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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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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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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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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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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71. 한 피디 1

DUMMY

1.


BW 이사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한 피디는 창밖을 응시한 채 자꾸만 입술을 씹었다.


보통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는 게 그의 오전 루틴인데.


“하··· 짜증나네, 정말!”


요 며칠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이렇게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그의 심기가 불편한 건 사실 얼마 전 인사발령 때문이었다.


“노친네가··· 노망이 난 거야 뭐야?”


남자치고는 뾰족한 콧날이 하늘로 치솟았다.


항상 관리를 받아 뽀얀 피부는 언제부터인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씹고 있던 입술이 비틀리자 하얗고 가지런한 이도 드러났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한 피디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부친인 한 회장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사건은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다.


일상은 평온했고, 부자 관계에도 불편한 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회사를 쪼개서 일부만 넘겨준다는 걸까.


한 회장이 직접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다들 BW는 장남인 한 피디가 이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아까부터 ‘그런데’라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되뇌는 걸까.


한 피디는 눈을 부릅뜬 채로 중얼대다가 동생 줄리의 얼굴이 떠오르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계집애가 뭘 어떻게 구워삶았기에···.”


그거 외엔 달리 설명할 만한 게 없었다.


한 피디는 열이 오른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흐린 골드로 염색한 그의 생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한때 지라시 수준의 몇몇 연애 매체에선 줄리를 오버해서 띄운 적이 있었다.


노래와 연기에서 봤던 당찬 이미지 때문인지.


다른 일도 마찬가지로 잘 해낼 거란 일명 ‘우쭈쭈’ 기사들!


···노래처럼 연애도 잘 할 것 같은 줄리 한.


연기만큼 공부도 뛰어난 줄리 한.


미모만큼 봉사활동도 아름다운 줄리 한.


모든 게 완벽한 줄리 한이 대통령이 된다면···.


뭐 이 정도까지는 참아줄 만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줄리가 오빠보다 경영 수완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때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농담 같던 일이 이렇게 현실이 되어 버릴 줄이야···.


“참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고 또 기가 막혔다.


뭐, 좋다!


비록 동생일지라도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인다면 깨끗이 승복할 테다.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능력과 실적이 모든 걸 말해주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걔는 여태껏 보여준 게 무대에서 엉덩이 흔들면서 노래하고, 스크린 안에서 찔찔 짜다가 배시시 웃는 거밖에 더 있어?”


한숨을 푹 내쉰 한 피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다가 전화기를 낚아챘다.


‘0’번을 누르자 문밖에 비서가 잽싸게 수화기를 든다.


“어, 지금··· 회장님 계시나?”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거다.


한 피디는 눈을 부릅떴다.


잠시 후 한 회장이 사무실에 있음을 알리는 비서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한 피디는 옷걸이에서 정장 재킷을 걸치더니 사무실을 나섰다.



2.


똑! 똑!


노크 소리가 다 묻힐 정도로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좀 이상했다.


평소 회장실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는데.


똑! 똑!


한 피디는 중지 관절에 힘을 주고 다시 문을 두드려 보았다.


게다가 음악도 평소 즐겨들으시는 클래식이 아니라 트로트라!


이런 것도 일종의 심경의 변화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그저 가벼운 일탈?


생각이 복잡해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어!”


문틈으로 한 회장의 얼굴이 보였다.


당황한 한 피디가 우물쭈물하다가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계··· 계셨습니까?”


보통 노크 소리가 나면 ‘들어와!’라고만 말하고 말던 한 회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뜸 나와 직접 문까지 열다니.


한 피디는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로 들어서려 했다.


그런데···.


“뭐야? 너 누구야?”


문을 막고 선 한 회장이 비켜날 생각을 안 하고 황당한 소리를 한다.


놀란 한 피디는 문틈에 걸려 사색이 되었다.


눈꺼풀도 파르르 떨렸다.


“예? 갑자기 왜 이러세요, 아버지···.”


