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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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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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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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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DUMMY

1.


BW 회장실.


냉장고 속 내용물을 전부 꺼내 비운 후 그 안에 나찰을 밀어 넣었다.


잔뜩 기가 죽고 겁에 질린 나찰.


그 좁은 공간에 자기 몸을 구겨 넣으면서도 조금의 저항을 보이지 않았다.


운천은 나찰이 들어간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건우에게 말했다.


“단단히 지켜라! 놈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이걸로 사정없이 후려쳐라!”


운천이 건우에게 내민 건 바로 가시나무 가지였다.


이미 그 효험을 제대로 경험한 건우였다.


건우는 그걸 받아 들면서 공중에 힘껏 휘둘러 보았다.


“넵! 이상한 낌새만 보여도 바로 혼쭐을 내놓겠습니다.”


거수경례까지 척 붙이는 모습이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제 건우에겐 악귀를 대하는 두려움은 없었다.


악귀 나찰은 그저 말썽꾸러기 반려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한쪽 구석에서 한 회장을 회복시키던 철산이 진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나찰 저놈이 마지막까지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바람에··· 그 때문에 기력이 많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줄리와 앙드레는 소파에 누운 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한 회장을 보며 안절부절못한다.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니겠죠?”


걱정 가득한 시선이 철산에 머물다가 운천에게로 돌아갔다.


운천은 일단 안심시켜야겠기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한다.


“걱정 마십시오.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말은 이렇게 했다만,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수련 중이던 어린 법사 하나가 악귀에게 몸을 한번 빼앗긴 적이 있었다.


다행히 회복은 되었지만, 영기를 심하게 훼손당한 후였기에 평생 정신이상 증세를 달고 살아야 했다.


그와 같은 일이 저 한 회장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운천은 다시 철산에게 한 회장을 회복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말끔히 정리하고 돌아온 정철을 불렀다.


“지금부터 나랑 같이 설경(說經)*을 만들자!”


(*설경: 충청 지역의 굿판에서 쓰이는 종이 도구. 귀신이나 생령을 잡아 가두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보통 창호지의 윗부분과 중간 부분에 경문의 문구나 여러 문양을 칼로 파내고 그 아래에는 붉은 글씨를 써 부적 형태로 제작한다.)


정철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놈을 설경에 가둬서··· 일성을 불러들이시려는 겁니까”


운천은 자기 생각을 바로 잘 읽었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설경은 부적에 비해 만드는 게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과연 적절한 대응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철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설경을 보았던 건 까마득한 과거였다.


아마도, 청운당에 갓 발을 들였을 그 무렵···.


하도 오래되어서 이젠 그 만드는 법조차도 가물가물한 상태일진대.


도대체 스승은 왜 그런 무가에서나 쓰는 구닥다리 종이 도구를 불쑥 펼치신다는 걸까.


“그거보다 부적으로 방어진을 세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운천은 고개를 흔든다.


“부적은 일성에게도 익숙한 도가의 도구이다. 우리가 부적으로 방어진을 친다는 것쯤은 놈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운천은 앙드레에게 창호지와 칼, 그리고 가위를 부탁했다.


그리고 넓은 회장실 바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와 철산은 모르겠는데, 일성은 이 설경을 본 적이 없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은 운천의 모습에서 자신감과 단호함이 보였다.


“놈이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맞서야 우리가 압도할 수 있다.”


미심쩍은 표정이던 정철이 스승의 뜻을 이해한 듯 낯이 펴졌다.


정철은 운천 앞에 마주 앉았다.


“설경을 펼치려면 동서남북 사방이 트인 곳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건물의 옥상을 생각하고 있다.”


정철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서 옥상의 공간을 상상해 보았다.


“일성이 걸려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잠시 생각을 하던 운천은 다시 입술을 씹더니 말한다.


“이젠 도리가 없다. 제거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단호한 말이 정철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정철은 더는 묻지 않았다.



2.


창호지 위로 다양한 문양이 파내진다.


다이아몬드.

네모.

세모.

길쭉한 막대에.

꽈배기 형태의 타래까지.


종이의 정중앙, 시선이 모이는 곳에는 보살과 여래의 모습도 있다.


철저하게 균형과 대칭에 맞게 그려지고 파내진 문양들.


문양이 완성되자 운천과 정철은 손에 쥐고 있던 칼과 가위를 한쪽으로 치웠다.


냉수를 한 컵씩 들이켠 두 사람은 이번에는 붉은 글씨로 종이의 아랫부분을 채운다.


글자는 부적에서 봤던 것들과 비슷했다.


숨을 죽이고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줄리와 앙드레 그리고 건우.


운천이 마지막 창호지에서 붓을 떼자 지켜보던 세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시간은 벌써 다섯 시간이나 흘러있었다.


“와아! 무슨 예술작품 같은데요.”


줄리는 박물관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인가 보다.


앙드레와 건우는 그저 신비함에 압도당한 얼굴들이었다.


“저렇게 예쁜 종이로 악귀를 가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듯 줄리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댔다.


운천은 완성된 설경을 한 장 한 장 집어 들면서 빙그레 웃었다.


“원래 악하고 요망한 것들은 선하고 아름다운 걸 두려워하지요.”


여운을 남기는 말에 다들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자 운천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을 좀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오··· 옥상이요?”


줄리가 운천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옆에 서 있던 정철이 설경을 옥상에 펼칠 거라 설명하자, 줄리는 아, 하는 탄성을 뱉는다.


