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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34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2.10.05 08:32
조회
1,084
추천
8
글자
19쪽

273화. 아내를 위하여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아내 미루는 하루 종일 우울해했고 가끔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웃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가끔 친구 수르의 아내인 맥아인이 놀러 와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어울렸지만···, 가고 나면 도로 마찬가지여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결혼하여 함께 산 이후로 아내가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천년만년 자신의 곁에서 늘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들어 가는 꽃처럼 기운이 없으니 보기에 너무 안스럽고 가슴이 아팠다.


금방 떠날까 봐 덜컥 겁도 났고······.


아무리 밤늦게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아내.


도대체 무얼 하는지 혼자 정신없이 바쁠 때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자신의 뒷바라지까지 군말 없이 해내던 아내!


항상 자신이 못 한 일들을 묵묵히 대신해 주는 자신의 반쪽이었다.


좀 더 빨리 신경을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물론 자신도 한눈팔지 않고 사선 위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두 어깨에 처자식이라는 짐이 있으니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의 병이라 약도 없으니 이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많은 고민 끝에 우선 세가주 자리를 큰아들 쥬온에게 물려주었다. 쥬맥이 서른넷에 결혼하여 이듬해 낳았으니 큰아들도 벌써 121살이나 되었다.


좀 더 빨리 물려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도 아비와 같이 늙어 가니 말이다.


물론 대부분 죽을 무렵에 물려주지만 살아생전에 태상가주(太上家主)로 물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실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즉 이름만 물려주는 것.


어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쥬맥은 모든 실권까지를 모두 쥬온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처리하게 했다. 물론 큰 문제가 생겨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사태가 발생하면 아비로서 도와주겠지만 말이다.


아들 넷에 딸 둘은 벌써 자식을 7~8명씩 두었고, 막내가 거인족과의 전쟁터에서 가면서 아들을 한 명 남겼다.


손자들과 증손까지 결혼하여 고손까지 합하면 벌써 가솔이 100명이 넘었다. 이제야 겨우 세가의 틀이 잡히고 있는 것인데······.


모두 쥬맥이 준비한 영단과 내단들을 먹고 상승의 무공들을 익혀서 내공과 무술이 출중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제 몫 하나는 해낼 정도가 된 것이다.


쥬맥은 세가주 자리를 물려준 뒤 고손들까지 아직 벌모세수를 시키지 않은 후손들을 찾아서 모두 추궁과혈과 벌모세수(伐毛洗髓)를 시켜 주었다.


임독양맥도 모두 타통시켜 주었고.


이 하나만 해도 무인들에게는 큰 기연(奇緣)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창안한 무공들도 다시 한 번 점검하여 모두 전수를 해 주고, 무공서로 정리하여 가전절학으로 남겼다. 또한 틈틈이 금령파도 영력으로 연화를 시켜서 이제는 법기로 거듭났다.


기본적인 뒷처리를 모두 마친 쥬맥이 아내의 의견을 물었는데······.


“여보! 나랑 같이 둘이서 공기 좋은 대협곡에 들어가서 살까? 당신 몸이 안 좋으니 모두 잊어버리고 조용히 사는 것이 몸에 좋을 것 같애.”


“정말로요? 당신이 어릴 때 살았던 그곳이라면 저도 좋아요. 언젠가는 당신처럼 그곳에서 살아 보고 싶었거든요. 그곳은 당신의 고향이니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하게 찬성을 하여 우선 살 장소에 거처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더 멋진 곳에 더 멋진 집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궁궐 같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아담하면서도 살기에 편한 집.


어려서 버려졌을 때처럼 아내랑 동굴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은 어떤 곳이든 괜찮지만 아내가 드나들기에 불편할 테니까.


* * * * *


새로 지을 거처는 우선 아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아내를 업고 호신강기(護身罡氣)로 함께 두른 뒤 어풍비행(御風飛行)으로 날아서 우르대협곡을 찾았다.


쉽게 공간이동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내를 놀라게 하기는 싫어서다. 그리고 하더라도 나중에 설명을 모두 해 주고 스스로 원할 때 하기로 했다.


남편의 넓은 등 뒤에 업힌 아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일부러 주변 산천을 편하게 구경하도록 평소보다 천천히 날아갔는데······.


한 마리 새가 되어 나는 기분이라며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난리를 피웠다. 오랜만에 활짝 웃었고 말이다.


‘으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건강할 때 많이 태워 줄 걸.’


늦었다고 후회할 때가 그나마 기회가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둘만 같이 살면 여기저기 함께 다니면서 풍경이 멋진 곳에 구경도 좀 다녀야겠다.


대협곡 근처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위치를 물으니 웬일인지 두 군데가 다 마음에 든단다.


