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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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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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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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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식신 vs 식신 3

DUMMY

7.


논현동 가구거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휑한 아스팔트 길 위에 늦은 오후의 태양이 작열했다.


푹푹 찌는 날.


기온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철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한 후 잠시 그늘을 찾았다.


“히유유유···.”


흰개미 떼를 쫓는 건 고된 일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기도 하거니와 움직임도 종횡무진.


또 모습을 드러냈다가 잽싸게 숨는 것도 선수들인지라, 잡는 쪽이 어지간히 빠르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식신으로 삼아 데리고 온 땅돼지, 천산갑, 아르마딜로, 개미핥기 무리가 제대로 된 천적인 것 맞지만···.


막상 놈들의 움직임을 보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일단 놈들은 열대기후에 최적화되어서인지 한국 날씨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이 여름이라 문제없는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는데, 사실 그게 그렇지도 않은 게.


낮엔 덥다가도 밤은 선선한, 고온 건조한 그쪽 기후와는 달리, 한국은 밤까지도 고온다습한 열대야로 이어질 때가 많으니.


항상 지친 모습에 비실비실하기만 한 놈들이 사냥에 제대로 집중할 리가 없었다.


또 대부분이 야행성 동물들이라 정철이 밤까지 깨어있어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이러니···.


놈들에게 타격을 줄만큼의 공격을 위해선 뭔가 묘수가 필요했다.


정철은 낮에 지나쳐온 한 아파트 경비실에서 슬쩍 해온 살충제 한 박스를 열어보았다.


아홉 개가 들어있었다.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저런 무력한 식신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턴 식신으로 삼으실 때 좀 더 섬세하게 고민하셔야 할 텐데 말이야!”


사실상 스승 운천의 어설픈 사역에 대한 푸념을 쏟은 정철.


손바닥을 펄럭대며 얼굴에 열기를 식혔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철은 그늘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가구거리를 둘러보았다.


철문으로 굳건히 닫힌 가게들은 마치 폭격을 대비하는 것처럼 삼엄했다.


연일 뉴스에서 흰개미 떼의 급습 소식을 들었으니 공포에 질렸을 법도 했다.


송파의 빌라촌과 가로수들.


잠실의 경로당과 목조 문화재들.


흰개미가 지나간 후 삭막해진 거리를 비추는 뉴스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앵커의 마지막 멘트···.


···다음 목표는 어쩌면 원목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가구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철은 흰개미가 그간 지났던 길을 머릿속을 그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뉴스에서 얘기한 대로라면 오늘 밤에 분명히 여길 지날 텐데···.”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뭔가를 긁어대는 듯한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한 건 해가 완전히 사라진 직후였다.


“왔다!”


정철은 식신들을 건물 사이마다 배치했다.


혹시 더위에 지쳐 제 기량을 발휘 못 할 걸 우려하여 공용화장실에서 물을 떠 와 몸에 뿌려 주었다.


또 근처 횡단보도 앞에 세워져 있던 그늘막을 뜯어 와서 부채처럼 흔들어 바람도 일으켜 주었다.


갑작스러운 서늘한 기운에 식신들은 정신을 차리는 듯 보였다.


다행이었다.


“그래그래! 정신 차리고··· 우리 잘 좀 해보자!”


정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흰개미가 눈에 보이기를 기다렸다.


그때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 뭔가 꾸물대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가게건물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놈들이 건물의 기둥을 갉아대는 것이리라!


정철은 서슴없이 맨 앞줄의 식신들에게 손짓을 했다.


“가라!”


선발대인 천산갑과 개미핥기 떼가 달려들었다.


철산은 이들에게 흔들리는 건물을 삥 둘러싸게 한 후 근처 맨홀 뚜껑을 열었다.


공격을 받으면 손길이 닿지 않는 건물 밑바닥으로 숨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나오는 습성!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파악한 놈들의 습성을 이번에는 적극 공략할 생각이었다.


“또 숨어버리면 맨홀 안으로 살충제를 쏴서 건물 밑바닥까지 자욱하게 만들어 줄 테다!”


철산은 맨홀 안을 들여다보며 건물까지의 이어진 배수관 라인을 살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건물의 진동이 점점 심해지더니 드디어 기둥 한쪽에 큰 구멍이 생겼다.


흰개미들이 그 틈으로 몰려드는 게 보였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천산갑과 개미핥기가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 저기 있다!”



8.


난데없는 낯선 이의 목소리.


식신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철산은 얼른 몸을 숨겼다.


“뭐야?”


