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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비행장

좋은 스킬 잘 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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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행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06 13:07
최근연재일 :
2023.02.26 09:52
연재수 :
263 회
조회수 :
52,440
추천수 :
1,111
글자수 :
1,318,896

작성
23.02.13 17:03
조회
100
추천
4
글자
10쪽

3부 33화 : 미래의 방향 (끝)

DUMMY

많은 나 자신이 급작스레 나타나고, 그만큼의 내가 사라진다.


<헥사 링크>는 규칙성 없이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다. 몇 번 중첩되어있는지 세고 싶지 않다. 어쨌든 연결되는 여섯 자리 중 하나는 다른 '나' 중 하나에 연결되고 그 '나' 는 깜빡이듯 나타나고 사라지는 수많은 나와 연결되어 있고.


이젠 내가 얼마나 생성되고 사라지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공허와 실재는, 0과 1은, 앞과 뒤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몸이 빠르게 떨리며 앞으로 넘어질 것 같다. 그래도 두 눈은 니콜로에 집중한다.


"당,당,당신이... 말이 제,대로, 안 나오네 빌어먹... 을. 당신이 졌어요, 니콜로,로.로."


니콜로가 조금씩 멈춘다. '나'는 지금 몇 명이지? 만 명 까지는 어렴풋이 인지되는데 그 이상은... 안 되는 건가, 그냥 내가 인식하지 못할 뿐인가.


이게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또 생각해야 한다.


춥거나 아픈 건 아닌데 몸이 너무 떨린다. 한쪽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닿지만 두 손을 짚고 일어난다. 눈은 계속 니콜로를 본다.


과연 니콜로가 멈출까. 정지해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이러고 싶지 않았다."


니콜로가 순간이동하듯 움직여 내 심장을 찌른다. 불쾌한 얼굴로.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다. 내가 기절하기 직전이라 그런가...


니콜로에 찔린 내가 사라지고, 많은 '나' 중 하나가 성립한다. 더 이상 나타나거나 사라지지 않는 상태로.


여기까지는 계산 안. 이 상황을 니콜로가 빨리 받아들이냐가 궁금한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다시 움직이고, 내 앞에 와 날 찌르기 전에 앞서 목부터 붙잡는다. 눈이 아픈 듯 계속 찡그리며 깜빡이는 걸 보니 예상대로 되고 있다.


"이겼다고 했느냐?"


"당신은... 하, 숨차. 졌어요, 니콜로. 당신은."


"네가 무한하리라 여겼느냐. 4만 명에서 멈췄다고 얘기해주마."


역시 한계가 있구나... 당연하겠지.


웃는다. 말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성질 급하고 호전적인 내가 니콜로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뭘 하기 전에 사라져버린다.


나는 계속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제야 조금씩 머리가 평안해지고, 나는 니콜로의 손목을 잡고 나에게서 떼어내며 말한다.


"감사해야겠네요. 4만이라 알려주니 어떻게 통제할 지 감이 와서."


"내가 졌다고 하였느냐. 네가 이미 망가진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든 저는 이겼어요. 어떻게 항복할지 같은 거나 고민하시죠."


말하던 내가 불타버린다. 한순간에 날려버리네.


자, 어떤 나를 나로 만들까. 어느 내가 니콜로가 좀 알아처먹게 말을 할 수 있나.


나만 어지러운 게 아니다. <헥사 링크>로 연결된 모두가 부담을 나누어 짊어진다. 몇만 명의 의식을, 그 중 한 부분이 되는 것을. 그러면서 이성을 잃지 않는 걸.


학선이는 의지를 불태워서, 정신력을 끌어올려서 견딘다. 머리가 새하얘질 것 같아도 이를 악문 학선이가 나 자신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효진이는 내가 움직이는 정보의 구조를 이해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다음 과정이 무엇인지 예측해낸다. 니콜로가 날 죽일 마음을 먹기 전에 효진이가 먼저 알 수 있다.


삼촌은 필요한 것에 집중해 내 의식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이기라고. 저걸 쓰러트리라고. 보기 좋게 눌러주라고 강하게 짚어준다.


그리고 미라. 이 공간을 이해하는 미라는 나의 위치를 특정한다. 관측한다. 그로 인해 나는 규정된다. 존재하고 작동하는 것이 된다. 엔트로피에 올라타 에너지 사이를 오가는 무언가가 된다.


나는 관측된다. 나는 작용한다. 나는 존재한다.


...


