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가이 -23화- 붉은 망토의 남자
벨로스를 떠나 온지 11일이 지났다.
나와 로키의 무지함으로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지만, 이후로도 대부분의 시간은 무료한 이동뿐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걷고, 또 걷고.
하지만 그 덕에 생각보다는 빨리 글로렌스가 보이는 이곳까지 도착 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올라 lv60이 되었습니다]
[체력포인트 10이 올랐습니다]
[스킬: 피의 권능(passive)이 생성 되었습니다]
[피의 권능(passive)] Max Hp의 100%추가 효과.
"이제 60된거지? 축하해 오빠"
"축하해요 가이님"
"뭐, 남들 다 하는 레벨 업 한번 한걸 가지고"
"부럽다 가이. 나는 아직도 51인데"
로키는 용아가 가져가는 경험치 때문인지 레벨 업이 좀 더뎌지는 것 같았다.
"넌 어차피 티그리칸까지 가서 전직을 할거니까, 조급해 할 필요 없잖아"
이제 문제는 광란과 연화의 60레벨 달성 이었다.
"둘은 지금 몇이지?"
"나도 막 59 됐어"
"저는 58이예요"
"음... 그럼 어떻게 한다?"
"어차피 61레벨만 안 넘기면 되는 거니깐 같이 사냥하면 되지 뭘 어떻게 해"
"그런가?"
"그렇지. 60부터는 필요 경험치가 많아져서 우리 60레벨 될 때까지도 아마 61 못찍을 걸?"
"그렇게 오래 걸려?"
"아마도, 혹시라도 넘겨버리면 괜히 스텟 손해 보게 되니까, 잘 확인하면서 해. 자 그럼 다시 투입!"
"투입!"
얼마간의 사냥을 마치고, 드디어 연화까지 60레벨에 도달했다.
"축하해 연화"
"네, 고마워요 가이님"
연화가 다시 살아온 이후였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연화에게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연화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일까.
말을 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이제 전직을 하는 일만 남았네? 일단 글로렌스로 들어가자"
광란이 말을 하고 앞장을 섰다.
광란을 뒤 따르며 작은 소리로 로키에게 물었다.
"혹시 너한테도 ‘어웨이크닝’이라는 스킬이 있어?"
그 일이 있은 후로,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전투를 할수록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걸 느꼈다.
뭐라고 딱히 집어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자꾸 어긋나고 있었다.
"없다"
자신의 상태창을 한번 훑어 보는 듯 하더니 로키가 대답했다.
"다시 한번 잘 좀 찾아봐"
"그게 뭔데 그러나"
"아직은 뭐라고 말을 못 하겠는데… 아무튼 잘 좀 봐봐"
"다 찾아 봤었다. 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없다"
"알았어. 나중에 정리 좀 되면 말해줄게. 지금은 나도 뭐가 뭔지를 잘 모르겠다"
"알겠다"
광란과 연화에게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때의 광란의 반응을 봐서는 광란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아카디아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해서 로키에게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기는 나에게도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니, 로키도 그럴 수는 있겠지만.
한참을 걸은 후 도착한 글로렌스의 성문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만한 크기를 자랑했다.
글로렌스를 빙 둘러 끝도 없이 이어진 성벽들의 높이는, 웬만한 대형 몬스터들로는 넘을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듯 했다.
글로렌스의 성문과 비교하자니 내가 있던 벨로스의 남문은 그저 판자집 정도 밖에 안 돼 보일 정도였다.
성문을 지키는 초소도 있었고, 주위의 경비병들도 내가 입고 있는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아 보였다.
'역시 수도라는 것인가'
마치 거대한 동굴을 지나는 것처럼, 긴 아치형의 성문 통로를 지나고 나니 그제서야 글로렌스의 시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가 끝인 거야?'
끝도 없이 펼쳐진 건물들의 숲과, 그 사이를 오가는 엄청난 인파들.
네 종족들이 한데 어울려 무언가를 흥정하기도 하고,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절로 실감이 되는 곳이었다.
"로키, 손잡고 다니자, 길 잃어 버리겠다"
"알겠다"
"치이, 핑계는..."
광란이 눈을 흘기며 이상한 말을 했다.
"무슨 소리야?"
"알았어, 모른 척 해 줄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즐기라구"
하며 뭐가 좋은지 킥킥거렸다.
"그 동안 우리 때문에 어떻게 참았나 몰라?"
