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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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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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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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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97. 연결고리 2

DUMMY

4.


원래는 집에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내일 아침 늦게 일어나 올라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든 문자에는 KTX 기차표 한 장과,


[서둘렀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찍혀있었다.


“이런 젠장!”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는 노총각인 걸 철저하게 이용하는 건가.


김 경장은 괘씸하다는 생각에 냉장고에서 남은 소주를 꺼내 비웠다.


제대로 집 정리도 못 하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나와 기차에 올랐다.


술기운 때문인지 기차 안에서는 금방 잠들 수 있었다.


서울역에는 차가 나와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싸가지는 있구나.


김 경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차에 올랐다.


마중 나온 형사는 김 경장을 보자마자 가벼운 인사를 했고, 그 이후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거저거 물어보고는 싶었으나, 사무적이고 딱딱한 표정은 아무것도 알려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답답함에 술기운이 확 다시 끓어올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광수대에 도착하자 형사는 차에서 내리기 전 번호가 찍힌 카드키 하나를 내밀었다.


“요 옆에 마포 에이스 호텔입니다. 계시는 동안 거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무슨 수용소에 끌려온 기분이 이러할까.


김 경장은 입을 삐죽 내밀고선 객실 키를 받았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광수대 건물은 불야성이었다.


불 하나 꺼진 사무실이 보이지 않는 광경!


모든 경찰이 이렇게만 일하면 대한민국에는 범죄율은 ‘0’이 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젓고 만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고, 일어날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자 탁 트인 공간 안에 벅적대는 사람들이 보였다.


김 경장을 마중 나온 형사는 그를 누군가에게로 데리고 갔다.


힐끔.


김 경장의 위아래를 빠르게 훑어본 이가 손을 내밀었다.


“정치자금 수사팀장입니다.”


김 경장은 그의 신분증에 적힌 이름 ‘조영준’과 계급 ‘경감’을 확인한 후 인중을 씰룩였다.


악수를 위해 내미는 손도 뻣뻣하기만 했다.


아니 그런데, 정치자금이라니?


잘 못 알고 부른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스쳤으나, 그 표정을 읽은 건지 상대는 설명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목을 가다듬는다.


“뜬금없게 들리는 거 잘 아는데요···.”


조 팀장은 김 경감을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정일도 의원 아시죠?”


모를 리가 있나.


TV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그 깡패 출신 정치인 아닌가.


“최근에 선거법 위반 말고도, 그 사람이 엮인 굵직한 범죄가 한둘이 아닌데 말이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내미는 손이 공손해 보였다.


세상에 커피를 다 얻어 마시다니.


산내에서는 맨날 소장에게 강탈당하다시피 하는 커피가 아니던가.


작은 감동을 한 김 경장은 역시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든다.


“이번에 우리 첩보에 불법 자금 세탁 루트가 잡혔어요. 그리고 그중에 일부가 그쪽 동네로 흘러간 것 같은데 말이죠···.”


김 경장은 커피를 홀짝이며 관련이 있을 만한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


곧 한 가지가 떠올랐다.


비닐봉지에 든 현금 뭉치!


조 팀장은 역시 김 경장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말했다.


“어제 현금 든 비닐봉지 사건··· 접수하셨죠?”

“네, 맞습니다.”

“신고 내용 보니까 칠억 정도더라고요? 자세히 확인해 봐야겠지만···.”


김 경장은 자신이 접수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차 사고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총상 입은 시신이요.”

“네!”

“올라오시는 동안, 저희가 그쪽 순경한테 연락해서 추가 조사를 좀 더 해봤는데요···.”


김 경장은 밤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생했을 막내 순경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위로했다.


“그 시신 안에서도 현금이 삼억 조금 모자라게 나왔나 봐요.”

“그래요···?”

“그런데 돈을 묶은 띠지가 같은 모양이에요. 비닐봉지에 든 칠억하고 같이 있다가 빠져나온 거라고 볼 수 있죠.”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커피를 반 정도 들이킨 조 팀장은 바삐 일하는 경찰들을 잠시 보다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건 새로 접수한 신고 내용인데요··· 산내에선 좀 떨어진··· 입산통제구역 부근에서 불어난 물에 쓸려 내려온 렌터카 하나가 나왔나 봐요. 차종이 K3던가? 거기서도 박스 두 개가 나왔어요.”


김 경장은 신기한 현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말똥거렸다.


“거기에도 박스당 십억 정도씩 나왔어요.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럼 대충 토탈 삼십억!”

“그 돈이 다··· 같은 데서 나온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네, 두 박스에 든 돈의 띠지도 같은 모양이었어요.”


김 경장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삼십억씩이나 되는 큰돈이 시골 마을에 쏟아져 들어왔다.


누가, 왜, 그랬을까?


돈세탁을 의심하는 것 같은데.


저렇게 큰 사이즈의 현금을 들고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 왔다?


요즘처럼 온라인 금융과 투자 상품이 발달한 세상에··· 굳이?


저 정도 현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굴릴 정도면 국외 조세회피 지역으로 은닉하는 방법도 모르진 않을 텐데.


김 경장의 눈의 초점이 멀어지고 있을 때였다.


“잠깐 이쪽으로 오실까요?”


조 팀장이 어딘가로 그를 이끌었다.



5.


큰 파티션 두 개를 지나 코너를 돌자 넓은 벽이 나타났다.


벽 하나 가득 사진과 관련 자료들이 붙어있고, 그사이는 가는 실선으로 어지럽게 이어져 있었다.


천장에 거의 닿을락 말락 한 위치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고딕체로 적혀있었다.


<불법 자금 세탁 수사 현황>


조 팀장은 한 험악한 인물의 사진을 짚더니 그 앞에 섰다.


