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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비행장

좋은 스킬 잘 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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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행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2.05.06 13:07
최근연재일 :
2023.02.26 09:52
연재수 :
263 회
조회수 :
52,434
추천수 :
1,111
글자수 :
1,318,896

작성
23.02.04 23:09
조회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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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3부 26화 : 할머님과 막내 둘의 사정

DUMMY

생각해보면 지난 1년간 항상 그랬지만 오늘은 정말, 아주 심란하다.


가급적 혼자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으면 좋겠는데 불청객이 있어서 더 그래.


나는 객실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고 막내는 침대 모서리에, 할머님은 멀리 있는 소파 비슷한 의자에 앉아 둘 다 날 보고 있다.


할 이야기는 더 없지 않나? 걱정되어서 보러 와 준 거라면 날 혼자 놔뒀으면 좋겠고...


"하실 이야기 있으신가요?"


막내가 입을 연다.


"오면서 임효진이라는 네 지인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과연 대단하더라."


"그러고보니 질문을 수집한다고 하셨잖아요. 효진이에겐 어째서?"


"간단한 이유야. 아껴놓고 싶었거든."


"아껴놓다니요?"


"보통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주면 강렬한 기억이 되어서 그 사람의 행보에 영향을 주더라고?"


"그럴 만한 질문들이죠.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전달되기도 하고."


"맞아. 처음엔 한 가지만 물어봤다가 이제 요령이 생겨서 네 번으로 나누어 물어보는데, 이번에는 그 친구에게 질문을 먼저 해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잠시만요, 지금 하신 말씀이..."


"아까웠다고."


"그것도 그건데, 네 번이라고요?"


나는 세 번째 질문까지밖에 모른다. 일단 내 기억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세 번까지의 질문만 받았으니까.


"네 번째 질문은 특이한 경우에만 하긴 해. 지금 너에게 할까 말까 고민중이긴 하다."


"무슨 질문인지 궁금하긴 한데 일단 제쳐놓고, 네. 효진이게 하기 아깝다는 말씀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네가 이번 세션... 세션이라고 하자고? 우리는 그렇게 말하니까. 이번 세션이 시작되마자 누군가 어마어마한 크랙을 일으킨 건 금방 알았어."


그렇겠지. 시작하자마자 적안룡을 잡고 일본과 미국, 나아가 전세계에 나타난 대형체를 모조리 잡아버렸으니까...


"처음엔 몰랐지만 금방 분명해졌다고. 한국에서 <신화투영>을 쓰면서 남의 기술을 무단 도용해다가 써먹는 건 그 많은 세션 중에서도 몇 명 없었거든. 거기에 지난번에 살아남은 건 한 명 뿐이었잖아?"


"저는 어디 가서 증거인멸은 못 하겠군요."


"원리는 몰라도 상관없었지. 지난번의 이진협이라는 걸 알자마자 나하고 저기, 누나는 작당모의에 들어갔어."


"그러면 막내. 할머님을 도와 어머니를 미리 찾아두면 좋지 않았어요?"


"이진협. 지금 상황에서 내 기준으로 어머니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없어."


나는 턱을 몇 번 만지작거린 다음 묻는다.


"그런가요?"


"내 범주 안에서 큰형은 그래도 말하면 알아처먹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거든. 근데 어머니는 남의 의견과 생각이란 걸 받아들인 이력이 단 한번도 없었던 존재야. 오늘 전까진."


묘하군.


사무관님이 그랬...던가?


"거기에 그런 어머니가 여기 오래 있다보니 인간과 비슷한 행동까지 한단 말이지? 난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안 돼. 우리 중 누구도 어머니를 파악할 수 없긴 하지만. 그래서 어머니를 배제한 채 행동하는 쪽이 낫다고 봤지. 지금도 그래! 난 숨기려 했다고. 누나가 억지로 찾아내지만 않았으면."


나는 할머님을 보고 묻는다.


"그래도 할머님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고요."


할머님은, 곧 니콜로의 일곱 번째 자매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을 시작한다.


"난 어머니랑 대화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한 번에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머니를 낄 수밖에 없다고 봤고."


"이걸 끝내길 원하셨었죠."


"오해가 있을 것 같으니 미리 이야기해둘까. 네 기준에서는 키브엘과 같이 있었던 다섯째 언니가 가장 정상처럼 보이고, 둘째나 그런 형제들이 좀 더 이상하게 느껴졌겠지."


"아... 사실은 그 반대군요?"


"우리 기준으로 지금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어 있는 사람은 다섯째 언니야. 그 여자아이 한 명을 위해 자기 목적을 미뤄둘 정도로 인간과 비슷해져 있어."


