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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야기

문제유발동화 Parody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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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S
작품등록일 :
2016.03.07 21:39
최근연재일 :
2020.05.25 09:00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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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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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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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03. Snow=White (17)

DUMMY

예거는 어두운 얼굴로 비트휀을 내려보았다.


베그먼들이 있을 때에는 벌레처럼 벌벌 떨더니 비트휀이 혼자 있다는 것을 알자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역시 구제하지 못할 겁쟁이였다.


추종자로 이런 비겁한 멍청이밖에 부리지 못하는 언니를 생각하자니 비웃음이 나왔다.


“이게 누구야. 겁쟁이 예거잖아? 어떻게 여기까지 나왔대?”


비트휀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도 예거는 얼굴만 찡그리며 내려보았다.


아무리 자기를 숲속에 버리고 온 사람이었지만 비트휀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슈네와 예거가 이렇게 패악질을 부릴수록 마을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이 비트휀을 핍박할수록 어른들은 물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비트휀을 보호할 테니까.

머리가 좋은 슈네가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네가 예거의 멍청한 짓을 내버려 두는 것은 분풀이일 터였다.


“내가 늘 그랬지. 넌 줄을 잘못 섰다고.”


예거의 눈은 그저 불안하게 빛났다.


이런 대낮에 비트휀의 앞에 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무리 멍청한 머리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내 앞에 용서를 빌면 너를 베그먼에 끼워 줄 수도 있어.”


“난 슈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할 거야.”


“멍청하긴. 그런다고 걔가 널 인정할 거 같아?”


“나, 난 슈네가 그걸로 분이 풀린다면 괜찮아.”


“분은 풀리지 않겠지만 네가 우는 꼴은 재밌겠지.”


예거와 비트휀은 흠칫하면서 슈네를 보았다.


분명히 어른들이 슈네를 창고에 가둬서 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타나다니 비트휀은 그저 의아했다.


“뭐야, 이렇게 다 오고. 어떻게 거기서 나온 거야? 오늘은 외출금지 아니야? 아빠가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비트휀의 질문에 슈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슈네는 그저 싸늘한 자기가 할 말만 했다.


“그 다리를 하고도 나올 배짱은 있었나 보네. 그래서 오늘 대회에 나올 순 있겠니?”


“어머, 내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 언니 같은 추녀가 나가 봤자 탈락해버릴 텐데.”


슈네는 얼굴을 찡그렸다. 예거는 슈네를 뒤로 하고 비트휀의 뺨을 내리쳤다. 비트휀의 고개가 돌아갔다.


비트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예거를 보았다. 예거는 움찔하면서도 비트휀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뭐야, 찌질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제법 하잖아? 너 나 때리고도 멀쩡할 것 같아? 베그먼이 오면 너 죽어.”


“슈, 슈네.”


베그먼? 예거는 몸을 움찔거렸다. 마을에서 속된 말로 가장 잘 나간다는 녀석들이 우루루 몰려서 달려들면 이길 재간이 없었다.


안 그래도 약해서 매일 당하는데, 이번에 걸리면 정말 꼼짝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거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슈네를 보았다.


꼴사납게도 슈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예거는 슈네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겁 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에 질린 얼굴도 아니었다. 그는 도저히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뭐야, 도망칠 거면 도망쳐.”


슈네는 귀찮아하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예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그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한 명이 그들의 모습을 보더니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야! 비트휀한테 손 대면 죽는다!”


베그먼의 대장쯤 보이는 청년이 소리를 지르자, 예거는 쏜살같이 도망치고 말았다.

슈네는 남아 비트휀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너 진짜 웃긴다. 너 이러는 거 쟤들은 아냐?”


“너야말로 왜 그러는 거야? 나를 괴롭히면 더 미움받는 거 몰라?”


“난 네가 사라졌음 좋겠어. 내 자리를 빼앗아 버렸으니까.”


“네가 이래봤자 다들 돌아봐 줄 것 같아? 쾨니히가 돌아볼 줄 알아? 넌 마을에 돌아온 날부터 이미 시들고 있던 거야. 다시는 네게 기회가 오지 않아.”


“이게!”


슈네는 참지 못하고 비트휀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비트휀은 그녀의 손에 끌려오며 극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아악! 살려줘!”


그들에게도 들릴 만큼 그녀는 빽 소리를 질렀다. 슈네는 신경 쓰지 않고 비트휀을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야! 슈네! 너 자꾸 비트휀 괴롭힐 거야?”


