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29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2.10.14 08:53
조회
1,051
추천
7
글자
19쪽

288화. 요왕의 혈제(血祭)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그래, 이쪽 절반은 약속대로 반납하고 이것은 내가 쓰면 되겠군. 그래도 천근이나 사용할 필요는 없는데···.

안 되겠다. 반만 내가 쓰고 반은 자식들이나 쓰라고 해야겠어. 그런데 그 녀석들이 가공이나 할 수 있으려나? 그냥 주면 쓰지도 못하고 창고에서 썩힐 텐데······. 조금 다듬어 줄까?”


태을현철은 워낙 융점(融點)이 높고 강하여 인간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대장간에서는 가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에도 그것 때문에 청룡의 숨결을 빌려 여의주로 토해 내는 뜨거운 불길로 가공하곤 했던 것이고.


쥬맥은 청룡의 숨결에 버금가는 화정의 기운을 지니고 있고, 무위(武威)도 이미 선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삼매진화(三昧眞火)로 화정의 기운을 발현하여 태을현철을 녹이거나 마음대로 가공할 수 있는 것!


그냥 줘 봐야 쓰지도 못할 자식들을 염려하여 결국 검과 도, 창, 장도, 채찍 등 여러 가지 무기의 본체를 직접 다듬었는데······.


손잡이만 만들어 붙이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20여 개를 만들고, 조금 남은 것으로는 소도나 화살촉 등을 몇 개씩 만들었다. 아까우니 조금이라도 버릴 수가 없어서 말이다.


“흠! 이제 전하는 일만 남았군.”


일을 마무리하고 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한 장 쓰더니 밖으로 들고 나와서 대협곡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달이야! 달이 어디 있니? 심부름 좀 다녀오너라.”


상심통과 기파를 실어서 크게 외치자 독수리 달이가 반갑게 금방 나타난다.


요즘 쥬맥이 알려 준 별이의 신수 수업 내용을 따라서 공부하는 달이는, 몇 개 가져다준 영물의 육포를 먹고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었다.


신수가 되기에는 요원해 보이지만···.


“꾸룩 꾸 꾸룩(나 바쁜데 왜 불러요 할부지.)”


[인석아! 바빠도 좀 다녀와. 세가에 편지 좀 전하고 오너라.]


발목에 편지를 넣은 작은 대롱을 달아 주자 의외로 싹싹하게 답하는 달이.


“꾹꾸르 꾸 꾸 꾹욱~(알았어요. 세가라면 얼른 다녀올게요.)”


힘차게 날갯짓을 하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라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욕심이 많은 녀석인데 왜 아무런 군말도 없이 가란다고 얼른 가겠는가?


다 꿍꿍이속이 있어서다. 전에도 몇 번 다녀왔는데 오면 수고했다고 쥬온이 맛있는 고기도 챙겨 주고, 간혹은 구하기 힘든 영물의 육포도 한 쪼가리 내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수행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서 김칫국부터 마시며 부지런히 가는 것이다.


달이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닷새가 지나자, 셋째 쥬상과 넷째 쥬망이 튼튼한 마차 두 대와 20여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대협곡 인근은 길이 험해서 고생들을 한 모양이고···.


쥬맥이 나무상자로 포장해 둔 물건들을 두 대의 마차에 나누어 실어 주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바로 돌아갔다.


마차 한 대는 천인족 한울에게 태을현철 반 덩이와 내용을 적은 서간(書簡)을 전하러 가는 것이고···, 다른 한 대는 쥬맥이 태을현철로 만들어 둔 무기들의 본체를 담은 상자를 세가로 실어 가는 것이다.


‘이제 일단 태을현철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니 법기를 만들어 볼까?”


재료를 구하는 일을 매듭 지은 쥬맥은 남은 철괴를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법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기화된 백호제마검(白虎制魔劍)으로 여러 형태의 변화를 통해서 다양하게 쓸 수 있으나, 비상시를 대비해서 우선 검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이제 검은 됐고······. 아무래도 장시간 비행 시에 영력을 아끼려면 비행용 법기 하나쯤은 있어야 되겠지?”


그래서 장시간 비행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마계의 용형(龍形) 괴물을 죽이고 얻은 최상질의 방호 비늘과 태을현철을 섞어서, 방호력(防護力)이 뛰어나고 튼튼한 비행용 법기를 만들었다.


비행용 법기는 만들기가 까다로워서 그 틀을 잡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그 안에 다른 특수 재료들을 첨가한 뒤 영력을 불어넣고, 법술을 새겨서 제 기능을 하게 하는 데에도 많은 심력이 소모되었다. 물론 동력으로 쓰이는 재료로 마령단도 소모되었고.


