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3 21:10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2,880
추천수 :
58
글자수 :
583,575

작성
24.04.19 21:10
조회
11
추천
0
글자
11쪽

089. 나무아미타불 1

DUMMY

1.


엎친 데 덮친 격이라!


“아이씨··· 어떡하죠?”


팔달구청을 지나서 인계동 근처에 다다랐을 때 K3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마침내 스나이퍼 박의 입이 떨어졌다.


“일단 지리산에 돌아가자!”


당연했다.


국장이 내일 들이닥친다는데 이 상태로 사라지다니···.


그럴 수는 없다.


지금이야 배불뚝이에 대머리, 한물간 뒷방 늙은이라지만, 그도 한때 날리는 기자였다.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신 기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


젊었을 때의 기자 촉이 살아날지 모른다.


그럼 온 동네, 온 세상을 다 들쑤시고 다니면서 신 기자의 흔적을 이 잡듯이 훑어댈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건, 브라자가 터진 곳이건, 불알이 튕기는 곳이건···.


그는 신 기자를 찾아낼 것이다.


경찰은 기자를 못 찾을지 몰라도 기자는 기자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설령 지금 당장 떠난다고 해도···.


이 시간에 떠나는 배도 없을뿐더러 가지고 있는 현금도 처리해야 한다.


이십억이나 되는 저 원화 말이다.


비트코인이야 핸드폰만 들고 가면 되지만, 현금은 얘기가 다르다.


은행에 넣을 수 없으니 어디 묻어두든가, 누구한테 맡겨야 한다.


묻으면 어디에 묻고 맡기면 누구한테 맡긴단 말인가?


티 안 나게 깨끗하게 묻고 티 안 내고 깔끔하게 맡길 수 있을까?


글쎄···.


계획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용히 눌러앉으려면 티 안 나게 나라를 떠야 한다.


그러려면, 제대로 준비할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이삼일···.


그래, 최소 이틀이다!


스나이퍼 박에게 이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차가 방향을 틀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려는 것 같았다.


“저기··· 우리요···.”


신 기자의 말을 못 들은 건지 그가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한숨을 연거푸 내쉬는 게 답답해 보였다.


한숨에 섞여나온 흐릿한 입김이 습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횡단보도 앞 신호에 걸려 차가 서자 그가 운전대에 잠시 이마를 댔다.


이때다 싶어 신 기자가 다시 말을 꺼내려는데, 그가 더 빨랐다.


“있잖아···.”


신 기자는 입을 벌리려다 말고 그를 빤히 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계획을 수정하자고. 우리 어디 한 달 정도 짱박혀야겠어.”

“···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후다닥 달아나 버릴 상황은 아니야. 우린 이미 빨리 튈 타이밍을 놓쳤다고!”

“왜···요?”


갈라진 목소리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국장이 오는 거 하고 환전 문제만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스나이퍼 박이 운전대에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이마에 핸들자국이 흉하게 찍혀있었다.


“지리산 모텔에 방치한 시신하고 버리고 온 렌터카!”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스나이퍼 박에 놀란 신 기자가 상체를 뒤로 슬쩍 뺀다.


“비 오는 습한 날씨야! 부패가 빠를 테고, 은폐도 금방 드러날 거라고.”


신호가 바뀌자 차가 움직였다.


그의 핏발 선 눈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문을 닫아도 틈새가 뜨는 낡은 모텔이었어. 썩는 냄새가 모텔 안에 퍼지는 건 한순간이야.”


신 기자의 턱밑이 덜덜 떨렸다.


모텔 주인이 문을 열고, 놀라고, 경찰을 부르고, 수색이 이뤄지고, 숨겨둔 렌터카가 발견되고···.


일련의 과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스나이퍼 박과는 달리 신 기자는 벌써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아까 수원에서 우리를 본 눈들은 어떻고.”


들이닥친 국장을 안심시킨 후, 이틀 정도 흔적을 싹 지우고 떠난다는 신 기자의 생각!


