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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야기

문제유발동화 Parody 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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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6.03.07 21:39
최근연재일 :
2020.05.25 09:00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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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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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Prologue. 어느 왕국의 이야기

DUMMY

아마도 수 천 년 전의 일이었을 겁니다.


아직 프로미스 왕국이 생기기 전, 이 세계는 마법과 정령, 온갖 종족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공기보다 가벼운 자들이 구름 위에서 살고 있었고, 땅 아래에는 산보다도 무거운 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온갖 힘이 세계의 혈맥이 되어 팔딱이며 메르헨 대륙은 여러 문명으로 번성했습니다. 메르헨 대륙의 주민들은 각자의 왕국을 세워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왕국에는 탐욕스러운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무척 방탕하고 탐욕스러워, 자신이 가진 부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왕국의 백성들에게서 막대한 세금을 매겨 금고를 채웠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무리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했을뿐더러, 하늘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몇 년 째 가뭄이 들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커져 가는 백성들의 원성을 모르는 척 했습니다.


“이건 마왕이 우리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다!”


왕은 이 왕국에 저주를 내린 마왕을 원망하면서 용사가 나타나길 바랐습니다. 추운 북쪽 땅의 끝, 검은 죽음의 땅에 마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쇠약해진 백성 중에서 아무도 용사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왕은 숲속에서 은둔 중인 현자를 잡아 왔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이 이 세계를 구해줘야 하지 않겠소?”


왕은 현자를 찾아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마왕의 저주 때문에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노라고. 왕의 눈물 어린 호소에 현자는 세상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현자도 이 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왕국 돌아가는 꼴이 보기 싫어 세상을 등졌지만, 왕국의 백성들이 가여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현자는 용사를 찾으러 세계 곳곳을 다녔습니다. 현자는 온갖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황무지에서 바위를 단번에 쪼갤 수 있는 강한 장사를 만나서 용사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사는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렸습니다.


“당신은 현자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요? 이 세상에는 마왕은 없소. 마왕이 있다면 내 동포들이 먼저 알았겠지. 왕은 당신을 속여 핑계를 대는 거요.”


“마왕을 진짜 잡아서 바치면 왕도 정신을 차릴 겁니다.”


“천만에. 여태까지 수많은 마왕이 쓰러졌지만, 왕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았소. 이 세상은 어차피 망해갈 것이오. 어차피 망할 세상이라면 난 헛수고를 하지 않겠소. 난 황무지에서 돌의 동포들과 세상의 끝을 맞이할 것이오.”


현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갔습니다. 절벽이 많은 협곡에는 마법사들이 탑을 짓고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한 때,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마법사들이었지만, 왕의 횡포에 몸을 숨겼습니다. 현자는 마법사의 탑에 사는 제일 강한 마법사에게 용사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현자님,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아는 게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왕의 존재에 대해서는 마법사를 쫓을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마법사의 탑에 있으면서도 그런 강한 기운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왕은 거짓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폭정을 마왕을 핑계로 숨기는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왕의 횡포에 쓰러져 가는 백성들이 불쌍합니다. 용사처럼 뛰어나고 강한 자가 나타나면 백성들은 희망을 가질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제 동료들과 다른 세계를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자님처럼 선택받은 자가 따라온다면 좋을 겁니다. 저희와 같이 이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납시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전 용사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마법사들을 뒤로 한 현자는 동굴 속에 살며 뭐든 만들어내는 대장장이를 찾아갔습니다. 뛰어난 무기를 만들면서 그 무기를 가지고 잘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자가 용사가 되어달라고 요청하자, 대장장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도 안 되겠습니다. 저는 왕의 거짓말에 제 작품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땅은 이미 풍부한 기운을 잃었습니다. 그럴 바에야 다른 곳으로 가야지요.”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어쩌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운이 나쁜 거지요.”


현자는 대장장이와 헤어지고 나서 깊은 마법의 숲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고대부터 마왕을 물리쳐온 엘프 전사들이 있었습니다. 엘프들은 정령들을 통해서 현자가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현자의 말에 거절했습니다.


“저희는 더이상 인간세계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왕은 우리를 숲으로 몰아넣고 고향을 빼앗았습니다. 원수 같은 왕을 위해 싸울 수는 없습니다.”


