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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의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밤길
작품등록일 :
2013.09.06 23:05
최근연재일 :
2014.12.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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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0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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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글자
27쪽

제6장 새로운 출발(5)-내용수정했습니다

이 글은 가상의 이야기이며 등장인물,사건등 모든 내용은 실제와 관련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

신주쿠 근교

혜영은 오래전 일본에 와서 술집아가씨 생활을 하다가 좋다고 매달리는 일본남자와 결혼을 했다.

남자는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간간히 들러 식사를 하는 혜영을 눈여겨보다가 혜영이 일하는 술집까지 쫓아다니며 수년을 매달린 덕분에 겨우 승낙을 얻어서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후, 자신을 쫓아다니느라 제대로 운영을 하지 못해 적자에 허덕이던 식당을 접고, 둘이서 돈을 합쳐 조그만 한국식당을 차렸다. 장사는 그럭저럭, 몇 년째 오순도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유일한 고민이었다.

혜영이 이모를 만난 건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이모는 자신이 일하던 술집의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려움에 처한 혜영을 비롯한 한국에서 건너온 여자들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결혼식 때 부모님의 자리를 지켜준 사람도 이모였고, 복잡한 결혼 준비도 이모가 쫓아다니며 해결해 주었다. 그런 이모가 나가사키로 떠난 건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부터였다.

유흥가에 폭력배가 관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언젠가부터 신주쿠의 뒷골목이 전국구인 야마구치파의 수하인 현 두목의 발아래 들어가면서부터는 노골적으로 포르노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의 동생을 사장으로 내세우고 비슷한 주변업자들을 정리하면서 세를 키웠던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당연히 여자들이 많이 필요했고 그 공급을 야마구치파가 담당했는데 주로 자신들 구역의 술집에서 빛을 지우거나 협박을 통해 강제로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반항을 하거나 도망치는 여자들은 더 가혹한 일을 당했는데 주로 매니아용 변태물의 대상이 되어 촬영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었고, 살아남더라도 온갖 병에 시달리거나 마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어 버렸다.

이모는 그렇게 사라진 아가씨의 행방을 쫒으며 술집 사장과 다툼을 벌였고, 잦은 충돌이 생기다보니 야쿠자들에게 폭행도 당했다. 결국, 일자리도 쫓겨나게 되어 예전 자신이 생활했던 나가사키로 돌아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이모에게 혜영이 어려움에 처한 자영을 부탁했었다.

혜영이 자영을 처음 본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에서였는데 술집 아가씨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왔었다.

착하고 예쁜 자영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처음엔 안쓰러웠다. 자주 얘기를 나누다보니 여기까지 끌려오게 된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동생처럼 지내며 보살펴주게 되었는데 미모가 눈에 띄다보니 결국 놈들의 마수에 걸려들게 되었고, 그 후로 삶을 포기한 듯 놈들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이 무작정 도망치다가 다시 잡혀왔단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놈들의 사무실에서 가스폭발이 일어나 주변에서 난리가 났었다.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사이에 자영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혜영은 화상을 입고 엉망이 된 자영을 병원에서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겉으로 들어난 상처보다는 몸 상태가 괜찮았다.

그 후로 자영을 수시로 찾아가 돌보고 있었는데 야쿠자들이 그녀를 처벌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혜영은 몸도 성치 않은 자영을 빼내 이모에게 보냈다.

다행히 이모는 혜영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자영을 자신의 딸처럼 보살피며 지내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리하고 올라온다고, 당장 살 집을 구해놓으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쿠자들의 눈을 피하며 신주쿠에서 살아가기는 힘들텐데 무슨 생각으로 올라오려는지 불안했지만 가급적 눈에 띄지 않을 지역을 골라 집을 구했다.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큰돈이 있다고 하니 집을 얻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음날.

방이 3개나 있는 집을 보고 이모와 자영은 무척 좋아했다. 셋이서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도 널따란 거실이 있으니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겠단 생각에 웃음꽃이 피었다.