키브엘은 분명 다섯째를 믿었다.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방치할 거라고...


"그렇군요."


"그리고 우리가 인간에 가까워질 수록 은하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그건 사실이야."


막내가 끼어든다.


"누나. 내가 보충 좀 해도 되지?"


"그게 필요하다면?"


"자, 이진협. 들어. 네가 가장 이해하기 좋은 비유를 들면 지금 우리의 '본체'는 보안이 완전히 해제된 컴퓨터 같은 거야."


"보안... 이요."


"세션은 이제 끝났어. 여기 들어온 연산주체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 보안이 없으니 빠르게 적용되겠지? 생각해 봐. 인간의 정신으로 우리의 크기의 육신을 가지는 걸. 알고 있지? 우리는 은하 바깥 부분의 1/8씩에 퍼져 있다고."


은하의 반지름은 5만 광년. 한 변이 5만 광년인 부채꼴 면적의 육신을 인간의 정신으로 가져간다고...


상상조차 안 되는 일. 나는 눈을 꿈뻑이는 것 외에 딱히 할 말도 행동도 없다. 그래서 막내가 계속 말한다.


"첫째 형이 우리에 대해 많이 말해 줬지?"


"연산이 아주 느리다 그랬어요."


"우리 진짜 모습은 대충 이래. 원래는 너희가 감지 못하는 주파수 영역에 있고 엄~청 느슨하게 이뤄져 있지만 대충 개념화를 하면..."


막내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느슨한 그물 형태가 하늘거리며 나타난다. 수많은 빛이 그물을 이르는 끈을 따라 제멋대로 움직인다.


"우리는 우주의 형태를 닮았는데, 그게 느슨하고 넓게, 하지만 연결을 유지하기에 자연스러운 형태라 그래. 우리가 초당 처리하는 정보는 200 엑사바이트 정도. 다만 신체 전체에 동기화할 일은 없고. 몸 전체로 연산하지 않고 연산주체가 따로 있지. 너희에게도 근육 뼈 뇌가 따로 있잖아?"


"네..."


"그럼 이제 우리가 뭘 걱정하는 지 알겠지?"


"여러분의 몸에 인간과 닮은 정신. 뭔가 그냥 아주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울 거란 거 하나만 알 것 같네요."


"그럼 제대로 이해했어. 좋아.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할머님이 말을 받는다.


"내가 계속할게. 자, 가장 처음 나는 이 세션에 어떤 관여도 하고 싶지 않았고, 우리 중 누군가가 어머니의 자리에 들어가도 달라질 건 없다고 봤단다. 나는 떠나서 여행을 하고 싶었어. 우리는 어쨌든 우주 안에 있는 이상 소멸할 일은 없으니까."


"예."


"하지만 첫 번째 세션을 보고 나니 충분히 알 수 있었어. 큰일났다고."


막내가 끼어든다.


"내가 그랬잖아. 좋게 끝날 구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나에게 너만큼의 예측 연산 능력은 없으니까. 이야기하고 있으니 끼어들지 말고! 그런데 어머니가 일부러 자신을 드러냈지. 형제들은 어머니를 찾는다고 혈안이 됐고. 이번 세션에 네가 크랙을 일으켰고, 나는 어머니가 관여한 거라 생각하고 다급히 직접 개입을 시작했지만 그건 아니었지."


"네."


"그래도 어머니는 이 안에 있는 동안 한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걸 내가 만들면 나타나리라 생각했어. 그 뒤는 네가 본 대로."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습니다."


"그래. 솔직히 말하마. 나는 너희 종에 관심이 있지 않아. 우리가 있는 시간에서 너희를 보려면... 한 번 물 주는 걸 잊었다가 자고 일어나면 바싹 말라 죽을 화분과 같거든."


"니콜로가 우리에게 불멸을 부여하려는 이유가 그것인가요?"


"다른 이유는 별로 없지."


"그것은, 정말로 가능하고요? 여기 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니라 원래의 지구로 돌아가도?"


"가능해. 큰오래비가 중앙을 차지하면 우리는 오래비의 요청이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은 들어주게 되어 있거든. 그런 구조 안에 있어."


"어머니가 만든 구조군요."


"말하면 뭐하겠니. 우리 여덟이 다 필요한 만큼 협력하면 너희를 은하보다도 오래 유지할 수 있지. 살아있는 채로. 누구도 물 주는 걸 잊지 않고."


"끔찍하네요."


"그래, 나는 너희에게 신경쓰고 싶지 않아. 난 그 정도로 '오염' 되지 않았고 물 주는 걸 잊지 않을 만큼 예민하지도 않고."