설마, 이게 그··· 치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 피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회장의 화석 같던 얼굴에서 돌연 생기가 돌았다.


“아···!”


마치 냉동되었다가 풀리거나 기억 상실에 빠졌다가 깨어난 사람 같았다.


“그, 그래··· 들어와라.”


한 회장은 주춤주춤 돌아서더니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엉성한 그의 걸음걸이를 노려보며 한 피디는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회장실은 난장판이었다.


가구마다 서랍은 죄다 열려있었고, 서류는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거기에 음악까지 요란하니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볼륨 좀 줄이시죠. 갑자기 웬 트로트인가요? 이 시간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아니었나요?”


한 피디는 서류 더미를 피해 발을 조심조심 내디디면서 말했다.


한 회장의 자리 앞에 마주 앉고 나서야 쿵작대는 트로트 소리는 잠잠해졌다.


소음에 지끈대던 머리가 다시 가벼워졌다.


“무슨 일 있으세요?”


한 피디는 시선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한 회장을 보며 물었다.


한 회장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애써 차분히 대답한다.


“일은 무슨···.”


눈끝이 살짝 올라간 한 피디가 다시 물었다.


“저 서류는 다 뭐예요?”

“아··· 뭐 좀 찾아볼 게 있어서 그런 거다.”


한 회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한 손을 들어 내저었다.


“그럼 비서를 시키시지···.”

“비서는 무슨.”


못마땅한 듯 귀찮은 듯한 한 회장의 표정이 한 피디의 눈에 걸렸다.


“요즘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나요?”


넌지시 둘러서 물어보며 상태를 살피는 한 피디.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따가웠다.


“허허··· 갑자기 무슨 소리냐?”


너털웃음으로 질문을 회피하는데 이런 모습도 한 회장 답지 않았다.


미심쩍은 구석이나 답답한 여지는 절대 남기지 않는 칼 같은 성격인데···.


한 피디는 께름칙함을 지우지 못한 채 아까 사무실에서 고민하던 생각을 끄집어냈다.


“저···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 게 있어서···.”


그때 한 회장이 갑자기 말을 끊으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지않아도 말이다, 내가 먼저 부르려던 참이었다.”

“아! 네···.”


한 피디의 얼굴에서 기대와 희망이 번졌다.


역시···.


그럼 그렇지.


한 회장님은, 아니 아버지는, 절대로 그렇게 맥락 없이 후계구도를 결정하는 분이 아니지.


한 피디는 불편함에 쓰리던 속을 진정시키며 한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 회장의 말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거 말이다···. 우리 그냥, 트로트를 주력으로 밀어보자꾸나!”



3.


한 피디의 벌어진 입이 점점 더 커졌다.


잠시 멎었던 숨이 다시 터지자 컥, 하는 소리가 났다.


“아, 아버지··· 아니, 회장님!”


머릿속이 아득하다가 서서히 뜨거워졌다.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우리가 엄한 짓만 했어. 이렇게 경쟁력 있는 아이템을 놔두고서 말이야.”


한 회장은 다시 볼륨을 올렸다.


기괴한 전자음향이 단순 반복되는 트로트 메들리가 공간을 금세 채웠다.


한 피디는 M&A 발표전 분명히 들은 바가 있다.


트로트 전문 엔터사 <청산별곡>을 인수하는 건 사업 포트폴리오 보완과 더불어 리스크 분산차원에서라는 설명을.


현재의 아이돌 위주 사업은 강렬하고 수익성이 좋긴 하지만, 항상 성공만 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를 대비해서 보완적인 파이프라인 여럿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청산별곡>은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들어보면 사업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설명이었다.


그때 한 피디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이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엎어치기인가.


대뜸 주력인 아이돌 음악을 내리고 트로트를 메인에 내세운다니···.


황당하고 기가 막히기만 한 한 피디는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이 없는 걸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인 걸까.


한 회장은 신이 난 듯 더욱 열을 올린다.


“케이팝, 케이팝하는데··· 그게 다 서양음악 흉내 낸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우리 신토불이가 최고다!”