그 생각은 한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길에 돈을 뿌리는 미친 짓까지 했어. 놈들은 우리를 쉽게 잊지 못할 거라고.”


작은 단서도 흘리지 않고, 어색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듯 떠나려던 계획.


그건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정 의원 건으로는 깡패한테만 쫓겼는데, 이번 일로는 깡패에 경찰까지 붙게 생겼어···.”


신 기자는 덜덜 떨리는 이를 악물면서 운전석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계획이··· 뭐예요?”



2.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전조등 앞에 펼쳐진 고속도로가 시원해 보였다.


시야가 탁 트이면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갑작스레 엉망이 되어버린 걸 넘어 목숨까지 위태로워진 상황.


그 때문에 잔뜩 올라가 버린 스트레스 지수.


더불어 커져만 가는 불안과 공포.


신 기자는 어수선한 마음 때문인지, 자꾸만 어딘가에 화를 쏟고 싶어졌다.


힐끔 돌아보니 운전석엔 문어 대가리 스나이퍼 박이 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짜증이 솟구칠 것 같아 얼른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다.


잠시 후 스나이퍼 박은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말이야··· 절 같은데 숨어있어야 할 것 같아.”


절이라···.


절이라고 과연 안전할까.


신 기자는 의심이 들었는데, 이어지는 말은 놀랍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입산금지구역 안을 잘 뒤져보면 버려진 가건물 같은 게 있을 거야.”


신 기자는 실눈을 뜨고 인상을 썼다.


“···절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그런 곳 하나를 절처럼 꾸미고 거기서 스님행세를 하는 거지.”


신 기자의 눈꺼풀이 다시 파르르 떨렸다.


“우리가 절을 만들어서 스스로 스님이 된다고요?”

“스님 옷이야··· 사면 되지. 기념품점 같은 데서 목탁하고 염주도 팔지 않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생각이 선명하게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과 공포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신 기자의 떨리는 눈꺼풀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 마! 준비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반면, 스나이퍼 박의 눈은 백미러 안에서 빛났다.


“신 기자 당신은··· 국장이나 잘 처리하라고. 그놈이 이상한 낌새를 채지 않고 잘 돌아갈 수 있게.”

“근데··· 입산금지구역이면 험한 산속 한가운데일 텐데··· 길이나 제대로 찾겠어요?”

“허허··· 내가 이래 봬도 수색대 출신이라고. 산 타는 건 체질이야!”


수색대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번 정 의원에게 끌려가 땅에 몸이 묻혔을 때도 허우적대기만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신 기자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믿어주는 척을 했다.


또 누가 아나.


이번 위기마저 돌파해 내는 지략과 괴력을 끌어낼지.


“저 돈은 어떡하나요?”


신 기자는 뒷좌석을 힐끔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은행을 이용 못 하니 현금이 필요하긴 한 두 사람이다.


하지만 저렇게 항상 큰 부피로 들고 다니는 건 부담스럽고 위험하다.


“거기서 숨길 곳을 찾아볼게. 일단 나한테 맡겨둬!”


왠지 느낌이 싸했다.


그럼 비트코인에 현금까지, 모든 돈을 스나이퍼 박이 가지고 있게 된다.


신 기자가 국장을 가이드하고 있는 동안 저 인간이 몽땅 들고 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하더라도, 돈 앞에서는 모르는 거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돈 때문에 칼부림까지 하는 세상 아닌가.


“둘 중 하나는 놔두고 가시죠?”


냉랭한 말에 놀란 걸까.


스나이퍼 박이 당황한 듯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면서 속력을 줄였다.


살짝 찌그러진 그의 한쪽 눈이 백미러에 비쳤다.


“뭐야? 날 못 믿는 거야?”

“믿고 못 믿고가 아니라··· 위험하잖아요. 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으면.”

“허허··· 이 사람!”


