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가이 -14화- 오크
내가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신들의 정원.
시작의 여신 에오스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있는 곳.
광란의 이야기 대로라면 지금은 갈 수 없다고 하는 그곳.
언젠가 갈 수 있게 된다고는 했지만 그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단 가봐야 한다.
혹시 여행자들이 모르는 어떠한 방법이 존재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광란은 엄청난 몬스터들이 있을 것 이라고도 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몇 걸음 움직이기도 전에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은, 강해지는 것뿐이다.
광란의 말처럼 아무런 힘도 없이 신들의 정원에 들어갔다가 정작 신들은 만나보기도 전에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생각 같은건 없다.
강해지는 것.
그것만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최선이다.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신들의 정원에 들어갈 것이다.
신들을 만나 물을 것이다.
이 세상이 가진 부조리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에 대해서.
벨로스로 돌아가는 방향을 잡으려 했지만 이곳이 어디 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내달려 도착한 곳이라, 어디쯤인지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 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해가 저물어 점점 어두워 지기까지 했다.
'낭패로군'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 이다.
사사사삭.
무언가가 이동을 하면서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몬스터일까?
이 근처에서 출몰하는 몬스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만약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라도 된다면 어찌해야 될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스윽스윽.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진다.
나를 향해 오는 것일까?
아니면 공교롭게도 그것이 이동하는 방향에 내가 있는 것인가.
기척을 죽이며 천천히 방패와 펄션을 빼들었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마침내, 그것의 외형을 식별 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오, 오크?'
오크.
휴먼, 엘프, 언데드와 함께 아카디아를 이루고 있는 네 종족 중의 한 종족.
'마법'이나 '신성'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힘을 신봉해서 '투사'라고 불리우는 종족.
그들은 호전적이며, 힘을 신봉하는 종족답게 외모에서부터 탄탄함이 묻어 나온다.
'하지만 저렇게 까지 크지는 않았는데?'
'벨로스'는 드라칸 산맥 서부를 경계로 오크 왕국 '티그리칸'과 인접한 영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로스를 방문하는 오크들은 많지 않았다.
벨로스는 지역의 특성상 '그레일즈' 왕국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데다, 초보여행자들의 시작의 도시이다 보니 시장경제가 활발한 곳이 못 되었다.
게다가 주변의 몬스터들도 던전을 제외하면 강한 몬스터들이 출몰하지 않는 곳이여서 굳이 먼 길을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벨로스에서는 다른 이종족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만, 오크들은 드라칸 산맥 서부로 사냥을 나왔다가 정비를 이유로 가끔씩, 벨로스에 들리고는 했었는데 그때 보았던 오크들은 결코, 저렇게 크지는 않았다.
키도 키지만 저 근육질의 덩치는 오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오우거 아니야?'
오우거라고 하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었지만 내가 보았던 보통의 오크들은 나보다 조금 작거나, 크다고 해봐야 나와 비슷할 정도였는데,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는 것 같은 저 오크를 보니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이었다.
나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 오크인걸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이 근처에서 사냥중이었거나 어딘가로 이동을 하는 오크족 여행자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걸어오던 오크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제서야 나를 발견한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서, 경계심을 느꼈는지 등 뒤로 손을 뻗어 자신의 무기인 듯한 그것을 끌어 내렸다...
'커헉'
저게 뭐야.
도끼인 것은 분명한데, 저것을 정말로 도끼라고 부르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거대했다.
길이는 거의 나만 했고, 양쪽으로 나 있는 도끼날은 내 몸통보다도 커 보였다.
배틀액스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인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거대하다 보니 과연 실용성이 있을까 싶었다.
들고 휘두르기도 힘들어 보이는 저것을 용케도 무기라고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 거대한 도끼의 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날 부분을 땅에 닿을 듯 바닥으로 내리고는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듯이 몸을 웅크렸다.
"괜찮아요! 같은 여행자입니다!"
혹시라도 나를 확인도 하기 전에 저 무식한 것을 휘두를까 싶어 먼저 소리를 질러 같은 여행자인걸 밝혔다.
그제야 상대도 안심을 했던지 양손으로 잡은 배틀액스를 바닥에 끌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끄그그그.
거리가 가까워져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가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당황한 음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
"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던 음성과 동시에, 나를 향해 다가오던 오크에게서도 비슷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눈을 한껏 치켜 뜬 것이 나 못지 않게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그 황당해하는 얼굴은 여행자의 것이 아니었다.
아카디아인 이었다.
당연히 오크여행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왜 아카디아인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아카디아인이 이 시간에 이 산속을 혼자서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머리속이 순간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어버버버버"
맞은편의 오크는 그 정도가 나보다 심했던지 말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된거야.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지만 저 오크는 나와 같았다.
자신의 정해진 숙명을 버려둔 채, 이곳에 나타나 저런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오크는 나와 같은 'free will'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었어'
대체 이 녀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슨 이유로 이 시간에 이렇게 혼자 산속을 헤메이고 있는 것일까.
이 녀석도 나처럼 혼란스러운 걸까.
하고 싶은 말들이 한가득 머리에 떠올랐다.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해.. 아니,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묻고 싶은 말들이 머리속에 한가득 이었지만 정작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버버버버"
어쩌면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이라도 좀 닦으라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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