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277화. 또다시 수행의 길로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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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맥은 자식들을 모두 앞에 앉혀 두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동안 정신없는 이 애비 때문에 고생들이 너무 많았구나. 미안하고 또 고맙다. 너희 어머니는 갔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나는 내일부터 대협곡으로 가서 너희 엄마랑 살던 곳에서 지내려고 한다. 홀로 수행에 전념할 생각이니 걱정할 것 없다. 때가 되면 돌아오마.”

“아니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아직 몸도 편찮으신데 홀로 거기에 가서 사시면 이 자식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남들이 들으면 다 욕해요.”

자식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반대를 하였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은 늙은 아버지를 홀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쥬맥의 뜻을 꺾지 못했다.

“체면만 따져 가며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너희 엄마도 떠났으니 나도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수행이나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 너희들이 이해해 다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 아니냐?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은 해 보고 죽어야지. 그러니 괜히 고집 피우지 말고 그냥 조용히 보내다오.”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결국 자식들이 주기적으로 식량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어서 그리하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에 수르 아내에게 들러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금령 2천 개를 전해 주었다.

“뭐예요 온이 아버지,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산속으로 수행을 하러 들어가니 자주 뵙지 못할 것 같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받아 두었다가 급할 때 쓰세요.”

“매번 이렇게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아이고, 그런 말씀은 마세요. 내가 나중에 수르 얼굴을 어떻게 보라구요. 그리고 온이에게 얘기를 해 두었으니 급한 일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얘기하세요. 잘 도와줄 거예요.

참! 집사람을 보러 갔더니 수르랑 우리 막내는 이미 영계로 갔더군요. 그러니 이제 마음을 놓으세요.”

“정말이요?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수르의 아내 맥아인은 무엇보다 수르가 영계로 갔다는 말에 기분 좋아했다.

옷이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금령주도 열댓 병 챙긴 다음 날.

날이 밝아 오자 공간이동으로 큰 바위 옆 언덕 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오붓하게 지내던 곳으로.

이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가 그를 맞았다. 아직도 곳곳에는 아내의 체취가 남아 있는데 말이다.

어디 체취뿐인가?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추억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식들이 아침에 쥬맥이 거처하던 방문을 열었을 때는 덩그러니 편지만 한 장 바닥에 남았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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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아내와 미루의 묘를 돌본 쥬맥은 저녁에 큰 활엽수 아래서 넓직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아내를 위하여 푹신하게 깔아 두었던 마른 풀은 이미 오래되어 바람결에 티끌처럼 날려가 버렸고···, 여기저기서 날아온 나뭇잎과 꽃잎만 무성하게 쌓여 있었다. 새삼 세월이 덧없음을 느낀 쥬맥은 그곳에서 환상처럼 겹치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여보! 이제 다시는 생기 있는 당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겠구려. 내가 돌보아 주지 못해도 부디 잘 지내구려. 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우리의 인연이 남았다면 다시 볼 날이 있겠지.’

바위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쥬맥의 가슴에도 한 가닥 바람이 스친다.

그 위에서 금령주를 육포에 한잔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지나는 바람 소리만 귓가를 스칠 뿐이다.

“다 어디로 갔나?”

누구는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누구는 신선이 되어 선계로 떠나고······.

이제는 홀로되어 어둠 속을 바라본다.

“떠난 사람은 누구 하나 돌아오지 않는구나! 이게 자연의 법칙인 것을···. 가는 사람이 있어야 또 누군가 태어나는 것이지. 태어났으니 또 언젠가는 왔던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인데 그때 나를 기억해 줄 이 누구련가?”

조용한 읊조림만이 주변으로 퍼져 나갈 뿐 세상은 적막에 쌓여 있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마저 숨을 죽인 채···.

하늘을 바라보니 달도 없는 밤하늘에 별들만 보석처럼 반짝이는데···, 그중에 외로이 홀로 떨어진 별을 바라보니 구름 같은 인생에 덧없이 흘러가 버린 세월이 야속하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차례로 곁을 떠나고, 이제는 얼굴에 밭고랑처럼 깊은 주름살이 가득한 늙은이가 되었다. 그리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어둠 속에 홀로 앉아서 그들을 그리며 한잔 술에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취기가 올라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섰다. 멍한 눈으로 하늘의 별과 어두운 산하를 내려다보며 듣는 이 없는 말을 혼자 내뱉는다.

“사람들아!

사물이 잠든 깊은 밤에 홀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저 수많은 별들 중에 외로운 별 하나, 별이 저리도 수없이 많은데 왜 홀로 외롭게 빛나는 것일까?

