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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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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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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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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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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작성
23.12.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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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001. 야반도주 1

DUMMY

1.


지리산 중턱.


일단 등산로인 뱀사골 계곡 코스를 따라 걷다가 중간쯤에서 벗어나 보자.


한 1.5km 정도면 될 듯싶다.


거기서 다시 명선봉과 토끼봉을 바라보며 두 시간쯤을 더 걷는 거다.


길도 나지 않은 거칠고 험한 숲을 헤치며 가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다.


아찔한 비탈을 타기도 해야 한다.


제법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빽빽한 소나무 숲도 통과해야 한다.


간혹 사나운 산짐승과 마주쳐 혼비백산할 수도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하자.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길, 옷가지를 다 헤어놓는 가시덤불, 또 죽은 짐승의 사체에 꼬인 날파리까지.


만만치 않은 길이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럼 그때, 멈춰 서서 시야를 광각으로 활짝 넓혀보자.


한쪽 끝에 표주박 모양으로 불쑥 솟은 바위 절벽과 그 옆에 작은 폭포가 눈에 들어오는가?


피어오르는 물보라에 몽롱한 경관을 자아내는 폭포 말이다.


그래봤자 고작 5미터 남짓한 아담한 사이즈의 폭포!


워낙 작은 규모이기에 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변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야, 여기 좀 으스스한 게, 뭐라도 금방 튀어나올 거 같지 않냐?”


라고 할 정도로 영험한 기운에 압도당하고 만다.


모험심이 강한 이들은 그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폭포 뒤편 어딘가로 이끌려 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 뒤편에서, 허름한 초가 두 채와 맞닥뜨리게 될 텐데···.


폭포 뒤의 초가!


그렇다!


그 초가가 바로 예사롭지 않은 영기의 근원!


오랜 세월 속세를 등지고 숨어 살아온 ‘도인’들의 거처, ‘청운당’이다.


지금부터 풀어나갈 얘기는 바로 그 청운당에서 시작된다.



2.


지금 청운당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해가 뜨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각.


항상 이때쯤이면 어둠은 고요함 때문에 그 깊이를 더해간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평소의 평온함과 아늑함을 거칠게 헤집는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으니.


그 소란은 바로 한 사내의 허둥대는 발걸음과 외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탁탁!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적막한 초가를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스승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숨을 고르느라 잔뜩 웅크린 그의 몸이 거칠게 꿈틀댔다.


게다가 식은땀이라도 훔치는 걸까?


그의 한 손은 연신 이마 언저리를 만지작댔다.


올해 일흔다섯의 운천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끙- 소리가 저절로 났다.


여기저기 쑤시는 몸으로 어젯밤 늦게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기에 역정이 올라오는 건 당연했다.


가쁜 숨을 내쉬던 운천은 겨우 숨을 고르고는 몸을 세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호지 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는 얘기다.


머리맡을 더듬어 자리끼가 담긴 사발을 쥐어 들었다.


고개를 젖혀 사발을 비우는데 흘러내린 물이 수염을 적셨다.


겨우 정신을 차릴 정도가 되고 나서야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게 누구냐?”


목소리에는 아직도 잠과 짜증이 묻어있었다.


“스승님, 저··· 정철입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리 이른 시간에 소란이냐?”


잔뜩 갈라진 목소리.


그리고 무거운 눈꺼풀.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하루하루 실감해야 하는 노년의 운천이다.


이불 곁을 더듬어 찾아낸 라이터를 켜자 창호지 문밖에 정철의 그림자가 어른댔다.


“그 아이가···.”


초에 불을 붙이던 운천은 정철의 말이 끊어지자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가 다시 그림자 쪽으로 돌았다.


“뭐냐? 그 애가 왜···?”


운천은 밭은기침을 여러 번 뱉은 후 팔을 뻗어 방문을 열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선선함을 품은 공기가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고개를 숙인 정철의 모습이 방 안 촛불의 빛을 받아 드러났다.


“법당에 두었던··· 부적을 가지고 달아났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숨이 턱 하니 막혔다가 트이는 것처럼 운천의 입과 코에서 거친 바람이 터져 나왔다.


“뭐··· 뭐라?”


운천은 방바닥을 두 손으로 짚으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금세라도 고꾸라질 듯한 위태한 움직임이었다.


스승의 이런 아슬아슬한 모습을 힐끔힐끔 살피는 정철은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그게 얼마나 되느냐?”

“···전부 ···삼백 장입니다.”


어둠 속에서 운천의 눈가가 꿈틀댔다.


정철이 슬쩍 스승의 낯을 올려보았다.


그저 놀람인지, 그걸 넘어서는 노여움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정철의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삼백 장이면 그동안 우리가 써둔 거 전부가 아니냐?”

“면목이 없습니다, 스승님···.”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운천이 다시 밭은기침을 요란하게 뱉었다.


그러고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게다. 법사들을 전부 깨워라. 어서!”


긴 백발에 흰 피부, 심지어는 수염과 눈썹까지도 하얀 운천.


온통 하얗기만 한 그의 얼굴 사이로 순간 어둡고 불편한 눈빛이 번뜩였다.


“스승님, 고깟 어린놈 하나 잡는데 법사들을 다 깨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정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운천의 얼굴이 다시 심하게 일그러졌다.


“모르는 소리! 그 아이가 여기 있으면서 어깨너머로 훔쳐 배운 게 얼만 데···.”


역정이 섞인 운천의 일갈에 방안 촛불이 출렁였다.


그 출렁임에 운천의 그림자도 벽을 타고 거칠게 요동쳤다.


“아··· 그, 그게···.”


