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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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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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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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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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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미연이의 남자 2

DUMMY

4.


남전주 톨게이트 부근.


한 피디는 잠시 속력을 줄이면서 차창 밖을 응시했다.


멀리서 구름에 가린 산자락이 보였다.


“햐! 저거 지리산 아냐?”


멀리서 물안개에 낀 산자락이 근사해 보였다.


트로트 신동과의 미팅 약속 시각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줄리의 독촉에 서두르긴 했는데, 가만 생각을 해보니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필요는 없는 거였다.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아이 말고도 전국노래자랑 같은 무대에서 기량을 뽐내고 싶은 아이들은 줄을 섰을 테니까.


괜히 노망이 난 영감탱이의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느긋함이 다시 살아났다.


“슬쩍 드라이브나 하며 바람을 좀 쐴까.”


부릉!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한 피디는 남원의 춘향터널을 지나 노고단 쪽으로 달렸다.


“히야···.”


운전석 창문을 살짝 내려보았다.


도시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게 근사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자연경관을 만끽하는 드라이브를 해본 지가 꽤 된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가던 한 피디는 어느 순간 갑자기 얼굴이 굳어버린다.


또 아내인 미연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 피디의 드라이브와 관련된 그 어떤 기억에서도 미연의 얼굴은 자꾸만 흐릿하게 살아났다.


“젠장!”


또 마음이 어지러워진 한 피디는 클랙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애꿎은 빠앙~ 소리가 도로 멀리 퍼져나갔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남산 드라이브할 때도 좀 수상했어.”


아름다운 경치에 젖어 한껏 촉촉했던 눈빛은 다시 삭막하게 말라버렸다.


“대학 시절 등산 갔던 얘기를 하는데 자꾸만 어떤 놈이랑 같이 갔던 것처럼 말했단 말이야.”


한 피디는 부릅뜬 눈에 더욱 힘을 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알아? 여태껏 나 몰래 만나고 있었거나··· 아니면 벌써 살림을 차리고 있는지.”


도로변에 늘어선 식당 간판을 지나칠 때였다.


“그래 맞아, 그때 남산 돈가스를 먹을 때도 그랬어.”


한 피디는 남산타워 전경을 내다보면서 함께 했던 식사 데이트도 미심쩍기만 했다.


“돈가스를 먹고 있는데 자꾸만 바비큐를 언급하는 건 또 뭐래? 확실히 뜬금없긴 했지.”


한 피디는 고개를 힘껏 저어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상을 날려버리려 애썼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이 일은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그래, 난 아직 이렇게 젊으니까 괜찮아!”


부우우웅!


구불거리던 도로가 다시 직선으로 펴지자 한 피디는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부드러운 진동이 시트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경직되었던 심신은 다시 풀려갔다.


열린 차창으로 싱그러운 숲 향은 끊임없이 넘어오고 있었다.


띠링~


거치대에 세워둔 핸드폰이 가볍게 울었다.


힐끔 돌아보니 줄리의 메시지였다.


보나 마나 잘 가고 있나 확인하는 내용일 것이다.


한 피디는 쳇, 하고 무시하더니 시선을 전방에 고정했다.


세단은 점점 속력이 붙어갔다.


잠깐 재미 좀 보려던 드라이브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노고단이 보이던 길을 벗어나 국도를 따라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세단은 낯선 곳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린 셈이었다.


한 피디는 잠시 차를 세우고는 고개를 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갈림길은 여럿인데, 도로 표지 하나, 지나는 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한 피디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여기가 대체··· 어디야?”


인터넷도 터지지 않아 내비도 먹통이니 지도 검색도 할 수 없었다.


“이야··· 이거, 정신줄 놓고 달리기만 했더니 완전히 딴 세상으로 들어와 버렸네.”


한 피디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사차원 공간이동에 관한 청소년 문고를 떠올렸다.


때마침 구름이 짙어지면서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시도 아닌 시골.


그것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난 국도에서의 비는 매우 위험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국도 주변 계곡이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겁에 질린 한 피디는 일단 차를 안전한 곳으로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고지대로 이동하면 나을까 싶어 제법 높은 데로 이어지는 거로 보이는 갈림길 하나를 잡고 들어섰다.


한 오 분여를 천천히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길 한쪽에서 굵은 나무 하나가 꺾이더니 한 피디의 차 앞으로 쓰러졌다.


끼이이이익!


급브레이크와 함께 세단이 멈춰 섰다.


겁에 질린 한 피디는 이를 덜덜 떨면서 부러진 나무를 노려보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바로 한 피디의 세단 지붕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다행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무서울 뿐.


얼이 빠졌다 겨우 다시 돌아온 한 피디가 차에서 내렸다.


어떻게든 나무는 치워야 했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대체 저걸 어떻게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나무 앞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어··· 저게 뭐야?”


한 피디는 꺾인 나무 밑에서 사람 비슷한 형체가 보이자 놀라 멈춰 선다.



5.


김 지배인은 소리를 들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속에 섞여든 건 분명 사람의 음성이었다.


살짝 실눈이 떠지다가 다시 감겨버리고 만 순간.


누군가가 다가왔다.


분명, 사람이었다.


김 지배인은 의식이 흐려지던 중에 유정의 얼굴이 떠올랐다.


벼랑 끝 바위에서 자신을 떨어뜨렸던 바로 그 괴이한 남자, 유정.


그는 이상한 힘을 사용하여 김 지배인의 몸을 마음껏 유린했다.


삼억이 든 가방을 빼앗아 갔고, 나머지 돈을 숨겨둔 장소를 찍은 사진이 저장된 핸드폰도 가져갔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떨어지는 자신의 몸 한가운데에 괴력의 펀치를 꽂았다.