“이 세계가 절망에 빠져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게 자연스러운 순리였겠죠. 이 세계는 이제 풍요를 잃었습니다.”


마왕과 싸울 수 있는 강한 전사들은 현자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염세적이었고, 마왕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이에 왕의 폭정이 심해져, 온 나라가 점점 황폐해졌습니다.


백성들은 왕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했고, 그 원망이 하늘을 찔러 다시 땅을 마르게 했습니다. 강한 구원자들은 세계를 외면하고, 약한 백성들은 세계를 혐오하면서 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현자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왕은 마왕이 북쪽 끝의 땅에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았습니다. 용사를 데려간다고 해도, 백성들의 눈을 속이는 짓만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자는 용사를 꼭 북쪽 끝의 땅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세계에 미련을 가진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던 중, 현자는 어느 마을에서 매우 강한 용병을 만났습니다. 그 용병은 1년 전부터 마을에 자리를 잡고 해결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용병들이 그와 싸웠지만, 그 누구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현자는 그 해결사를 찾아갔습니다.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현자는 마왕을 물리쳐야 한다고 그 해결사를 설득했습니다. 그 해결사도 현자의 말에 듣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도 저는 용사를 구해서 세계를 구하고 싶습니다.”


“세계를 구하면 네게 뭐가 떨어지는데?”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절망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가혹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용사가 마왕을 잡았다는 거짓 소문을 내어서? 그다음 그 용사는 어떻게 할 거 같아? 그 폭군의 목을 잘라버리면 되나? 당신이 하는 것은 기만이야.”


해결사의 말에 현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봐, 솔직히 말해봐. 그렇게 사람을 속여가면서 마왕을 잡으면 뭐가 떨어지지? 세계 최고의 구원자라도 될 거야?”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백성들이 영웅적인 존재에 희망을 얻길 바랄 뿐입니다.”


“말은 번드르르한데. 그 평범한 사람들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 죽어도 그만 아니야? 차라리 당신들이 만났다는 그 강한 구원자들과 이 세계를 떠나버려. 어차피 이 세계가 망하고 나면 그 약한 사람들은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걸?”


“그럼 당신은 어째서 평범한 백성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겁니까?”


현자의 질문에 해결사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마치 한 방 맞은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유쾌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게. 나는 산꼭대기에서 내려보기보다 진흙탕에서 아우성치면서 위를 보는 게 좋더라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현자라면 딱 듣고 알아듣지 그래?”


“당신은 그 약한 사람들을 구할 생각이 있는 거군요?”


“흠, 그편이 재밌어 보이니까.”


용사는 결국 현자와 용사를 잡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사실 이 세계 어디에도 마왕이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둘은 그저 피해가 심한 마을을 따라 여행했습니다. 그들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맹수들과 괴물들을 잡다가 정말로 마왕을 찾았습니다. 이 대륙의 풍요로움에 입맛을 다신 마왕이 정말로 주민들을 먹어치웠던 겁니다. 그 마왕의 숨결이 땅을 상하게 하고, 하늘을 마르게 한 것입니다.


“너희들은 정말 멍청이구나.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없을 걸 알면서도 찾아온 것이냐?”


마왕은 탐욕스럽게 혀를 내두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계의 모든 군주들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금은보화를 안겨주었지. 너희들도 다시는 만지지 못할 금은보화를 주겠다. 그럼 네놈들이 안타깝게 여기는 백성들도 구할 수 있지.”


그것은 무척이나 달콤하고 매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마왕을 물리친다고 해서 땅이 다시 기운을 되찾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용사는 마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내 의뢰는 네놈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용사는 마왕이 다시 달콤한 말을 하기 전에 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밤낮으로 기나긴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용사는 매우 강했고, 결국 끈질기게 싸워서 마왕의 목을 베었습니다.


용사와 현자는 마왕의 목을 가지고 왕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용맹한 영웅의 출현에 백성들은 모두 달려가 폭군을 베어달라고 했습니다. 용사와 현자는 살이 뒤룩뒤룩 찐 왕을 베었고,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백성들은 용사와 현자를 새로운 나라의 군주로 세우기로 했습니다.


현자는 마왕을 물리친 용사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용사는 뚱한 표정이었습니다.


“네가 왕이 되는 게 어때?”