그래도 남은 철괴로 다른 예비용 무기들을 다수 만들었고, 비늘과 마수의 뿔, 발톱 등을 귀한 재료와 섞어서 보호용 방패와 공격용 법기도 몇 개 더 만들었다. 강력한 적을 만나면 부서질 수가 있으니 비상용이 필요해서다.


그러나 이계에서 사용하려면 영력으로 연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바로 사용할 수는 없어서 아쉽지만 기검과 금령파만 가지고 요계 수행에 나섰다.


이제는 옆에서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며칠씩 수행을 다니는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행 기간에 연연하지 않으며 마음먹고 원거리까지 다녀 보기로 했다.


‘흠! 이제 떠나 볼까?’


#


진법과 결계를 두른 대협곡의 동굴에서 좌정하고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한 다음, 깊은 심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마침내 선정(禪定)에 들었다.


그러자 머리의 두정이 열리고···, 영체가 육신을 빠져나와 전처럼 지구를 떠나 태양계와 은하수를 건너더니, 생계(生界)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로 다가선다.


일명 흑운(黑雲)이라는 신의 숨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니 견딜 수 없는 압력과 인력으로 실처럼 길게 늘어났다.


결국 가느다란 실처럼 끝없이 늘어져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 들었다.


무저갱과 같은 암흑 속을 한참 지나서 아득한 저 멀리에 한 점의 빛이 보이더니 빠른 속도로 끌려갔고······. 점차 밖으로 빠져나오며 서서히 본래 영체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자 언제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오르는 팔천계(八天界)가 표현하기 힘든 장대한 크기로 펼쳐진다.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으니 그냥 하늘만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크기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언제 보아도 정말 가슴이 벅차구나. 가만있자, 바로 저기가 요계렷다.”


이미 여러 번 이계의 수행을 경험했기 때문에 분홍빛의 요계(妖界)를 찾아서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했다.


······여기는 요계의 출입구.


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분홍빛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밖에는 수천 명의 천장과 신장들이 지켜 서 있다. 함부로 드나듦을 막기 위해서인지.


만약 요수(妖獸)와 요귀(妖鬼)들이 대거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면 아마 팔천계에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육체를 가진 생명들이 살고 있는 생계는 그들의 먹잇감이 되면서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될 것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인지라 쥬맥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 잡념을 지우고 정신을 가다듬은 쥬맥의 영체가 문 앞에 다다르자 그 앞을 지키던 큰 키의 천장이 다가왔다. 장군처럼 빛나는 은빛 갑주를 입고서.


눈 앞에 이르니 어찌나 키가 큰지 얼굴이 올려다보이는데···, 천인족 중에서도 키가 제법 큰 편에 속하는 쥬맥이 그 어깨에도 닿지 못했다.


쥬맥의 영체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는 천장. 선인의 영체인 줄 알고 인사를 하러 다가왔는데 선인이 아니니 의아해하며 자세히 살핀다.


“어라? 수행을 하러 오신 선인인 줄 알았더니 선인이 아니시군요.”


“예, 저는 지구에서 수행을 하러 온 선신(仙神) 출신 쥬맥입니다.”


“선신이시라고요? 어쩐지 기운이 강대해 보이더라. 그럼 이곳의 요계 수행은 이번이 처음이시지요?”


처음 보는 얼굴이니 당연히 처음으로 온 것이라고 단정을 하는 모양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다녀오신 분들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계의 사정에 대해서는 좀 알지요.”


그러자 천장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이다. 얘기를 많이 들었다니 혹시나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고, 정말이라면 자신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들 초출내기라고 얕잡아 볼까 봐 무의식적으로 둘러대는 경우도 있으니.


“아~ 그러세요. 제가 아는 분들일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누구신지······.”


“미리내라는 은하계의 지구 천인족 출신으로 돈문 선인과 태을 선인입니다. 두 분 다 잘 아는 분들입니다.”


“예~ 그분들은 선인들 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하셨으니 제가 잘 알지요. 두 분 다 이미 신선이 되셨지요? 그래도 안전상 주의 사항은 숙지를 하고 가시는 것이 좋으니 이리 오시지요.”


천장이 앞장서서 앞쪽에 있는 분홍빛 탑 같은 집무용 건물로 걸어갔다. 쥬맥이 따라서 들어가니 공간을 압축한 것인지 탑 안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전에 돌아갈 때 들어갔던 검은 연무에 휩싸인 동굴이 옆에 있었고, 중앙에 있는 책상엔 조직의 당직 같아 보이는 천장이 한 사람 앉아 있다.


