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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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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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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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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76. BW, 비상사태! 4

DUMMY

10.


회장실 문은 열려있었다.


그래도 인기척은 내는 게 예의라 생각했는지 줄리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한 회장과 드라마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한 회장은 말없이 손짓했다.


다가오라는 신호였다.


확실히 이런 건 원래의 한 회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 회장은 한 번도 자기 자식들을 손짓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악귀가 모습은 훔쳐도 습관까지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부르셨나요?”


조금의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줄리는 한 회장의 앞에 마주 앉았다.


“어··· 그래! 내가 유명한 작가한테서 대본을 하나 받았는데··· 한번 봐라!”


한 회장은 눈도 안 마주치고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옆에 앉은 드라마 감독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 게 무슨 분위기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충분히 짐작되었다.


줄리는 받아 든 대본의 제목을 보았다.


「놀라운 사랑」


싼 티가 풀풀 풍겼다.


내용은 보고 싶지도 않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의 제목이었다.


제대로 교육받고 업계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은 작가라면 절대로 이런 식의 제목은 짓지 않을 텐데···.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지려는 걸 줄리는 꾹 눌러 참았다


표지를 넘겨 보았다.


반 페이지 분량의 개략적인 시놉시스가 눈에 들어왔다.



---------------

여주는 대학교수. 남편은 의사.


가난한 여주가 잘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게 된다. 그게 바로 혼수 하나 없이 맨몸으로 시집오는 여주를 받아주는 조건.


여주를 무시하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시어머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나날이 여주를 괴롭힌다.


며칠간 홍어삼합만 먹이기.

커피에 구정물 섞어 주기.

변기 시트에 본드 발라두기.

스킨로션에 물파스 채워두기.

화장실 바닥에 똥싸고 치우게 하기.

기타 등등···.


급기야는 여주가 대들지만, 시어머니는 ‘갈치 싸대기’로 여주를 응징한다.


격분한 여주는 시어머니를 몰래 살해해 사고로 위장하는데, 이 모습을 시아버지가 목격하게 된다.


한편, 어머니를 여읜 남편은 슬픔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로 사망한다.


이 와중에 갑자기 시아버지는 돌변하더니 여주에게 사랑 고백을 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면서 자신을 받아주면 시어머니를 죽인 걸 영원히 눈감아 주겠다고 한다.


격렬한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빠르게 장례를 치른 후 바로 혼인신고를 한다.

---------------



줄리는 따끈따끈해진 이마를 어루만졌다.


‘아··· 이런 게 바로 막장이란 건가?’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하지만 절대로 반감을 살만한 내색을 하면 안 된다.


운천 도사가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안한 일상이 이어지게끔 하라!


줄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열불을 누르면서 말했다.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는 게 근사한 문학작품 한 편 읽은 사람 같았다.


그러자 한 회장과 드라마 감독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표정 없는 얼굴이던 한 회장은 환희에 차올랐고, 감독은 황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감독은 줄리가 상식적인 판단으로 한 회장에게 강하게 어필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버리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설마, 줄리 당신까지 이럴 줄이야···.’


그의 얼굴에서 이런 탄식이 보였다.


반면 한 회장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히야! 말귀를 못 알아먹는 한 피디 그놈 때문에 답답했었는데, 역시··· 잘 키운 딸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럽구먼!”


엄지를 척 하니 세워 앞으로 내미는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아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과 말투.


아버지는 열정적이긴 해도,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상대를 깔아뭉개는 듯한 말을 하지 않으신다.


저놈은 정말로 악귀 나찰이 맞구나!


줄리는 다시 한번 확신의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배우는 섭외 하셨나요?”


나라 잃은 백성 같은 표정의 감독을 돌아보면서 묻는데, 대답은 다시 한 회장이 한다.


“남편은 허동일, 시어머니는 서미순에다가···.”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다지 주목을 못 받는 배우들이었다.


아무래도 막장 드라마이다 보니 A급 배우들은 몸을 사리는 게 뻔했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이영길··· 쪽에서 연락이 왔어.”


이ㆍ영ㆍ길!


이영길은 예전에 여고생하고 키스하는 장면을 파파라치한테 찍혔던···.


바로 그 일흔 넘은 원로배우!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지탄을 받고 불명예 은퇴한 거로 아는데.


줄리의 심장이 또 두근두근 요동쳤다.


막장 드라마라고 배우까지 막장을 쓰겠다는 건가?


“이영길이라고 하셨나요?”


줄리는 확인차 다시 물어보았다.


어쩌면 동명이인인 신인이거나 단역배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얕은 희망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연로하신 분이 말이야··· 너무나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시더라고. 배역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꼭 하고 싶다고 하시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사람은 처벌받고 자숙 기간을 거쳐도 복귀하기 힘든 입장이 아닌가.


줄리는 다시 이마를 짚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런 할아버지 배우와 키스까지 해야 한다는 게 끔찍하기만 했다.


하지만···.


“뭐··· 좋습니다. 아버지가 보는 눈이 좋으시니까 이번에도 믿어볼게요.”


줄리는 태연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래. 하하하하하하···!”


호탕한 걸 넘어 게걸스럽기까지 한 한 회장의 웃음이 터졌다.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줄리는 그 얼굴을 보면서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11.


한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촬영 일정까지 정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촬영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라고 지시까지 한다.


줄리는 잔뜩 흥분한 한 회장을 지켜보다 슬쩍 다시 말을 붙이고 들었다.


“아버지··· 우리 이 드라마 잘되라고 축배라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 회장이 뜻밖이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축배?”