건물 옥상 문을 열고 나온 운천과 정철이 방위를 살폈다.


이어서 설경을 차분히 바닥에 까는 모습이 진지했다.


거무죽죽한 아스콘 포장 바닥.


그 위에 하얀 창호지의 질서정연한 배치는 확실히 도드라졌다.


운천은 펼쳐진 설경을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주문을 읊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일더니 가장 바깥쪽에 펼쳐진 설경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치 불 위에 올라간 마른오징어가 몸을 마는 것처럼 설경은 서서히 밖에서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펼쳐져 있던 설경 중 일부가 불쑥 일어서면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지하철역 안에 있는 무인 사진기 정도 되는 크기의 집 모양이었다.


어느새 따라 올라와 이를 지켜보고 있던 줄리와 앙드레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우와!”


형태를 갖춘 설경은 바람이 불자 하늘하늘 흔들렸다.


워낙 얇은 종이로 만든 구조물인지라 바람에 쉽게 무너져버리면 어쩌나 싶긴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신기하게도 구조를 갖춘 설경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쓰러지지도 않고 제법 중심을 잘 유지했다.


“어서 건우에게 그놈을 꺼내오라고 하세요.”

“냉장고에 든··· 그 악귀 말인가요?”


앙드레는 건우를 부르러 가면서도 운천의 의도를 잘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눈썹을 씰룩였다.


잠시 후 가시나무 가지를 휘두르는 건우에게 이끌려 나찰이 올라왔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찰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였다.


“네놈을 당장 지옥 불에 던져도 시원치 않지만,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구나.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당장 불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던 나찰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어서 이 안에 들어가라!”


운천은 설경으로 지어 올린 구조물의 한쪽 면을 슬쩍 들어 보였다.


나찰은 쇠통바위 밑에 갇히던 악몽이 또 살아나는지 몸서리를 친다.


입에선 가는 신음도 새어 나왔다.


눈치만 보는 나찰은 결국 건우가 휘두르는 가시나무 가지에 놀라 구조물 안으로 들어간다.


“어라···!”


놀랍게도 나찰이 들어가자마자 구조물은 뽀얗고 투명하게 변해버린다.


멀리서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헷갈릴 정도로 흐릿한 설경 구조물.


건우는 신기한지 자꾸만 그 구조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러면 일성이 저놈의 흔적을 더듬어 찾아오더라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이 주위만 빙빙 돌게 될 것이다.”


운천은 구조물에서 두어 걸음 떨어졌다.


정철은 이제야 운천의 의도를 다 이해한 듯 가슴을 활짝 펼쳤다.


“···그럼 우리는 그때를 노려 덮치는 거군요.”

“그렇지!”


운천이 여유롭게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3.


청운당.


그치다가 말다가 하는 비가 초가의 처마 밑에 작은 웅덩이 여럿을 만들었다.


그 위로 떨어지는 경쾌한 빗방울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되고 있었다.


숙취에 찌든 일성은 눈을 떴다.


초가 마루 위에 나뒹구는 빈 양주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바스 리갈.

윈저.

발렌타인.


영어는 읽을 줄 모르는 일성이지만, 병의 모양으로 브랜드는 구분할 수 있었다.


이게 다 아랫마을에 식료품을 사러 내려갈 때마다 꾸준히 봐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빈 술병을 집어 한 쪽 벽에 나란히 세운 일성은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시간이 꽤 흘렀다.


아마도 자는 동안 유정은 돌아왔을 것이다.


“유정! 이보시오, 유정! 어디 있소? 변소에 있소?”


대답이라도 돌아와야 하는데 청운당은 고요하기만 했다.


일성은 뭔가 느낌이 싸했다.


게슴츠레 감겼던 눈이 활짝 떠지자 축담으로 시선이 돌았다.


유정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일성은 다시 만봉의 시신을 태웠던 자리를 돌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놈 봐라!”


그렇게까지 믿어줬건만···.


돌아오는 건 허무하게도 뒤통수였다.


이렇게 될 걸 생각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속이 쓰렸다.


일성은 부엌으로 들어가 항아리에 받아 놓은 물을 한 사발 들이키고 나온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젖은 마당에서 올라오는 습한 공기가 발바닥을 눅눅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전히 가는 빗물을 흩뿌리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 일성은 거친 숨을 내뿜었다.


서늘한 공기 중으로 허연 입김이 고르게 번졌다.


나찰이 보낸 신호를 확인하고 바로 움직이려던 걸 잠시 미룬 건 유정 때문이었다.


자신을 위해 식료품을 구하러 나간 유정.


그런 그를 두고 먼저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우습게도 일이 이 모양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일성은 천라지망을 펼쳐 보았다.


하지만 숙취가 남아있어서인지 유정의 흔적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일성은 소혼술로 사로잡은 박쥐를 다시 불러들인다.


“휘이이이잌···.”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에 나무 그늘에 숨어있던 박쥐가 날아왔다.


환한 대낮임에도 놈은 움직임이 더디거나 굼뜨지 않았다.


일성은 방 안에서 유정의 옷자락 하나를 들고 나와 불쑥 치켜들었다.


일성의 손 앞으로 박쥐가 다가왔다.


“이놈을 찾아라!”


자신의 성의를 이런 식으로 짓밟은 놈을 결코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일성은 운천을 치러 가는 길에 먼저 유정을 손보기로 마음먹는다.


유정의 냄새를 확인한 박쥐가 다시 솟아 올랐다.


박쥐는 일성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한 방향을 잡고는 직선 비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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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2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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