더구나 그가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이 각자 방을 사용하더라도 한 집안에 머물 수 있단 생각에 맘이 편했다.

집을 둘러보고 혜영의 도움으로 간단한 살림살이를 장만한 후, 늦은 밤 혜영의 식당에서 간판 불을 끄고 식당문도 잠근 체 모두 모여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자영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음식을 먹을 때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고 마스크를 내린 후 음식을 넣고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여기 있는 모두가 자영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모른척하며 오히려 자영에게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편하게 권했다. 자영은 음식은 별로 손대지 않고 술만 한잔씩 마셨다.

“언니, 이렇게 다시 보니 너무 좋아요.”

“호호~ 자영이 네가 이렇게 환하게 웃으니까 나도 너무 좋다. 그리고 저렇게 멋진 남자가 옆을 지켜준다니 너 너무 좋겠다. 부러워~ 호호호!”

혜영이 휘를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루 종일 귀가 따갑게 그의 활약상을 들었다. 약간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늘 만난 내내 그의 칭찬일색인 이모였다.

“그게 다~ 자영이가 착해서 하늘이 내리신 복이다. 복.”

“이모, 그럼 나는 독해서 하늘이 저런 살덩이를 내려 주신거야? 이봐요 살덩이 씨! 어디 얘기 좀 해보시지? 하늘에서 나한테 안가면 죽인데? 어디 말 좀 해봐. 히힛”

혜영이 옆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 자기 남편의 뱃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놀렸다.

“헤헤~ 자기야 조아, 조아.”

혜영의 남편 타쿠야가 뚱뚱한 몸을 비틀며 서툰 한국말로 애교를 떨었다.

"형부 나도 형부가 좋아요. 호호~"

이모와 자영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 타쿠야는 뱃살만큼이나 인상도 좋았다.

휘는 묵묵히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했지만 자영이 즐거워하니 그것으로 좋았다.

자영이 휘의 옆에서 잔에 술을 채워주었고 상추쌈을 싸서 두 손으로 그에게 권했다.

휘는 당연하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려 한입가득 상추쌈을 받아먹었다. 이런 경우가 어릴 때 외에는 없었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편하게 했던 것이다.

당황한 듯 상추쌈을 휘의 입에 넣어준 자영이 얼굴이 벌게졌다. 설마 입으로 받아먹을 줄이야 생각을 못했다.

“호호호. 맛있어요?”

혜영이 그 모습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휘에게 물었다.

“음...쩝쩝... 꿀꺽, 맛.. 있소.”

“자영이가 주니까 더 맛있는 거죠?”

“맞소.”

“호호, 이사람 거짓말을 못하나 보네. 푹 빠졌어. 그래 자영이가 그렇게 좋아요?”

혜영이 웃으며 휘에게 능청스럽게 물었다.

“아이~ 언니, 왜 그래, 그 분께 그러지 마요.”

자영이 얼른 혜영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안 그래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언니가 자꾸 짓궂게 구니 좌불안석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자신이 더 잘 아는데, 이런 몰골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 사람도 옛 기억의 첫사랑과 헷갈려 자신을 위해 준 것이지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쳐다보기나 했겠는가.

“얘는~ 맞다잖아. 네가 주니까 더 맛있데. 이런 순정파가 어디 있니? 우리 자영이가 이제야 임자 만났네. 호호호.”

“언니! 그만해요. 내 처지에 무슨... 말도 안돼요.”

자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피하려하는데 휘가 손을 뻗어 그녀를 잡고 다시 자리에 앉혔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상관없소. 당신의 겉모습이 어떠하던, 당신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던, 당신이 원한다면 항상 당신 옆에 있을 것이요.”

“왜...요? 이제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신데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찾으시던 분이 제가 아니란 것도 아셨잖아요.”

“내가 좋아서 그러오. 당신의 기운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소. 아마 당신을 지켜주라는 뜻일 것이요.”