“네! 제가 이번에 귀국하면서 사 온 술이 있는데 그걸로 짠 한 번 하죠.”

“오호!”


한 회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니, 한 회장의 몸을 취하고 있는 나찰의 반응 말이다.


벌써 일성과도 한잔, 또 여학생의 집에서도 한잔하며 속세의 알코올에 익숙해진 몸이 아니던가.


기대에 찬 한 회장의 얼굴을 보며 줄리는 건우를 불렀다.


회장실 밖에서 기다리던 건우는 조니워커와 윈저, 그리고 잭다니엘을 쟁반에 받쳐 들어왔다.


건우를 보고 살짝 경계하던 한 회장은 쟁반 위에 술을 보더니 다시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건우가 다시 밖으로 사라지자 줄리는 텀블러에 조니워커를 따서 부었다.


“아버지! 오빠는 감이 떨어져서 트렌드를 잘 못 읽는 거 같은데··· 저는 이번 시도가 왠지 대박을 터트릴 거 같아요.”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말을 능청스럽게 늘어놓는 줄리는 천생 배우였다.


그것도 A급 한류스타.


입이 찢어지는 한 회장은 텀블러에 찰랑이는 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는 자신의 의도대로 잘 굴러가는 것 같은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짠!”


하고 줄리와 잔을 부딪치자마자 술을 거리낌 없이 들이붓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석 잔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캬, 하는 탄성과 함께 잠시 숨을 돌리고선 이어지는 잔도 계속해서 받는다.


건우는 회장실 열린 문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전 술을 가지고 들어갈 때 자신의 경계하는 것 같은 나찰의 반응에 잠시 움찔했던 건우.


하지만 쑥과 홍고추 가루가 효과가 있는지 놈은 건우의 영력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놈에게 지금의 건우는 언제라도 제압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어린아이처럼 보일 테다.


건우는 안심하며 계속해서 나찰과 줄리를 주시했다.


조니워커와 윈저가 다 비워지고, 마지막으로 잭 다니엘의 뚜껑이 열릴 때였다.


“하하하하하··· 이야··· 뭔가 근사한 청사진을 완성하고 마시는 술맛이 근사하구나!”

“호호호! 아버지 우리 드라마 슛 들어가면 그때 또 마셔요.”

“하하하! 그래그래···. 그때도 답답한 네 오빠는 빼고 마시자꾸나.”


드디어···.


나찰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저 정도 되면 손목에 감겨있다는 거미줄의 진동을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건우의 생각이 맞다는 듯 줄리가 슬쩍 눈짓을 던졌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건우가 문자창을 열었다.


[OK!]


윤 집사에게 보낼 메시지를 막 입력하고 전송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어머, 기다리느라 너무 지루하지 않으세요? 이 커피 한 잔 드세요.”


어느새 등 뒤에 바짝 다가와 있던 회장실 비서의 말에 건우가 깜짝 놀란다.


급히 몸을 일으키던 건우가 비서가 들고 있던 찻잔을 엎었고,


“어머!”

“어어엇···.”


커핏물은 그대로 건우의 몸을 적셨다.


“죄,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건우는 미안해하는 비서는 안중에도 없는지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커핏물만 바라본다.


“이런···.”


커핏물에 쑥과 홍고추가 지워지면서 그 자리에 길게 맨살이 드러났다.


건우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


문밖으로 흘러나오던 나찰의 웃음소리가 그쳤다.


찻잔이 깨진 소리에 놀란 것일까.


아니면 건우에게서 갑자기 영력을 느껴 당황한 것일까.


문틈 새로 나찰의 눈이 보였다.


놈은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꼴깍-!


“아버지, 술 마시다 갑자기 끊으면 어떡해요? 자, 한 잔 더요!”


돌발상황임을 직감한 줄리가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 하지만···.


“자, 잠깐만!”


나찰은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건우는 다가오는 나찰에 놀라며 비서를 돌려보낸다.


“저는 괜찮으니까 그만 가서 일 보세요.”


이어서 허겁지겁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부적을 잡았다.


경면주사가 묻은 까끌까끌한 면.


그 면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 접자 부적은 금세 세로로 긴 띠 모양이 되었다.


건우는 그걸 재빨리 회장실 문고리에 둘러 묶었다.


두어 걸음 물러서자 다가오던 나찰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건우의 손이 다시 앞으로 모였다.


수인을 맺는 자세!


“합!”


건우의 작은 기합 소리에 이어, 나찰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나찰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걸렸다!”


이 모습에 놀란 줄리가 문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줄리는 문고리를 쥔 채 멍하니 굳어버린 한 회장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미혼술인데요··· 이러면 문고리에 달라붙어서 결박되는 효과가 있지요, 히히히!”


이미 도술은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는 줄리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얼른 운천 도사님께 알려야지!”

“문자 보냈어요.”

“벌써?”


줄리와 건우는 회장실 문 앞에 출입금지라는 안내표지를 붙이고는 얼른 문을 닫았다.


“그런데 저 상태로 얼마나 있는 거야?”

“글쎄요? 그거까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가능한 한 빨리 법사님들이 오시는 게 좋겠죠.”


줄리와 건우는 난장판이 된 회장실 내부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우린 그동안에 저놈이 숨겨놓은 부적을 찾아요. 틀림없이 여기 어디 있을 거예요.”

“무슨 상자에 들어있다고 했었지?”

“초코파이 상자요.”


두 사람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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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3. 황금빈대 퇴치작전 1 NEW 12시간 전 0 0 11쪽
112 112. 식신 vs 식신 3 24.05.12 1 0 12쪽
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1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2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6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5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8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9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1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1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8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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