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41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24
조회
4,623
추천
58
글자
18쪽

1화. 서장(1) 탄생(誕生)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아침부터 하루 종일 천둥 번개가 치면서 여름을 재촉하는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러다가 저녁이 가까워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개이고, 해가 서산에 걸리면서 진한 저녁노을이 붉은빛으로 세상을 물들였다. 그리고 잠시 뒤 핏빛처럼 붉던 노을도 점점 빛을 잃으며 어둠에 잠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산 위로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


여기는 지구와 같은 은하계에 속한 아리(峩理)별이다.


아리별에서도 위엄과 장대함을 갖추어 널리 알려진 천둥산. 지금 그곳 정상에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백호(白虎)가 교교한 달빛이 내려앉은 산하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무엇이 흥에 겨운지 드넓은 세상을 향해 포효(咆哮)하였다.


“으허엉!”


갑자기 온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니 인근의 놀란 산짐승들은 오줌을 지리며 멀리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 마치 백호의 포효 소리에 맞추듯 그 산자락에 자리한 천인족(天人族) 부락에서 힘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응애 응애 응애!”


“어머~ 고추네 고추. 어따 그놈 참 실하게 생겼다. 형님은 좋겠수. 하여튼 아들 낳느라고 고생하셨어요.”


둘째 아들을 낳느라 산고에 진이 빠진 얼굴에도 청산댁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이제 막 세상에 나와 꼬물거리는 자식을 바라보았다.


갓난아기임에도 눈매가 시원하고 까만 눈동자가 유독 또랑또랑하다.


“첫째가 아들이니 둘째는 딸이면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 더 낳아야겠네. 그래도 딸이 있어야지.”


“아니, 남들은 아들을 못 낳아서 걱정인데 형님은 무슨 소리세요?”


“아들은 개구쟁이에 팍팍해서 키우기가 힘들어. 그래도 딸이 있어야 말동무도 되고 살림도 돕고 그러지.”


“하기야 힘들 때 하소연하기는 그래도 딸이 제일이지요.”


그러면서 아기를 받은 이웃사촌 유천댁은 아기 탯줄을 자르랴···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기랴··· 산모(産母)가 먹을 미역국을 끓이랴··· 정신이 없었다.


여기는 천인족이 성도(聖都)로 여기는 환시에서 대유순(大柳洵,80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높이 천 장(3,000m)이 넘는 천둥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서 제법 산골의 정취가 풍기는 곳이다.


그래도 산자락 밑으로는 이십 리에 가까운 넓은 들이 펼쳐지고 큰 하천이 가로지르고 있어서 비옥한 곡창지대(穀倉地帶)를 이루었다.


이렇게 백호가 포효하는 날 그 산자락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곡산(谷山)이라는 마을에서 백호와 인연을 가진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이름은 쥬맥!


천인족 말로는 용감한 아이라는 뜻이었다. 부모는 백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곡산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위로는 쥬산이라는 세 살 터울의 형을 두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사냥을 하여 생계를 꾸리니 단출한 식구에 풍족하지는 않지만 오붓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쥬맥의 나이 세 살이 되자 형을 따라서 마을에 있는 학당에 다니며, 선인들이 운기조식(運氣調息)하는 호흡법인 토납술을 배우고 글자를 깨우쳤다.


천인족 문자에는 뜻글인 태을문(太乙文)과 배우기 쉽게 소리글이 혼합된 천령문이 있었는데, 어린 쥬맥이 천령문은 금방 깨우쳤지만 뜻글은 어려운지라 부분적으로밖에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학문적인 부분이 아니면 일상 생활에서 대부분 천령문(天靈文)이 사용되니 어지간한 책은 모두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쥬맥이 어느덧 일곱 살이 된 어느 봄날. 형과 그 친구들을 따라서 밤에 뒷동산을 올랐다.


“와! 하늘에 저 별들 좀 봐!”


“꼭 우르르 쏟아질 것 같애.”


형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쥬맥도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나술(那術,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별무리가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우와! 멋져!’


쥬맥은 그 모습에 감탄하며 입을 벌리고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일곱 살에 접어드나 제법 다부진 몸매에 뚜렷한 이목구비, 시원한 눈매에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끄는 생김새였다.


그때 쥬맥의 눈에 북쪽 하늘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유성이 눈길을 끌었다.