“와아~ 열혈남이다. 어머, 어쩜 저렇게 멋진 말을... 사랑고백도 새롭네. 당신의 기운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소. 흐하하. 이모, 저 사람 원래 말을 저렇게 해?”

혜영이 일부러 굵은 목소리를 내어 호들갑을 떨며 자지러졌다.

이모는 흐뭇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혜영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얘, 너는 네 남편이나 잘 챙겨. 이것아~ 자영이는 걱정 말고. 호호호.”

혜영이 술잔을 들고 타쿠야를 쳐다보니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도 같이 웃어주며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저 사람도 자신이 모처럼 술 한 잔하며 크게 웃으니 좋은가보다.

“아잉~ 여보, 자기야~ 당신도 예전에 저렇게 멋진 고백했지~이. 그치? 에구~ 우리 귀여운 살덩어리~ 쭈!”

타쿠야가 혜영의 코맹맹이 소리에 같이 웃어주며 쭉 내밀고 있는 혜영의 입술에 쪽 소리를 내며 뽀뽀를 해줬다.

“자기야~ 조아 조아 쪽~”

“에구, 우리 이쁜 남편도 술 한잔 해야지. 고기는 내가 구울테니 우리 살덩이도 제 술 한잔 받으세요~”

혜영이 타구야에게 술을 따라주자 타쿠야가 모두를 향해 잔을 들어올렸다.

“자... 위하여~”

이모도 자영이도 혜영이도 모두 잔을 모아 부딪쳤다.

“아잇! 뭐야. 뭐해요. 어서 이리와요~”

멀거니 자신들을 바라보는 휘를 혜영이 부르며 자신의 잔을 휘의 잔에 살짝 갖다 댔다.

“이렇게 같이 잔을 모아서 살짝 부딪치는 거예요.”

자영이 설명을 해 주었다. 휘가 그런 자영을 보고 웃으며 잔을 들었다.

“우리 자영이 행복을 위하여!”

혜영이 큰소리로 외쳤다.

“위하여!”

이모도 타쿠야도 자영도 따라서 같이 외쳤다.

휘는 머뭇거리다가 뒤늦게 따라했다.

“...위하여!”

“뭐야~ 왜 혼자 늦어요. 자영이가 행복해지는 게 혹시~ 싫은 거예요?”

“헉~ 아니오. 그 그럴 리가 있겠소.”

혜영의 다그침에 휘가 기함을 했다. 그런 그의 순진함에 다함께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 호호호!

모처럼 모두가 즐거운 밤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셋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이렇게 넓은 거실에서 편히 쉴 수 있다니 꿈만 같구나.”

이모가 행복한 얼굴로 자영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게요. 이모, 이 모든 게 저분 덕분 이예요.”

“그래, 그런데 이제 호칭도 좀 바꿔야하지 않니? 언제까지 이분, 저분 할 수는 없잖니?”

“어머? 그럼 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죠?”

“글쎄다, 아직 결혼은 안했으니 여보, 당신하고 부르기엔 조금 이상하겠고.”

“이모!! 결혼이라뇨?”

자영이 얼굴이 빨개져서 이모를 흘겨봤다.

“호호호,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얘기 좀 하자. 저 사람도 너를 마음에 두고 있고 내가 보니 자영이마음도 그런 거 같으니 둘이 서로 의지하고 살면 어떻겠니? 형편이 이러니 결혼식을 치를 수야 없지만 둘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살면 좋겠구나. 저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도 다 운명이다. 그러니 앞으로 서로 부부로서 대해라. 어찌되었던 겉모습을 보면 나이도 둘이 비슷해 보이니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 거긴 어때요?”

이모가 휘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흠흠... 나 난 아무래도 상관없소. 아니... 조 좋습니다. 자영, 그대만 괜찮다면 문제될 게 뭐있겠소? 큼큼...”

빈틈이 없을 것 같던 휘의 얼굴이 은근히 붉어졌다.

“호호, 저 봐라. 저 양반도 은근히 바라고 있잖니.”

