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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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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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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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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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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79. 대머리가 그놈이다 1

DUMMY

1.


지리산 렌터카 영업소 부근.


범인은 사건 현장을 다시 찾을 거란 땡초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놈들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또 기만적이었다.


이 근처에서 잠복한 채 놈들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땡초는 결국 자리를 뜬다.


“새끼들··· 어디로 간 거지?”


시장기가 돌자 위가 쓰려왔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 한 땡초였다.


주변 식당이나 검색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조수석에 던져둔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종이 여러 장이 먼저 손에 잡혔다.


렌터카 사장이 지역 상권을 홍보한다면서 건네준 전단지였다.


그중 눈에 띄는 식당은 하나였다.


<지리산 바비큐>


사진 속에 음식을 보자 군침이 저절로 돌았다.


주소를 확인한 땡초는 두말없이 바로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했다.


초반의 힘찬 움직임과는 달리 일 차선 국도길에 익숙해지자 차의 속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지리산 자락은 편안함을 넘어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가끔 운전석 너머로 아찔한 벼랑이 보일 때면 쏟아지던 잠은 후딱 달아났다.


그 때문에 다시 맑아진 정신으로 운전대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벼랑을 봐서인지 문득, 이런 곳에서 긴박하게 몸부림쳤을 깡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땡초가 갑작스러운 오더를 내렸을 때는 공교롭게도 식사 시간이었다.


깡수는 세상을 등지기 전에 밥은 든든히 먹었을까?


“어쩌면 못 먹었을 수도 있지··· 휴우···.”


자신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으로 향하는데, 깡수는 어쩌면 며칠 굶었을 수도 있다.


안타까움에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죄책감은 자꾸만 땡초를 힘들게 했다.


나중에 자세한 부검 결과가 나오면 알게 되겠지만, 만약 배 속이 텅 비어있다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식당 간판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재미있게도 식당은 사고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깡수가 죽은 곳에서 가까운 식당이라!


복잡한 심경을 누른 채 땡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혼자세요?”


땡초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빈 테이블로 안내했다.


한낮임에도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테이블마다 고기 굽는 소리가 요란했다.


후드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연기와 냄새는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기요, 생갈비 하나 하고··· 보자··· 식사는 따로 주문해야 하나요?”


메뉴판을 뒤적이며 묻자 주인은 땡초 얼굴 옆에 다가와 공손히 대답했다.


“식사는 이인분 이상 주문하시면 그냥 나와요.”


주인의 나긋나긋한 말이 이상하게 시장기를 더 자극하는 것 같았다.


“아, 그럼··· 이인분 주세요.”

“예에! 술은 안 하시고요?”


옆 테이블에서 벌써 코가 빨개진 중년의 남자가 연신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 병 주문하고 싶었지만, 끌고 온 차가 있지 않나.


깡수가 죽은 곳에서 자신까지 음주운전 사고로 비명횡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사이다 주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주인은 꾸벅 허리를 굽히더니 물러났고, 주문한 음식은 일 분도 되지 않아 나왔다.


이미 잘 달궈진 불판이었기에 고기는 올리자마자 바로 익었다.


일 인분의 고기가 빠르게 뱃속으로 사라졌고, 찌개도 반쯤 비워졌다.


시장기가 해소되자 긴장감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깡수 일로 신경이 날카로웠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졸음이 쏟아지려 했다.


앉아있는 바닥까지 따뜻해서인지 등을 대고 잠시 누웠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의 코 빨간 남자가 땡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 미안합니다만, 거기 소주잔 하나만 가져가겠습니다.”


눈이 풀린 게 주사라도 부릴 사람 같았는데, 의외로 말투는 공손했다.


“아, 그러세요.”


남자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소주잔을 집어 갔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테이블 사람들과 말을 섞었다.


한번 그렇게 주의를 끌어서일까.


그때부터 자꾸만 그 남자가 하는 말에 땡초의 귀가 열렸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말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2.


“새끼들··· 박살 난 차를 끌고 왔는데··· 말투를 보니까··· 서울 놈들 같더라고···.”


혀가 꼬부라져서 자꾸 쉬엄쉬엄 말하는 남자는 카센터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산기슭 동네에 카센터라니.


고개가 갸웃 기울었으나, 어쩌면 근처 시내에 영업소가 있을 수도 있었다.


여긴 그저 밥을 먹으러 온 것이고.


땡초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고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난 처음에··· 자차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런터카잖아, 글쎄···.”


남자의 떨리는 손에 들린 술잔이 입술로 행했다.


벌컥!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켠 남자는 반대편 손에 들린 젓가락으로 고기를 한 점 집어 먹는다.


“새끼들 말이야··· 싹수가 노랗잖아! 아니··· 사고를 쳤으면 영업소에다가··· 사실대로 말하고··· 돈을 물어주면 될 일이지··· 그렇게···.”


남자는 잠시 말을 끊고는 취기로 빨개진 뒷목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양심 없이 대충 덮어서 넘겨주면··· 다음에 그 차 타는 사람은 어쩌라고? 응?”


뒷목을 닦은 물수건은 이마와 미간도 훔친 후에 다시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헤헤헤··· 뭐··· 돈을 주니까··· 수리는 해 줬는데 말이야··· 하면서도 영 찜찜한 거야··· 안 그래?”


마주 보고 앉은 동료가 얼마를 받았냐고 물었다.


남자는 주위를 쓰윽 돌아본 후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땡초도 곁눈질로 그걸 확인하고는 금액을 짐작했다.


다시 동료가 “그렇게나 많이?”라며 깜짝 놀라자, 남자는 양손을 거칠게 흔들어댄다.