“형! 저기 봐! 유성이야 유성!”


“우와! 무슨 유성이 저리도 크지?”


“혹시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유성이 점점 더 커지는데······. 벌써 집채만큼 커졌어!”


아이들은 모두 놀라서 거대한 유성(流星)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유성의 검붉은 연기와 긴 꼬리까지 다 보인다.


쐐애애애애앵!!!


거대한 유성은 귀청을 찢는 듯한 고음의 소리를 내면서 머리 위를 지나며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무슨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모두 간이 콩알만 해졌다.


“안 되겠다 얘들아, 우리 빨리 집으로 가자. 쥬맥아! 너도 빨리 따라와.”


이미 유성은 머리 위를 지나갔건만 하늘에는 아직도 지나간 흔적(痕跡)이 보이고, 연기와 먼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어른들도 모두 여기저기 모여서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애. 우리가 생전에 저렇게 소행성처럼 거대한 유성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 땅에 떨어질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지?”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 서서 무슨 얘기인지 귀를 쫑긋거리고 듣는데, 그 속에 쥬맥의 아버지도 같이 있다가 옆에 있는 두 아들을 발견했다.


“쥬산아! 너는 쥬맥이 데리고 집에 들어가 있으렴. 절대 다른 데 가면 안 된다. 엄마랑 꼭 같이 있어야 돼.”


키가 칠 척이 넘는 쥬맥의 아버지 한청은 검은 머리를 틀어 올려 관(冠)을 쓰고 있었다.


주로 사냥할 때 입는 가죽옷을 그대로 입은 채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두 아들을 발견하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들여보내려고 한 것이다.


아버지의 엄명에 쥬산은 동생 쥬맥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잡아끌었다.


“알았어요 아버지. 가자, 엄마한테.”


“싫어, 난 더 있고 싶은데······.”


“안 돼! 아버지한테 혼나. 얼른 와.”


쥬산은 들어가기 싫어하는 동생 쥬맥의 손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


이때까지의 시간은 뒷동산에서 아이들이 거대한 유성을 발견한 지 불과 두 식경(1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쥬맥이 형의 손에 이끌려 막 집으로 들어서는데,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서 거대한 굉음이 곡산까지 들려왔다.


쿠아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들이 대부분 삐걱대다가 주저앉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서 똑바로 서 있는 집은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땅이 거미줄처럼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고, 유성이 떨어진 곳으로 짐작되는 곳에서는 멀리서도 보일만큼 하늘로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불길한 기운을 풍기며 점점 더 밝게, 갈수록 더 거세게 타올랐다.


그 화광(火光)은 점점 더 천둥산 쪽으로 다가오며 커져만 갔고 땅은 쉼없이 흔들렸다. 마치 온 세상에 종말(終末)이 오려는 것처럼.


곡산마을 뒤쪽에 솟아 있는 천둥산에서도 큰 바위들이 굴러떨어지고 마치 산이 진저리를 치듯이 떨어 댔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생명체들이 긴장해서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쥬맥아! 이리 와서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으렴.”


청산댁은 무서움에 떨고 있는 작은 아들 쥬맥을 불러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쥬맥네 집은 무너지지 않고 건재(健在)하니 천만다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이 나서 집안보다는 밖에서 잠을 청했으나,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마침내 뿌옇게 새벽이 찾아왔다.


그러나 멀리서 다가오는 화광은 점점 더 북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땅은 점점 더 세게 흔들렸다.


“정말로 세상에 종말이 오려나?”


모두 근심 걱정에 아침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더구나 어른들은 무너진 집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가족들을 대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도 동녘이 뿌옇게 밝아 오며 아침 노을이 붉게 번지는 가운데 해가 천둥산 위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쥬맥도 밤잠을 설친 얼굴로 눈을 비비고 일어나 냇가에 가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엄마가 챙겨 주는 간단한 음식으로 아침을 때운 뒤, 형과 함께 동네 앞에 있는 구릉에 앉아서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어젯밤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밤을 지샌 사람이 많았다.


특히 집이 무너지거나 기운 사람들은 큰 당산나무가 있고 정자가 자리한 이곳에서 대부분 밤을 새웠다.


주변의 풀밭에는 큰 고목이 십여 그루 자라고 넓은 대나무밭도 있어서 그나마 안전한 곳이라고 여긴 것이다.