그 펀치는 보이지 않는 주먹과도 같은 것이었다.


벼랑 밑으로 고꾸라지던 몸은 다행히 바위로 곧바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첫 번째, 단풍나무 넝쿨이 팔 하나에 걸리면서 추락 속도를 줄여주었다.


두 번째, 산비탈은 다리에 긴 상처를 남겼지만, 토사가 쿠션 역할을 해서 목숨은 붙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꺾인 소나무 기둥에 용케 몸이 걸린 김 지배인은 지나던 사람의 눈에 띄게 된 거였다.


어찌어찌 겨우 살아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참 운이 좋은 거 같았다.


교통사고가 나서 산길을 헤매다가 쓰러져 유정에 의해 발견된 것도 그렇고.


또 이렇게 벼랑에서 떨어졌는데도 목숨이 붙어있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지고 있던 돈이 전부 사라진 마당에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돈 생각이 나자, 눈꺼풀에서 다시 기운이 도는 게 느껴졌다.


김 지배인은 사력을 다해 눈을 떠보았다.


“이··· 이보세요! 괜찮아요?”


흐릿하게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정장 차림인데 비에 흠뻑 젖어 꼴이 참 우스워 보였다.


얼굴이라도 제대로 봤으면 했는데 남자는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이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여의치가 않은 건지 생각이 바뀐 건지.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김 지배인에게 다가왔다.


“저···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비가 갑자기 쏟아져서 물이 불어나고 있어요.”


남자는 만신창이가 된 김 지배인의 몸을 훑어보고는 다시 묻는다.


“이봐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상태가 영··· 아닌 거··· 같은데?”


김 지배인이 남자의 물음에 귀를 기울이던 중이었다.


문득, 의식의 밑바닥 저 아래에서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조각들은 남자의 얼굴과 서로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면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김 지배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떨림은···.


추락에 의한 타박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십억이나 되는 큰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 때문도 아니었다.


“미··· 미··· 미연···!”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소리에 김 지배인의 흐릿한 말이 묻혀버렸다.


“뭐라고요?”


남자는 한쪽 귀를 김 지배인의 얼굴 가까이 대어보지만, 잘 들릴 리가 없다.


“다··· 당신···!”


김 지배인은 갑자기 다시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이구! 난리 났네. 이걸 어쩌나···.”


남자는 ‘끙’ 소리와 함께 김 지배인의 몸을 일으킨다.


빗물에 흠뻑 젖어 묵직해진 두 남자의 몸이 천천히 세단으로 향했다.


남자는 김 지배인을 뒷좌석에 눕히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 지금까지는 운이 좋은데, 앞으로도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가벼운 진동과 함께 세단에 시동이 걸렸다.


남자는 연신 “아휴 이걸 어째?”를 연발하며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김 지배인은 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드문드문 의식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까 하려다 만 말을 힘겹게 중얼댔다.


“미연··· 미연이··· 미연이는··· 어떻게···.”


자신을 구한 남자가 미연이와 결혼한 한 피디임을 알아본 김 지배인.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와중에도 그의 마음은 계속 어지럽기만 했다.



6.


벼랑 끝에 걸터앉은 유정은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 화면을 문질러대고 있다.


“뭐야··· 이거···?”


대기화면의 잠금을 풀려면 패턴 암호를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아니, 왜 이러지?”


계속 애꿎은 손가락만 고생시키고 있는 거였다.


이런 첨단 기술은 도술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인지라, 핸드폰에 대고 주문을 외거나 수인을 맺을 수도 없었다.


“허어···!”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 유정은 하는 수없이 아까 밀어버린 남자를 생각했다.


“이거나 좀 열게 하고 죽일 걸 그랬나··· 쩝!”


차분히 뒷일까지 도모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자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자책은 금세 화로 변해 자신의 몸을 데워버린다.


바위에서 벌떡 일어선 유정은 까마득한 벼랑 밑을 내려다보았다.


떨어지면 절대로 살 수 없는 높이.


놈이 자신처럼 도술을 수련하는 자가 아닌 이상, 결코 목숨이 붙어있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유정은 자꾸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건지려 애쓴다.


“안 되겠다. 그래도 한번 내려가 보자. 어딘가 암호를 적어둔 메모라도 지니고 있을지 모르니···.”


훅, 하고 떠오른 유정의 몸이 벼랑 앞에서 잠시 머물다가 천천히 밑으로 하강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경공은 자주 해왔지만, 이런 식으로 훑어 내려가는 건 드문 일이었다.


가파른 벼랑의 사이사이마다 거친 나뭇가지와 날카로운 돌무지가 보였다.


“어딘가에 걸리면 추락 속도가 떨어져서 운 좋으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글쎄···.”


거친 환경은 그런 가능성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고 있었다.


유정은 자신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바닥에 거의 다 내려왔을 때였다.


시체가 있어야 할 지점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유정은 눈빛이 바뀐다.


거세게 꺾인 나뭇가지의 흔적들.


그리고 뭔가에 쓸린 토사층.


여기저기 나뒹구는 찢긴 옷자락.


이런 것들 외에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지면에 충돌하자마자 박살 난 몸이 여기저기 흩어졌을 수도 있다.


그 사이 짐승들이 달려들어 뜯어먹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념이 깊어질 즈음이었다.


비바람에 주변 나무숲이 흔들리면서 감추어져 있던 핏자국이 유정의 눈길을 끌었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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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114. 황금빈대 퇴치작전 2 NEW 7시간 전 1 0 11쪽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2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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