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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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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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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DUMMY

1.


서울 외곽 상공.


타는 듯한 통증을 참으면서 날던 일성이 잠시 속력을 줄였다.


날개를 활짝 펴고 상처부위를 살펴 보았다.


왼쪽 날개 중간부위.


깃털은 거의 다 사라지고 살가죽은 화상으로 짓물러있었다.


“끄응-!”


구름 속에 숨어 회복술을 쓰려 하니 영기가 부족해 어려울 것 같았다.


영기는 빌딩 옥상에서 뭔가에 충돌했을 때 순식간에 일어난 불길에 쓸려 절반 정도가 깎였고.


또 이렇게 무리해서 달아나다 보니 거기서 또 절반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어떨 수가 없군···.”


일성은 일단 하강하여 변신술을 푼 후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계속 무리해서 움직이다가는 남은 영기마저 순식간에 바닥나 버릴 게 뻔했다.


영기가 거덜 나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고, 몸은 공중에서 즉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일성은 그런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위례신도시 상공을 지날 때였다.


힘겹게 퍼덕이던 날개 밑으로 내려 앉을 만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꽤 넓어 보이는 골프장이었다.


폐업한 건지 이용객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을 지나는 차량도 많지 않았다.


일성은 아픈 날개를 조심스레 움츠리며 하강을 시작했다.


착지할 때 충격이 있을 것 같아서 푹신한 잔디 위에 내려앉으려 했는데, 길을 잘못 든 취객으로 보이는 자가 어슬렁 다가왔다.


일성은 얼른 방향을 틀어 클럽하우스 위로 떨어진다.


턱-!

데구르르-.


성치 않은 몸이었기에 중심을 못 잡아서 여러 번 굴러야 했다.


펑-!


“끄응···.”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 일성은 왼쪽 옆구리를 움켜쥐고서 무릎을 꿇었다.


가만히 손을 떼보니 불에 타 너덜너덜해진 도포 안으로 화상 상처가 드러났다.


“흐으으으음···.”


생각보다 심하게 짓무른 걸 보니 심란해졌다.


이 상태로 영기가 어느 정도 차오를 때까지 고통을 견디면서 버텨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시간이었다.


회복하는 동안 법사들이 천라지망으로 위치를 추적해서 들이닥친다면···.


나찰까지 소멸하여 이젠 혼자서 법사들과 맞서야 한다.


그리고 옥상에서 본 그 아이!


그 아이는 분명 건우였다.


아니, 그 아이가 왜 거기서 나찰을 붙들고 있던 걸까?


설마 자신을 잡으러 온 법사들과 손을 잡고 이젠 나에게 맞서는 건가?


“···흐으으··· 안 돼···!”


일성은 생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젓는다.





클럽하우스 옥상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일성.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어지자 천천히 일어섰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극단적인 시도를 결심한다.


“후우··· 달리 방도가 없구나!”


잔디밭에 힘겹게 뛰어내린 그는 어두운 바닥을 더듬어 골프장 한가운데까지 가서 앉았다.


도포 자락 안으로 손을 넣어 청운당에서 가져온 부적을 몇 장 꺼냈다.


경면주사 대신 닭피로 쓴 부적!


마침 드러난 흐린 달빛에 들어보니 피는 다 말라붙어 검게 변해있었지만,


“흐으으음···.”


냄새는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일성은 닭의 목에 식칼을 대던 그때의 감각이 살아나는지 손가락이 꿈틀댔다.


쥐고 있던 부적을 입가에 바짝 붙이고서 가만히 바람을 불었다.


“후우우···.”


그러자 그 진한 피의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후우우···.”


클럽하우스 위에서 잠깐이나마 채웠던 영기는 바람을 부는 데 모두 다 소진되고 있었다.


“후우우···.”


일성의 진지한 얼굴에서 조금씩 땀이 났다.


긴장한 입술 끝도 파르르 떨렸다.


“후우우···.”


그렇게 일성의 입김이 섞인 부적의 피냄새가 골프장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을 때였다.


컴컴하던 사방에서 푸르스름한 불빛들이 불쑥 드러났다.


불빛들은 천천히 일성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2.


“그르르···.”


부적의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야생짐승들이 혀를 내뺀 채 가랑댔다.


일성은 들고 있던 부적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짐승들은 갈증에 시달리다 샘을 찾은 것처럼 얼굴을 부적에 얼른 갖다 댔다.


그때였다.


일성의 손이 짐승들의 목덜미를 하나씩 낚아채며 비틀었다.


고라니.