뭐 그러니 내 친구가 되는 거겠지만. 친구라고? 수르? 그래 내 친구야!

비가 내리는 밤거리를 나랑 둘이서 나란히 걸어 보지 않으련?

우산을 두들기는 빗소리! 신발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 그리고 바람 소리! 그 속에 함께 들려오는 너와 나의 마음의 노랫소리를 찾아서······.

그리고···, 한잔 술에 심혼을 울리는 그리움을 찾아서 말이야 그리움. 그래, 그리움! 그리움 하면 미루였지.

달빛이 온통 산과 들을 곱게 비추는 밤이면 그렇게 애달플 수가 없었지. 그렇게 그리움이 밀려오는 밤이면 애수(哀愁)에 젖어서 금령파(金鈴琶)에 노랫가락을 실어 보내곤 했는데······.

풀도 벌레도 달빛에 잠든 밤에 가을 밤을 울리는 그 슬픔을 아는가?

슬픔? 슬픔이라고? 슬픔 하면 또 자식을 잃은 것에 비할 게 없지. 더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막내를 잃어버리면 말이야.

그 슬픔이 함박눈처럼 앞을 가리며 정신없이 쏟아지던 날! 나는 정처 없는 나그네처럼 먼 길을 걷고 말았네. 끝도 없는 길을 말일세.

그때 왜 기억도 아득한 고향과 어머니가 그리도 간절하게 생각나는지······

나는 그렇게 슬픔에 불어 터진 심장을 부둥켜안고 흐르는 눈물에 손가락을 적시며 인생의 뒤안길을 비척거렸지. 그 서글픈 인생의 뒤안길을.

인생, 인생이라고? 이제 아내마저 떠난 나에게 인생을 논하자는 것인가?

사람들아! 인생을 안다고 자만하지 말게나. 쥐뿔도 모르면서 말이야. 잘나고 못나고, 잘살고 못사는 게 뭐 그리 중요하던가? 모두 겉치레인데···.

생사의 기로에 서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보지 않고서 인생을 안다고, 인생은 이런 거라고 강변하지 말게나.

그렇지만······, 어떤 인생이든 슬프고 힘든 운명의 파도와 싸우지만, 그래도 천신께서 주신 삶은 위대하다네.

우리네의 모든 삶이 말일세. 좋은 삶이든 나쁜 삶이든 모두 그 뜻이 있는 것이지. 설사 악마 같은 살인자라 해도 그처럼 살지 말라는 천신의 가르침과 경고가 깃든 것이니!

내게도 운명의 칼날 위에 선 날이 많았었지. 지금은 기억마저 어렴풋하지만···, 정말 정말 힘든 날들이 많았어.

부모 형제가 떠날 때는 철없는 슬픔에 울기만 했고, 미루가 가던 날은 억장이 무너졌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 수르를 보내는 날은 정신이 아득해졌지. 내 모든 꿈을 잃어버린 것처럼.

사랑하던 막내아들과 이별할 땐 마음이 재가 되고···, 내 반쪽인 아내마저 떠나가니 내 영혼이 죽었다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이유를 아는가? 오직 남아 있는 나의 작은 소명 하나! 바로 나 쥬맥의 삶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함일세.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그건 나도 몰라. 오직 저 천신만이 알 뿐이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무얼 알겠는가? 모든 것을 신께 맡길 뿐이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 본다는 것!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가슴으로 오직 끝까지 그 길을 가려 하네. 내게 남은 소명의 길을!”

두서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데 멀리서 유성이 밤하늘을 길게 가르며 사라지고···, 기러기는 떼 지어 밤하늘을 날아간다.

운명의 거친 파도에 등을 돌리면 행여 좌초가 될까 두려워서 그동안 목숨을 걸고 부딪치며 살아왔다.

숙명이라는 놈이 화살처럼 날아와서 뒤통수를 거세게 내리쳐도, 알 수 없는 마음속의 소명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나야 했다.

‘이만큼 겪었으면 나도 이제 삶을 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끝없는 심연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빛을 내뿜던 육신이 점점 어둠에 동화되고···, 시간이 흐르자 아무것도 없는 냥 흐릿해졌다.

그렇게 자연 속에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흐르는 대로 천지를 휘돌았다.

어느 순간, 가만히 눈을 뜨니 어느덧 새벽인지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그래! 아직도 내게는 천신께서 주신 소명이 남아 있지. 이제 남아 있는 그 길을 가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속세에는 더 이상의 미련도 없으니 말이야.

지금이야말로 내가 하고자 했던, 이루고자 했던 일에 몰두하는 것이지. 그 끝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신께 맡기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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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맥은 다른 것은 모두 손에서 놓아 버리고 오직 수행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낮이나 밤이나 오직 말이다.

