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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비행장

좋은 스킬 잘 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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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행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06 13:07
최근연재일 :
2023.02.26 09:52
연재수 :
2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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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2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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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18,896

작성
23.02.11 19:35
조회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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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3부 32화 : 미래의 방향 (6)

DUMMY

니콜로의 얼굴을 보니 두렵다. 귀찮음 외의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아서. 2천만의 출력을 갖고 우리 열 명에 잠깐 생겨난 한 명을 앞에 두고도 잠깐 시간이 드는 상황으로 인지한다는 것이... 우리가 악을 쓰고 달려들어도 기온과 습도가 계속 치솟고있다. 온도의 상승점에는 한계가 없다. 반드시 우리가 먼저 쓰러진다!


새삼 실감난다. 최소 몇 억년을 존재해왔고 앞으로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 그럴 생물이라는 게.


그리고 지금 나타난, 자다가 일어난 것 같다고 말한 다른 사람의 코어를 주렁주렁 갖고 있는 나는 상황을 보다가 니콜로에게 한걸음에 뛰어 그 얼굴을 잡는다. 예상 못 한 행동인지 니콜로가 잠시 그대로 멈추고, 나는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혔다가 박치기를 먹인다.


...


...잠깐만.


내 눈이 잘못되거나 한 게 아니다. 스트레스로 뇌의 피로가 가중되어서 허상을 본 것도 아니다.


달려가서 그냥 들이받았다. 머리로. 출력 2천만을 상대로.


어떻게? 그 정도의 출력이 있는 걸로 보이지는 않아.


답은 우리를 불러온 미라가 준다.


"허수질량을 이해하고 있어. 나와 비슷하게."


지체할 이유가 없다.


"<헥사 링크>! 저것과 나, 미라부터 효진이까지!"


두 명의 나, 두 명의 미라, 두 명의 효진이.


니콜로를 잠시 당황시킨 '나'는 연결되자마자 재촉한다. '지원! 더 많이. 더 강하게! 모두 나에게 몰아!' 그리고 계속 움직여 공격한다. 미라가 설치한 방패 뒤로 숨고, 레일 위로 움직여 자길 빠르게 움직이고.


니콜로가 밀려난다. 그리고 120도까지 치솟았던 기온이 급히 떨어진다! 물론 사람처럼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드를 올리거나 하지 않고, 아무리 맞아도 머리카락 한 가닥만큼의 손상도 없지만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진 것 같다.


그렇다. 니콜로는 항상 돌발 상황에 잠시 멈췄다. 언제나. 미리 연산해두지 않은 변수 앞에서...


그리고 다시 움직일 때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끝났을 때. 니콜로가 고개를 한 번 깊게 끄덕이고 손을 든다.


"네놈은."


<헥사 링크>로 연결되어서 알 수 있다. 지금 니콜로를 두들기고 있는 나는 웃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한다. '연결 끊어. 잠깐이지만 재미있었다.'


"허상이로구나."


니콜로를 때리던 나의 목이 그 손으로 날아가 붙듯이 잡히고,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과 몸이 분리되어 아래로 떨어진다. 시체는 바닥에 닿지 않고 그 전에 사라진다.


이거. 내가 죽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지는 않네. 어떤 나였는지 알기도 전에.


일곱 번째 세션의 나도 어느 샌가 없고, 그대신 빈 자리가 생겨서인지 가장 처음, 나에게서 분리되었던 내가 혀를 찬다. 갑자기 나타나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모두 흠칫 놀랐지만.


니콜로가 다시 공간을 잡아뜯기로 한 것 같다. 한 번은 탈출했고 한 번은 회피했지만...


나와 같이 여기로 들어온 미라가 말한다.


"한번. 앞으로 한번 더 탈출할 수 있어."


나는 다른 미라를 쳐다본다. 미라는 이 곳의 구조를 머리에 떠올리고 나는 그걸 <헥사 링크>로 읽는다.


그나마 니콜로를 옭아매던 <커다란 공허>가 분석당했는지 사라지고, 니콜로는 옷매무새를 다듬은 후 시작한다. 우릴 얽어맬 모든 것.


쓸 수 있는 빈틈은 찾았다.


니콜로는 계속 분석하고 자신을 그에 맞춰 변화시키니 단 한 번에 성공시켜야 한다.


나는 다른 나를 본다. 표정을 보니 같은 결론인 듯하다. 나는 미라에게 말한다.


"탈출에 쓸 에너지, 생성으로 돌려줘."


"뭘 하려고."


"성공 확률 50%은 넘을 공격?"


"다른 안은?"


