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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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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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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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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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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94. 건우가 필요해 1

DUMMY

1.


BW 빌딩 옥상.


시간이 되자 건우는 당연하다는 듯 가시나무 가지로 설경을 때렸다.


이번에도 열 번.


평범해 보이는 뽀얀 종이 구조물이지만, 신기하게도 건드릴 때마다 쇳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마치 큰 종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안에 갇힌 나찰은 비명을 질렀다.


“흐아아아아아···.”


비명은 이제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초반의 악에 받친 듯하던 것이 이제는 처량한 환자 같다고나 할까.


측은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었지만, 놈이 한 짓을 생각하면 다시 이가 악물어졌다.


그러면서 지금 건우 자신이 이러고 있는 목적을 거듭 되새긴다.


그렇다, 일성!


일성을 잡기 위해서다.


건우는 일성에 희생된 청운당의 법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였다.


운천이 다가오더니 또 놀라운 말을 전한다.


“유정도 죽은 것 같다.”


건우는 너무 놀라 들고 있던 가시나무를 떨어뜨릴 뻔한다.


“정··· 말인가요? 아니 어떻게?”

“철산이 천라지망을 뻗쳐 일성의 영기를 찾았는데, 그때 유정의 것도 같이 잡혔나 보다. 그런데···.”


운천이 잠시 뜸을 들이면서 빌딩 숲의 먼 곳을 바라보았다.


건우는 숨을 죽인 채 운천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소멸하였다고 하는구나. 영기가 소멸한다는 건 법사의 죽음을 의미한다.”


운천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눈빛에선 두려움이 번지고 있었다.


평소의 운천답지 않은 모습은 건우를 더 얼어붙게 했다.


“그러니까 가까이 있던 일성 법사가 죽였다는 건가요?”


운천은 건우의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치더니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운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격적으로 네게 도술을 가르치려 한다.”


정신이 퍼뜩 드는 말에 건우의 눈썹과 눈꺼풀이 동시에 위로 솟았다.


어느새 운천은 해를 등지고 서 있었다.


“너도 느꼈겠지만, 일성이 살인을 이어가면서 영기를 살기로 채우고 있다. 이제 일성은 과거 청운당에서의 그 일성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조금 전 스승의 눈에 흐르던 두려움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자신에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술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운천은 건우가 지금 생각하는 게 맞다는 듯 말한다.


“지금 영일이 저 모양이다. 철산도 회복은 했다만, 언제 또 한순간에 영기가 쇠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도···.”


건우는 들어본 적 없는 스승의 나약한 말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이렇게 정정하신데···.”


빙그레 웃기만 하는 운천.


그러고는 다시 해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없는 청운당을 미리 대비한다고 생각해라.”


스승 운천이 없는 청운당이라!


그 말뜻을 알아들은 건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부담을 가진다면야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 여기 저분들의 보호 밑에서 안전히 잘 지내는 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건우야!”


운천의 평소 뻣뻣하던 음성이 순간 부드러운 할아버지의 그것으로 변했다.


“우리는 지금 네가 필요하구나!”


그때 옥상 출입문이 열리면서 정철과 철산이 다가왔다.


“법사들한테는 내가 이미 말해뒀단다.”


정철과 철산은 무슨 얘기가 오가는 중인지 파악한 듯 싱긋 웃었다.


나란히 건우의 뒤에 선 두 사람.


각각 손을 건우의 어깨에 얹는다.


해가 짙은 구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건우는 그 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초보이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운천이 껄껄 웃으며 답한다.


“넌··· 이미 초보가 아니다.”



2.


BW 회장실.


“이곳에서 놈을 기다렸으면 합니다.”


넓은 공간에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또 올라가면 바로 옥상이기에 접근성도 좋은 곳.


운천은 구조상 옥상 바로 밑에 벙커처럼 위치한 회장실이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회장을 보러 들락대는 직원들.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는 당분간 집에 모시고 있어야겠어요. 생각보다 회복이 더디셔서···.”


줄리가 흔쾌히 허락하자 운천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잘된 일이었다.


한 회장이 자택에 머물면 직원들이 회장실에 드나들 일은 없을 것이다.


운천은 덧붙여 한 가지 더 당부한다.


“그리고 두 분은 회사에서 평소처럼 행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이상한 소문이 돌아 자칫 직원들이 동요라도 한다면···.”


앙드레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답한 후 건우를 보았다.


“넌 휴가 가 있는 거로 처리해 놓을게. 몸조심하고!”


건우는 엄지를 세우면서 멋쩍게 웃었다.


줄리와 앙드레가 한 회장을 둘러업고 회장실을 나섰다.


건우가 일성을 잡느라 정신없는 동안 저 세 사람은 엉망이 된 BW를 정상화 하는 일로 바쁠 것이다.


“자, 창문 틈마다 부적을 붙여 우리 영기가 세는 걸 막도록 하자!”


운천이 테이블 위에 있던 부적 몇 장을 나눠주었다.


법사들과 함께 창문 틈을 부적으로 막던 건우가 문득 물었다.


“일성은 왜 이렇게 늦는 거죠?”


생각보다 반격이 더딘 일성.


그 거친 성격과 성급함을 보건대 벌써 들이닥쳐 난장판을 만들어 놨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리 고요하기만 한 걸까.


“뭔가 놈의 발목을 잡는··· 그런 일이 생겼나 보지···.”


철산은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뒤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는 채 나올 수 없는 사정.