자신이 스스로 신이 되어 소우주(小宇宙)를 이루는 꿈이 천신께서 주신 소명일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이제 할 일은 그것밖에 남지 않았으니 끝까지 그 일에 매달리기로 했다.

이루고 못 이루고는 신의 뜻이며, 그 길을 끝까지 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意志)요 소명(召命)이다.

이제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으니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며 자신이 꾸었던 꿈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보고, 하나부터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날밤을 새우기도 하였고 말이다.

어떤 날은 자는지 선정(禪定)에 든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며칠씩 가만히 동상처럼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몸과 다르게 그의 머리는 천지의 법칙을 짚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 * * *

쥬맥이 이렇게 대협곡에서 10년간 수행에 열중하고 있을 때.

선계에서는 태을 신선과 돈문 신선이 그동안 알아본 결과를 바탕으로 천령 선인, 아니 지금은 천령 신선이 된 천인족의 대선배 신선을 찾아가기로 했다. 둘만으로는 너무 외로우니까.

그리고 선계에서도 힘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형님! 빈손으로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뭔가 예물을 가지고 찾아뵈어야 하지 않을까요?”

“태을 아우, 걱정 말게. 내가 전에 마계에 갔다가 괴물을 잡고 구한 좋은 마령단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세.”

“마령단(魔靈丹)이라면 저에게도 몇 개 있으니까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를 예쁘게 포장해야겠군요.”

이렇게 해서 두 신선은 나름대로 예물을 준비해서 천령 신선이 거주한다는 별을 찾아갔다.

천령 신선이 거주하는 별은 의식의 거리로도 꼬박 며칠을 가야 하는 먼 곳에 있었다. 주로 인족 출신의 신선들이 모여서 거주하는 은하계다.

둘이 둔광을 일으키며 의식의 속도로 날아서 겨우 알아낸 별에 도착했다.

외기(外氣)층에 이른 다음에 내기(內氣)까지 허락 없이 들어가는 것은 초면에 실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둘이 속도를 줄이고 멈추어 섰다.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또한 많은 세월이 지나서 신선으로 비승할 때의 인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형님! 그래도 대선배신데 그냥 들어가면 실례가 아닐까요? 초면에 화를 내고 쫓아내면 큰일나지요.”

“그야 당연히 알리고 들어가야지 초면부터 실례를 범하면 되겠나? 전음부를 만들어 오지 않았으니, 여기 옥간을 전음부처럼 보내고 나서 회신을 기다리면 될 것이야.”

말을 마친 돈문 신선이 푸른 옥간을 하나 꺼내어 의식으로 방문을 알리는 인사말과 함께, 천인족의 후배 신선들이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내용을 저장하여 기파(氣波)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날려 보냈다.

이번에 쓴 비술은 옥간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아서 손으로 잡으면, 그 내용이 머릿속으로 전달되어 금방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쥬맥이 선인족으로부터 입수하여 개량을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선계에서 처음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렇게 옥간이 전음을 담고 날아갈 때, 천령 신선은 막 수행을 마치고 향긋한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옥간 하나가 푸른 빛을 내며 눈앞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게 뭐지?’

전음부도 아닌 것이···, 희한하여 손으로 낚아채서 살펴보려고 하는데, 옥간으로부터 손을 통하여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말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천인족에서 최근에 새로 신선이 되어 비승한 돈문과 태을이라고 합니다. 같은 천인족 대선배이신 천령 신선께서 여기에 사신다고 하여 인사를 드리러 왔으니 방문을 허하여 주십시오.]

천령 신선은 손에 쥔 옥간(玉簡)을 통해서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래? 내가 온 지 5천 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같은 천인족에서 벌써 둘이나 신선을 배출했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정말 반가운 일이로군.”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벌떡 일어섰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옥간이 발출된 기점으로 달려가니 웬 젊은 신선이 둘이서 나란히 서 있다.

아니, 신선이 이렇게 젊다니!

‘영체도 반로환동(返老還童)을 하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의문스러워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이상하네. 신선들이 왜 이리 젊은가? 정녕 천인족 출신이 맞는가?”

자신은 300년 정도의 고된 수행을 통해서 힘들게 신선이 되느라고 긴 백발(白髮)과 백염(白髥)에 얼굴은 온통 주름살투성이인데 말이다. 앞의 두 신선은 젊다 못해서 풋풋한 어린 티가 나는 젊은이 같다.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천인족의 돈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태을이라고 합니다.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천인족이라면 내 후배가 확실하구먼. 어서들 오시게, 정말 반가우이. 진작에 찾아오지 않고 뭐했나? 나 혼자서 무척 외로웠거든.”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 소리 말게. 어서 들어가세.”

