!”


얼추 보니 저 정도면 한두 명 정도 기거할 만해 보였다.


‘卍’ 표시는 생략하고 문 앞에다가 대충 사찰 이름만 지어서 붙이는 거다.


그러면 하안거나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의 수행 장소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 생각이 만족스러운지 스나이퍼 박은 입가가 물결 모양이 되었다.


산장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삐거덕!


거칠게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 핸드폰 대기화면 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제법 아늑한 공간이 만족스러웠다.


“흐음··· 이 정도면 됐어!”


한 달을 봤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일 년도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후훗! 얼른 신 기자한테 알려줘야지.”


전화 앱을 실행시켜 최근 통화 목록을 펼치던 순간이었다.


끼이익!


갑자기 뒤에서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털이 쭈뼛 선 스나이퍼 박이 몸을 돌리다가 그만 핸드폰을 떨구고 만다.


“누··· 누구야?”


문 앞에 서 있는 건 사람의 그림자였다.


대답도 움직임도 없는 그림자!


스나이퍼 박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두려움에 주춤주춤 물러서던 스나이퍼 박은 나무 침상에 걸려 그 위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마침내 그림자가 다가왔다.


오래된 나무 바닥 위를 걷는데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유령이 다가오는 것처럼.


핸드폰을 떨군 지점 부근까지 다다르자 그림자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스나이퍼 박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오솔길에서 마주쳤던 사람!


그 이상한 차림의 남자인 걸 확인하자 입에선 또 부지불식간에 염불이 터져 나왔다.


“나··· 나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 살···.”


본인도 당황했는지 얼른 입을 틀어막는 스나이퍼 박!


남자는 비릿하게 웃더니 얼굴을 앞으로 쭉 들이민다.


“나무아미타불 좋아하네!”


음산하고 빈정대는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린 스나이퍼 박은 아무 말도 못 한다.


“너··· 스님 아니지?”


평생 품고 지내던 은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스나이퍼 박의 심장이 콩닥댔다.


“대가리만 빡빡 밀면 다 스님이더냐?”


상대는 스나이퍼 박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거 다 가게에서 산 거 아니냐?”


스나이퍼 박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행하는 불자에게··· 너무 무례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사람보다는 악령에 더 가까웠다.


스나이퍼 박은 몸이 서늘해졌다.


남자의 허리가 바로 세워졌고, 얼굴이 다시 다가왔다.


“똑바로 말하면 죽이지는 않겠다. 너··· 유정과 함께 있는 놈이지?”


목숨을 협박하는 말에 이은 낯선 이름.


스나이퍼 박은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렇게 멍한 채로 보고만 있는데, 다시 질문이 이어진다.


“청운당에서 도망쳐 나와 속세에서 크게 한몫 잡자고 꼬드겼느냐? 그렇게 얘기하니까 유정이 넘어가더냐?”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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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 황금빈대 퇴치작전 2 NEW 9시간 전 1 0 11쪽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2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10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1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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