살쾡이.

너구리.

청솔모.

구렁이.


“캐갱··· 켁··· 크억··· 크르르르···.”


목이 돌아간 짐승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괴성이 밤하늘을 울렸다.


일성은 그 발광과 발악을 손끝으로 느끼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 호흡은 청운당에서 법사들이 도가수련을 하던 때의 바로 그 호흡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들이마시는 것이, 그때는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었다면, 지금은 짐승의 난잡한 잡기들이다.


하지만 일성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서 빨리 영기를 취해 몸을 회복하지 않으면 법사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


맑은 영기이건, 난잡한 잡기이건, 지금은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흐으읍··· 후우우우···!”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기운이 다시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일성은 다 풀어져서 휘청대던 다리에 다시 힘이 돌아오자 벌떡 일어선다.


죽은 청솔모와 너구리를 내던지고, 이번에는 고라니와 구렁이를 움켜쥐었다.


역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발악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일성은 짐승들의 눈이 뒤집히는 걸 보면서 기운을 느꼈다.


어느새 단전이 더워지고 있었다.


쭉쭉 빨아들이는 짐승들의 잡기는 일성의 핏속을 타고 돌면서 소모된 에너지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일성이 다시 살쾡이의 몸체를 쥘 때였다.


왼쪽 어깨에 짓 문 상처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통증도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후후후후···.”


몸체에서 진액이 다 빠진 짐승들이 한쪽에 종잇장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일성은 그것들은 툭 밀치더니 발 뒷꿈치로 바닥을 힘껏 찼다.


몸이 순간 붕 떠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상쾌한 경공!


몸이 완전히 회복한 걸 느낀 일성이 다시 클럽하우스 위로 날아갔다.


건물 옥상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서 하늘을 보았다.


말간 달이 구름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달이었다.


청운당에 있을 때는 수련 중 힘들 때마다 달을 보곤 했었는데···.


문득 일성은 청운당에서 수련할 때 자주 듣던 운천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항상 맑은 기운과 가까이 해야 한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운을 들일 때 절대로 사기(邪氣)를 들이면 안 된다. 들일 때는 충만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게 언젠가는 너희를 괴물로 만들 것이다···.”


일성은 웃음이 나오려는지 입이 벌어졌다.


가볍게 시작된 웃음은 점점 거세졌고, 어느새 어깨까지 들썩였다.


“흐하하하··· 웃기고 있군! 영기든 사기든··· 그 구분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단전 가까이에서 모았던 두 손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손바닥 사이에서 화염이 뭉치고 있었다.


일성은 달을 향해 두 손을 쭉 내밀면서 눈을 부릅떴다.


손바닥에서 돌던 화염이 순간 소방호스 물줄기처럼 강하고 길게 뻗어나갔다.


파바바바밧!


“무슨 기운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운을 가지고 뭘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아··· 전보다 힘이 더 넘치는구나! 아주 좋아!”


일성은 새로 채워진 기운에 만족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폴짝, 다시 그린 위로 뛰어내린 그의 춤이 점점 격해져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짐승의 기운을 채운 남자가, 흐린 달빛을 조명 삼아 추는 괴이한 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사악한 기운이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3.


서울 톨게이트 부근.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드문드문 지나던 차량은 날이 밝아지자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야산 근처 바위에서 길수와 철민을 찾아낸 일성은 얼굴이 구겨진다.


한 놈은 타서 재가 되어 버리고, 다른 놈은 눈알이 상해 앞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놈들에게 당했나보구나!”


바위 주변을 훑어 본 일성은 전정술에 화공까지 수차례 훑고 지나간 흔적을 확인한다.


깨진 바위, 꺾인 나무, 불길에 그은 흔적들···.


전정술에 튄 바위 파편에 맞아 죽은 야생 토끼도 한 마리 보였다.


운천의 솜씨였다.


일성 자신이 모기로 변해 서울 안으로 향하던 중 지나쳤던 흰머리 독수리가 생각났다.


낯선 곳에서 의식주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해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찰과 일성 자신의 끊임없는 괴롭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일성은 하늘 위에 아직 남아있는 정철의 방어진을 보며 생각했다.


운천은 여전히 강하다.


내가 너무 상대를 얕잡아 봤어.


일성은 죽은 야생 토끼의 눈을 빼내서 길수의 상한 눈과 바꿔주었다.


다시 앞을 보기 시작한 길수가 방향을 잡더니 걷기 시작한다.


“잠깐!”


일성은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철민의 엽총을 주워 주자 그는 양손에 엽총을 든 자세로 잠시 포즈를 취했다.