내심 돌려서 얘기한 거였는데, 서운했는지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결국 비트코인은 신 기자가 현금은 스나이퍼 박이 가지고 있기로 한다.


스나이퍼 박은 구 씨의 핸드폰을 넘겨주면서 다이어리를 툭 건드렸다.


“핸드폰 패스워드는 해제해 놨어. 가는 동안 그거나 좀 찾아봐!”


신 기자는 바로 실내등을 켜면서 다이어리의 표지를 넘겼다.


듬성듬성 적힌 메모들이 서랍에 들어있던 장부보다는 보기 편했다.


구 씨란 사람은 제법 글씨도 반듯하게 쓰고 정리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사이즈가 큰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 중에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더니.


질서정연하게 기록된 글자와 숫자가 가득한 페이지는 마치 우등생의 노트를 떠올리게 했다.


또 그의 험악한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이어리의 반 정도를 넘길 때까지 패스워드가 될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간자체 한자가 많이 보였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분의 이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였다.


페이지를 넘기던 신 기자의 손이 갑자기 많아진 한글과 영문에 반응하며 느려졌다.


그 후 몇 페이지가 더 넘어갔을 때였다.


그의 손이 마침내 멈췄다.


신 기자는 패스워드로 보이는 영문과 숫자의 긴 조합 위에 가만히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가 힐끔 스나이퍼 박을 흘겨보았다.


그는 여전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신 기자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꿈틀거렸다.



3.


증산리에 거의 도착했을 때 들고 있던 다이어리의 마지막 페이지가 막 넘어갔다.


“아이··· 여긴 없나 보네요. 차가 흔들려서 그런지 집중도 잘 안되고··· 아··· 피곤하다.”


신 기자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면서 다른 다이어리를 집어 들었다.


패스워드가 빨리 나오지 않자 스나이퍼 박은 초조한지 자꾸만 입술을 씹었다.


“이 다이어리에도 없으면 그땐 어떡하죠?”


신 기자가 아리송하게 말하자 스나이퍼 박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세상.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신 기자는 당분간 패스워드를 자기만 알고 있겠다고 생각한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 다다르자 밝은 불빛에 도로가 환해졌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서서히 서행하다 근처 갓길에 멈춰 섰다.


신 기자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국장한테서 온 메시지를 읽었다.


“새벽 5시쯤 도착한다네요.”


시간이 한 세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와서 먹은 후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스나이퍼 박은 바로 코를 골았지만, 신 기자는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 민머리가 현금과 비트코인을 둘 다 거머쥐고 달아날지 모른다는 근심 때문이었다.


다이어리를 가슴에 품은 신 기자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국장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 되었을 때 스나이퍼 박은 깨어났다.


“그래, 그럼 이쯤에서 잠시 헤어지지. 내가 준비를 잘해놓을 테니까 국장 보내면 바로 전화해!”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든 후 입산금지구역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핸드폰에서 메시지 도착 알람이 울렸다.


- 패스워드 찾으면 문자 보내!


썩은 미소를 머금은 신 기자가 허공을 보고 중얼거렸다.


“너 하는 거 봐서, 이놈아!”


신 기자는 터미널 건물 뒤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갔다.


다이어리를 다시 뒤적여 패스워드가 있던 페이지를 펼쳤다.


구 씨의 핸드폰을 열 때는 손가락이 떨렸다.


비트코인 거래 앱 로그인 화면에 패스워드를 입력했을 때였다.


“세상에나···.”


어마어마한 금액을 나타내는 숫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흐으으읍···.”


벌어진 입에서 흘러내린 침 한줄기가 신발에 떨어졌다.


신 기자는 입 주위를 팔뚝으로 훔치면서 정신을 차렸다.


오백억이라던 가치는 그새 더 올라 이제는 오백사십억이 되어있었다.


“하하하!”


신 기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만 웃어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보도사 나가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NEW 15시간 전 0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1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1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2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6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5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8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1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8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