"하면서 생각해볼게."


"알았어."


니콜로를 방해한 <위대한 공허>도, 물질영역에서 이탈하는 허수질량을 이용한 육탄전도 이해했다. 하지만 둘 다 결국에는 통하지 않아.


2천만이라는 저 까마득한 출력이 문제가 아니다. 한 번 당하면 대응책을 알아내고 적용하는 저 능력이 문제.


나는 <헥사 링크>를 해제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할 것에 대해 점검한다. 미리 보여줄 수는 없으니 머릿속에서 최대한 준비해둔다.


이용할 것은 셋. 두 명의 미라가 이 곳을 만든 원리. 흩어진 정보 한 조각을 끌어와 구현할 수 있는 허술함. 그리고 미라만 할 수 있었던, 그것도 균열 안에서만 가능했던 능력.


노릴 것은 하나. 니콜로가 낯선 것 앞에서 연산을 멈추는 것.


이대로는 계속 공격하고 방해해봐야 마지막에는 단 하나의 결과만 남는다.


그러니 홀가분하다. 차라리 편하다.


어차피 무얼 해도 지는데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니. 실패해봐야 인류 전체가 살아있는 채 멸종할 뿐이라니. 죽어서 멸종하는 것과 그렇게 다를 것도 없잖아.


미라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미라란 건 알겠는데 어느 미라인지 모르겠네.


아마도 여기서 날 기다린 미라겠지. 역시나.


"부담 갖지 말고."


"하하하하."


"네가 하려는 그거, 발동 자체는 어렵지 않아."


"그렇지?"


"그래도 같이 온 사람들과 연결은 유지해."


"어, 왜?"


"네게 필요할거야."


"너는?"


미라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


할 일이 정해졌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할 뿐이다.


그렇지만, 긴장된다. 미지의 영역이다. 어쨌든 해본 적은 없는 일이니까. 나는 앞으로 걸어나가고, 니콜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긋지긋하구나."


"인간을 아시면서 그래요. 포기한 사람들이 뭘 남긴 적은 없죠."


"전쟁을 포기하지 못한 것들이 남긴 것은 안다. 욕심을 잊지 못한 이들이 남긴 것도 알고."


"뭐 양날의 검 아니겠어요."


준비한다.


방금 한 대화 탓인지 어제 막내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네 번째 질문.


"뭘 남길 것인가, 그런 질문일 것 같은데요."


막내는 웃었지.


"너무 뻔해도, 어떻게 해? 세 번째 질문 다음에 올 건 그뿐이야."


"우리는 죽지만, 남긴 건 계속 이어지죠."


"그렇지, 아폴로를 달에 보낸 사람들이 다 죽어도 달에 간 사실은 남아."


"어떻게 죽을까와 비슷한 질문이기는 한데..."


"어떻게 죽을까는 한없이 개인에 한한 질문이잖냐? 답을 듣다 보니 재미없더라고."


"그러게요. 자신에 대한 파악이 끝났으면 이제 자기 바깥을 봐야 하죠."


"그래, 이진협. 직접 물어보지. 너의 대답은 뭐냐?"


질문이 뭔지 떠올릴 때부터 답은 정해뒀었다.


"방향을 남길 거예요."


"오. 방향?"


"미래를 향하는 방향요. 다들 이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같은 거."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그래, 그렇다.


아마도 지금 한 번뿐인 기회. 이것마저 니콜로가 적응해버리면 당장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니콜로도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온다.


생각한 걸 하기 전에 잠시 할 일을 연습한다. 일단은 익숙한 쪽부터.


피눈물 자국이 있던 복수하던 나.


좀 빌려오겠습니다, 사라져버린 세상이여.


인상 나쁜 '나'는 등장하자마자 <커다란 공허>를 쏟아붓지만 이제 니콜로에게는 파악이 끝난 공격. 안에 들어오는 모든 걸 어디론가 튕겨내는 과전하 공간... 가볍게 흡수해버린다.


니콜로는 이게 의미가 있냐는 표정으로 날 보지만,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맏이.


이제 미라의 <인과확장>을 사용할 거다. 균열 안에서 잠깐 동안 다섯이 되는 바로 그것. 자청비 현미라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준 그 능력을.


그것을 반복하며, 사라진 '나'를 끝없이 빌려온다. <헥사 링크>로 연결한 채.


"그거 압니까, 니콜로."


"말해라."


"인간이 쓰는 컴퓨터에는 오버플로우라는 개념이 있어요."


니콜로가 멈춘다. 젠장, 힌트를 줬나?


더 말할 시간 없다. 시작한다.