이모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두 사람의 손을 끌어 당겼다.

“내가 지켜보니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다. 자영이 지금 몸이 저 모양이지만 천성이 착하고 수술을 하면 어느 정도 회복될 가능성도 많으니 서로 의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휘, 댁도 흘러온 과정을 내가 들었지만 아직도 믿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봐야 믿어 줄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자영이는 그런 댁을 찰떡같이 믿으며 따르니 서로 좋지 않은가, 맘 맞춰서 잘 살았으면 해. 어떤가?”

“아이~ 이모. 갑자기 무슨 말을...”

자영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휘 역시 마찬가지 였지만 얼굴엔 미소가 어렸다.

“그럼 이제부터 내 자네라 부르겠네. 내가 자영이 이모니 조카사위 아닌가. 강 서방이라고 해야 하나, 호호.”

“편히 부르십시오. 저야 이 낯선 땅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데 이렇게 대해 주시니 고맙기만 합니다.”

“그럼 두 사람의 마음은 내 알았으니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 결혼식이야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하더라도 오늘부터 둘 사이는 부부로 지냈으면 하네. 현재 우리 상황이 어떤지는 둘 다 잘 알고 있으니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자네는 자영일 잘 돌봐주고 자영인 강 서방을 하늘처럼 믿고 따라줬으면 좋겠다. 약속할 수 있겠니?”

이모의 진지한 모습에 둘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에...”

그런 둘을 남겨두고 이모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챙겨왔다. 다탁위에 촛불을 켜 놓더니 물 한 공기를 떠 놓고 이모가 둘이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하라고했다.

비록 초라하지만 서로 조심스럽게 마주보고 절을 했다.

이모가 둘의 그런 모습에 눈물을 찍어냈다.

“둘이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흑... 고마워요, 이모.”

자영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둘이서 이모를 앉혀놓고 같이 절을 올렸다. 이모가 둘의 손을 끌어 마주잡게 하자 둘의 눈길이 마주쳤다. 자영이 부끄러워 눈길을 내렸다. 휘가 그런 자영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날 믿으시오.”

“믿어요.”

이모가 그런 둘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 난 이제 필요 없으니 들어가 자련다. 둘이 밤새 얘기를 나누던 콩을 볶던 알아서 해라. 호호호”

“아이~ 이모도 참. 편히 주무세요.”

“잘 주무시오.”

이모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에 둘만이 남아 어색한 상황이 되자 휘가 자영의 옆으로 다가가 가녀린 어깨에 손을 두르며 끌어안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자영이 딸려왔다.

“전 너무 부족하고 못난 여자예요.”

“내겐 당신이 전부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여자요.”

“전... 과거가. 흡.”

자영의 말은 이어지질 못했다. 휘가 자영의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버렸다.

비록 화상으로 인하여 몰골은 비참하였지만 휘에겐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달콤한 입술이었다.

“하아~”

긴 입맞춤이 끝나고 달뜬 숨을 내뱉는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휘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당신의 과거가 어떠했던, 무슨 일을 겪었던 상관없소. 나에게 부끄러워 할 것도, 미안해 할 것도 없소. 내게 말할 필요도 없소. 지난일은 잊으시오. 앞으로는 내가 지켜 줄 테니 날 믿어요.”

“흑흑...고마워요.”

자영은 따듯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걸 느꼈다. 그 기운은 너무나 포근해 마치 어렸을 때 아빠의 품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이 사람의 사랑이리라.

“사랑해요.”

“나도 사랑하오.”

휘가 자영을 번쩍 안아들고 방으로 향했다.

“이제 부부가 되었으니 같이 누워야하지 않겠소?”

“하아~ 창피해요.”

침대에 자영을 살며시 내려놓은 휘가 그녀의 옷을 벗겨주려 하였다.

“아... 안돼요. 저 저는...”

“험험... 내게 창피할 게 무엇이 있소. 첫날밤은 원래...”