‘전하고 별 변화가 없군.’


쥬맥이 들어서자 앉아 있던 천장이 요계의 주의 사항과 비상시 조치 방법 등에 대해서, 전처럼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작은 영패를 하나 주었다.


“이 영패는 항상 몸에 지참하셔야 합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처했을 때 이 영패를 법력으로 누르시거나 깨뜨리시면 이곳의 비상등이 켜지면서 계신 위치가 파악됩니다. 그러면 구조대가 비행용 법기를 타고 신속히 이동하여 구출하게 됩니다. 물론 너무 멀리 가시면 어렵습니다만···.

초행이시니 요령단(妖靈丹)이나 요물들의 부산물에 욕심을 부리지 마시고,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안전을 최우선으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그럼 좋은 수행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들을 명심하여 조심히 움직이도록 하지요.”


“자~ 마음에 준비가 되셨으면 이곳으로 들어가세요.”


천장이 큰 대문 옆에 작게 만들어 둔 쪽문을 열어 주어 그 안으로 들어섰다.


쪽문 안에도 신장과 천장들이 수천 명 늘어서서 대문 주변을 지키고 있는데, 담당인 듯한 천장이 다가오더니 초면인데도 반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수행하러 오셨으면 이 대로(大路)를 따라 들어가시면 됩니다.”


손으로 앞쪽에 온통 분홍빛 세상 속에 길게 펼쳐져 있는 대로를 가리킨다.


마계(魔界)처럼 지도도 주지 않고 가라고 하니 전에도 그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대다가 물어보았다.


“마계는 지도를 주던데 여기 요계(妖界)는 지도가 없는 모양이지요?”


“아~ 필요하시면 드릴 수 있습니다. 초행이시라 길을 찾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러신 모양이군요.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 그럼 편하실 겁니다.

사실 요계에는 여러 곳에 표지판 역할을 하는 이정석(里程石)이 서 있어서 그냥 가시는 분이 많아 요청하신 분만 드리고 있습니다.”


정중하게 지도가 내장된 작은 옥간을 건네자 인사를 하고 받아 챙긴 뒤, 대로를 따라서 쭉 걸어 들어갔다.


‘전에도 아마 이쪽 길이었지.’


경험 삼아 다시 대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분홍빛 세상은 끝없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데······.


‘에고~ 이럴 때는 지도가 최고지.’


우선 위치부터 파악을 하는 것이 좋겠다 여겨서 지도를 꺼내 가운데를 영력(靈力)으로 누르자 마계처럼 거대한 입체형 지도가 공중에 나타난다.


“이쪽이 전에 태을 선인과 함께 갔던 곳이로군. 그럼 이번에는 그때 안 가 본 이쪽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한 번 들여다볼까?”


일단 나아갈 방향이 잡히니 푸른색 둔광을 일으키며 날아올라 풍둔술로 낮게 떠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면서 눈에 영력을 실어 천안통으로 주변을 살피니 전처럼 분홍빛 세상에도 지구처럼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냥 보면 겉보기는 똑같아 보여도 천안통으로 영력을 실어서 보니 미세한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다만 알게 모르게 요사스러운 기운이 다른 세계보다 더 진하게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산을 몇 개 지나고 들을 지나자 높은 산에 둘러싸인 넓은 분지가 나왔는데, 그 안에 수만 명의 요인(妖人)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대부분 팔이 뒤로 묶이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뒤집어씌웠는데, 잡혀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사이사이로 긴 검이나 칼을 든 요계 무사들이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상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잠깐 지켜볼까?’


잡혀 있는 요인들은 두건 위로 긴 귀가 뾰족하게 솟아 있고, 짧은 분홍색 털이 전신에 곱게 나 있는데 키는 7척 전후에 옷을 걸치지 않았다.


비록 전신에 털이 나고 야만족처럼 옷을 입지 않았지만 순박한 눈동자를 가진 예쁜 동물처럼 보였고 말이다.


지키고 서 있는 무리는 키가 8척에 이르고 생긴 것은 사람처럼 생겼으나, 분홍색 피부에 쭉 찢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활동하기 편한 검은 무인복에 검과 도로 무장을 하고 있었고 일부는 활을 들었다. 장창을 비껴들고 있는 무사도 몇이 보였고.


귀신처럼 분홍색 머리를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 마름모형의 독사 같은 눈에서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번쩍거린다.


‘저놈들은 보기만 해도 흉측하군. 그런데 옷을 입고 형태를 갖춘 무기를 들었다는 것은 비록 요계이나 이미 문명을 이룬 종족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이지?’