“마왕과 왕의 목을 벤 건 너야. 네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난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은 전혀 몰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나를 설득했던 그 지혜로 말이야.”


현자는 깜짝 놀랐지만, 용사는 현자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용사는 현자의 의형제가 되어 왕을 모시는 공작이 되었습니다. 현자는 그의 지혜로 나라를 다스렸고, 용사는 현자의 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자 평화를 사랑하는 왕국, 프로미스 왕국의 건국 설화입니다.


메르헨 대륙은 여러 문명이 꽃피는 풍요로운 대륙입니다. 비록 이야기 속처럼 돌을 깨는 장수, 대장장이 전사, 엘프, 마법사는 없지만, 대신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왕과 공주, 왕자, 기사들이 살았습니다.


수많은 농부, 어부, 상인, 도적들이 살았습니다.


그 중, 프로미스 왕국은 제법 크고 부유한 왕국이었습니다. 프로미스 왕국은 현자처럼 지혜로운 왕이 지배하고 있답니다.


왕국은 정말로 평화로웠습니다. 말썽을 부리는 괴짜 같은 공작이 있는 것을 빼면요. 용사처럼 용맹한 피를 이어받은 유이오페 공작들은 제멋대로 굴기로 유명했습니다. 아무리 왕의 의형제인 집안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관심 없고, 엉뚱한 일만 벌여댔습니다. 현자의 피를 이어 왕이 된 엘리엇 가문과 사이가 좋다고 하지만, 공작들의 괴팍한 성격은 왕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현 공작이 왕성은 시시하게 여겨서 시골에서 자리 잡고 놀고 있으니 다행이었죠. 유이오페 공작이 나라를 주무르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왕국은 평화로울 겁니다.

그가 다른 장난감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말이죠.


***


“또 그놈이 돌아왔어!”


한 시종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습니다.


오늘은 그 기사가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성안은 다시 진흙탕처럼 마구 어지러워질 겁니다. 시종이 가져온 소식에 다른 시종들도 인상을 쓰면서 머리를 짚었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시종은 의아해하면서 다른 시종들을 보았습니다.


“왜 그러세요?”


“뭐야? 넌 아무것도 몰라?”


“시골에서 올라와서요.”


“에휴.”


한 시종이 한숨을 쉬자 다른 시종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 10 기사단 알지? 거기에 정말 싸가지가 없는 기사가 있어.”


“헉! 기사님을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거에요?”


신입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입을 막았지만 다른 시종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랏님도 욕하는데 겨우 기사가 별 대수야? 어떤 놈이라도 그 기사를 본다면, 정말 괴팍하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할 거야. 혈통이 좋아서 천재적인 실력이지만, 그럼 뭐해. 인간성이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유명한 유이오페 공작의 아들이란 말이야! 말 그대로 괴물의 자식이 성안에 들어온 거지!”


평화로운 프로미스 왕국에 한 별난 기사가 있었습니다. 시종들은 물론, 귀족들과 왕족들까지도 혀를 내두르는 괴팍한 기사였죠.


“왕자님이 그렇게 아끼시는데 그렇게 무시하더라고. 무례하기 짝이 없어.”


“우리 주인님이 그러던데, 선물 같은 건 죽어도 안 받는대. 자기 집안 믿고 절대로 남들이랑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 무섭다는 제 10 기사단장님도 그 놈이 무서워서 명령도 못 내린다고 하더라. 훈련하는 꼴을 못 봤대.”


“그런데 칼 써는 실력은 그렇게 좋다네! 역시, 괴물의 집안이라 그런지 검술의 천재인가 봐. 더 재수 없지.”


“그 성질머리는 어디 가도 못 고쳐. 그거 아냐? 10살 때부터 여기에 있었는데도 성격이 저 꼬라지라고.”


“괴물의 피는 지울 수 없는 거지.”


“근데 진짜 피에 미친 놈이라고 하더라. 전쟁터든 어디든 칼을 쓰는 곳이면 다 간대!”


“이러다가 여기서 살인 저지르는 게 아니야?”


유별나다는 유이오페 공작의 아들인 그 기사는 그 존재만으로도 성을 뒤흔들었습니다.