"할머님. 역시 우리는 멸종하나요?"


"모든 종은 멸종하지. 너희도, 우리도."


막내가 말을 얹는다.


"너희보다 지능이 높은 종족이 있었단 말야? 둘째 형이 그걸 발견했다고 알려서 다같이 구경 가자고 정하고 나니까 모두 화석이 된 지 한참이었지 뭐야."


"안타깝네요..."


"우리 은하가 뭐가 좀 잘못됐는지 토착생물 지능이 잔혹함과 정비례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돼. 너희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다행이네요."


"그렇지."


말이 멈췄다. 그럼 이제 궁금한 걸 다시 물어봐도 되겠지.


"효진이에게 질문하는 게 아까웠다는 건요?"


"맞아, 맞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응. 그러니까... 나는 그 친구의 재주를 알잖아. 몇 번 꽤 확연히 드러났으니까. 우리가 필요한 데에 집중했으면 해서. 아,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말해둘게. 나와 누나는 지금 모두의 방에 다 있어. 너에게만 있는 게 아냐."


나는 말없이 막내를 쳐다보고...


"알았어, 인간들이 혼자 있고 싶어하는 건 아니까. 용무만 빨리 끝내고 나갈 거라고. 어쨌든, 그래서 지금 임효진의 방에 있는 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네 개의 질문에 대해 설명하면서."


"네 번째 질문은, 뭐죠?"


"네가 맞춰 봐!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죽을까, 는 틀린 답일 것 같고."


"맞아. 그건 물어보는 족족 화내는 놈이 하도 많아서 한참 전에 뺐거든."


"그렇다면 그거겠네요."


나는 대답한다.
















둘이 돌아가서 혼자 남은 방에서 푹 자고, 아침에 약속한 시간에 나와 모두와 아침을 먹고, 소란스러운 주변과 그보다 더 어지러운 인터넷을 구경하고.


달리 할 일도 없고, 시간도 마냥 넉넉하지 않다. 사무관님, 막내, 할머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리 다섯 뿐.


우리는 각자 나눠받은 우산을 받쳐들고 일어난다. 모두 내가 뭐라고 한 마디 하라고 눈치를 주니, 그러기로 한다.


"가죠."


가끔 생각한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넷이나 알고 있는 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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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에필로그 3 : 대화 23.02.26 92 3 4쪽
262 에필로그 2 : 별을 여행하는 아이 23.02.26 74 3 2쪽
261 에필로그 1 : 키브엘의 기록 23.02.19 90 4 10쪽
260 마지막화 : 너의 세상, 나의 세상 23.02.15 105 4 10쪽
259 3부 34화 : 하나의 끝은 다른 끝을 향하고 23.02.14 95 4 12쪽
258 3부 33화 : 미래의 방향 (끝) 23.02.13 100 4 10쪽
257 3부 32화 : 미래의 방향 (6) 23.02.11 96 4 11쪽
256 3부 31화 : 미래의 방향 (5) 23.02.11 120 4 10쪽
255 3부 30화 : 미래의 방향 (4) 23.02.10 99 4 11쪽
254 3부 29화 : 미래의 방향 (3) 23.02.08 101 4 11쪽
253 3부 28화 : 미래의 방향 (2) 23.02.07 96 4 10쪽
252 3부 27화 : 미래의 방향 (1) 23.02.05 99 4 13쪽
» 3부 26화 : 할머님과 막내 둘의 사정 23.02.04 100 4 11쪽
250 3부 25화 : 사람마다 다르고 23.02.03 98 4 10쪽
249 3부 24화 : 구원자 23.02.02 96 4 11쪽
248 3부 23화 : 다른 결말 23.02.01 108 4 10쪽
247 3부 22화 : 증명 (3) +2 23.01.31 122 4 10쪽
246 3부 21화 : 증명 (2) 23.01.29 92 4 9쪽
245 3부 20화 : 증명 (1) 23.01.28 99 4 10쪽
244 3부 19화 : 광고 시간 23.01.28 95 4 10쪽
243 3부 18화 : 개시 (8) 23.01.26 94 4 11쪽
242 3부 17화 : 개시 (7) 23.01.25 101 4 9쪽
241 3부 16화 : 개시 (6) +2 23.01.24 98 4 10쪽
240 3부 15화 : 개시 (4) 23.01.22 96 4 11쪽
239 3부 14화 : 개시 (3) +2 23.01.21 9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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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3부 12화 : 개시 (1) 23.01.18 100 4 12쪽
236 3부 11화 : 나아가려면 믿어야 하고 23.01.17 89 4 11쪽
235 3부 10화 :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23.01.16 94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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