잡혀 있는 요인들과 무사들은 같은 요계의 요인들이지만 서로 종족이 다른 듯했다. 마치 지구의 야차족과 반인족처럼 말이다.


쥬맥은 일단 은신하여 천안통으로 살피며 상심통으로 대화를 들어 보았다. 대장으로 보이는 무사가 중앙에 머리 높이로 설치된 붉은 돌로 된 제단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외친다.


“구호요왕께서 도착하실 시간이다. 제물들을 바칠 준비를 하라!”


그러자 지키고 서 있던 요계 무사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외침과 동시에 몇 명이 앞으로 나가더니 앞쪽의 계단을 밟고 핏빛처럼 붉은 제단으로 올라가서, 분홍빛이 도는 물로 제단을 깨끗이 씻어 낸다.


나름대로 정화 의식을 치른 뒤···, 제단 앞쪽에 꿇어앉은 요인들 중에서 두 명을 끌고 제단 위로 올라갔다.


제단(祭壇)은 뒤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설치되었고, 제단 뒤에는 직경 30장 크기의 깊은 연못 같은 돌 구덩이가 파여 있었는데······.


마치 애들이 가지고 노는 팽이처럼 파여서 가운데가 무척 깊었으나, 물이 채워지지 않고 바닥이 마른 채 텅 비어 있다. 가뭄에 말라 버린 연못처럼.


그리고 제단으로부터 연못의 가장 깊은 중심부 위에까지 수로관 같은 것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 생김새가 꼭 연못에 물을 공급하는 관처럼 생겼다.


쥬맥은 제단 근처로 은밀하게 이동하여 모습을 감추고 은신한 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이계에 와서 앞뒤 사정도 모른 채 무턱대고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인지라.


‘다른 종족의 피로 혈제(血祭)를 지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뒤쪽 웅덩이가 비어 있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을 거야. 아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명을 죽여서 혈제라니······.’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교란시키는 희한한 피리 소리가 울린다. 그쪽을 살피니 수백 마리의 큰 분홍색 구렁이가 앞장서서 오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바로 그 구렁이들이 분홍빛 휘장이 드리워진 큰 가마를 머리로 이고 온다는 것이다.


그 뒤로는 붉은 망사로 얼굴을 가린 요망한 차림의 반라(半裸) 시녀들 수십 명이 바구니에서 분홍빛 꽃잎을 꺼내 뿌리면서 뭔가를 중얼거린다. 그러자 그 꽃잎에서 흥분을 일으키는 기이한 향내가 장내에 퍼져 나갔다.


시녀들 뒤에도 이곳을 지키고 서 있는 무사들과 비슷한 차림의 요졸(妖卒)들이 수백 명이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허 참, 행차 한번 거창하군.’


쥬맥이 속으로 혀를 차는데, 가마가 도착하자 제단 앞에 서 있던 대장이 검을 뽑아 높이 치켜들었다.


“구호요왕께서 납시었다. 모두 엎드려서 왕을 경배하라!”


목청껏 크게 외치며 다가오는 가마를 향해서 넙죽 엎드려 큰절을 아홉번이나 올렸고, 그때마다 두 손을 위로 번쩍 들면서 만세를 부른다.


“구호요왕님 만세! 왕이시여 부디 만세를 누리소서!”


그러자 주변의 무사들이 모두 따라서 엎드리며 함께 구배(九拜)를 올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들은 큰절을 할 때마다 만세를 외치며 신처럼 구호요왕을 경배했다. 그러자 가마 안에서 가녀린 여자의 목소리 같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대들의 충정이 참으로 고맙도다. 어서 준비한 제물을 내게 바치거라. 오늘 나를 흡족하게 한다면 너희 모두에게 큰 상을 내릴지니.”


요왕이 가마를 탄 채로 수백 마리의 큰 분홍색 구렁이들과 함께 비어 있는 제단 뒤편의 연못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장 깊은 중심에 가마가 자리를 잡고 그 둘레를 구렁이들이 보호하는 것처럼 둥글게 에워쌌다.


그러자 뒤따라온 반라의 시녀 수십 명이 분홍색 꽃잎 바구니를 연못의 둘레에 놓아두고, 붉은 꽃잎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연못 안으로 걸어 들어가 구렁이들의 둘레에 늘어선다.


준비가 끝나자 다시 떨어지는 명령.


“혈제를 위한 제물식을 거행하라!”


대장이 목청껏 외치자 부하들이 우선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남녀 요인 두 명의 목을 커다란 참마도(斬馬刀)로 단숨에 베어 버렸다.