그 기사는 어릴 때부터 매우 괴팍하고 오만하고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기사단에 들어왔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 고약한 성미는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단에 입단할 때부터 그 기사는 온 성안의 사람들을 술렁이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상사였던 국왕은 그런 기사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비록 실력이 좋고, 세운 공이 많았지만, 귀족은 물론 왕족들에게도 딱딱하게 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은 그 말썽쟁이 기사를 성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 괴짜 공작이 아들의 일을 빌미로 무슨 일을 할지 몰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왕은 대신 그 기사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주어서 쫓아내기로 했습니다.


왕은 어느 날 기사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웃 나라 라플란드에서 원조를 요청해왔다. 커다란 설산 호랑이가 라플란드의 백성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우리가 마땅히 도와야 하네. 라플란드로 가서 설산 호랑이를 잡아 와라.”


라플란드의 설산 호랑이는 집채처럼 크고, 매우 날쌔며, 포악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라플란드의 뛰어난 사냥꾼들도 그 호랑이를 만나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 호랑이를 잡으러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의 옆에 있던 서기관은 왕의 명령에 새하얗게 질렸지만, 그 괴팍한 기사는 고개를 숙여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기사는 라플란드로 가서 1년간 소식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사가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명령을 수행할 수 없어서 도망쳤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겨울, 기사는 새하얀 호랑이의 가죽을 지고 나타났습니다. 기사는 호랑이 가죽을 왕에게 바치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라플란드의 군주가 폐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설산 호랑이 가죽을 바쳤습니다.”

기사의 말에 왕은 웃으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대는 과연 기사 중의 기사로다.”


왕의 옆에 서 있던 왕자는 이에 눈을 반짝였습니다. 이 나라의 단 하나뿐인 왕자는 어릴 적부터 이 기사를 친구라고 부르면서 총애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사를 지켜본 왕자는 이 기사의 괴팍한 성정을 좋게 보았습니다. 요새 겁 많고 몸을 사리는 기사들에 비하면 그 기사는 전 세계의 전쟁터를 돌아다닌다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기사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경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거라고 믿었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용담을 들려줄 수 있는가?”


왕자의 말에 기사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사이지 음유시인이나 광대가 아닙니다. 임무 내용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보고하겠습니다.”


주변 신하들은 기사를 흘깃 보면서 수군거렸습니다. 왕자를 대하는 기사의 태도는 너무나도 불손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자는 그저 기사의 고지식함에 감탄했습니다. 왕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머리를 짚었습니다. 아무리 불손한 기사라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임무를 수행한 기사를 자를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기사의 말을 못 들은 듯 모른 척했습니다. 그저 이 기사에게 다른 임무를 주어서 눈앞에서 치우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왕은 헛기침하고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자마자 이렇게 명령하는 것은 미안하네만,”


기사는 무뚝뚝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왕을 올려 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왕이 이렇게 일을 시키는 게 당연한 것처럼 듬직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바닷가에서 커다란 상어가 나와서 어부들이 고생한다고 한다.”


왕은 그 기사에게 커다란 상어를 잡아 오기를 명령했습니다.


그 상어는 무척 사납고 공격적이어서 해적들도 피하는 무시무시한 동물이었습니다. 그 상어를 잡아 오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기사는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는 상어를 잡으러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기사는 상어를 실은 수레를 가져와서 바쳤습니다.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그대는 과연 기사 중의 기사로다.”


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장 기피하는 일을 맡겼는데 이렇게 해 올 줄 몰랐던 것입니다.

왕의 옆에 서 있던 왕자는 이에 눈을 반짝였습니다.


“나는 경이 자랑스럽네. 나중에 사석에서 무용담을 들려줄 수 있는가?”


왕자의 말에 기사는 대답했습니다.


“업무 외 사적인 만남은 계약에 없는 일입니다.”


신하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왕자가 친히 먼저 친해지자고 하는데 이렇게 잘라내는 모습이 무척 건방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은 모르는 척하고 딴청을 피웠습니다. 기사의 불손을 빌미로 들어 해고했다간 왕자가 크게 상심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의 동요보다는 사랑하는 왕자가 상심하는 게 더 싫었습니다.


“돌아오느라 피곤할 텐데, 오자마자 이렇게 명령하는 것은 미안하네만,”


“명을 내리십시오, 폐하.”


기사는 명을 받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대답했습니다.