“나는 당신이 어릴 때 살았던 고향 같은 이곳이 좋아요. 그건 나에게도 고향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 그럼 집을 양쪽에 다 지어서 두 군데를 왔다갔다하면서 살면 어떨까? 당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처음 쥬맥이 버려졌던 큰 바위 옆은 주변이 모두 내려다보여서 좋고, 쥬맥이 살았던 동굴 근처는 항상 봄처럼 따뜻하고 아늑해서 좋단다.


그래서 결국 언덕 위에는 아담한 집을 짓고, 대협곡 안에는 아내를 위해 오르내리기가 좋은 동굴을 찾아서 기거하기 좋게 다듬기로 했다.


“여보, 우리 돌아가는 길에 대신전에 들러서 천령수를 보고 갈까?”


“네, 그래요.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어디든지 다 좋아요.”


“그보다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얘기해. 그래야 내가 해 주지. 안 그래?”


“네, 저도 좋아요. 같이 가요.”


둘은 돌아오는 길에 대신전에 들렀다.


“우와! 대단해요.”


다 자란 천령수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서 주변에 푸르스름한 영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치 지구를 지키는 신처럼 든든한 버팀목으로 보인다. 그리고 백옥의 대신전(大神殿)은 여전히 옛날처럼 장엄한 위용을 자랑했다.


비록 지금은 한울에서 물러났지만 모두 반갑게 맞아 주어서 천령수를 둘러보고 대신전에서 향을 올리며 천신께 기원(祈願)을 드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부디 건강하게 자신보다 더 오래 살게 해 달라고 말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면 아내를 잃고 남자가 혼자서 사는 것은 너무 초라하고 외로워 보였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아내가 자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쥬맥의 진심이었다.


아내는 반대로 빌었을지도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내가 구경하기 좋게 고도를 낮추고 속도를 늦추어서 오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다음 날부터 쥬맥은 대협곡에 거처를 마련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언덕 위의 바위 옆에 아담한 집을 짓는 것은 자식들을 시켜서 짓게 했다. 물론 직접적인 작업은 전문적으로 집을 짓는 목수들을 불렀지만······.


그리고 부모가 사는 집이니 자식들이 그 위치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급할 때나 필요할 때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주변에 인가가 없으니 안전을 위하여 선인들에게 부탁해서 주변에 진법을 두르게 했다.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아내에게는 필요해 보였다. 큰 바위 옆의 나무까지 모두 진법의 범위에 넣고, 바위에도 오르내리는 계단을 다듬어서 아내가 혼자서도 편히 오르내리게 만들었다.


물론 진법이야 이제 자신이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지만 다른 일에 바빴다.


우르대협곡 안은 너무 깊어서 집을 짓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가 없으니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땅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토지 관련 제도와 세법을 자신이 한울로 있을 때 만들었으니 자신도 이에 따라야 한다.


비록 비어 있는 땅과 계곡이지만 이를 관리하는 법이 있으니 토지 비용과 세금을 모두 내야 했다.


현 한울과 다른 대소 신료들은 그동안의 공덕이 있으니 그냥 사용해도 된다고 했지만, 자신이 만든 법을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는가?


자신이 살았던 동굴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을 찾아서 내부를 아내가 기거하기 좋게 확장하고 벽면도 매끄럽게 다듬었다. 그곳에 세 개의 방과 큰 거실을 만들고, 입구에는 뜰처럼 넓다란 전망대를 만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대협곡(大峽谷)을 옛날처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렸던 그때처럼.


그리고 아내의 안전을 위해 입구에 결계를 쳐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하였고. 그 주변에는 또 진법을 둘렀다.


대협곡 밑에도 넓적한 바위를 끼고 간단한 식사와 잠도 잘 수 있는 조그만 집을 짓고 둘레에 진법을 둘렀다.


이렇게 대협곡 내에 있는 거처는 모두 쥬맥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언덕 위의 집과 대협곡의 동굴을 포함해서 잠을 잘 수 있는 거처가 세 군데나 되었다.


이렇게 새로 살 곳을 만드는 데에 네 달이 금방 흘렀다. 여러 가지 생활 도구와 식량들을 저장하고 그리고 마침내 이사하는 날이 다가왔다.


“여보! 우리 이제 갑시다. 너희들은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


“안 돼요. 그래도 두 분이 사시는 데까지는 모시다 드려야지요.”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너희 엄마는 내 등을 타고 날아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단다. 다시 만날 기회야 얼마든지 많으니까 너희는 나중에 가끔씩 놀러 오면 되잖아.”


“그래, 그렇게 해라. 난 너희 아버지랑 둘이 가는 게 더 재미있어.”


따라나서려는 자식들을 뒤로하고 아내를 업은 뒤 어풍비행(御風飛行)으로 날아올라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자식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둘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결국 섭섭한 발길을 돌려야 했다.


#


대협곡으로 날아가는 쥬맥과 미루.