“으앙! 살려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비트휀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슈네는 이를 악물고 비트휀의 머리를 때렸다. 비트휀은 소리를 더욱 질렀다.

슈네는 발로 몇 번 더 차고는 뛰어가 버렸다. 그녀가 뛰어가고 나자 그들이 다가와 너덜너덜해진 비트휀을 부축했다. 그들은 슈네를 욕하면서도 비트휀을 가마에 태웠다.


“비트휀 괜찮아?”


“괜찮아. 고마워.”


“저 계집애를 그냥······!”


“괜찮아, 정말로!”


비트휀은 얼른 베그먼의 대장을 막았다. 청년은 비트휀의 절박해 보이는 모습에 한숨을 쉬며 비트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정돈했다.

비트휀은 그저 청년의 옷자락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해. 그러니까 자꾸 저 마녀 같은 년이 널 괴롭히는 거잖아.”


“언니를 너무 뭐라 하지 말아줘. 알겠지?”


“그래, 그래.”


그녀의 말에 그들은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그저 그녀를 부축해 주고 더럽혀진 옷을 털어 주었다. 점심 먹으러 가자. 베그맨 대장의 말에 다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얼른 비트휀을 실은 가마를 지고 일어섰다. 그녀는 가마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계속 몸을 떨었다.


가마의 머리에 앞서가던 청년이 그녀를 측은히 보다가 앞서 가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크라셴은 떠나가는 비트휀의 가마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끼어드는 게 아니었는데.”


크라셴은 한숨을 쉬면서 나무 밑을 보았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바람에 따라 날아다니다가 공기중으로 사라졌다.

크라셴은 인상을 쓰면서 슈네와 예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크라셴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꿈속에서 헤맬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치 의식이 자신의 의식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의 방대한 욕망에 끌려가는 느낌.


[나를 그렇게 내려보지 마. 난 너희들의 여왕이잖아.]


[나를 불쌍하게 봐줘. 지켜줘야 할 공주가 여기에 있잖아!]


[저 거슬리는 것을 치워 버리고 다시 돌아갈 거야. 그 자리는 내 거였어.]


[난 너처럼 가만히 당하지 않을 거야. 난 영원히 사랑받을 거야.]


[난 여기에서 다시 인정을 받을 거야.]


[그들이 날 버리기 전에 난 여기에서 떠나고 말겠어.]


마치 거울처럼 서로 뒤집어진 욕망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크라셴은 별로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로지테일이 그 거울에 대해 언급할 때부터 어렴풋이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은 알아차렸을 땐 너무 늦은 걸까.’


크라셴은 한숨을 쉬면서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진짜 예거와 진짜 슈네를 찾을 때가 아니었다.

지졸라가 잠시라도 한눈을 판 사이에 아세데프와 접촉해서 알아낸 걸 말해야 했다.

비록 아세데프가 이미 알아차린 사실이라고 해도 말이었다.


‘이 마을은 이미 슈네의 거울 속에 갇힌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흔적도 없던 예거와 슈네의 허상이 비트휀의 바로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 터였다.


비트휀은 그저 두 사람에게 날을 세우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었다.


***


“슈네가 또 일을 저질렀대. 막 때리고 밟고, 완전 투기가 심하다니까.”


“저런, 귀여운 동생인데 그런 생각이 들까 몰라. 난 보기만 해도 녹을 것 같은데.”


축제를 준비하는 마을은 평소보다도 훨씬 소란스러웠다.

돈을 많이 가진 귀족들이 와서 많이 써주길 바라는 바람이나, 즐거운 행사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이 들떴다.

그런 축제의 한복판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한 자매에 얽힌 소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혼 좀 단단히 내야겠군.”


“···그거 들었나? 비트휀을 데리고 온 사람들, 감찰사라는데? 그 중 한 명이 마왕성 홍보부장이라는데 황성의 부탁을 받아서 감찰 나온 모양이야.”


“뭐? 구이드의 책임자가?”


“그래. 예전부터 우리 마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잖아.”


“오, 드디어 우리 마을에도 지원이 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오늘은 분명 역대 최고로 화려한 축제가 될 것이다.


***


“슈피겔, 슈피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뻐?”


“너도 예쁘지만, 역시 비트휀일까?”


슈네는 잔뜩 찡그리며 꽃 장식을 거울에 붙였다.

그녀는 거울의 장식을 끝내고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슈네의 잔상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슈네는 온통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다. 똑같이 생긴 여러 명의 소녀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소녀들은 손가락을 들어 슈네를 삿대질했다.