철산은 눈을 찡그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로 사람의 그림자 여럿이 꿈틀댔다.


최근 뉴스에 놀란 시민들이 집 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가 이어지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저런 태연하고도 과감한 거리 활보는 확실히 의아해 보였다.


어른대던 그림자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대여섯 명 정도의 남자들.


전부 노년에 가까운 나이.


들쥐와 빈대를 통한 감염을 우려해서인지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또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철산은 생각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밤에 급히 병원 응급실이라도 찾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안전하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용의는 있다.


지금 저렇게 흰개미들이 바글대는 길은 위험하니까.


곧 기둥이 무너져 다칠 수 있으니 어서 저 노인들을···.


그때, 노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저게 관절염, 류머티즘에 특효약이라지?”

“그뿐인가? 심장병, 피부질환, 남자들 자양강장에도 좋다네.”

“우리 며늘아기는 월경불순에도 효과를 봤다더구먼!”

“세상에! 그럼 만병통치약 아닌가?”

“잡아서 경동시장에 내다 팔아도 주머니를 쏠쏠하게 채울 걸세. 어서 서두르세!”


노인들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한 손으로 손잡이를 비틀어 당기자 그 안에서 반짝이는 빛이 빠져나왔다.


칼이었다.


철산이 놀라 몸을 불쑥 내밀던 찰나,


대여섯의 칼날이 허공에서 바닥까지 왔다 갔다 하며 춤을 췄다.


칼끝이 노리는 건 천산갑이었다.


하지만···.


칼에 찔린 천산갑 식신들은,


펑-!

펑-!

퍼벙-!

펑-!



요란한 소음과 함께 연기를 피워올린 후 사라진다.


“에구머니!”

“뭐··· 뭐여, 이게?”


움찔 놀란 노인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밤중에 귀신이라도 본 양, 그들의 얼굴이 공포에 젖어가고 있었다.


철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멀리서 노인들을 계속 지켜봤다.


후다닥!


챙!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철산은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드러냈다.


노인들이 서 있던 자리에 가보니 지팡이 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철산은 그걸 집어 들고선 노인들이 달아난 곳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천산갑을 잡을 생각을 했다?”


긴 한숨을 내뿜은 철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천산갑 식신들이 많이 사라진 것 때문인지 흰개미들은 벌써 건물 하나를 장악하고 있었다.


개미핥기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삼키는 수보다 늘어나는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철산은 지원의 손짓을 한다.


땅돼지와 아르마딜로가 달려들었고, 뒤에 약간의 수가 남아있던 천산갑도 가세했다.


인도와 건물 벽 사이에서 집중 공격을 받은 흰개미들이 놀라 건물 안 깊이 몸을 피했다.


그러자 땅돼지와 아르마딜로가 앞발을 휘두르며 따라 들어갔다.


짓밟히고 휩쓸리는 흰개미들.


그리고 이들을 훑어 먹는 개미핥기와 천산갑들···.


하지만 아무리 공략을 해도 흰개미는 줄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계속 쏟아져 나오는 걸까.


잠깐 멈칫하는 사이였다.


우왕좌왕하던 흰개미들이 갑자기 건물 밑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또 밑바닥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식신들이 따라가지만, 그 좁고 작은 틈 안으로 입과 발을 들일 수는 없었다.


답답했는지 식신들이 바닥을 주둥이와 발로 쿵쿵 두드려댔다.


그런데 그때,


우르르··· 콰앙··· 쿵!


하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버렸다.



9.


천산갑이 노인들한테 당하면서 흰개미에게 시간을 준 게 화근이었다.


그 틈에 기둥이 집중적으로 갉아 먹혔고, 결국 이렇게 주저앉게 된 것이었다.


건물 더미에 깔린 식신들이 그 충격에 소환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펑-!

퍼벙-!

펑-!

펑-!


“이런 젠장···.”


철산은 건물 붕괴 때문에 일어난 흙먼지로 호흡이 곤란하자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살아남은 식신들이 철산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훌쩍 줄어든 수에 철산은 망연자실한다.


“뭐야··· 이게!”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나마 가장 많이 남은 땅돼지들을 선봉에 세우고 타격이 제일 심한 천산갑들을 맨 뒤로 보냈다.


건물 잔해 사이로 다시 흰개미들이 나오는 게 보였다.


천적들이 물러난 줄 안 놈들은 가게 안 판매용 가구들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보통의 나무와는 다른 고급 원목 가구들.


그 품질이 다르고, 맛이 다른 걸 느낀 건지 움직임은 활기찼다.