쥬맥이 어풍비행으로 날면서도 등 뒤에서 구경하기 바쁜 아내에게 물었다.


“저 녀석들이 우리가 둘만 가니까 모두 짐을 벗은 것처럼 시원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자 아내 미루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등을 두들기며 정색을 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괜히 자식들 욕 먹이지 마세요. 다 착한 녀석들이에요.”


“요즘 애들은 어릴 때나 착하지 나이 들면 다 영악해요. 우리가 젊었을 때하고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


“우리 애들도 이제 거의 100살이 넘었는데 뭐가 애들이에요? 지들도 자식 손자에 증손까지 본 녀석들인데······.”


“그렇네. 우리가 나이 든 것만 생각했지 자식들이 늙어 가는 것은 몰랐네. 벌써 세월이 그리 흘렀나? 빨라도 너무 빨라. 자식들이 벌써 100살이라니.”


결국은 모두 세월 탓이다!


서둘지 않았어도 두 시진 만에 언덕 위에 지은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아담한 집이 마음에 쏙 드는 눈치다.


먼저 아내와 나무 옆의 큰 바위에 내려앉아 뒤로는 높은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멀리까지 보이는 산하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막힘없이 확 트이니 가슴까지 뻥~ 하고 뚫린 기분인데······.


“어때? 바람도 경치도 시원하지?”


“네, 멋있어요. 이 나무는 지금 꽃이 핀 것을 보니 가을꽃이 피는 나무인가 봐요. 낙엽수가 가을에 흰 꽃이 피니 멋지네요. 낙엽수는 대부분 봄에 꽃이 피는데 말이에요.”


“응, 내가 이곳에 버려진 날 밤에도 흰 꽃이 눈송이처럼 산 아래로 하얗게 흩날렸지. 지금도 처음 보던 그날 밤의 풍경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

밝은 달밤이었는데 산속에 나만 두고 모두 떠났지. 홀로 일어나 이 바위 위에서 달빛 아래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는데···, 한 장의 그림 같은 장면이었지만 내게는 너무 큰 슬픔이었어.”


“보지 않았어도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히 그려지네요. 이 나무와 바위는 당신과 인연이 무척 많은가 봐요. 어릴 때부터 당신을 지켜보고 또 힘들 때마다 지켜 준 것 아니에요?”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 내 인생에 많은 덕을 베풀어 준 나무와 바위야. 혹시 내 전생(前生)에 내게 빚을 진 사람들이 그 빚을 갚으려고 이 바위로 변한 건 아닐까? 창석이 그녀석처럼 말이야.”


“예? 창석이요? 그게 누군데요?”


“어이쿠 실수. 아니야, 몰라도 돼.”


“에이, 당신도 참. 좋게 생각하세요. 밝고 좋은 것만 생각해야 복이 들어오는 법이에요. 어두운 걸 생각하면 마음도 우울해지잖아요.”


“그래, 알았어. 이제 당신도 마음속에 있는 짐은 모두 다 훌훌 털어 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해. 알았지?”


“알겠어요. 고마워요 여보.”


이렇게 이주한 첫날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직 두 부부만 함께 사는···.


쥬맥은 일단 수행을 뒤로 미루고 낮에는 아내 곁에서 쉬면서 말동무도 해 주며 같이 요리도 만들었다.


자신이 다 하겠다고 쉬라는 것을 그냥 재미 삼아 옆에서 도와주니 아내도 즐거운 모양이다. 세가에 있을 때보다 표정도 많이 밝아졌고······.


물론 도와주는 사람을 들이면 편하겠지만 둘만 오붓이 지내는 생활이 깨질까 봐서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누가 아파서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둘이서 밥을 해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뿐인데···, 구태여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일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 산속에서 홀로 모든 것을 해결(解決)하며 지냈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비교가 안 될 만큼 행복한 것 아닌가?


저녁을 먹고 큰 너럭바위 위에 올라가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린 시절 이곳에 홀로 버려졌던 그날처럼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흰 꽃이 눈이 내리듯 하얗게 휘날린다.


지대가 높으니 멀리 산 아래까지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는 모습이 꼭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어떤 꽃잎은 바로 눈앞에서 떨어지고, 어떤 꽃잎은 중간에···, 어떤 것은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멀리 날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아득히 멀어지는 꿈처럼······.


나무 위에 떨어지는 것도 있고···, 재수가 없는지 짐승의 변에 떨어지는가 하면···, 계곡까지 날아가서 물에 떨어져 시간 따라 흘러가는 꽃잎도 있다.


한 가지에서 같이 피어났건만 떨어져서 몸을 누이는 곳은 다 각기 다르다.


그래도 어디에 떨어진들 꽃이 아니랴?


그러니 누구 인생인들 인생이 아니랴? 모두에게 자신의 삶은 소중한 것이다.


