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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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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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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09.12.1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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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9.명예로운 자와 거짓말쟁이(2)

DUMMY

그 어느 때보다도 맹연습을 통해 살롱의 대화 기법을 공부한 프레이르는 포르테빌 대공과 함께 세르티프 백작가의 응접실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심정이었으나 프레이르는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포르테빌 역시 차나 한잔 하러 가는 듯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세르티프 백작의 아들, 그라츠가 그들을 안내하여 응접실의 문을 열자 역시나 화려한 응접실이 그들을 맞이했다. 백작의 응접실은 고급재료와 고풍스런 방식으로 꾸며져 있는 것보다도 이국적이고 진귀한 물품으로 꾸며져 있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응접실은 벽면 곳곳이 특이한 수집물로 가꾸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세르티프 백작이 해적을 토벌하면서 수집한 것들인 것 같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진귀한 것은 모리안의 용병단이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한 반월도로서 여전히 날이 날카롭게 선 채 벽에 X자로 교차되어 걸려 있었다.

응접실 가운데에는 열댓 명 남짓의 손님들이 일어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레인가드 제2귀족인 알타미라 후작의 살롱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손님들의 수준은 결코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해군 장교복을 입은 귀족이 몇 명 보인다는 것이었다. 해군에서 출세한 세르티프 백작의 신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까마귀처럼 검은 빛깔의 해군장교복을 입은 귀족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손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프레이르는 한 사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프레이르를 놀라게 한 사내는 바로 리처드 대공이었다. 그 얼굴을 발견하자 순간적으로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프레이르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본래 리처드 대공은 레스터 공작의 살롱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세르티프 백작이 자신과 동맹을 맺을 생각이었다면 리처드 대공은 초대하지 않았어야 했다. 프레이르는 왠지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리처드 대공에게 다가가 서로 가볍게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이에서 애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포옹이었다.

프레이르와 포르테빌 대공이 도착했음을 집사가 알리자 이 살롱의 주최자인 세르티프 백작부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늘씬한 몸매의 이국적인 여성으로서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우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적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니블헤임(에우로텐 북쪽, 레인가드 서북쪽에 위치한 군사국가)의 한 자작의 부인이었는데 니블헤임과의 외교문제 때문에 그곳을 방문한 젊은 해군장교 세르티프 백작과 만나 사랑에 빠져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고 한다. 이 때 니블헤임의 자작과 세르티프 백작이 그녀를 두고 선상에서 결투를 벌였는데 세르티프 백작의 탄환이 자작의 심장을 꿰뚫어 자작이 즉사하였고 자작부인은 레인가드의 백작부인이 되었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프레이르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으로 치부했지만 막상 그녀가 눈앞에 서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것을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께서 친히 이곳에 방문해 오시니 저희 가문에 영광입니다.”

그녀는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며 프레이르에게 인사했다. 프레이르 역시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그녀가 지정해주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자리 배치는 법도를 철저히 따라 프레이르가 가장 상석, 그 옆자리가 각각 리처드와 포르테빌이었는데 프레이르는 리처드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프레이르와 포르테빌이 도착한지 몇 분 뒤 이번에는 레드포드 자작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레드포드 자작은 육군 장교복을 입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 당당한 모습을 본 프레이르는 왜 이 마틴 경이 그토록 군인으로서 명성이 높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일반 예복을 입고 다닐 때는 알지 못했지만 군복을 입은 레드포드 자작은 절도가 있었고 군인으로서 위엄이 넘쳐흘렀다. 그 걸음걸이와 옷차림만으로도 확실히 마틴 경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 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그는 조금 긴장한 모양인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앉을 장소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틴 경이 들어서자 실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와 동시에 프레이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과 마틴 경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언가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프레이르는 그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프레이르가 레드포드 자작의 사생아인가 아닌가에 관해서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프레이르는 가능한 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레드포드 자작과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귀족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마틴 경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다.

그런 그를 잠자코 지켜보던 리처드 대공이 프레이르가 자리에 앉자 말을 건넸다.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전하, 저 손님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이 얄미운 어조로 볼 때 프레이르는 이미 리처드가 그 화젯거리에 관해서 상세히 알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가뜩이나 심란했던 그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제가 마법사가 아닌 이상 알 턱이 없죠.”

“아,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저들이 프레이르 전하가 어쩌고저쩌고, 레드포드 자작이 어쩌고저쩌고, 사생아가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길래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다는 말투로 리처드가 비아냥거렸다. 프레이르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리처드의 이런 하찮은 도발에 넘어가봤자 그에게 돌아올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흥분해봐야 소문을 더욱 부추기기만 될 터였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이 상황에서 대처해야만 살롱에서 퍼지는 이 헛소문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그는 리처드의 도발을 무시하기로 했다.

이윽고 살롱이 시작되면서 백작부인이 참석 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프레이르가 이곳에 참석해주셔서 정말 큰 영광으로 여긴다는 판에 박힌 인사를 하며 프레이르에게 예의를 표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남편의 동생인 세르티프 자작님께서 레스터 공작님께서 맡으시고 있는 동부방면군의 제3군단장으로 취임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바쁜 일정 때문에 이곳에 오시지는 못했지만 레스터 공작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 있던 일동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세르티프 자작의 군단장 취임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포르테빌과 프레이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세르티프 백작의 동생이 레스터 공작의 군단장이 되었다는 것은 둘 사이에 이미 모종의 거래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 거래 내용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미 세르티프 백작은 프레이르의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결국 세르티프 백작은 프레이르와 손잡기 위해서 이곳에 초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프레이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초대한 것이다!

“전하,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포르테빌이 프레이르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프레이르는 눈을 돌려 세르티프 백작과 리처드를 바라봤다. 그 둘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서로 악수를 하고 있었다.

‘이런!’

프레이르는 탄식했다. 리처드 대공, 그리고 레스터 공작과 세르티프 백작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완전히 덫에 걸린 상황이었다. 오늘의 살롱에서 그는 아마도 포르테빌과 마틴 경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허점을 보인다면 그는 신랄한 조롱과 함께 한동안 살롱에 출입조차 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사교계에서 짓밟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오늘 살롱을 빌미로 서로 손을 잡은 이 두 귀족가문이 샤를과 프레이르를 압박하려 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앞으로 있을 몇 시간 동안의 공세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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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로라시아 연대기 - 6.독사의 머리(3) +2 09.12.11 2,785 22 7쪽
16 로라시아 연대기 - 6.독사의 머리(2) +4 09.12.10 2,706 25 21쪽
15 로라시아 연대기 - 6.독사의 머리(1) +2 09.12.10 2,902 17 11쪽
14 로라시아 연대기 - 살롱이란? +3 09.12.10 2,978 16 2쪽
13 로라시아 연대기 - 5.루크와 목걸이(3) +4 09.12.10 3,035 22 17쪽
12 로라시아 연대기 - 5.루크와 목걸이(2) +3 09.12.09 3,180 20 7쪽
11 로라시아 연대기 - 5.루크와 목걸이(1) +5 09.12.08 3,484 19 7쪽
10 로라시아 연대기 - 4.대중과 서커스(3) +1 09.12.08 3,525 19 7쪽
9 로라시아 연대기 - 4.대중과 서커스(2) +3 09.12.07 3,571 19 7쪽
8 로라시아 연대기 - 4.대중과 서커스(1) +2 09.12.07 4,011 21 11쪽
7 로라시아 연대기 - 3.코라 가족(2) +4 09.12.06 4,575 20 15쪽
6 로라시아 연대기 - 3.코라 가족(1) +4 09.12.06 6,120 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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