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시아 연대기 - 비밀치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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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인 야손력 1252년, 레인가드 국왕 콘라트 3세는 본래 선왕인 에뮤르 2세의 셋째 아들로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유능하고 야심찬 인물이었던 콘라트는 둘째 형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첫째 형을 몰아내고 둘째 형을 국왕으로 내세우며 연합정권을 이루어냈다. 뒤이어 레인가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월 내전’이 발발하였고 둘째 형이 전사하면서 콘라트 3세는 그토록 염원하던 국왕이 될 수 있었다.
고대하던 왕관을 차지하였지만 콘라트 3세의 기반은 매우 취약했는데 첫째와 둘째 형의 세력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한 콘라트 3세는 당시 치안 유지 기관이었던 ‘국민위병대’만으로는 레인가드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가 만들어 낸 것이 국왕의 직속 정보기관인 ‘비밀치안대’였다. 비밀치안대는 국왕의 명령만을 따르는 직속기관으로서 국내외 치안에 관계되는 정보를 캐내고 국왕이 명령하는 비밀스런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기관은 국왕에 명령에 따라 온갖 합법, 불법적인 일(요컨대 감시, 매수, 심지어는 암살까지)을 수행했는데 그들의 행동은 레인가드 국민들에게 자신이 어디에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공포심을 주었다. 콘라트 3세는 이러한 공포 심리를 이용하여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
콘라트 3세가 죽고 나서 비밀 치안대는 귀족들의 끈질긴 탄핵과 내부 갈등으로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하지만 현재 샤를 국왕의 선왕인 길드스턴 국왕은 온 귀족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왕권의 강화를 위해 이 비밀치안대를 부활시켜 귀족들의 분노를 샀다. 비밀치안대는 또다시 귀족들을 억누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 아들이자 현재 국왕인 샤를은 귀족들에 대한 유화책으로 비밀치안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거의 무제한적으로 주어졌던 비밀치안대의 자율권을 회수하였다. 이러한 방침으로 인해 현재의 비밀치안대는 국가의 정보기관 정도로 그 기능이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권한을 고수하고 있었다.
현재 비밀치안대장을 맡고 있는 인물은 샤를 국왕의 최측근으로 소문난 홀트 백작이었다. 오늘날 샤를을 떠받치고 있는 세 기둥을 들라면 누구나 육군 수도경비사령관 레드포드 자작, 호민관 브라쇼브, 그리고 비밀치안대장 홀트 백작을 손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홀트 백작이 가장 악명 높았다.
샤를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뛰어나서 ‘국왕 폐하가 말씀하시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 된다,’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데다가 냉혹한 인물인 그가 이 비밀치안대장이라는 요직에 임명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런 냉정한 성격과 그가 맡고 있는 이 ‘비밀치안대장’직 때문에 그 어떤 귀족도 이 백작과 엮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살롱에 초대받지 못하는 손님으로서 사교계에서 사실상 방출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일처리 덕분에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샤를은 다시 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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