“그게 아니라... 제 몸이, 화상으로 상처가 많아서 보여주기가 민망해요. 흑흑!”

자영은 정말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기가 창피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부를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얼굴도 그렇지만 몸뚱이에도 화상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깨끗한 몸으로 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자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주고 싶다. 그러나 화상으로 인한 상처도 보기 흉했고, 자신은 이 남자 저 남자들에게 몸뚱이도 더럽게 유린당했으니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서러워 또 눈물이 솟았다.

“흑흑!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가 못나서 미안해요. 흑!”

“그런 말마시오. 당신이 왜 미안해한단 말이요. 당신의 그런 모습도 난 괜찮소. 그냥 이렇게 당신이 내 앞에만 있어도 난 행복하오. 당신이 팔다리가 없다면 내가 당신의 수족이 되어 주리다. 당신이 앞이 안 보인다면 내가 당신의 눈이 되어 주겠소. 그러니 당신의 그런 작은 흉들일랑 괘념치 말고 다 보여주시오. 난 다 받아들일 것이오.”

“흑!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자영이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상의를 벗어가기 시작했다. 휘가 자영의 상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어 한 쪽으로 내려놓았다.

그녀의 몸 곳곳에 아직 다 낫지 않은 화상의 흔적들이 들어났다. 휘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상처를 더듬어 갔다. 한쪽 가슴에도 짓무른 흉터가 있었고 배에도 화상의 자국은 남아있었다.

“많이 고통스럽겠구려.”

“아녜요. 이젠 많이 나아졌어요.”

“휴우~ 이리 오구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휘가 자영을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이 사랑스런 여인이 지나온 험난했던 길이 어떠했을지 그 고통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녀의 몸이 대답해주고 있었다.

“이제 아무 걱정 마시오. 내가 지켜줄 것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나도 사랑하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을 새워 도란도란 이어졌다.


며칠 동안 이것저것 부족한 살림살이도 장만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이모는 바빴다. 돈이야 휘가 가져다준 게 있어서 충분했지만 원체 검소한 성격이다 보니 요것조것 따져가며 아꼈다. 이모는 자영의 수술비용으로 사용하려고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바쁘게 돌아다니는데 이 두 사람은 부부로 인정을 해 줬더니 늦바람난 뭣처럼 밤이나 낮이나 방안에 콕 박혀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둘의 사이가 좋은 것을 뭐라 하지는 못하겠지만 은근히 심통도 났다.

지금도 장을 봐 오느라 땀을 흘리며 돌아왔건만 누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방안에선 기척도 없었다.

“자영이 안에 있니? 아무도 없어?”

오늘은 한마디 해줘야겠단 생각에 소리쳐 불렀다.

잠시 후에야 자영의 잠결에 취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이모, 저희 방에 있어요.”

“에휴~ 깨 볶는 냄새가 왕동을 한다. 이 더운 날에.”

“... ... ”

스르륵!

잠시 시간이 흐르고 자영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나왔다.

“이모!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뭘... 지금 네 행색을 좀 봐라. 호호홋!”

자영이 얼른 머리를 매만지며 이모의 손을 끌었다.

“아이 참, 아니라니까... 이모 이모, 잠깐만 이리 앉아 봐요. 내가 얘기해 줄게.”

“허이구~ 얘기는 무슨, 내가 너희 사랑얘기를 뭐 하러 듣니.”

그러거나 말거나 자영이 이모를 소파에 앉히고선 자신의 앞가슴을 헤치며 이모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이모, 여기 좀 봐 봐요.”

이모가 화들짝 놀라며 자영의 가슴을 밀쳐냈다.

“아이고, 이것아. 창피하게... 뭐 하는 짓이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 가슴을 보라고요.”

“아니긴 뭐가 아녀, 아니 내가 네 가슴을 왜 봐? 뭘 자랑하고 싶어서... 왜? 강서방이 뭔 짓을 했니? ”

자신이 급했다는 듯 자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호홋! 이모, 저이가 제 몸에 뭔 짓을 하긴 했죠.”