처음엔 하늘의 붉은 기운이 아침 노을이라고 생각했으나,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진하게 붉어지면서 온 하늘을 물들이자 모두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그때 쥬맥이 멀리 북쪽의 벌판 끝에서 나타나 들판을 뒤덮으며 오고 있는 무리를 발견하고 쥬산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형! 저기 좀 봐. 뭐가 오고 있어.”


쥬산도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고 유심히 살펴보니, 커다란 괴수 같은 무리가 온통 들판을 뒤덮으며 천둥산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게 뭐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마수나 요수 무리가 아닐까?”


어른들도 그것을 발견했는지 몇 사람이 몰려와 웅성거리며 그쪽을 주시했다. 만약 저게 마수나 요수의 무리라면 빨리 도망을 가야 할 판인데······.


“응? 저쪽에서도 오는데······.”


쥬맥이 다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환시(桓市)가 있는 방향에서 수많은 군마가 질풍처럼 달려온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데 군마는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온통 들판을 뒤덮었다.


그러면서 점점 힘찬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울리기 시작했고······.


두두두두두두두!!


자세히 살피니 갑주(甲胄)를 걸치고 큰 말에 올라탄 천인족의 기마대였다.


일명 천령대. 왜 갑자기 천령대 수만의 기마대가 질풍처럼 달려온 것일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밝혀졌다. 멀리서 대장으로 보이는 장군차림의 무사가 큰 검을 빼 들고 외쳤다.


“나선은하진을 펼쳐라!”


“진을 펼쳐라!”


두두둥~ 둥둥~ 두두둥~


“모두 공격하라!”


둥둥둥~ 두두둥~ 두두둥~


전고(戰鼓)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고, 기마대가 괴수 무리와 충돌했다.


그러자 갑자기 들판이 북소리와 아우성 소리 그리고 괴수들이 미칠 듯이 울부짖는 소리로 온통 가득 찼는데······.


대장의 목소리에는 진기가 실려 있는지 쥬맥이 앉아 있는 구릉까지도 그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끼요오오오오오!”


“카우우우우우!”


온갖 괴성을 지르며 괴수의 무리가 천령대에게 덤벼드는데, 그 안에는 사람보다 덩치가 수십 배도 더 큰 것들이 섞여 있었다. 형상도 가지가지고.


쥬맥이 내려다보는 곳에서 인간과 괴수들 간에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졌다.


모두 생사를 도외시한 채 죽고 죽이는 모습에 쥬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마대는 말을 탄 채 나선은하 형상의 큰 진을 다섯 개나 펼치고, 소용돌이처럼 빙빙 돌아가며 괴수들을 도검으로 척살(刺殺)했다.


그렇지만 괴수들이라고 그리 만만히 당하지 않았다. 어떤 녀석은 불을 내뿜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흉측한 발톱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쥬맥과 같은 철부지 어린아이가 언제 이렇게 생명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처참한 살육전을 보았겠는가?


“흐으으으으······.”


마치 자신이 칼로 난도질을 당하는 듯한 기분에 전신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때 누군가 따스한 손으로 쥬맥의 작은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제야 떨림이 가셔서 돌아보니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 시진(時辰)에 걸친 괴수와 인간의 싸움이 막을 내리고 얼마 남지 않은 괴수들이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는 수만이 몰려왔던 기마대도 많이 죽고 채 절반도 남지 않았다.


왜 괴수들과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일까? 어린 쥬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그러는 사이에도 하늘은 더 붉게 물들고 땅의 진동은 더 심해졌다. 균열도 이리저리 더 번지고. 그리고 어젯밤에 보이던 불타오르는 하늘이 훨씬 더 가까워져 있었다. 지금은 해가 뜬 대낮임에도 화광이 하늘로 충천하는 것이 훤히 잘 보였다.


괴수들과 전투를 마친 기마대는 너른 들판에 흩어져서 뒷처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괴수들의 배를 갈라서 무엇인가를 꺼내고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收拾)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 승리의 기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진동이 계속되자 마을을 재건할 생각도 못 하고, 곡산마을 사람들은 모두 당산(堂山)에 모여서 커다란 솥에 죽을 끓여 한 그릇씩 나누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어제부터 보이는 징조가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상황을 제대로 알려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오후가 되자 미시 중반(14시)에 또 천 명이 넘는 무리가 말에 여러 가지 물건을 싣고 환시 쪽에서 나타났다.


