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시아 연대기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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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레인가드는 로라시아 대륙의 최강자로서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인간의 나머지 6개 국가는 레인가드에 필적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했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한 레인가드는 지난 50여 년 동안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외적 상황과 달리 레인가드 국내는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귀족과 평민들의 투쟁, 권력자와 권력자 간의 투쟁으로 레인가드의 국내 정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레인가드의 국왕인 길드스턴은 귀족과 성직자의 권한을 축소하고 새로운 세력인 제3신분의 시민계급을 지원하여 왕권을 회복하고자 하나 귀족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개혁은 좌절되고 왕권 강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1497년에는 레인가드 남부에서 할거하고 있는 난쟁이족과 레어티스 아르한이 이끄는 반란군을 진압하고자 출진했던 길드스턴이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전사하였다. 이로 인해 레인가드의 정세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고 국민들의 삶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길드스턴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샤를 드 랭스 에인절은 야심만만하고 유능한 군주였다. 아버지에 비해 능수능란한 정치가였고 평민들에게 사랑 받는 군주였던 그는 광범위한 개혁. 그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통해 귀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왕권을 강화하며 레인가드의 정세를 크게 안정시켰다. 이에 더불어 그는 평민 출신의 시녀를 왕비로 맞이하는 파격적인 결혼으로 평민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고 대중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흐름으로 인해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국왕의 독주에 대한 귀족들의 우려는 커져 갔다. 특히 왕비 레아첼이 후계자를 임신하게 되면서 절대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들은 레인가드 역사상 최초로 평민의 피를 잇는 왕자가 탄생하여 왕위를 계승할 경우, 왕가를 견제하는 정치세력인 귀족들을 억누르고 국왕의 뜻대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독재 정치를 펼 것이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이렇게 레인가드의 왕위 계승자 탄생에 대한 귀족들의 불안감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두 명의 방문자가 신의 뜻을 구하기 위해 이냐크 대성당을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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