철산이 손짓을 하자 식신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땅돼지들은 가구 사이를 들추면서 흰개미를 밟아댔고, 개미핥기와 아르마딜로들은 건물 잔해 사이를 훑었다.


천산갑들은 전선 가닥 사이에 뭉쳐있던 놈들을 솎아냈다.


하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놈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기세 좋게 달려들 때와는 달리 이젠 조금씩 놈들에게 둘러싸이는 식신들이 늘어만 갔다.


“휴우··· 이러다간 식신들까지 흰개미의 먹이가 되겠는걸!”


철산은 다음 가게까지 흰개미가 하나둘 넘어가는 걸 봤다.


급한 김에 얼른 발로 밟아 죽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이면 피해는 순식간에 번질 게 뻔했다.


어떻게든 첫 번째 가게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막아야 했다.


그때였다.


천산갑이 뭉친 전선 가닥을 물어뜯던 중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그 스파크는 작은 불꽃을 만들었고, 곧 불길로 살아났다.


연기가 올랐다.


하지만 우세를 점한 흰개미들은 자기 주변의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원목 가구 맛에 취해 그 자리를 고수할 뿐이었다.


사태를 관찰하던 철산이 돌연 손을 들어 올리면서 식신들에게 명령했다.


“건물 밖으로 물러나라!”


스슥!

스윽!

슥!


철산의 말에 밖으로 나온 식신들이 건물 잔해를 삥 둘러싼 채로 도열했다.


방해가 사라지자 흰개미들은 더욱 신나게 가구를 갉아댔다.


그사이 불길은 더욱 크게 살아났다.


흰개미들이 열기를 느낄 때쯤이 되자 어느새 불길은 원목 가구까지 삼키고 있었다.


위기를 직감한 건지, 흰개미들이 다시 건물 밑바닥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철산은 옳다구나, 하며 얼른 맨홀로 뛰어갔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놈들아!”


맨홀 안으로 그의 손이 들어갔다.


건물과 이어지는 배수관을 향해 살충제를 쏴대는 철산.


치익!

치치익!

치익!


철산은 살아 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쉬지 않고 살충제를 퍼부었다.


그렇게 십여 분 만에 아홉 통의 살충제가 모두 비었고.


잠시 후···.


역한 냄새를 피해 다시 올라온 흰개미들은,


타닥!

탁!

탁!

타닥!


불판 위에 삼겹살 비계가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위로도 아래로도 가지 못하고 우왕좌왕 덩어리로 뭉치는 흰개미들의 피해는 점점 가중되었다.


그사이 불길은 더욱 크게 춤을 추고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놈들이 건물 밖으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밖에서는···.


만만치 않은 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땅돼지, 천산갑, 아르마딜로, 개미핥기들!


그래도 전의를 상실한 흰개미 떼를 해치울 정도는 되는 식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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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134. 한강 대첩 2 24.06.04 3 0 12쪽
133 133. 한강 대첩 1 24.06.03 3 0 12쪽
132 132. 괴수를 막아라 3 24.06.01 3 0 11쪽
131 131. 괴수를 막아라 2 24.05.31 4 0 12쪽
130 130. 괴수를 막아라 1 24.05.30 6 0 12쪽
129 129. 운천의 최후 2 24.05.29 4 0 12쪽
128 128. 운천의 최후 1 24.05.28 3 0 12쪽
127 127. 국가비상사태 4 24.05.27 4 0 12쪽
126 126. 국가비상사태 3 24.05.26 6 0 12쪽
125 125. 국가비상사태 2 24.05.25 4 0 12쪽
124 124. 국가비상사태 1 24.05.24 7 0 11쪽
123 123. 쫓기는 일성 3 24.05.23 4 0 11쪽
122 122. 쫓기는 일성 2 24.05.22 4 0 11쪽
121 121. 쫓기는 일성 1 24.05.21 3 0 11쪽
120 120. 독 안에 든 쥐 3 24.05.20 3 0 11쪽
119 119. 독 안에 든 쥐 2 24.05.19 6 0 12쪽
118 118. 독 안에 든 쥐 1 24.05.18 5 0 11쪽
117 117. 철산이 쓰러지다 2 24.05.17 5 0 11쪽
116 116. 철산이 쓰러지다 1 24.05.16 4 0 11쪽
115 115. 황금빈대 퇴치작전 3 24.05.15 3 0 11쪽
114 114. 황금빈대 퇴치작전 2 24.05.14 5 0 11쪽
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24.05.13 5 0 11쪽
»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5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4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4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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