절반은 말을 탄 천령대 기마대고 절반은 신선 같은 선인(仙人)들이었다.


그들은 곡산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당산으로 다가오더니, 그중에서 대머리에 백발과 백염을 곱게 기른 선인 한 사람이 말에서 내려 길을 물었다.


“저 뒤에 있는 산이 천둥산이지요?”


“예, 천둥산은 맞는데 왜 그러세요?”


쥬맥의 아버지 한청이 나서서 물었다. 그러자 선인이 가만히 한청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자네도 소행성처럼 큰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겠지?”


“예, 그야 당연히······.”


“그 유성이 우리 별과 충돌한 충격때문에 우리 별이 부서지고 있다네.”


“예? 우리 별이 부서져요?”


“그래, 그래서 지금 우리 종족이 생존하기 위해서 산 위에 탈출구를 만들려고 가는 길이네.”


“어디에요? 저 천둥산에요?”


“맞네. 그러니 자네들도 살고 싶으면 나중에 한울님이 행차(行次)하실 때 뒤따라야 할 거야. 명심하게.”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인이 돌아서서 다시 말에 오르자 옆에서 수행하던 한 무장(武將)이 다가가더니 따지듯이 말했다.


“아니, 선인님! 그것을 누설(漏泄)하면 안 되는데 왜 알려 주세요?”


그러자 선인이 눈을 힘껏 부라렸다.


“여보게, 그럼 선인인 내가 거짓말을 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은 것이야. 다 우리 백성이 아닌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지.”


그러자 당당하게 따졌던 무장이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섰다. 아마 탈출구를 만드는 것은 대외적으로 기밀(機密)에 부쳐진 모양이었다.


“자! 빨리들 가세. 시간이 없네.”


선인이 앞장서서 길을 재촉하자 그 많던 인원이 산을 향해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쥬맥도 궁금하여 옆에 다가와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는 덜컥 겁이 났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별이 부서지고 있다는 말에 모두 깜짝 놀라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무리를 이루어 쑥덕거리는데······.


“설마요? 별이 파괴되려면 한 번에 박살이 나지 이렇게 조금씩이요?”


“그래도 선인이 거짓말을 하겠어?”


사람들은 몇 명씩 모여서 쑥덕공론을 폈다. 그러면서도 선인의 말을 정말이라고 믿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사항일지도 모른다.


한청이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자 청산댁이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다.


“여보! 당신은 애들을 데리고 위험하게 어디를 돌아다녀요? 그냥 가만히 집에 있지. 나 혼자 무섭단 말이에요.”


“땅이 흔들리니 당신도 집에 있지 말고 나가는 것이 좋겠어. 집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게 더 안전해.”


“그래도 어떻게 멀쩡한 집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요? 저는 싫어요.”


“아니,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집이 더 중요한가? 내게는 이 집보다 당신이 더 중요해. 그러니 내 말 들어.”


그 말에는 청산댁도 다른 대꾸가 없었다. 자신을 집보다 더 귀히 여기는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서일까?


“아무래도 짐을 싸 놓았다가 혹시 한울님의 행차가 있으면 따라가야겠어.”


“한울님의 행차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니, 좀 전에 당산에서 천 명이 넘는 기마대와 선인들이 천둥산으로 올라가는데···, 글쎄 탈출구를 만든대.”


“탈출구요? 무슨 탈출구(脫出口)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리별이 파괴되고 있다는 거야. 어젯밤에 그 큰 유성과 충돌해서···. 그러니 다른 별로 도망가는 길을 만드는 모양이지 뭐.”


“설마요? 어떻게 이런 큰 별이 부서져요? 농담일 거예요.”


“아니야. 선인이 농담을 할 리가 없고 그때의 눈빛이 진지했거든. 그러니까 만약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들이라도 미리서 조금씩 챙겨 두자고.”


이렇게 해서 쥬맥네가 피난(避難)을 가는 간단한 봇짐이 꾸려졌다.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설련하입니다.