[이 질투만 하는 못생긴 년. 결국 제멋대로 나서다가 그렇게 버림받았지! 그러게 뭐 하러 유학 같은 걸 가겠다고 나서서! 아는 척하는 여자애는 재수만 없을 뿐이지!]


“아니야! 내 선택이 잘못된 게 아니었어!”


“알아. 네가 잘못한 건 아니야.”


슈피겔이 그녀의 뒤에 서서 안아 주었다. 슈피겔의 입술이 그녀의 귀 가까이 닿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예쁜 건 사실이야.”


슈네는 손에 쥐고 있던 장식이 찌그러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몇 번을 들어도 피가 식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슈네는 그녀가 무척이나 미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슈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자리를 뺏은 여자애. 그녀의 눈에 새기도록 자꾸만 봐왔던 탓에 이젠 거울을 봐도 슈네의 얼굴이 비치는 것만 했다.


그 망할 계집애.


“괜찮아. 내가 그 애보다는 손재주가 좋으니까. 이번에 꼭 인정받겠어.”


“······.”


“지켜봐 줘. 슈피겔.”


슈네는 슈피겔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시선들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품에 안고 방을 나왔다.


***


“발데크는 어두운 탄광과 같아. 너무 어둡고, 좁고, 절망적이지. 그저 기생충처럼 서로의 등에 빨대를 꽂고 기생하면서 살아가.”


로지테일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술에 물었다.

아세데프는 로지테일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슈네의 방을 노려보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예전에 슈네에게 세계지도를 선물한 적이 있거든. 그리고 발데크는 세계에서 티끌만큼도 안된다는 걸 알았어. 슈네에게 있어서 발데크는 매달릴 정도로 대단한 게 아니란 것도 알았을 텐데.”


“그런가.”


“어째서 인간은 자기가 있는 곳이 구렁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로지테일의 질문에 아세데프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에 더 끌리는 법이니까.”


작가의말

정말정말 오래만입니다ㅠㅠ 그동안 현생의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조차 없었네요ㅠㅠㅠ

이제는 일주일에 몇번이라도 글 쓰기를 놓치 말아야 겠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p.s. 프롤로그 및 1,2화의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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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2-03. Snow=White (22) 20.05.25 30 0 12쪽
136 2-03. Snow=White (21) 20.05.20 37 0 11쪽
135 2-03. Snow=White (20) 20.05.19 23 0 14쪽
134 2-03. Snow=White (19) 20.05.18 36 0 13쪽
133 2-03. Snow=White (18) 20.05.15 25 0 15쪽
» 2-03. Snow=White (17) 20.05.14 27 1 11쪽
131 2-03. Snow=White (16) 19.09.09 50 0 14쪽
130 2-03. Snow=White (15) 19.08.29 30 0 11쪽
129 2-03. Snow=White (14) 19.08.28 23 0 11쪽
128 2-03. Snow=White (13) 19.08.27 35 0 14쪽
127 2-03. Snow=White (12) 19.08.11 59 0 13쪽
126 2-03. Snow=White (11) 19.08.02 34 0 12쪽
125 2-03. Snow=White (10) 19.07.31 45 0 14쪽
124 2-03. Snow=White (9) 19.07.30 33 0 12쪽
123 2-03. Snow=White (8) 19.07.29 42 0 11쪽
122 2-03. Snow=White (7) 19.07.22 43 0 12쪽
121 2-03. Snow=White (6) +2 19.07.07 86 0 11쪽
120 2-03. Snow=White (5) 19.07.01 37 0 14쪽
119 2-03. Snow=White (4) 19.06.24 60 0 13쪽
118 2-03. Snow=White (3) 19.06.21 39 0 13쪽
117 2-03. Snow=White (2) 19.06.20 59 0 13쪽
116 2-03. Snow=White (1) 19.06.19 97 0 9쪽
115 2-02. 그 손이 놓친 것: Epilogue. 미다스의 황금손 19.06.18 51 0 14쪽
114 2-02. 그 손이 놓친 것 (10) 19.06.17 47 0 17쪽
113 2-02. 그 손이 놓친 것 (9) 19.06.14 48 0 10쪽
112 2-02. 그 손이 놓친 것 (8) 19.06.13 41 0 12쪽
111 2-02. 그 손이 놓친 것 (7) 19.06.12 64 0 9쪽
110 2-02. 그 손이 놓친 것 (6) 19.06.11 44 1 11쪽
109 2-02. 그 손이 놓친 것 (5) 19.06.10 4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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