그리고는 연화의 팔짱을 끼며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대체 뭘...?'
"일단은 각자 전직소로 가서 전직부터 하고 다시 모이자"
칼과 방패, 지팡이 등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건물들 앞에 도착하자 광란이 말했다.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응, 오빠는 저기 방패 문양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전직관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아직 뭘로 전직할지 못 정했으면 그것도 전직관이 추천 해 줄 거야"
"그래 알았어, 이따가 보자 그럼"
"이따 봐요 가이님"
"응, 연화도 잘 하고 와"
로키는 아직도 뭐가 그리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같이 들어갈래?"
"난 여기 있겠다. 갔다 와라"
"그러던지. 어디 가지 말고 여기 꼭 있어. 모르는 사람이 뭐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피식.
오랜만에 로키가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홀이 나왔는데, 높은 천장으로 인해서 더 휑하게 느껴졌다.
홀의 중앙에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타는 듯 한 붉은색 망토를 걸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굳게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에서 남자다움이 절로 느껴졌다.
저벅 저벅.
마치 심장의 고동 소리 같은, 내 발소리가 큰 홀 안에 홀로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홀의 중앙과 가까워질수록 발소리는 더욱 커졌다.
홀 안이 온통 내 발소리로 진동을 했다.
한번쯤 눈길을 줄만도 한데, 붉은 망토의 남자는 미동이 없었다.
마침내 붉은색 망토의 남자 앞에 서자 홀을 울리던 발소리도 멈췄고,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남자와 눈을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목소리가 커졌다.
"아카디아인인 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냐"
"전직, 전직을 하러 왔습니다"
남자는 굵은 눈썹을 한번 꿈틀 하고, 나를 쓸어 보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꼭 해야 합니다"
"이유는?"
짧은 물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 해 봐라"
"신을...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직이 필요합니다"
붉은 망토의 남자가 이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 이유라는 것을 말했다.
그제서야 흥미가 생기는지 붉은 망토의 남자가 말했다.
"너는... 태초인들과는 무슨 관계냐"
"예? 태초인들을 아십니까?"
"무슨 관계냐! 그것부터 대답해라"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free will'이란 것이 저에게도 있다는 것 말고는..."
"'엘리나'를 알고 있나"
엘리나.
데이미르가 있는 현자의 탑을 찾아 왔다던 태초인중의 한 명.
이 붉은 망토의 남자는 대체, 어떻게 엘레나를 알고 있는 것인가.
"이름만 들었습니다. 드라칸 산맥의 현자, 데이미르님의 탑을 찾아 왔었다는 이야기를 현자께서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음... 결국, 거기까지 찾아가서도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거였나..."
"네?"
붉은 망토의 남자가 혼자서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한참을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 하던 남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잠시 후 손을 내리며 말했다.
"레벨은 충족이 되었지만, 너의 직업에서 전직을 할 수 있는 상위 직업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다시 남자가 눈을 감았다.
한참을 고민스러운 얼굴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던 남자가 결단을 내린 듯 눈을 뜨며 말했다.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럼, 전직을 할 수 있다는 말씀 입니까?"
"그렇다. 그전에 한가지만 묻겠다"
"말씀 하십시오"
"너는 '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느냐"
'힘?'
힘에 대해서 따로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나마도 여행자들의 기준으로는 아직도 까마득한 저렙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초보였다.
힘이라고 할 것도 없겠지만, 그나마 레벨이 오르면서 좋았던 것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 봤다.
'테리'
다행히 테리를 괴롭히던 그 여행자보다는 내가 강해서, 테리를 괴롭히던 것을 그만 두게 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그 정도의 힘조차 없었다면?
테리도 계속 괴롭힘을 당했을 테고, 나 역시 그 여행자에게 피떡이 되었겠지.
'연화'
연화의 죽음.
만약 그때 내가 더 힘이 강했더라면, 연화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행자들이 불사의 존재라는 걸 후에 알게는 되었지만.
힘이란...
힘이란!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지키는 것..."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남자는 내가 한 말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겠다. 너는 이 힘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네!"
"이 힘으로 너와, 다른 이들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지키겠다고 나와 약속 할 수 있겠느냐!"
"네!"
"이 힘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너는 함께 받겠느냐!
"네!
"그렇다면 받아라! 나의 이름을 너에게 주겠다!"
붉은 망토의 남자 '가디언'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지키는 자! 가디언이여!"
['가디언'으로 전직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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