“그런 양아치 새끼들은··· 벌을 좀 받아야 해··· 어디서 감히··· 사기를 처먹으려고···.”


남자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잠시 끊고는 입안에 술을 한 잔 더 털어 넣었다.


그러다가 불판이 바뀌고 고기가 새로 추가되면서 다시 말이 이어진다.


“그래도 아반떼여서 그 정도였지···. 큰 차였으면··· 다들 뒈졌어··· 하하하하하하···.”


불콰한 얼굴에 괴기스러운 웃음.


땡초는 남자의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힐끔대다 그가 한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아반떼!


땡초의 온몸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찰을 통해 깡수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또 사건 현장에서 가해자의 흔적을 찾았을 때처럼···.


땡초는 등골을 타고 뭔가 싸한 기운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남자가 다시 소주잔을 입에 대는 걸 보면서 땡초도 사이다 잔을 들었다.


“새끼들··· 생긴 것도 좆 같은 게··· 한 놈은 밥만 축내는 등신 같고··· 다른 한 놈은 대가리를 빡빡 민 게··· 하하하하.”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단어를 건진 땡초는 온몸이 부들대기 시작했다.


“대가리를 빡빡···.”


땡초는 남자의 말을 조용히 따라 하며 사이다가 든 잔을 꽉 쥐었다.


남자는 반 시간 정도를 더 떠들다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비틀대는 몸으로 계산을 마친 남자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후 호출한 택시에 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땡초도 천천히 일어섰다.


식삿값을 치른 땡초는 택시가 사라진 방향으로 얼른 차를 몰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저렇게 결정적인 증거를 이렇게 우연한 곳에서 듣게 되다니.


“그래··· 이건 하늘이 도와주시는 거다. 죽은 깡수의 명복을 잘 빌어주라고···.”


다시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전 내내 말랐던 도로는 다시 시커멓게 젖어 들어갔다.


이미 습기를 많이 먹은 숲속의 녹음이 빗물을 게워 내는 것처럼 흐느적댔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 국도를 따라 한 십여 분 정도를 지났을 때였다.


쫓고 있던 택시가 보였다.


땡초의 눈썹이 꿈틀댔다.



3.


카센터는 허름했다.


이런 데는 대체 누가 찾아올까 싶을 정도로.


그래도 영업을 하니 가게 문이 저렇게 열려있을 테지.


남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멀리서 지켜보던 땡초는 글로브 박스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신문지에 말린 무언가를 꺼냈다.


사시미칼이었다.


땡초는 칼을 품 안에 품은 채 카센터 안을 다시 응시했다.


카센터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고주망태가 되어 걸음걸이가 갈지자이던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신호음이 하염없이 이어졌지만, 바로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만약 다른 가족이나 직원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땡초는 가게 주변을 좀 더 살피다가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래, 괜히 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지···.”


비도 오고 있겠다.


취해서 홀로 곯아떨어진 지금이 바로 덮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거였다.


사시미칼을 품고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가게 앞까지 걸어간 땡초는 잠시 멈춰 섰다.


또 주위를 빠르게 돌아보는데 시야에 걸리는 건 쏟아지는 비뿐이었다.


끼이익-!

덜컹-!


출입문을 밀자 잠금쇠가 걸려있었다.


“젠장!”


한 손을 들어 젖은 머리를 턴 후 눈썹에 붙여 빗물을 가릴 때였다.


화물트럭 한 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땡초는 얼른 가게 건물 뒤로 돌아가 몸을 숨겼다.


벽에 기대서 트럭이 멀어지는 소리를 듣는데 머리 높이쯤 환풍구 옆에 창문이 반쯤 열린 게 보였다.


창을 떼면 잘하면 넘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품 안에서 칼을 꺼낸 땡초는 까치발을 하고서 창문 틈으로 칼끝을 밀어 넣었다.


창문을 들어내자 쾌쾌하고 부패한 냄새가 넘어왔다.


화장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칼을 입에 문 채 두 팔로 창문틀을 집고서 몸을 끌어올렸다.


“끄응···.”


신음은 빗소리에 바로 묻혔다.


땡초의 몸이 작은 창문 사이를 통과하면서 신음이 또 한 번 터지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꾹 눌러 참으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화장실 타일 바닥에 몸이 떨어질 때 집안을 울리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웅크렸던 몸을 일으킨 땡초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화장실 문을 밀고 나가자 어둑한 공간이 나왔다.


밖에서 들어오는 흐린 빛에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는 각종 차량용 부품이 드러났다.


속옷 차림의 남자는 벽시계가 붙은 한쪽 벽면 소파 위에 엎어져 있었다.


땡초는 사시미칼을 움켜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코 고는 소리가 웅장했기에 괜히 발꿈치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칼끝을 남자의 목에 막 대려던 순간이었다.


따르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


귀를 찢는 전화벨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깜짝 놀란 땡초는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코 고는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땡초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쳐서 전화기의 코드를 뽑아버렸다.


그리고 다시,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렇게 세상 모르게 자고 있으니 아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해놓고 사는 꼴을 보니 이혼했거나 아니면 일찍 사별한 홀아비?


설령 아이들이 있다고 해도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좋아할 리는 없을 터.


멀쩡한 대낮에 술이나 마시고 다니는 걸 보니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인지라···.


그래, 그러니 그런 부정한 짓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쉽게 발을 담그지.


땡초는 내의 사이로 여드름이 덕지덕지 드러난 남자의 등짝을 보며 생각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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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2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2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3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6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5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8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1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8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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