"<인과확장>, 불완전판."


나와 다른 나, 둘에게서 각각 네 명이 생성된다.


반복한다.


<인과확장>.


확장된 나는 즉시 다른 나를 불러오고, 닥치는대로. 그냥 닿는 대로.


그런 다음 다시 <인과확장>.


흐름을 유지한다. 각자 <헥사 링크>를 쓰며.


말을 걸지 말 걸 그랬지. 입이 방정이야, 나는. 니콜로가 공간째 뒤집어버리며 세균처럼 분열하던 나를 뒤엎어버린다. 방금 한 20명 정도의 내가 산산조각났고, 열 명 정도의 내가 죽지 못한 채 휩쓸렸다가 사라진다.


얼마나 아픈지 생생하게 느껴지네. 하지만 계속한다. <인과확장>, 정신없으니 이름을 붙일까. 이미 사라진 나를 부르는 거니까... <도굴>?


기분나쁜 단어지만 우스우니 써야지. <인과확장>으로 끝없이 나를 늘리고, 늘어난 내가 <도굴>을 가져온다.


니콜로가 그 많은 나 중에서 날 알아보고 달려와 목을 잡는다.


"미쳤느냐."


"날 죽여도 안 멈춥니다. 이제."


"그만둬라."


지금 니콜로가 자길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몰랐다면 좀 대답하기 편할 텐데.


"계속할 겁니다."


"그만두라고 했다!"


몇 번째의 나인지, 어디서 뭘 먹고 뭘 했는지 모를 나 여러 명이 니콜로를 붙잡고 나에게서 떼어낸다.


머리가 하얗다.


다섯 번 반복했으니까 지금 구현된 나는 만 오천 명 정도. <헥사 링크>로 이어져있는 채로.


<인과확장>의 한계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그사이 분열해 나타나는 수가 더 많다. 625명이 사라진 후 3,125 명이 사라지겠지만 그건 78,125명이 나타난 뒤에 사라지겠지.


니콜로가 내 주변을 모조리 날려버린다. 나만 제외하고. 내 바로 옆에 있던 한 명의 나는 포함해서.


갑자기 만 번 정도의 죽음을 겪는 바람에 기절할 뻔했지만 일단 버텼다.


하지만 잠시 휘청이는 건 어쩔 수 없고, 니콜로가 내 머릴 잡는다. 표정을 보니 고민은 거의 끝냈다. 날 죽일 셈이로군.


나는 피식피식 웃고, 니콜로는 약간의 미련이 있는지 날카로운 에너지를 뽑고 조금 머뭇거린다.


망설이지 말았어야지.


두 명의 효진이가 쏘아낸 공격이 니콜로가 모은 에너지에 직격하고, 두 명의 학선이가 나를 니콜로에게서 떼어낸다. <아바타>를 쓰는 삼촌이 커다랗고 불타는 손으로 니콜로가 있던 곳을 내려찍고, 다른 삼촌이 돌풍을 일으켜 나를 숨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모두가 나와 함께 있다.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할 뿐이고...


해낼 거다.


이길 것이다.


나는 다시 <인과확장>과 <도굴>을 반복한다. 조금 서둘러서.


수천수만의 규칙성 없는 나를 여기 만들어내기 위해.


그것이 니콜로를 멈출 것이다.


작가의말

2월 12일은 휴재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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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마지막화 : 너의 세상, 나의 세상 23.02.15 105 4 10쪽
259 3부 34화 : 하나의 끝은 다른 끝을 향하고 23.02.14 95 4 12쪽
258 3부 33화 : 미래의 방향 (끝) 23.02.13 100 4 10쪽
» 3부 32화 : 미래의 방향 (6) 23.02.11 96 4 11쪽
256 3부 31화 : 미래의 방향 (5) 23.02.11 120 4 10쪽
255 3부 30화 : 미래의 방향 (4) 23.02.10 98 4 11쪽
254 3부 29화 : 미래의 방향 (3) 23.02.08 101 4 11쪽
253 3부 28화 : 미래의 방향 (2) 23.02.07 96 4 10쪽
252 3부 27화 : 미래의 방향 (1) 23.02.05 9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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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3부 25화 : 사람마다 다르고 23.02.03 97 4 10쪽
249 3부 24화 : 구원자 23.02.02 96 4 11쪽
248 3부 23화 : 다른 결말 23.02.01 108 4 10쪽
247 3부 22화 : 증명 (3) +2 23.01.31 122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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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3부 19화 : 광고 시간 23.01.28 95 4 10쪽
243 3부 18화 : 개시 (8) 23.01.26 9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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