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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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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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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09.12.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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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로라시아 연대기 - 1.주교의 보증(1)

DUMMY

싸늘한 가을바람이 단풍을 흔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무 끝을 붙잡고 있던 단풍잎들은 노력의 보람도 없이 하나둘씩 나무에서 떨어졌다. 가을바람은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단풍들을 껴안고 티르 산맥의 남쪽을 향해 유유히 날아갔다.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것은 비단 단풍뿐만이 아니었다. 여름내 레인가드 북방에 머무르던 기러기들 또한 삼삼오오 대열을 이루며 남쪽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남녘 하늘로 향하는 기러기 무리들은 인간들의 손에 때 묻지 않은 거대한 티르 산맥 너머, 엘프들의 섬을 향해 가고 있는 듯 했다. 가을 하늘 위로 철새들이 날아가는 이 평화로운 광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이냐크 성당을 감싸고 있었다.

성당의 아담한 정원에 서 있던 한 사내는 기러기들이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도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로브를 둘러쓴 그 사내는 두터운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그는 검은 로브를 땅에 끌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한걸음, 한걸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느렸으나 그만큼 신비로움을 갖고 있었다.

“브조니 주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 신비로운 사내의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내는 작은 입사귀를 로브의 가슴께에 달고 있었다. 이냐크 성당에서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표식이었다. 그 사내 역시 브조니 주교라는 인물과 마찬가지로 온 몸을 검은 로브로 둘러싸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브조니 주교보다는 훨씬 젊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오, 장 사제. 수고하는군. 그저 산책이나 할 겸해서 잠시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네.”

처음의 신비로운 성직자가 성호를 그으며 자애가 충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웬 일로 이 시간에 정원에 계시나 했습니다.”

“주님의 가호로 <예언서>의 필사를 일찍 끝마칠 수 있었네. 곧 오실 손님도 기다리는 중이고 해서 잠시 정원이나 둘러보는 중이었지...”

브조니 주교라는 성직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비록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누구나 이 사제의 입가에 아벨 신과 같은 미소가 걸렸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 정원이 이토록 잘 가꿔지다니... 자네의 노고가 컸군.”

천천히 정원을 둘러보던 브조니 주교가 고개를 돌려 장 사제를 바라보며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칭찬에 장 사제는 멋쩍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정원의 단풍이 들고 지는 것은 모두 아벨 신의 은총입니다. 어찌 저의 노고라 하십니까?”

브조니 주교는 소리 없이 웃더니 젊은 사제에게로 다가갔다.

“능력을 행하는 분은 물론 아벨이시지만 그 분에게 쓰임 받는 도구도 같이 빛나는 법이라네.”

장 사제가 아직 젊은이의 티를 벗지 못한 사제답게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푹 숙이자 브조니 주교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며 따뜻하게 격려의 뜻을 전한 후 ‘만남의 방’이 있는 본관 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걸어갔다.

장이라는 젊은 사제는 브조니 주교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는 브조니 주교의 걸음 하나하나까지 존경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다가 다시 정원용 가위를 들고 관목들로 가꿔진 정원으로 걸어갔다. 단풍과 은행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동안 그의 머리는 평소에 그가 가장 존경했던 주교에게 들은 칭찬으로 꽉 차 있었다.

장 사제가 이처럼 브조니 주교의 칭찬에 기뻐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브조니 주교는 카프탄 부주교와 더불어 100명의 성직자와 레인가드 국민 전체의 신앙을 대표하는 이냐크 성당의 최고 성직자였기 때문이었다. 원칙상 이제 겨우 50세 밖에 되지 않은 그가 주교가 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자한 성품과 고귀한 혈통, 아벨 신에 대한 남다른 열정 덕분에 그는 600년 만에 처음으로 50세의 최연소의 주교이자 추기경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장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예지라는 능력 때문이었다. 브조니 주교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은 레인가드에서, 아니 로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가장 뛰어났다. 그는 자신의 영감을 통해 성서와 경전을 해석하여 미래에 있을 일을 예견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거의 500년 만에 나타난 신의 은사였다. 비록 브조니 주교의 반대자들은 이러한 능력이 이단적이라고 근거 없는 모략을 해댔지만 정통 교단에서 브조니 주교의 예지 능력이 신의 은사라는 것을 정식으로 인정해주면서 논란은 그 종지부를 찍었고 브조니 주교의 신성함은 확고하게 두루 공인 받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예지 능력이 어찌나 유명했던지 전 레인가드 국왕인 길드스턴이 젊었을 시절, 약관의 브조니 사제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다소 믿기 힘든 풍문까지 존재할 정도였다.