놀란 정철은 움찔하며 한 걸음을 뒤로 물렀다.


고개가 깊이 푹 꺾였다.


15살에 처음 스승 운천을 만나 그를 모신 지 벌써 20여 년이다.


정철은 고개를 숙인 채였지만 알 수 있었다.


스승의 얼굴이 이미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는 미혼술까지 익히지 않았더냐?”


(* 미혼술: 최면술의 일종, 여기에 걸리면 도사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됨)


어느새 옷을 챙겨 입고 있는 운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영력이 약하고 연습도 부족하여 실수가 잦습니다.”


스승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철의 이런 반응에 운천은 미덥지 않은 눈초리를 던졌다.


“그게 더 무서운 법이지 않으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

“혹시라도 그 아이가 바깥세상까지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 그때는 어쩐단 말이냐?”

“그, 그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스승의 기세가 매서웠다.


그 기세에 눌린 정철은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소란이 이는 건 둘째 치고, 여기가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건 또 어쩌고?”

“······.”

“사소한 부주의 하나 때문에 여기가 또 잿더미로 변하는 걸 보고 싶으냐?”

“······.”


운천은 6.25전쟁 때를 말하고 있었다.


당시 몰래 마을에 다녀오던 법사 하나가 꼬리를 밟힌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청운당은 인민군의 습격을 받아 홀라당 타버리는 불운을 겪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때 들이닥쳤던 인민군들은 분노한 운천의 도술에 당해 모두 눈이 멀어버렸고.


그렇게 하염없이 산속을 헤매다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법당의 위치는 지금까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네모반듯한 정철의 얼굴이 땀으로 젖어 들었다.


분명 오뉴월의 초여름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농익은 딸기를 눌러놓은 모양새의 코에선 더운 숨이 계속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 호떡을 겹쳐 놓은 듯한 입술이 한 움큼 튀어나와 들어갈 줄 몰랐다.


“이제 열아홉 밖에 안 된 아이라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그놈이 작정하고 사고를 치면, 어쩌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차가 다니는 큰길에 닿기 전에 따라잡아야 한다. 어서 움직여라!”


운천은 말을 마치지 말자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예, 알겠습니다.”


정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코끝에 매달린 땀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한숨도 바닥으로 쏟아졌다.


땅이라도 꺼트릴 것처럼 쏟아지던 긴 한숨은 발 앞에 쌓여있던 먼지를 훅하니 날려버렸다.


운천은 정철의 숙인 몸을 보면서 잠시 시름에 잠겼다.


기억 속 그 아이의 여러 장면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갔다.


아비의 손에 이끌려 청운당에 처음 오던 날.


법사들의 도술 수련을 호기심 어리게 지켜보던 눈.


수인을 따라 하던 어설픈 손.


법사들과 친해지면서 가벼운 도술을 하나둘 몰래 익혀가던 모습.


밥을 먹다 불쑥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보채던 얼굴.


밖에 다시 나가게 되면 혼탁한 연예계를 평정하고 연예기획사 사장이 될 거라는 말.


운천은 고개를 흔들면서 어금니를 가볍게 물었다.


그러고는 멀어지는 정철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받아주는 게 아니었어. 친구의 손자만 아니었다면··· 받아주지 않았을 건데.”


정철이 숙소 방문 앞에 돌아오자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밤중의 소란에 놀라 법사들이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방문을 열자 불이 하나둘 켜졌다.


금세 다들 분주히 행장을 꾸리는 걸 보니 스승과의 대화를 들은 게 틀림없었다.


정철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자신도 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이놈, 언젠가 제대로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지.”


졸린 눈을 비비던 법사 하나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면서 말했다.


“아니, 아직 어설픈 놈이 부적은 가져다 대체 뭘 하려고···. 참 네, 몇 장이나 가져갔소이까?”


벌써 옷을 다 입은 법사가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그러자 물을 한 사발 마신 후 눈에 눈곱을 떼고 있던 다른 법사가 냉큼 말을 받았다.


“법당에 있는 거 전부 다라고 하지 않았소?”


정철은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허! 저런···.”

“그놈 잡는 거야 시간 문제겠지만, 우리 중 몇몇은 단단히 각오는 해야 할 거요.”

“그게 무슨 소리요?”

“아, 스승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 있지 않소이까? 그 어린놈하고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지 말라시던··· 그런데···.”

“그런데 친해지다 못해 함부로 도술까지 가르쳐 준 법사들이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다, 뭐··· 이 말이요?”


법사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괜한 싸움이 일 것 같았다.


정철은 얼른 대화를 끊고 들어왔다.


“자, 그만들 하고 어서 서두릅시다. 스승님께선 벌써 나와 계신 모양입니다.”


정철은 채비를 마친 법사들을 밖으로 내모는 시늉을 하며 방문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운천은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 청운당 마당 한가운데에 법사들이 모였다.


“청운당엔 둘 정도만 남기고 출발한다.”


운천의 말이 떨어지자 법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걷는 그림자들이 비를 몰고 가는 먹구름 떼 같았다.


정철은 얼른 법사들을 앞질러 운천의 곁으로 뛰어갔다.


길고 흰 수염을 휘날리며 선두에서 위풍당당 걷는 운천.


그의 입에서 노기 서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건우, 네 이노오오옴!”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비나이다입니다.
오래전 연재 중단했던 작품인데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 써봅니다.
초반부 빼고는 대부분 고쳐서 새로 쓰는 것처럼 힘이 드네요.
오늘도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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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 황금빈대 퇴치작전 2 NEW 9시간 전 1 0 11쪽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2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10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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