니콜로가 연산을 끝냈다.


조금 전 니콜로를 얽어맨 <커다란 공허>가 나를 덮쳐온다. 효진이가 미리 알려줬지만 피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생각한 대로는 안 됐네. 4만으로는 모자랐나...


괜히 65,535를 넘어야 했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니콜로가 날 사로잡도록 둔다. 안 되는 일에 용을 쓰느니 다음 일을 생각해야지. 가급적 서둘러서.


하, <커다란 공허>... 만들어진 내가 쓸 때는 밤이 담긴 연기 같은 모양이었는데 니콜로가 쓰니 무슨 우주의 종말이 머리 위로 덮치는 느낌일세.


말도 안 되는 출력이긴 하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허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니콜로 당신의 형제들이 만든 세션 안에서만 가능한 것을 내가 왜 두려워하겠어.


모든 연결에서 해제되고 나 하나만 남아 갇힌다. 니콜로는 바깥에서 날 들여다보며 묻는다.


"네가 진 것 같구나."


"이해하지 못했군요, 니콜로. 제가 여기서 소멸해도 당신이 진 겁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장난이냐?"


"결론부터 알려주죠. 당신을 승리하게 만든 자가 당신을 부정했다는 사실이 영원히 남을 겁니다."


니콜로가 멈춘다. 이번에는 무려 4초나 멈춘다. 혹시 이게 더 나은 방법이었나?


"설명, 해라."


"어쩔 수 없이 당신이 날 죽인다 칩시다? 당신이 원하는 세상이 왔는데 모두가 묻겠죠. 궁금해 하겠죠. 무엇 때문에 반항했을까? 왜 죽었을까? 니콜로 당신은 왜 날 없애야 했을까 같은 걸."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계속 말한다.


"사람들은 계속 궁금해하고 결국 알아낼 겁니다. 알 수 있는 게 없으면 상상할 겁니다. 인간은 그런 생물이니까.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하셨으니 당연히 이해하시죠? 당신이 필요로 하는 자들이 당신에게 끝없이 저항하고, 누구도 저항하지 않을 때가 오면 이미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있겠죠. 야자나무나 석회암이 인간보다 더 많은 걸 생각할 겁니다."


"네놈..."


"자, 제가 이겼습니다. 여기 모두를 죽여 없애고 원래 위치로 돌아가시죠. 원래 위치의 정보를 진짜 지구에 천천히 옮기실테고요. 그렇게 길고 긴 패배를 시작하시는 겁니다. 부디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마."


내가 풀려난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일어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음. 부담이 너무 컸어.


막 만들어진 나 말고 다른 나 하나는...? 이제 없나. 나는 이제 나 하나뿐인가.


지극히 당연하네. 나는 나 하나지, 그렇지. 이게 정상이지.


"네 망언에 분명한 가능성이 있으니, 그 결과를 확인하도록 하겠다."


생각하자...


생각? 아예 죽이기로 한 이상은 방법이 없는데.


아니야, 생각해. 죽이려면 벌써 죽였다. 생각하는 거야. 니콜로가 망설일 동안.


망설이고는 있지만, 결정했지. 다른 선택지가 없다. 니콜로가 날 살려둔 건 정이 들어서, 감격했었기 때문이고 끝없이 방해로 작용할거라 한 이상 그건 의미가 없지.


그래도 생각해.


생각해라.


내 뒤의 네 명만이라도 되돌려 보낼 수 있게.


"<신화투영>..."


아무것도 운용되지 않는다. 잉그리드의 <인용 quotation>에 묶였을 때처럼.


일어서는 것도 어렵다. <헥사 링크>도 되지 않아. 미라와 효진이를 연결해 탈출구를 만들도록 도와야 하는데. 별 수 없네, 둘이 알아서 하겠지.


힘들다.


할 건 다 했나... 나 치고는 그럭저럭 잘 한 걸까.


하하.


아니지.


머리가 돌아가잖아. 일어나서 생각해.


움직이는 코어가 없어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내가 뭘 할지 선택할 수 있다.


몸을 굴려 두 무릎이 땅에 닿게 웅크리고, 천천히 들이쉰다음 단번에 내쉬며 일어난다... 아니. 다리와 허리만 조금 움찔할 뿐 일어나진 못했다.


팔꿈치를 고쳐 대고. 주먹을 쥐고 다시. 숨을 쉬고, 생각하면서.


좋아. 일어났다.