천령 신선이 두 후배의 손을 잡고 자신의 거처로 이끌었다. 정말 천인족 후배들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천령 신선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다.

신선들은 수없이 많지만 같은 종족 출신이 없어서 5천 년 동안이나 외롭게 지냈으니 그럴 수밖에!

거처하는 전각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에 준비해 온 선물을 내밀었다.

“저도 비승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여기 태을 신선과는 생계에서부터 아는 사이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 약소하지만 선물을 준비했으니 부디 내치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사랑스러운 후배 둘이 예쁘게 포장한 작은 꾸러미를 하나씩 건넨다.

“고맙네. 그리고 같이 지내는 것은 정말 잘했군. 앞으로는 서로 자주 왕래를 하면서 살자고. 아는 신선들이 별로 없으니까 심심해서 죽겠어.

그런데 우리 아리(峩理)별 같은 작은 별에서는 1만 년에 한 명이 비승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5천 년 만에 그것도 두 명씩이나 비슷하게 비승을 했누?

무슨 새로운 비술이라도 발견되었나? 최근에 개발된 좋은 공법이 있으면 나도 좀 알려 주시게.”

“선배님, 아리별은 소행성처럼 큰 유성과 충돌해서 거의 파괴되어 이제 사람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천인족은 공간균열로 겨우 지구라는 별로 이주를 했고요.

벌써 150년 가까이 되었는데, 여기 태을 아우에게 똘똘한 손자 같은 무인이 하나 있어서, 그 녀석 덕분에 둘 다 이렇게 비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수행을 하는 선인에게 손자가 있었어? 그럼 장가를 갔단 말인가?”

그러자 태을 신선이 당황하여 손을 흔들면서 항변이라도 하듯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선배님, 선인이 어찌 후손을 두겠습니까? 제가 그냥 어려서부터 손자처럼 여기던 아이입니다. 쥬맥이라고 아주 똘똘한 녀석인데, 신이 되어서 소우주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아마 보실 날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자 그제야 천령 신선도 태을 신선의 사정이 이해가 된 모양이다.

‘음~ 손자 같은 녀석이라? 인연이 닿아서 덕을 베푼 일이 있나 보군.’

“쥬맥? 이름 좋군. 우리 천인족 말로는 용감한 아이라는 말이 아닌가? 이제 그 녀석까지 오면 우리 천인족도 한패를 이룰 수 있겠어.

종족수가 많은 다른 종족은 신선들이 수백 명이라 그 조직을 신선부에서도 무시하지 못한다네.

여기도 힘이 있어야 해. 그나저나 아리별이 파괴되었다고 하니 아쉽군. 내가 고향별이 그리워서 이곳을 아리별과 똑같이 만들었거든. 에이, 거참.”

아리별이 파괴되었다고 아쉬워하는 천령 신선을 보며 돈문 신선이 알겠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어쩐지 눈에 익다 했습니다. 그런데 선계에도 조직이 있나요? 모두 수련이나 하는 것이 아니구요?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업무 지원을 나가면 된다고 하던데요.”

그러자 혀를 차는 천령 신선이다.

“쯧쯧쯧! 이 사람들이 순진하기는···. 어디에나 머릿수에 따라서 힘이 따라다닌다네. 선계(仙界)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자체 조직들이 있거든.

천인족도 크게는 인족에 포함되기 때문에 나도 미리내 인족 모임에 참석을 하지만, 미리내 인족은 모두 해 봐야 100명도 안 돼요 100명도.

전체 신선들 수에서 가장 꼬래비야. 그리고 무엇보다 힘 있는 고계 신선이 없어요 고계 신선이, 으휴······.”

그러면서 천령 신선은 개탄스럽다는 듯이 긴 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럼 모두 신선들만 있고 영선(英仙) 이상의 고계 신선이 한 분도 안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선배님도 오신 지 벌써 5천 년이 넘으셨잖아요?”

“나야 지금은 한 단계 올라서 겨우 영선이야. 미리내의 인족 중에서 최고로 높은 신선이 이제 겨우 만선일세. 태선 위의 만선(萬仙) 말일세.

고계의 신선이 되는 것도 다 암암리에 조직의 힘이 작용하는 거야. 그 만선 위의 시선(始仙)이나 환선(環仙)은 한 명도 없어.”

그러자 두 신선은 그래도 영선이 되었다는 말에 기쁜 표정으로 축하했다.

“아이고~ 그래도 선배님께서 영선이 되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저와 이 태을 아우가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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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