레인가드 국왕조차 브조니 사제의 힘으로 살아남았다는 이러한 조금은 허황된 이야기까지 도는 것에는 브조니 주교의 훌륭한 인품도 한몫을 했다. 그는 그 예지 능력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 특히 권력자들에게 속세에 관여되어 있는 일들을 질문 받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속세의 권력이나 부유함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올곧은 마음을 가진 이에게만 운명과 미래의 비밀스런 암시를 넌지시 들려줌으로서 신의 뜻을 온전히 받들고자 했다. 이것이 그가 전 레인가드 국민들과 이냐크 성당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크나큰 존경을 받는 이유였다.

2시는 정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장 사제는 다시금 자신이 멍하니 서서 빈둥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은행나무 숲 사이로 날아가는 새로운 철새 무리를 발견하자 그는 이대로 자연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다시 변덕스럽게 생각을 바꾸었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다시 한 번 그의 곁을 스쳐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자신이 바람의 일부인 양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신선한 가을의 공기가 허파 가득히 밀려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한동안 그런 깊은 호흡을 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됨을 느꼈다. 오늘은 브조니 주교에게 칭찬까지 받은 날이다. 조금의 게으름쯤은 자신에게 주는 축하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자신의 행동에 정당화를 시키며 기분 좋은 휴식을 즐겼다.

한참 동안 즐거운 휴식을 가진 그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정원용 가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뒤쪽 정원까지 손질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노닥거린 만큼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실비아 꽃이 져가는 꽃밭을 지나갈 무렵 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문득 그의 시선을 끄는 물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풀 사이로 무언가 거뭇한 물체가 얼핏 보였던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는 다시 걸음을 돌려 수풀 쪽으로 향했다. 과도한 호기심은 파멸의 씨앗이라는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는 그 가르침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울창하게 우거진 수풀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들어가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잡초에 긁혀 따끔거리는 손등을 어루만지며 수풀 속에서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 이게...”

장 사제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자신이 쓰러진 건지, 아니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건지조차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동요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채 울려 퍼지기도 전에 은백색의 칼날이 장 사제의 로브와 후드 사이를 내리쳤다. 장 사제의 머리와 몸통이 연결된 부위였다.

장 사제는 아득해져가는 정신 중에도 왜 갑자기 자기의 시야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 지면을 구르고 있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비명 소리 대신에 꼴깔꼴깍하는 물소리가 자신의 목구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장 사제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장 사제의 머리는 이미 상체에서 떨어져 실비아 꽃밭에 선홍색의 피를 흩뿌리며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정원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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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6 夢幻林
    작성일
    09.12.12 14:28
    No. 1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하늘눈물
    작성일
    09.12.17 11:11
    No. 2

    글을 읽고 그냥 지나가려다가...
    그래도 작가님께 도움이 될까하여 글을 남김니다.

    1. 글 여러 곳에서 조사나 어미의 사용이 어색해서 글이 읽기 불편합니다.

    예) ....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올곧은 마음을 가진이에게만 운명과 미래의 비밀스런 암시를 통해 넌지시 알려주었다.

    ->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올 곧은 마음을 가진이에게만 운명과 미래에대해 비밀스런 암시를 통해 넌지시 알려주었다.

    2. 특정 단어가 상황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 전설이라는 단어 사용이 어색합니다.
    동시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떠도는것을 전설이라고 말하기엔 ...
    차라리 소문이나 풍문, 낭설정도의 표현을 사용하는게 적절할것으로 생각됩니다. 장사제가 현재 살아 있는 인물로 표현되면서 전설로 남았다. 전설이 돈다라는 표현은 조금 아니 많이 이상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 Stellar
    작성일
    09.12.17 12:33
    No. 3

    하늘눈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써보는 글이라 확실히 다시 읽어보니 어색한 부분이 많군요.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우현(遇賢)
    작성일
    10.07.08 08:13
    No. 4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0.07.10 19:40
    No. 5

    작가님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따라가네요. 계속 같이 하길 바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회색물감
    작성일
    10.07.15 18:27
    No. 6

    명품 하나 제대로 건진 기분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Gersigi
    작성일
    10.08.25 11:37
    No. 7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어둑서니
    작성일
    10.10.15 18:03
    No. 8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10.10.31 12:45
    No. 9

    무얼 보았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Runeword
    작성일
    11.05.26 10:44
    No. 10

    그가 본것은 브조니 주교의 시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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