처음에는 바람결에 휘날려 눈송이처럼 휘날리는 꽃잎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생의 종착역처럼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우리네 인생도 저처럼 꽃잎으로 피어나 이름 모를 바람결에 소리 없이 날려 가면 좋으련만······.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아내는 말없이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지금 무엇을 저리 깊이 생각하는 것일까?


쥬맥은 가을에 접어들어 제법 서늘해진 밤공기에 아내의 몸이 상할까 봐서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떨어지는 꽃잎을 오래 보고 있으면 괜히 울적해지니까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좀 쉬어. 밤하늘에 별이 참 많잖아. 별이 저렇게 많은 것은 못 봤지?”


그러자 아내가 다리를 쭉 펴고 편히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머! 정말 별이 너무 많네요. 지금껏 별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오늘은 당신 덕분에 이런 호강도 다 하네요.”


기쁜지 해맑게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 마치 아침에 피어나는 꽃처럼. 사랑하는 아내가 항상 이렇게 환하게 웃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달이 밝지만 그래도 많은 별이 보인다. 다음에는 달 없는 밤에 대협곡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보여 주고 싶다. 온 하늘에 꽉 찬 보석들을 말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홀로 빈손으로 왔다가 홀로 빈손으로 가는 것.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무슨 큰 욕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건 아니다. 소박한 하나의 꿈을 꾸면서 그저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의 물결을 힘들게 헤쳐 왔을 뿐이지!


그나마 손에 쥔 것들을 조금 내려 놓으니 이리도 마음이 편한 것을.


‘그래! 이제는 놓을 줄도 알아야지.’


소중한 것들이 옆에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다가 떠나고 난 뒤에야 알았을 때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어떤 것이 소중한 것인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렇게 떠나간 사람이 몇몇이던가?


이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은 젊음도 아름다움도 모두 잃은 늙고 힘없는 아내다. 그래도 이제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닌가? 자식들이야 더 오래 살 테니 말이다.


쥬맥은 별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런 생각에 혼자서 피식 웃었다.


“응? 당신 왜 웃어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수상한데······.”


“아니야. 그냥 당신 웃는 모습이 예뻐서 웃었어. 젊었을 때랑 똑같애.”


“피이~ 거짓말. 다 늙은 쭈구렁 마누라가 뭐가 예쁘다고······.”


“아니야, 정말이야. 지금도 내 눈에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꽃보다 예뻐요? 젊은 아가씨들보다 더 예뻐요?”


“그럼! 당연하지. 당신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잖아.”


“실없는 소리인지 알면서도 기분은 좋네요. 고마워요 여보.”


그러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일으켜서 볼에다가 뽀뽀를 해 준다


#


다음 날은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해 먹은 뒤에, 둘이서 나란히 손을 잡고 대협곡으로 산책을 나섰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향기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들판을 지나···, 심연의 바다처럼 깊고 거대한 균열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대협곡(大峽谷) 위에 둘이 나란히 섰다.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날려서 협곡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데···, 천 장 낭떠러지는 까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네 인생의 험로처럼.


미루에겐 결혼 전에 같이 한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다시 봐도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자연(大自然)의 절경이다.


“우와~~”


미루는 넋을 잃고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말없이 바라보기 바쁘다.


“여보! 우리 여기에서 같이 뛰어내려 볼까?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아유~ 그때는 그냥 죽는 줄 알았어요. 이제 늙었으니까 천천히 내려가는 방법은 없어요? 주변 구경도 하면서 말이에요. 당신은 재주가 많잖아요.”


“할 수 있지. 그럼, 내게 맡겨. 내가 안고 천천히 내려갈 테니까.”


자신 있게 아내를 안더니 허공답보(虛空踏步)로 천천히 걸어서 내려갔다. 마치 평지를 산보하듯이.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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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284화. 흑산계곡 대전투(大戰鬪) 22.10.12 1,053 7 18쪽
283 283화. 마령적(魔靈賊)과의 싸움 22.10.12 1,057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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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281화. 갈대밭의 혈투(血鬪) 22.10.11 1,050 7 18쪽
280 280화. 거인들의 복수전(復讐戰) 22.10.10 1,045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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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276화. 죽음도 막지 못하는 사랑 +1 22.10.06 1,052 8 19쪽
275 275화. 황혼 빛이 찬란한 여행 22.10.06 1,053 7 18쪽
274 274화. 둘만의 시간 22.10.05 1,065 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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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272화. 하나를 주고 열을 얻는 법 22.10.04 1,062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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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69화. 후계자(後繼者)를 찾아라 22.10.03 1,051 7 18쪽
268 268화. 오성마족과의 대결 22.09.30 1,053 8 18쪽
267 267화. 마족의 성마맹(聖魔盟) 22.09.30 1,057 7 18쪽
266 266화. 마왕 참마수와의 대결 22.09.29 1,056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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