“루칸 제국과 콜레트 공화국 사이에서 전쟁이 터졌다. 우리는 루칸 제국의 형제 나라로써 이를 돕지 않을 수 없다. 콜레트의 장군, 윌리엄 브룩스턴의 목을 베어와라.”


왕의 말에 신하들은 수군거리면서 서로를 보았습니다.


루칸 연합과 콜레트 공화국 연방의 전쟁은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세계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공화국의 장군은 한 시대를 주름잡는 엄청난 영웅이었습니다.


그의 적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며, 포로로 살아남아도 비참하게 고문당하다가 사지가 잘려 죽는다고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기사는 나서서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왕성의 사람들은 그 기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면서 수군거렸습니다. 아직 성인도 안 된 애송이가 온갖 전쟁에 승리한 영웅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하들은 그 기사가 멍청하지 않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멍청하게도 장군의 목을 베러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1년 후, 그 기사는 왕 앞에 눈을 부릅 뜬 장군의 목을 바치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루칸의 황제께서 전리품으로 그의 목과 포로, 땅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대는 과연 기사 중의 기사로다.”


왕의 옆에 서 있던 왕자는 이에 눈을 반짝였습니다.


“나는 경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거라고 믿었네.”


왕자의 말에 기사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기사의 대답에 신하들은 그저 눈치를 보았습니다. 왕은 그 기사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왕자에게 전혀 충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왕은 그 후로도 그 기사에게 엄청난 임무를 내렸습니다. 기사는 그때마다 고개를 조아리고, 당연하게 임무를 성공했습니다. 왕자는 그 기사를 진정한 기사라고 추켜세우면서 총애했습니다.

왕은 그 기사를 해고하려면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놈에게 어려운 임무를 줄수록 떼어낼 수 없게 된다.”


왕은 결국 그 기사에게 기사단장의 자리를 주어, 자리 잡게 했습니다. 그 기사는 스스로 국경의 작은 마을을 골라 가장 천대받는 기사단으로 갔습니다.


왕성에서 그 기사가 사라지자 왕은 이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를 국경을 지키는 시골 기사로 두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입니다. 그 기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흉악한 맹수를 잡고, 전쟁터에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들이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국경의 기사단이 근처의 도적단을 소탕했다고 합니다.”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그 기사단은 본래 실적이 좋지 않거나 징계를 받아서 좌천당한 기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마을의 기사들은 파견한 관리자들을 쫓아내고, 술과 도박을 하면서 임무도 제대로 하지 않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가 내려가서 단장의 자리에 앉자, 그 기사들은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듯 용맹한 전사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사에게 기사단을 쥐어 주자, 날개라도 달린 듯, 주변의 적들을 정리했습니다. 결국 그 기사단장이 이끈 기사단은 다시 국제적으로 알려져,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은 그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왕은 그 기사단을 성안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사단의 보조로 붙였습니다. 말이 보조였지, 직접 순찰을 다니면서 온갖 잡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는 그것에 만족하면서 일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좋지 않아, 귀족들이 수군거리면서 그 기사를 헐뜯었습니다. 다시 성안이 그 기사에 대한 추문으로 부풀어 올라 언제라도 터질 것 같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왕은 귀족들의 불평을 들으며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눈앞에서 치우려고 힘든 일을 시켰는데, 세계를 흔들었고, 얌전히 있으라고 시골에 보냈더니, 쓸데없이 활약하여 결국 수도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떼어낼 수도 없고, 왕은 그 기사 때문에 근심이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은 기가 막힌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렇지! 여태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해치우라고 한 게 문제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잡도록 명령하니까 놈이 기어코 해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잡아 오라고 한다면 아무리 그 기사라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왕은 요새 백성과 귀족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는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실제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소문 속의 존재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왕은 자신의 지혜에 무릎을 치면서 그 기사를 불렀습니다.


“나의 충성스러운 기사여.”


왕의 부름에 그 기사는 눈을 깜빡이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왕은 편지를 기사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기사는 의아하게 여기면서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건 ‘마왕성’의 전단지라네. 자네는 알 지 모르지만, 어떤 상인이 만든 길드인 듯 하네. 그런데 규모가 엄청나서 말이야. 왕국은 물론 제국에서도 많은 돈을 벌고 있다네. 아무도 ‘마왕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네.”