“헛 참, 이제 대놓고 지 서방 자랑질을 하는구먼... 허허, 자영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이모가 싫지 않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 자영이 다시 자기 가슴을 열어서 이모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모, 제 가슴에 상처를 보란 말 이예요.”

“뭐, 상처?”

그제야 이모가 자영의 가슴으로 눈을 향했다. 예전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 자신이 직접 약을 발라준적도 있었기에 자신도 화상으로 인한 상처가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놀란 듯 이모의 손이 천천히 자영의 가슴으로 향했다. 상처가 상당히 아물어 있었던 것이다. 이모가 자영의 옷을 급하게 벗기기 시작했다. 자영은 이모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른 곳의 상처도 살펴보았다.

“어... 어쩜, 가슴의 상처만 이렇게 나을 수 있니?

다른 곳의 상처와 비교하니 가슴의 상처가 훨씬 깨끗해 보이는 게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모, 이제 알아보겠어요? 상처가 많이 나았죠?”

“그래, 어찌된 일이니? 겨우 며칠 사이에 이게 뭔 일이라니?”

“첫날, 저이가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싸~한 게 너무 상쾌해서 아픔도 사라졌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만져달라고 했는데 상처의 딱지가 일어나고 새살이 돋아났어요. 그래서 지금껏 수시로 손을 대고 있으니까 이렇게 변했어요. 이젠 아무 고통도 없고 여긴 다 나은 거 같아요. 그래서 얼굴에도 한번 해 본데요.”

자영의 말을 들은 이모가 벌떡 일어나서는 달려가 둘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방안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는데 휘가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자영이 이모의 팔을 잡고 작게 속삭였다.

“이모, 잠깐만요. 저러고 있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어요. 정신을 모으는 거래요.”

이모가 놀라서 입을 떡 별리고 가만히 쳐다보니 휘는 팬티만 입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영이 가만히 다가가 수건으로 조심조심 땀을 닦아주었다.

그때, 휘의 눈이 번뜩 뜨였다.

“휴우~ 오셨습니까?”

“흠흠... 아니, 자넨 매번 사람을 놀라 게 만드는구만. 도대체 어떻게 한 겐가?”

“저도 잘 몰랐었는데 아마도 제가 가지고 있는 기운하고 자영의 기운이 서로 잘 맞나봅니다.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제 몸속의 기운이 자영을 치료해 주더군요.”

휘도 깜짝 놀랐다.

첫날밤, 조심스럽게 부부로서의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냥 서로 좋아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밤새 자신이 자영의 가슴을 만지며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자영이 무척 생기가 돌았다. 항상 고통에 잠 못 이루었는데 어젯밤엔 무척 편안히 잠을 잤다고 하며 가슴을 더 만져주길 원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자신이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갈무리한 후 조금씩 기운을 그녀에게 보내주기 시작하자 몸이 뜨거워지며 자신의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그녀를 향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기운은 그녀의 몸속으로 퍼져가진 않았지만 손바닥주변으로 퍼지며 상처를 치료 했었다. 그래서 지금껏 계속 반복해가며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기운이 떨어지면 호흡을 하여 보충하고 다시 시도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둘의 얘기를 들은 이모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그사이 기가 빠져서 강서방의 얼굴이 홀쭉해 졌다며 씨암닭이나 한 마리 사야겠다고 다시 시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몰론, 두 사람을 다시 방안으로 떠밀어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씩 차도는 있었지만 한 번에 효과를 보기에는 무리였다. 언제까지나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낼 수도 없었고 휘의 기운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이 보였기에 둘은 조금씩 치료해 나가기로 하고 일상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되었건 이모에게만 모든 일을 맡겨놓을 수는 없었기에 할 일은 해야 했던 것이다.