뭐, 그런 걸 말하는 걸까.


그러면서 운천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일성은 과거 청운당에서의 그 일성이 아니다···.


여러 번 곱씹어봐도 무서운 말이었다.


만약, 일성이 건우와 일대일로 마주친다면 과연 아무 감정 없이 죽이려고 들까.


이미 죽였던 다른 법사들처럼?


짧았지만 아련했던 둘의 추억에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건우는 일성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울하던 자신을 아랫마을에 데리고 가던 일.


말동무가 되어 주던 일.


슬쩍 도술을 가르쳐 주던 일.


환하고 뽀얗던 추억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어두워진다.


이번에는 송담, 만봉, 유정 법사들의 모습이다.


희멀겋게 웃던 그들이 갑자기 나타난 일성에 하나씩 목이 잘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건우는 상상 속이지만 끔찍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벌어서 다행이라 생각해라. 안 그러면 네가 제대로 대비하지도 못했을 거다.”


운천이 건우를 보며 말했다.


회장실 바닥 한가운데, 세 법사와 건우가 동그랗게 앉았다.


본격적인 수련시간.


운천은 일성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걸 알려주겠다며 운을 뗐다.


“결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바로 펴라.”


시작은 수인이었다.


상대를 제압하는 것과 변신을 위한 수인만 봐온 건우는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었다.


“네가 알고 있는 공격 외에도··· 방(防: 방어, 수비형), 피(避: 숨김, 회피형), 반(反: 되돌림, 반환형) 계열의 수인이 있다.”


운천이 제목을 언급하자 정철이 거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붙였다.


또 철산은 필요하면 간단한 시범도 보여주었다.


건우는 각각 차이가 드러나는 수인들을 머릿속에 담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운천은 그런 것들보다도 수인을 맺을 때의 기본자세와 마음가짐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았다.


“수인을 지을 때는 머릿속에 어떤 망상도 섞여 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영력이 흩어지게 되고, 흩어진 영력은 어설픈 술(術)로 이어져 허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허점은 강한 상대에게 되치기의 빌미가 되는 법이다.”


건우는 결가부좌를 튼 다리가 저리는지 자꾸만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스승의 말은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다.


“한번 그렇게 허점이 드러나게 되면 상대는 계속해서 그 빈틈을 노리며 괴롭힐 것이다. 도술은 펼치는 것만큼이나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가 나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도술을 부리겠다는 건 발가벗고 춤을 추는 아이처럼 순진한 생각이다.”


잠시 숨을 고른 운천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다시 말했다.


“명심해라! 빈틈없이 탄탄한 영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방어, 가장 마지막이 공격이다!”


정철과 철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의 말에 호응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진지함과 절실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건우는 위기의 청운당을 생각하며 가르침에 집중했다.



3.


수인의 기본개념을 충분히 숙지한 건우는 저녁 무렵엔 본격적인 모양새를 배웠다.


“이제부터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방(防) 계열의 수인은 중지, 식지, 약지가 아래로 엇갈리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 세 손가락이 땅을 향해 서로 물리는 건 그만큼 지기(地氣)에 의존해 버티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철산이 그 모양을 지어 보이자 건우가 어설프게 따라했다.


확실히 부적에 의존해서 손을 놀리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니 확실히 단전 쪽이 따뜻해지는 것도 같았다.


순수한 영력에만 의존해서 도술을 부릴 수 있게 되면, 그땐 세상이 다르게 보일까.


일성에게 배웠던 어설픈 도술이 어릿광대의 재롱처럼 우습게만 느껴질까.


건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避) 계열의 수인은 손바닥이 구부러짐 없이 바르게 펴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지 상대의 덮쳐오는 영력에 맞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화공을 피하고자 손바닥으로 허공을 가르면서 펼치는 방천술이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건우는 실제 화공을 막는 것처럼 손바닥을 펴 하늘을 자르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 보았다.


하지만 영 어설픈 자세가 되어버렸다.


철산은 비슷하다는 말로 위로를 했지만, 표정은 영 아닌 것 같았다.


“반(反) 계열의 수인은 상대의 영력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으로, 특별한 공격 없이 방어만으로도 공격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기에 방어형 수인의 완성이라고도 한다. 명심해라!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야 함이 우선이다. 그래야 상대의 영력을 그대로 반(反)할 수 있지 않겠느냐?”


긴 설명이 끝나자 본격적인 시범과 연습이 이어졌다.


각 계열별로 대표가 되는 술(術)의 수인이 천천히 맺어지다가 풀어지는 게 반복되었다.


건우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따라했다.


그러면서도 손 모양을 사진처럼 찍어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애를 썼다.


콰릉-!

콰르릉-!

콰르르릉-!


자정을 넘기자 천둥이 여러 번 연이어 울었다.


잠잠하던 바람이 다시 일어나더니 빗줄기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 요란함은 창문으로도 그대로 전해졌다.


혼자 수인 연습에 몰입하는 건우의 그림자가 대리석 바닥에서 어른거리며 춤을 췄다.


멀찍이 떨어져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법사들이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법사들은 옥상으로 올라가서 설경을 두들겼다.


나찰의 흐느낌이 여지없이 처절하게 흘러나왔다.


흠뻑 쏟아지는 비와 거센 바람에도 설경은 하늘하늘 춤을 출 뿐이었다.


“아직 기척이 없는 건가?”


운천이 철산을 보고 물었다.


철산은 눈썹 사이에 주름이 졌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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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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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10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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