왕의 말에 기사는 의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긴 요즘 세상에 마왕 같은 게 있을 리 없지요.


“하지만 마왕성의 현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이 문제야. 그들은 용사가 될 수 있는 여행이라고 현혹하면서 젊은이들을 꼬드기고 있네.”


“네···.”


“돈을 주면 용사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있지도 않은 마왕을 내세워서 말이야.”


왕은 목구멍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이 기사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니 신났습니다.


“거기다 이 곳의 대표는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하지 않나. 그 대표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다고 하네. 그런 수상쩍은 길드가 왕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위험한 사상을 불어넣을지 걱정스럽네.”


“그렇습니까.”


“그래서 자네에게 특급 기밀의 아주 중요한 임무를 주려고 하네.”


“네, 폐하.”


“자네라면 나의 걱정을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왕의 근엄한 목소리에 기사는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자네의 기사단에게 맡기는 일이 아니네. 자네에게 맡기는 거야. 이 일을 위해 자네는 기사단을 나와 비공식적으로 극비로 활동해주길 바라네. 이 일이 끝나면 자네가 다시 복귀할 수 있네.”


“네?”


“자네에게 용사가 될 기회를 주겠네. 마왕을 잡아 오게. 이 길드의 회장이라고 하는 아셀 드웰을 꼭 잡아오도록.”


그 기사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아렸습니다.


“폐하의 명령을 받습니다.”


“얼른 짐을 싸서 출발하게.”


그 기사는 의아해하면서도 왕의 명령대로 성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왕은 기나긴 여행이 될 것이라면서, 성안의 모든 짐을 다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는 그 말대로 모든 짐을 챙겨서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왕은 기사가 나가자 환호성을 지를 뻔했습니다.


왕은 그 기사가 있던 자리를 빨리 치워버릴 것을 명령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그 기사는 돌아오지 못하겠죠. 영원히 없는 것을 찾아 헤매면서 말이에요.


왕은 왕성의 골칫덩어리를 치우고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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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2-03. Snow=White (22) 20.05.25 30 0 12쪽
136 2-03. Snow=White (21) 20.05.20 37 0 11쪽
135 2-03. Snow=White (20) 20.05.19 22 0 14쪽
134 2-03. Snow=White (19) 20.05.18 36 0 13쪽
133 2-03. Snow=White (18) 20.05.15 24 0 15쪽
132 2-03. Snow=White (17) 20.05.14 26 1 11쪽
131 2-03. Snow=White (16) 19.09.09 50 0 14쪽
130 2-03. Snow=White (15) 19.08.29 29 0 11쪽
129 2-03. Snow=White (14) 19.08.28 23 0 11쪽
128 2-03. Snow=White (13) 19.08.27 35 0 14쪽
127 2-03. Snow=White (12) 19.08.11 58 0 13쪽
126 2-03. Snow=White (11) 19.08.02 33 0 12쪽
125 2-03. Snow=White (10) 19.07.31 45 0 14쪽
124 2-03. Snow=White (9) 19.07.30 33 0 12쪽
123 2-03. Snow=White (8) 19.07.29 41 0 11쪽
122 2-03. Snow=White (7) 19.07.22 43 0 12쪽
121 2-03. Snow=White (6) +2 19.07.07 85 0 11쪽
120 2-03. Snow=White (5) 19.07.01 37 0 14쪽
119 2-03. Snow=White (4) 19.06.24 60 0 13쪽
118 2-03. Snow=White (3) 19.06.21 39 0 13쪽
117 2-03. Snow=White (2) 19.06.20 59 0 13쪽
116 2-03. Snow=White (1) 19.06.19 97 0 9쪽
115 2-02. 그 손이 놓친 것: Epilogue. 미다스의 황금손 19.06.18 51 0 14쪽
114 2-02. 그 손이 놓친 것 (10) 19.06.17 47 0 17쪽
113 2-02. 그 손이 놓친 것 (9) 19.06.14 48 0 10쪽
112 2-02. 그 손이 놓친 것 (8) 19.06.13 41 0 12쪽
111 2-02. 그 손이 놓친 것 (7) 19.06.12 64 0 9쪽
110 2-02. 그 손이 놓친 것 (6) 19.06.11 44 1 11쪽
109 2-02. 그 손이 놓친 것 (5) 19.06.10 3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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