“쌍엽총이 근사하구나!”


일성은 길수가 다시 움직이는 걸 본 후 바위에서 내려갔다.


멀리 서울의 아파트 라인이 보였다.


“휘이이이···.”


휘파람을 불자 전에 사역해 뒀던 박쥐가 다가왔다.


“넌 내가 갔던 그 건물에 잠입해라!”


명령을 들은 박쥐는 순식간에 하늘로 솟더니 멀어졌다.


일성은 나찰까지 소멸한 마당에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판단한다.


“그래, 직접 맞서는 건 당분간 자제하자!”


그는 식신으로 세를 불려 간접공격을 극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공격!”


눈을 지그시 감은 그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품에서 꺼낸 부적 하나를 손바닥 사이에 끼우고 비벼대기 시작했다.


사브작.

사브작.

사브작.


피부와 종이의 마찰음이 가볍게 이어지다가, 순간 부적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일성은 부적의 미세한 파편을 지나가던 흰개미 위에 뿌렸다.


그리고 갓 태어난 채 버려진 들쥐 위에도···.


또 죽은 지렁이에 붙어있던 빈대 위에도···.


부적의 기운을 받은 흰개미는 몸이 부풀었고, 들쥐는 금세 성체로 자라났다.


빈대는 영롱한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일성은 그들을 보고 명령을 내린다.


“가라! 일성을 제거해라! 그의 무리를 제거해라! 모조리···.”


사사삭.

사사삭.

사사삭.

사사사삭.


명령을 받은 흰개미, 들쥐, 빈대가 움직였다.


앞장서서 가는 그들의 뒤로 각각의 종족들이 따라붙었다.


흰개미 떼의 긴 행렬.


새까만 들쥐 떼의 움직임.


황금빛 빈대 떼의 진격.


일성은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찬란한 빛을 받으며 전진하는 식신의 무리가 근사해 보였다.


남은 부적 가루를 나무에 붙어있던 귀뚜라미에 뿌렸다.


귀뚜라미 역시 자기 종족을 끌어모으더니 바로 앞서간 무리를 따랐다.


끼르르~

끼르르~

끼르르~


소리가 요란했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일성은 땅을 박차더니 하늘로 떠올랐다.


단숨에 구름 위까지 솟아오른 그는 몸을 숨긴 채 식신들의 이동행렬을 감상했다.


법사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식신 떼의 공격을 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일성의 얼굴에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빈대에 피를 빨려 기운이 쇠하는 운천.


들쥐에 물어뜯기는 정철.


흰개미가 갉아먹은 건물이 무너져 그 밑에 깔리는 철산.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모습들까지.


일성은 구름에 등을 대고 누운 채 큰 소리로 웃어댔다.


“우하하하하하!”


태양은 점점 뜨겁게 대기를 데우고 있었다.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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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 한강 대첩 2 24.06.04 3 0 12쪽
133 133. 한강 대첩 1 24.06.03 3 0 12쪽
132 132. 괴수를 막아라 3 24.06.01 3 0 11쪽
131 131. 괴수를 막아라 2 24.05.31 4 0 12쪽
130 130. 괴수를 막아라 1 24.05.30 6 0 12쪽
129 129. 운천의 최후 2 24.05.29 4 0 12쪽
128 128. 운천의 최후 1 24.05.28 3 0 12쪽
127 127. 국가비상사태 4 24.05.27 4 0 12쪽
126 126. 국가비상사태 3 24.05.26 6 0 12쪽
125 125. 국가비상사태 2 24.05.25 4 0 12쪽
124 124. 국가비상사태 1 24.05.24 7 0 11쪽
123 123. 쫓기는 일성 3 24.05.23 4 0 11쪽
122 122. 쫓기는 일성 2 24.05.22 4 0 11쪽
121 121. 쫓기는 일성 1 24.05.21 3 0 11쪽
120 120. 독 안에 든 쥐 3 24.05.20 3 0 11쪽
119 119. 독 안에 든 쥐 2 24.05.19 6 0 12쪽
118 118. 독 안에 든 쥐 1 24.05.18 5 0 11쪽
117 117. 철산이 쓰러지다 2 24.05.17 5 0 11쪽
116 116. 철산이 쓰러지다 1 24.05.16 4 0 11쪽
115 115. 황금빈대 퇴치작전 3 24.05.15 3 0 11쪽
114 114. 황금빈대 퇴치작전 2 24.05.14 5 0 11쪽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6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5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4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4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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