한 피디는 뜨끈하던 이마가 갑자기 식으면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확실히 이상하다!


한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는 한 피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한 회장이 갑자기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래, 얘기가 나온 김에 줄리도 부르자꾸나.”


왜 이래 진짜···.


이게 아닌데.


아버지와 나누고 싶었던 대화 내용은 승계문제에 관한 거였는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기존 사업 뒤집기에 관한 게 아니었는데.


한 피디는 전혀 예상 밖의 전개에 숨통이 조여들었다.


한 회장이 비서에게 줄리를 부르라는 지시를 내린 후 전화를 끊었다.


“줄리도 불렀으니까 같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다시 얘기를 잘 해보자꾸나.”


한 피디는 ‘전체적으로’라는 말에 뜨끔한다.


뭐야, 그럼··· 회사 사업 전체를 다 뒤집는다는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한 회장은 드라마 부문도 언급하기 시작한다.


“아니··· 새로 슛 들어간 드라마 있잖니. 대본도 후지고 감독도 좀 그렇지 않니?”


드라마는 줄리의 사업부문이지만, 답답한지 한 피디에게 먼저 말을 꺼내는 듯 보였다.


한 피디는 눈꺼풀에 힘이 들어갔다.


대본? 감독?


말도 안 된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만나본 줄리는 아주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대본이 안 좋으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고, 감독이 문제 있으면 벌써 바뀌었을 것이다.


줄리가 어떤 배우인데···.


말을 잠시 그치고 있던 한 회장이 양손을 모아 턱밑에 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또 불길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한 회장의 입이 다시 열렸다.


“줄리가 오면 다시 말하겠지만 말이다··· 우리··· 드라마도 기존 컨셉을 좀 탈피하도록 하자!”

“네에?”


아뿔사!


폭탄 심지에 불이 붙었다.


“그동안에 너무 정극에만 올인했어. 그나마 배우층이 두터워서 잘 버텼는데, 언제 한 순간에 시청률이 빠질지 모른다고!”


알다가도 모를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니, 지금까지 ‘BW 드라마의 정체성은 정극! BW는 프로 정극 집단’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으셨나요?”


이제는 줄리의 사업영역이라 한 피디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이 바뀌었잖니? OTT나 유튜브를 봐! 이제 사람들은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원해.”

“그럼 지난번에 기자들 앞에서 일장 연설하신 건 다 어쩌고요?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요?”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한 피디는 죽을 맛이었다.


반면 한 회장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할 말을 이어나간다.


“기자들한테는 다시 잘 설명하면 되지 뭐···. 허허허!”

“아니 뭘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러자 한 회장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터져나왔다.


“예전에 ‘오로라 공주’ 쓴 작가 이름이 뭐지?”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이 드디어 폭발했다.


놀란 한 피디의 눈이 빠르게 깜빡댔다.


“우리도 그런 막장 드라마를 전략적으로 추진해 보잔 말이다, 응?”


웃는 듯 심각한 듯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한 회장이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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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11. 식신 vs 식신 2 24.05.11 1 0 11쪽
110 110. 식신 vs 식신 1 24.05.10 2 0 12쪽
109 109. 보이지 않는 반격 2 24.05.09 2 0 12쪽
108 108. 보이지 않는 반격 1 24.05.08 3 0 12쪽
107 107. 교란작전 2 24.05.07 2 0 11쪽
106 106. 교란작전 1 24.05.06 4 0 11쪽
105 105. 히트 앤드 런 2 24.05.05 8 0 11쪽
104 104. 히트 앤드 런 1 24.05.04 6 0 12쪽
103 103.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3 24.05.03 7 0 11쪽
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7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5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6 0 11쪽
98 098. 연결고리 3 24.04.28 6 0 12쪽
97 097. 연결고리 2 24.04.27 5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5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9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8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8 0 11쪽
91 091. 나무아미타불 3 24.04.21 10 0 11쪽
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9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1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1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4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8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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