오늘 자영은 이모의 성화에 등 떠밀리듯 나들이를 준비해야했다. 며칠간 치료와 집안정리를 핑계로 집안에 박혀있는 꼴이 보기 싫은지 휘를 데리고 바깥구경이라도 다녀오라는 것이다. 자영도 일본에 와서 별로 구경 다녀본 곳은 없었다. 자신은 끌려 온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주쿠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방구석에 숨어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용기를 내어 외출준비를 했다.

이모는 휘를 믿었다. 자영이 혼자라면 불안했겠지만 휘만 있다면 어디를 가던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사 야쿠자 놈들이 떼로 덤비더라도 휘가 있는 한 자영이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빨리 부딪치는 것도 좋았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놈들 때문에 더 이상 숨어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기로 온 것이다. 휘에 대한 이모의 믿음은 엄청났다.


이모는 그렇게 둘을 데이트하라고 내보내고 혼자서 집 정리를 했다. 집이 넓어 손이 가야할 곳이 많았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점심때가 지나자 혜영에게 전화가 와서 혜영의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휘와 자영이 앉아있었다. 점심때를 넘겨서인지 식당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둘은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먹고 하랬더니 겨우 여기 있는 것이야?”

“아이~ 이모, 구경 다니다가 밥 먹으러 왔어요. 언니식당이 편해서요.”

자영의 말에 이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영의 처지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편하게 밥 먹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 그래 잘했다. 어디 구경은 잘 했니? 돌아다녀보니 어떻던가?”

이모가 휘를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

“너무 정신없고 어지럽소. 사람도 많고.”

“호호~ 나도 그래. 그래서 난 돌아다니는 게 싫어.”

그때 혜영이 앞치마를 두른 체 다가왔다.

“이모, 자영이가 왔기에 같이 식사하시라고 전화했어. 우리도 손님들 빠지고 좀 한가해 졌으니 같이 밥 먹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이렇게 옆에 있으니 참 좋다.”

“그럼 내가 된장찌개 맛있게 해올 게 잠깐 이야기 나누고들 있어요.”

“내가 도와줄까?”

“아냐, 이모. 그냥 앉아있어. 내가 할게.”

혜영이 주방 안으로 들어가고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식당 문을 열고 아가씨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작가의말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에 힘을 얻어 속도를 좀 올려봤습니다.

이틀에 한번 정도는 글을 올려보려고 노력은 하는데...주말은 힘들겠군요.

컴 앞에 있을 수있는 시간이 부족하여..ㅎㅎ

모처럼 자영이가 오붓한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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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제6장 새로운 출발(7) +4 14.05.15 3,695 101 21쪽
29 제6장 새로운 출발(6) +4 13.11.13 3,917 120 11쪽
» 제6장 새로운 출발(5)-내용수정했습니다 +2 13.11.08 5,388 168 27쪽
27 제6장 새로운 출발(4) +8 13.11.06 4,478 115 14쪽
26 제6장 새로운 출발(3) +10 13.11.04 4,572 138 13쪽
25 제6장 새로운 출발(2) +1 13.11.02 4,443 151 10쪽
24 제6장 새로운 출발(1) +6 13.10.31 4,776 133 13쪽
23 제5장 단죄-그 시작(5) +6 13.10.29 4,311 113 14쪽
22 제5장 단죄-그 시작(4) +8 13.10.24 4,310 129 14쪽
21 제5장 단죄-그 시작(3) +4 13.10.21 4,570 133 13쪽
20 제5장 단죄-그 시작(2) +4 13.10.18 4,835 125 15쪽
19 제5장 단죄-그 시작(1) +2 13.10.16 5,625 14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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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4장 재회(5) +2 13.10.09 5,422 124 14쪽
15 제4장 재회(4) +2 13.10.07 5,290 111 12쪽
14 제4장 재회(3) +5 13.10.04 5,684 12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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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3장 부활(2) 13.09.25 7,763 179 12쪽
9 제3장 부활(1) +4 13.09.22 8,556 184 13쪽
8 제2장 봉황문(3) +1 13.09.20 7,092 153 7쪽
7 제2장 봉황문(2) +4 13.09.17 7,664 18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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