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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야기

문제유발동화 Parody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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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3.07 21:39
최근연재일 :
2020.05.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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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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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02. 그 손이 놓친 것 (7)

DUMMY

***

“역시 연회는 나랑 안 맞아.”


크라셴은 투덜거리며 바깥으로 나왔다.

오렐리아와 한 번 춤을 춰 준 것이 원흉이었다.

오렐리아가 뜨자 아가씨들이 몰려들어 왜 자기와는 안 추냐고 애교 어린 코웃음을 치며 귀찮게 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크라셴은 대충 춰주고 연회장의 변두리로 도망쳤다.

그랬더니 이번엔 미다스 회장이 딸과 춤 잘 췄냐고 알랑방귀를 끼며 말을 걸어왔다.

대충 말하고 또 나오려고 하니 이번엔 집사가 더 뭐 먹고 싶은 게 없냐며 연회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다가 오렐리아가 없자, 비서가 오렐리아는 뒤뜰의 화원에 있을 거라며 그에게 속삭였다.

크라셴은 옳다구나 하고 자기가 찾아오겠다며 겨우 도망쳐 나왔다.

그는 오렐리아든, 오리리아든, 롯데리아든 벌써 얼굴도 이름도 긴가민가한 아가씨를 찾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젠 자유다!’


크라셴은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조용히 하고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거, 달도 밝다.”


크라셴은 중얼거리며 하늘을 봤다. 발밑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밝은 달이었다.

그는 제법 연회장에서 먼 정원까지 왔다. 새가 울고, 벌레가 우는 고요한 정원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든 장소를 찾은 크라셴은 좀 쉬기로 했다.


‘아, 이렇게만 조용하면 딱 좋은데.’


연회장이나 환영회나 여태까지의 길이나 너무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인데 주변에서 이토록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건지.

크라셴은 품속을 뒤졌다.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다가 편지봉투에 손가락이 걸렸다.

크라셴은 편지를 꺼내려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담배를 꺼냈다.


‘아세데프가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괜히 아세데프의 경고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여태까지 여행으로 쌓은 직감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 때였다.


“우리 도망치자!”


“그럴 수 없습니다, 아가씨. 제겐···.”


‘여기도 조용한 게 아니었군.’


크라셴은 담배를 다시 안주머니에 꽂아놓고 귀를 기울였다.

괜히 연기를 피워서 원래 있던 사람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크라셴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째 사건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째서? 그래, 그 편지 때문이지? 구이드, 네 편지는 어느 것이야? 내가 빼 올 수 있어.”


‘편지? 설마 마왕성의 계약서?’


크라셴은 소리를 죽이고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면 안 돼. 그렇게 육감이 말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래도 좀 신경 쓰여야지.’


아세데프의 일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미다스 회장은 알려주지 못하는 정보를 알려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젠장. 첩보전에는 약하단 말이야.’


크라셴은 앞서 나가서 검을 휘두르는 쪽이었지, 어둠 속에 완전히 기척을 지우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 것은 정보전에 투입되는 첩보원들의 영역이었다.

크라셴은 그래도 최대한 소리를 죽여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어갔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가까워졌다. 크라셴은 나무 뒤에 숨어 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이건 무슨···.’


소리가 나는 쪽에는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두 배우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정원 안에 숨어 있었지만 달빛이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둘 위에 떨어졌다.

어두운 밤에 빛나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달빛에 창백하게 빛나는 금발을 가진 여자는 바위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발치에 은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크라셴은 여자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오리인지 리아인지 하는 미다스 회장의 딸이었다.

그녀는 수심이 깊은 얼굴로 남자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눈물을 달래며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비록 조그만 소리였지만 크라셴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달빛이 서글프게 흩어져 내리는 밤

새도 구슬프게 지저귀고,

밤하늘도 멍이 든 체

별빛을 흘리며 앓고 있었네.


두 연인이 달빛이 흩어지는 호숫가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네.

태양과 같은 금빛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내 달빛을 비추네.


다가가기에는 당신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아름답지만,

나는 너무 초라할 뿐.



“그만 둬!”


그녀는 눈물을 더욱 쏟으며 소리쳤다. 남자는 그저 탄식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그저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가락만 키스했다.


“전, 도망칠 수 없어요. 아가씨는 너무 귀한 분입니다.”


“어째서 그런 거야? 너 혼자 도망치는 게 걸려서 그래? 아니야, 편지를 모두 없애면 너의 자유가, 아니, 네 동료들의 자유가 오는 거라고.”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멈칫했다.

달빛을 등지고 있어 그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몸은 확실히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만 들리고, 그의 침묵이 새 소리와 벌레 소리에 숨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크라셴은 궁금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침묵은 너무나도 깊어 조금만 움직였다간 그들이 알아차릴 것 같았다.

크라셴은 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어차피 못 빠져 나갈 바에야 자리를 깔고 앉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크라셴이 나름의 배려 어린 생각을 하든 말든, 둘은 아직도 그들만의 세계에 열중해 있었다.