“예전에 불법 환치기 조직을 대대적으로 검거한 적 있는데, 그때 용케 살아남은 놈이죠.”


김 경장은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


한쪽 눈엔 유리구슬이 박혀있고, 얼굴 전체에 긴 칼자국이 선명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만했다.


절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자 김 경장은 가벼운 헛기침으로 그걸 감추었다.


“조선족이에요. 이름은 구천회라고. 전에는 길림하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했다는데, 그때 검거 작전 이후로 잠적했다가 최근에 수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나 봐요.”


조 팀장은 큰 소리로 전화를 주고받는 경찰들을 지켜보다 사진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어제 모텔 투숙객 사망신고도 접수하셨죠?”

“아, 네!”


김 경장은 어제 정신없이 울리던 전화를 받던 장면을 떠올리며 답했다.


“초기 접수만 하고 아직 디벨롭은 안 하신 상태라 모르실 텐데···.”


조 팀장은 벌써 당신 관내의 사건ㆍ사고 접수 내용은 내가 다 파악했어, 라고 말하듯 자신감이 넘쳤다.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김 경장은 그런 내색은 비치지 않았다.


“사망자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람이에요.”

“아··· <산장모텔>에 투숙객이라더니···.”

“아뇨!”


조 팀장은 김 경장의 말을 툭 끊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투숙객이 아니었어요. 객실에 있던 투숙객은 사라지고, 거기서 낯선 두 사람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사람이었어요.”


김 경장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 구천회란 사람은 예전에 정의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도와주던 사람이에요. 당연히 몰래 세탁도 관여했겠죠.”


조 팀장이 벽에 붙은 시계를 봤다.


벌써 자정이 다 되어있었다.


“밤늦게 정말 미안합니다. 이거만 얘기하고 보내드릴게요. 워낙 다급한 사안이라···.”


정중하게 얘기는 하고 있는데, 언제나 사생활보다는 일을 중시하는, 조직에 절대 충성하는 공무원!


조 팀장은 그런 사람의 전형이었다.


“재미있는 게··· 객실 안에서 같이 죽은 사람이요!”


그의 손가락이 구천회의 사진을 떠나 또 어딘가로 향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사선들을 따라가던 손가락이 멈춘 지점.


거기엔 또 다른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본 김 경장은 입이 벌어지고 만다.


“땡초라는 놈인데··· 이 친구, 정 의원 밑에서 일하는 놈이에요.”


설명을 하던 조 팀장은 김 경장의 표정을 보더니 의아해한다.


“왜 그러세요? 아는 놈인가요?”

“네, 예전에··· 아, 그러니까··· 아까 국과수가 와서 봤던 그 사건 현장 사망자의 보호자였어요. 사망자 시신을 보여준 적 있죠.”


빙그레 웃은 조 팀장은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다시 어떤 사진 하나를 가리킨다.


“그 사망자는 이 사람이죠?”


이번에는 김 경장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없이 턱을 주억대는 김 경장.


“깡수라는 놈인데, 전국구 칼잡이 중 손에 꼽히는 놈이죠. 이놈은 아까 저 땡초의 부하입니다.”


지나쳐 온 사진들을 다시 찬찬히 돌아본 김 경장은 뭔가 알았다는 듯,


“아···!”


하고 짧은 감탄을 내질렀다.


“네, 맞습니다. 어떻게, 또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쪽 동네로 돈 삼십억이 흘러들었어요. 그 돈을 놓고 구천회와 정의원 쪽이 무슨 트러블이 생긴 것 같아요. 자세한 건 좀 더 캐봐야겠지만···.”


인중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생각하던 김 경장이 이번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아까 투숙객은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자신만만하던 조 팀장은 이번만큼은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게··· 문제예요. 그 사람들만 찾아내면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결정적인 뭔가를 얻어낼 것 같은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수색에 난항을 보이는 게 분명했다.


“그외에도 재미있는 거 몇 개 더 확보한 게 있는데··· 이것 좀 보세요.”


조 팀장은 빈 책상에 놓인 PC를 켜 정보망에 로그인하더니 CCTV 화면 하나를 클릭했다.


야간에 사람들 앞에서 돈을 뿌리고 달아나는 장면이었다.


“구천회가 운영하는 물류회사 앞이에요. 수원 장안문 근처에 있는 동네죠.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앞에서 저러고 달아나고 있는 겁니다. 돈을 잘 보세요. 전부 오만원권이죠?”


흥미롭기는 했다.


저놈들이 구천회 쪽이면 저런 짓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만약 정의원 쪽이면 저기엔 왜 간 것일까?


왜 저기까지 가서 저렇게 돈을 뿌리고 달아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눈을 찡그린 김 경장은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하지만 조 팀장은 손을 흔들었다.


“알아보기 힘들어요. 밤이기도 하고, 또 상가 조명들 때문에 빛이 번져 보여서요.”


김 경장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졌다.


“대충 일이 진행되는 건 설명은 드렸네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조 팀장은 다시 시계를 봤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계는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제가 무슨 일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됩니까?”


김 경장이 하품을 간신히 참으면서 물었다.


조 팀장은 퉁퉁한 얼굴에 볼을 다시 늘이면서 답했다.


“자료만 가지고 수사하기가 곤란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요. 현지 분위기도 그렇고, 그쪽 지리, 풍속, 사람들··· 뭐 그런 것들을 잘 아는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 거라면 아무래도 저보다는 우리 소장님이···.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으나, 김 경장은 다시 꾹 눌러 참는다.


하지만 산내에 돌아가면 고생한 것에 대해 반드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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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7 0 12쪽
» 097. 연결고리 2 24.04.27 6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6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9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9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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