이제 본다. 상대를 본다. 이미 패배하고 그 대가를 치를 자에게 줄 것? 웃음뿐이지.


애쓰셨는데, 처음부터 틀려먹으셨다고. 당신 형제들이 벌인 판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고. 거기에 부득불 달려든 당신도 그냥...


"뭐, 이해합니다."


"무얼 말이냐."


"앞으로 살 날에 비하면 아직 꼬맹이시죠."


니콜로가...


앉는다.


머리를 숙이며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그러자마자 내 뒤로 네 명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네 명.


여덟 명이 아니고.


뒤를 돌아보니... 아하. 이 곳을 만든 미라가 여길 통째로 없앨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 미라가 준비해 둔 다른 세 명은 다른 데 있겠지...


하하하. 혹시 여기 바깥에 몇 분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나? 그러면?


나중에 물어봐야지.


나는 니콜로 앞으로 가서 앉는다.


"그래서. 생각해보시니까 결과가 어떻습니까?"


"너의 말에 오류가 없다."


"그러면?"


"몇 명만... 아니, 의미 없는 선택이다. 너희는..."


니콜로가 다른 손을 들고... 두 손바닥으로 눈을 부빈 다음 손을 떼고 마주잡는다.


"너희는 멸망한다. 영원히 살아도, 네 말대로."


"당연하죠."


"멸망할 종으로는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없다."


"그래서요."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세션을 만든 것부터가."


조용하다.


나는 입을 비죽이고 웃고 그대로 있다가 묻는다.


"그래서 니콜로. 뭘 하고 싶으신데요."


"다음 우주를 보고 싶다. 계속 존재하길 원한다."


"무얼 할 수 있죠?"


"네가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무얼 할 겁니까 그래서."


"막내가 만든 세 질문을 내게 묻는 것이냐?"


"네 번째도 묻지요. 뭘 남기실 거죠?"


니콜로가 일어선다. 그리고 가만히 박수를 한 번 치고, 우리는 가장 처음...


광화문 한가운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해가 따갑다.


니콜로는 우릴 본 다음 얼굴을 찡그리며 한 쪽을 본다.


니콜로의 어머니, 신수연 사무관님이 우산을 접고 어깨에 걸친 채 의기양양한 얼굴로 니콜로를 마주본다.


니콜로는 불쾌한 얼굴로 내 쪽을 보며 말한다.


"생각해보겠다."


"그러시죠."


니콜로는 자신을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번 빙 둘러본 후...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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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에필로그 1 : 키브엘의 기록 23.02.19 90 4 10쪽
260 마지막화 : 너의 세상, 나의 세상 23.02.15 105 4 10쪽
259 3부 34화 : 하나의 끝은 다른 끝을 향하고 23.02.14 95 4 12쪽
» 3부 33화 : 미래의 방향 (끝) 23.02.13 101 4 10쪽
257 3부 32화 : 미래의 방향 (6) 23.02.11 96 4 11쪽
256 3부 31화 : 미래의 방향 (5) 23.02.11 121 4 10쪽
255 3부 30화 : 미래의 방향 (4) 23.02.10 99 4 11쪽
254 3부 29화 : 미래의 방향 (3) 23.02.08 101 4 11쪽
253 3부 28화 : 미래의 방향 (2) 23.02.07 96 4 10쪽
252 3부 27화 : 미래의 방향 (1) 23.02.05 99 4 13쪽
251 3부 26화 : 할머님과 막내 둘의 사정 23.02.04 100 4 11쪽
250 3부 25화 : 사람마다 다르고 23.02.03 98 4 10쪽
249 3부 24화 : 구원자 23.02.02 96 4 11쪽
248 3부 23화 : 다른 결말 23.02.01 108 4 10쪽
247 3부 22화 : 증명 (3) +2 23.01.31 122 4 10쪽
246 3부 21화 : 증명 (2) 23.01.29 93 4 9쪽
245 3부 20화 : 증명 (1) 23.01.28 99 4 10쪽
244 3부 19화 : 광고 시간 23.01.28 95 4 10쪽
243 3부 18화 : 개시 (8) 23.01.26 94 4 11쪽
242 3부 17화 : 개시 (7) 23.01.25 101 4 9쪽
241 3부 16화 : 개시 (6) +2 23.01.24 99 4 10쪽
240 3부 15화 : 개시 (4) 23.01.22 96 4 11쪽
239 3부 14화 : 개시 (3) +2 23.01.21 9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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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3부 10화 :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23.01.16 94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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