기나긴 침묵 끝에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아가씨, 그러시면 미다스님이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어! 아버지는 날 생각도 하지 않아.”


“그런 게 아닙니다!”


“네가 뭘 알아! 아버진 날 팔 생각이라고!”


“그러는 아가씨는 그 남자와 잘도 춤을 추지 않았습니까? 즐거워 보이던데 아닙니까?”


남자는 소리를 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슬픈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남자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 남자가 좋아서 춘 게 아니란 말이야. 아버지를 어떻게든 속여야 하니까, 그랬던 거야. 그 남자, 유이오페 가문의 장남이래. 아버지가 노리는 건 그 가문일 뿐이지, 내가 행복하길 원하는 게 아니야. 믿어줘.”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셴은 그제야 어째서 미다스 회장이 그렇게 알랑거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를 유이오페 가문의 회사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가문의 지원을 받기 위한 연줄로 선택한 것이었다.

세력과 세력 간의 결합을 위한 정략결혼은 그리 별난 것도 아니었다.

주위의 경우만 해도 힘이 약한 가문끼리 힘을 더 얻기 위해 정략결혼을 선택했던 것이다.

두 세력 간 합치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게 정략결혼일 것이다.

자기에게 없는 걸 상대방에게서 보급받기 위해 자식을 판다는 그 방법.

남의 일이라 생각했다가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버리자 크라셴은 조금 찝찝했다.


‘난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생각은 없는데.’


크라셴이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침묵에 숨 막힌 모양인지 절박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딱하게 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요, 아가씨.”


“나도 사랑해.”


“그럼, 오늘 도망칠까요?”


“좋아. 나도 그 생각했어. 연회를 여느라 다들 허술할 거야. 내가 계약서들을 관리하고 있어서 잘 알고 있어. 원본만 태우면 사본도 사라질 거야. 모두 태우고 도망치는 거야.”


“감사합니다. 오렐리아, 사랑해요.”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모자를 써 머리카락을 가렸고,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크라셴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뭔가를 저지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뭔가 엄청난 일을 말이다.

크라셴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회장에게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봤던 것을 그대로 전달하면 아세데프나 지졸라가 알아줄 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후퇴하려면 이 정도도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그들의 대화만 들은 것만 해도 지나치게 끼어 든 거겠지.

그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일단은 가만히 있어야겠다.”


크라셴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무심히 제 품에 손을 넣어 편지를 만졌다.


“네, 그렇게 가만히 있어 주세요.”


갑자기 그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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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2-03. Snow=White (22) 20.05.25 30 0 12쪽
136 2-03. Snow=White (21) 20.05.20 37 0 11쪽
135 2-03. Snow=White (20) 20.05.19 22 0 14쪽
134 2-03. Snow=White (19) 20.05.18 36 0 13쪽
133 2-03. Snow=White (18) 20.05.15 24 0 15쪽
132 2-03. Snow=White (17) 20.05.14 26 1 11쪽
131 2-03. Snow=White (16) 19.09.09 49 0 14쪽
130 2-03. Snow=White (15) 19.08.29 29 0 11쪽
129 2-03. Snow=White (14) 19.08.28 22 0 11쪽
128 2-03. Snow=White (13) 19.08.27 34 0 14쪽
127 2-03. Snow=White (12) 19.08.11 58 0 13쪽
126 2-03. Snow=White (11) 19.08.02 33 0 12쪽
125 2-03. Snow=White (10) 19.07.31 44 0 14쪽
124 2-03. Snow=White (9) 19.07.30 33 0 12쪽
123 2-03. Snow=White (8) 19.07.29 41 0 11쪽
122 2-03. Snow=White (7) 19.07.22 43 0 12쪽
121 2-03. Snow=White (6) +2 19.07.07 85 0 11쪽
120 2-03. Snow=White (5) 19.07.01 36 0 14쪽
119 2-03. Snow=White (4) 19.06.24 60 0 13쪽
118 2-03. Snow=White (3) 19.06.21 39 0 13쪽
117 2-03. Snow=White (2) 19.06.20 59 0 13쪽
116 2-03. Snow=White (1) 19.06.19 97 0 9쪽
115 2-02. 그 손이 놓친 것: Epilogue. 미다스의 황금손 19.06.18 51 0 14쪽
114 2-02. 그 손이 놓친 것 (10) 19.06.17 47 0 17쪽
113 2-02. 그 손이 놓친 것 (9) 19.06.14 47 0 10쪽
112 2-02. 그 손이 놓친 것 (8) 19.06.13 40 0 12쪽
» 2-02. 그 손이 놓친 것 (7) 19.06.12 64 0 9쪽
110 2-02. 그 손이 놓친 것 (6) 19.06.11 44 1 11쪽
109 2-02. 그 손이 놓친 것 (5) 19.06.10 3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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