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3 : 대화
작은 회전이 점점 커져 회전을 위한 공간을 구겨낼 때쯤,
회전 가운데에서 한 생명이 만들어졌습니다. 인간 식으로 말하면 사건의 지평선에서 튀어나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변의 정보를 수집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생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안개 한 줌 쥐어 들여다보는 데 몇 년에서 몇백 년이 걸린다고 해도요.
우주가 따듯하던 시절 생명은 다른 생명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들이 너무 멀어지고 목소리가 늘어져 전혀 알 수 없어 괴로울 때까지만요.
그래서 생명은 자신과 대화할 하나를 어떻게 만들어냈습니다. 은하의 한 곳에 있던 생명을 골라내 가공해서요.
이런저런 일이 있은 후 절망을 이기지 못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들어가버렸고요.
만들어진 하나는 몇억 년 동안 수많은 걸 관찰하고 탐구했고요,
역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혼자 남겨진 다른 생명은 자신이 제작된 요령을 참고해 다른 생명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덟이 남았는데, 이 아홉 조차도 이런저런 일을 겪고 이제 '어머니' 와 계속 겨루기로 한 다섯이 모여 이야기하고 있네요.
이들의 대화는 인간하고는 당연히 다릅니다. 인간의 대화는 2차원 위에 기록할 수 있지만 이들의 대화는 3차원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순차적으로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을 향하는 게 아니라 부피 대 부피로 만나 서로 맞물려가며 대화를 만듭니다. 이미 지난 말을 고치기도 하고, 그것이 대화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주고요.
애니메이션 안의 로봇이 변신합체 할 때 서로 얽혔다 풀렸다 하는 부분이 수만 곳에서 작용한다고 보면 비슷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다섯 명이 모여 열심히 떠들고 있으니 엄청 산만하죠. 대화가 어지러워서 지독한 칼로리 낭비가 될 정도입니다.
어쨌든 그 복잡한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만 추리면 아래와 같은데요.
"큰형이 문제라고 항상. 의욕만 불타서 일은 벌리고 결국 아무것도 못 하면서 진전이 없는 큰형이 다 말아먹는다고."
"여섯째. 너는 어차피 이길 생각이 없지 않았느냐? 네가 재미에만 집중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말을 조심하거라."
"얘기를 하면 좀 듣지. 거기에서 그 시점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그렇게 뻔뻔할 일이야?"
"의미 없는 소리를 할 거면 차라리 침묵해라, 여섯째보다 어리석은 것. 너와 나누는 정보량이 아깝다. 아예 다섯째처럼 잠들어버리지 그러냐?"
"형이 셋째에게 그런 소리 하면 안되지. 셋째는 형보다는 현명하다고."
"너는 할 일 없으면 렌즈 역할이나 해라. 성질머리만 급해놔서는."
"싸우자고 부른 거야?"
"이제 설명할테니 잘 들어라."
대충 이런 식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소통해도 중요한 건 한 줌인 거죠. 우리의 대화처럼.
"나는 승리자의 권리를 갖고 있다. 무얼 할 지 미루어두었을 뿐이니라. 그 조건을 이용해 어머니보다 먼저 그 안에 들어갈 것이다."
"큰형 혼자 들어가던가."
"네놈들 누구도 안 따라온다면 그렇게 하겠다. 들어라, 나는 네놈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머니가 할 수 있다면 나는 할 수 있다. 네놈들도 충분히 알지 않느냐?"
"형이 맨 앞에서 받아낼테니 우리는 따라만 가라?"
"그때처럼 날 뒤에서 찌르면 네가 선두에 서야 할 것이다. 넷째야."
"지난 일 가지고 잔소리는. 좋아. 나는 흥미가 있는데, 다들?"
나머지는 생략. 적당히 동의하고 또 무모한 짓을 하겠다고 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 살면서 스릴에 중독되었거나 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그럼 모든 이야기는 여기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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