그러자 피가 제단에 파 놓은 골을 타고 모여서,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듯 중앙에 놓인 긴 수로관을 타고 흘러 들어가 가마 위로 떨어져 내린다.


쪼로로록!


“계속하라!”


목을 벤 요인들을 무사들이 발로 차서 단 아래의 빈 연못 속에 밀어 넣자, 구렁이들이 입에서 푸른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어 그 몸을 물처럼 녹였다.


그러자 둘레에 서 있던 반라의 시녀들이 그 위에 붉은 꽃잎을 뿌렸고······.


이렇게 계속 죽어 나가는 요인들!


제물을 바치는 식이 계속 진행되면서 수백 명의 요인들이 얼굴을 가린 채 제단 위에서 제물로 목이 잘렸다.


퀄퀄퀄퀄!


이제는 핏물이 냇물처럼 흘러서 떨어져 내린다. 비었던 연못에는 점점 붉은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말이다.


휘유~ 휘루류류~


그와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요사스러운 느낌으로······.


구렁이의 푸른 연기와 반라 시녀들의 붉은 꽃잎이, 목이 잘려 연못으로 굴러떨어지는 시신들을 깨끗이 녹였다.


그러면 요인들의 영혼과 체내의 요기가 밝은 빛을 내며 뱀처럼 줄기를 이루어 떠돌다가, 가운데 떠 있는 가마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내는 소리인 것!


수만 명이 모여 있는 요인들을 모두 제물로 죽일 모양이라 쥬맥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길 없었다.


힘이 없어 다른 종족의 제물로 바쳐지는 요인들을 동정해서가 아니었다. 요계에 사는 존재들이라면 같은 요계의 생명은 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저러니 요사스럽다는 소리를 듣고 수행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60월 30일 오전 10시 유료 전환(291화~300화) 참조 23.06.29 93 0 -
공지 유료분 291화~300화 무료 전환(5/17~6/30 10:00) 23.05.12 141 0 -
공지 [완결 공지] 본 작품은 300화로 완결되었습니다 22.10.27 760 0 -
290 290화. 구호요왕과 생사결(生死決) 22.10.17 1,103 9 19쪽
289 289화. 선신(仙神)의 무공 22.10.17 1,053 8 18쪽
» 288화. 요왕의 혈제(血祭) 22.10.14 1,052 7 19쪽
287 287화. 태을현철을 찾아서 22.10.14 1,050 8 19쪽
286 286화. 새로운 수행(修行) 22.10.13 1,052 8 19쪽
285 285화. 잔인한 토벌(討罰) 22.10.13 1,052 7 19쪽
284 284화. 흑산계곡 대전투(大戰鬪) 22.10.12 1,053 7 18쪽
283 283화. 마령적(魔靈賊)과의 싸움 22.10.12 1,057 7 19쪽
282 282화. 위대한 거인들의 노래 22.10.11 1,086 8 19쪽
281 281화. 갈대밭의 혈투(血鬪) 22.10.11 1,050 7 18쪽
280 280화. 거인들의 복수전(復讐戰) 22.10.10 1,045 7 19쪽
279 279화. 적군(赤軍) 토벌 참전 22.10.10 1,058 7 19쪽
278 278화. 천인족 신선(神仙) 모임 22.10.07 1,050 8 19쪽
277 277화. 또다시 수행의 길로 22.10.07 1,060 7 19쪽
276 276화. 죽음도 막지 못하는 사랑 +1 22.10.06 1,052 8 19쪽
275 275화. 황혼 빛이 찬란한 여행 22.10.06 1,053 7 18쪽
274 274화. 둘만의 시간 22.10.05 1,064 8 18쪽
273 273화. 아내를 위하여 22.10.05 1,084 8 19쪽
272 272화. 하나를 주고 열을 얻는 법 22.10.04 1,062 7 19쪽
271 271화. 세월을 잊은 도깨비들 22.10.04 1,057 7 20쪽
270 270화. 다시 만난 세 친구(親舊) 22.10.03 1,053 7 18쪽
269 269화. 후계자(後繼者)를 찾아라 22.10.03 1,051 7 18쪽
268 268화. 오성마족과의 대결 22.09.30 1,053 8 18쪽
267 267화. 마족의 성마맹(聖魔盟) 22.09.30 1,056 7 18쪽
266 266화. 마왕 참마수와의 대결 22.09.29 1,056 8 19쪽
265 265화. 마황룡과 팔각녹수 22.09.29 1,072 7 18쪽
264 264화. 영체의 마계 수행 22.09.28 1,058 8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