주변 몇 분이 주인공의 이름 설정과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하여 궁금해하셔서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주인공의 이름을 쥬맥으로 정한 것은

 나중에 천인족이 우리 한민족의 모태가 되는 쥬신족(朝鮮族 = 珠申族 = 주신족)과 맥족(貊族)으로 분열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한 것입니다. 쥬맥의 무공을 기원으로 분열하니 그 첫머리를 따서 쥬맥으로 설정하였습니다.


 *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은

 천인족의 선인과 무인 사상을 우리 민족의 옛 고대 국가인 환국(BC 7,197년~) - 배달국(BC 3,897년~) - 단군조선(BC 2,333~)을 거쳐(* 환단고기(桓檀古記) 참조)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 백제의 싸울아비 정신으로 계승시키고자 함입니다. 긴 시간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이루고자 하는 제 꿈입니다.


 대륙을 주름잡았던 14대 천황인 치우천황(현재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의 상징)과 고구려 광개토대제를 생각하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설레일 것입니다. 


 우리의 옛 선인과 무인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몸바쳐 싸우고, 뒤에서 백성의 삶을 지켜 주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민족처럼 무조건 죽이고 뺏고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들이 아니었죠.


 지금까지의 정통 무협 소설들이 사실 중국인 한족 영웅을 내세우고, 우리 민족과 옛 이웃이었던 몽골이나 거란 말갈 여진 돌궐 묘족 흉노 등 형제국은 오랑캐나 변두리 국가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입니다. 


 이는 결코 기존 무협을 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중에는 정말 의와 협을 행하는 피가 끓는 훌륭한 소설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비록 소설이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중국 사대사상에 젖는 것을 우려함입니다. 부족하지만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60월 30일 오전 10시 유료 전환(291화~300화) 참조 23.06.29 94 0 -
공지 유료분 291화~300화 무료 전환(5/17~6/30 10:00) 23.05.12 141 0 -
공지 [완결 공지] 본 작품은 300화로 완결되었습니다 22.10.27 761 0 -
290 290화. 구호요왕과 생사결(生死決) 22.10.17 1,103 9 19쪽
289 289화. 선신(仙神)의 무공 22.10.17 1,054 8 18쪽
288 288화. 요왕의 혈제(血祭) 22.10.14 1,052 7 19쪽
287 287화. 태을현철을 찾아서 22.10.14 1,050 8 19쪽
286 286화. 새로운 수행(修行) 22.10.13 1,052 8 19쪽
285 285화. 잔인한 토벌(討罰) 22.10.13 1,053 7 19쪽
284 284화. 흑산계곡 대전투(大戰鬪) 22.10.12 1,054 7 18쪽
283 283화. 마령적(魔靈賊)과의 싸움 22.10.12 1,057 7 19쪽
282 282화. 위대한 거인들의 노래 22.10.11 1,087 8 19쪽
281 281화. 갈대밭의 혈투(血鬪) 22.10.11 1,051 7 18쪽
280 280화. 거인들의 복수전(復讐戰) 22.10.10 1,045 7 19쪽
279 279화. 적군(赤軍) 토벌 참전 22.10.10 1,058 7 19쪽
278 278화. 천인족 신선(神仙) 모임 22.10.07 1,051 8 19쪽
277 277화. 또다시 수행의 길로 22.10.07 1,060 7 19쪽
276 276화. 죽음도 막지 못하는 사랑 +1 22.10.06 1,052 8 19쪽
275 275화. 황혼 빛이 찬란한 여행 22.10.06 1,053 7 18쪽
274 274화. 둘만의 시간 22.10.05 1,065 8 18쪽
273 273화. 아내를 위하여 22.10.05 1,085 8 19쪽
272 272화. 하나를 주고 열을 얻는 법 22.10.04 1,062 7 19쪽
271 271화. 세월을 잊은 도깨비들 22.10.04 1,057 7 20쪽
270 270화. 다시 만난 세 친구(親舊) 22.10.03 1,054 7 18쪽
269 269화. 후계자(後繼者)를 찾아라 22.10.03 1,051 7 18쪽
268 268화. 오성마족과의 대결 22.09.30 1,053 8 18쪽
267 267화. 마족의 성마맹(聖魔盟) 22.09.30 1,057 7 18쪽
266 266화. 마왕 참마수와의 대결 22.09.29 1,056 8 19쪽
265 265화. 마황룡과 팔각녹수 22.09.29 1,073 7 18쪽
264 264화. 영체의 마계 수행 22.09.28 1,058 8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