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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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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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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09.12.0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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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4.대중과 서커스(1)

DUMMY

카시네예프 왕립학교는 길드스턴이 세운 학교로서 왕족, 귀족 자제들과 영애들, 그리고 유복한 일부 평민들의 자제들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본래 귀족들의 교육이란 가정교사를 두고 역사나 논리, 수사학 등을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선왕인 길드스턴은 궁성 내부에 학교를 세우고 8세 이상인 각지의 귀족 자제들을 받아들여 선생을 두고 교육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카시네예프 왕립학교의 시작이었다.

샤를은 이 정책을 이어받아 왕립학교를 더욱 체계적인 교육기관으로 확장했는데 그가 이런 일을 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왕립학교에 입학하는 자제들은 지방 귀족들을 억누르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왕가에 붙잡힌 볼모로서 지방 귀족들의 행동에 제약을 주었다. 또한 이들이 궁성에 와서 소진해야하는 막대한 금화 때문에 지방 귀족들의 재정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장점도 있었다.

둘째, 왕립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언젠가 프레이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샤를은 프레이르를 12년 동안 평민 가정에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그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8년 동안 궁성에서 자랐고 외삼촌인 대귀족 레스터 공작의 후원을 입고 있는 아르첼은 살롱의 출입도 잦았고 얼굴이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더 튼튼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샤를은 진작부터 프레이르를 왕립학교에 입학시켜 다른 귀족 자제들과 친분을 쌓고 나중에 이들로 하여금 프레이르를 밀어주는 지지 세력으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이런 생각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셋째, 질 좋고 체계화된 교육 과정을 이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귀족들도 동의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왕립학교의 설립 명분이 되었다. 기존의 가정교사 제도는 변변한 가정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지방 군소 귀족들에게 큰 어려움이었다. 카시네예프와 같은 대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군소 귀족들은 마땅한 선생을 찾기가 어려웠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의 자제는 중앙 정계에서 탈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샤를은 이들에게도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베풀어 줌으로서 지방 군소 귀족들에게도 중앙정계에 진출할 기회를 열어 놓은 셈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카시네예프 왕립학교는 샤를의 대에 와서 크게 융성하여 매해 백수십 명의 학생들을 배출해내는 거대한 교육기관이 되었다.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들은 레인가드 최고의 대학인 카시네예프 대학의 교수들이었는데 주로 고대 레인가드어, 메피스토펠레스 철학, 역사, 수사학, 논리, 신학, 언어, 체육단련, 미술, 음악, 기초적 마법이론 그리고 과학을 가르쳤다.

약 3~4년 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은 졸업을 하게 되는데 이 졸업식은 이때까지 학교라는 것의 개념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귀족 자제들이 엄숙하게 앉아 있고 그 양 옆으로 검은 옷을 입은 평민 자제들이 자리 잡은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이를 만했다. 이 날이 되면 레인가드의 실력자란 실력자들은 모두 졸업식장에 모이게 되는데 여기서 서로의 친분을 확인하고 정치적 역량을 과시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영예로운 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명예는 졸업사를 읽는 것이었다. 졸업사를 읽는 학생은 ‘그랑데에스콜라’라고 불리는 수석학생과 ‘그랑데에스포뇰라’라는 대귀족의 자제였는데 보통은 학업성취와 실력에 의해서 평가 받은 ‘그랑데에스콜라’가 가문과 작위에 영향을 받는 ‘그랑데에스포뇰라’보다 더 대우를 받았다.

입학식은 졸업식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지방의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은 수십 일에 걸친 불편한 여행을 참으며 카시네예프로 모여들었다. 그 때문에 입학식만 되면 카시네예프 도심은 시끌벅적해지고 여관이란 여관은 빽빽이 들어차며 한차례 홍역을 치르기 일쑤였다.

특히 올해에는 레인가드에서 국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는 레스터 공작의 아들인 루크레스티 드 라로셀 레스터 후작과 레인가드 해군 제독인 세르티프 백작의 아들로서 명성이 자자한 그라츠 드 로브노 세르티프 자작, 그리고 민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군부의 실력자인 레드포드 자작의 아들인 아르넷 드 웨슬리 레드포드 남작이 동시에 입학하는 해였다. 레인가드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었다. 레인가드 정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을 터였다.

오늘 입학식의 초유의 관심사는 과연 입학사를 누가 읽느냐였다. 입학사는 졸업사와는 달리 오직 가문의 명성과 정치적 역량에 의해서만 결정되기 때문에 입학사를 읽은 가문은 입학생 중 가장 강력한 파워와 명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고려볼 때 물론 레스터 공작가의 루크레스티가 읽는 것이 가장 합당했지만 입학사의 낭독자를 결정하는 것은 국왕의 손아귀에 있는 왕립학교 선생들이었다. 그리고 국왕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는 분명 레드포드 자작이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르넷이 낭독자가 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또한 최근 해적들을 토벌하며 그 명성을 드높인 세르티프 백작가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입학사를 읽는 것은 그 가문에 있어서 매우 명예로운 일인데다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 행사였다.

“이번 입학식은 정말이지 거물들의 잔치로군요.”

왕립학교 2학년 차의 알타미라 백작이 줄줄이 들어와 자리에 앉는 귀족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왕립학교 4학년인 카스티야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알타미라 백작님.”

알타미라 백작 역시 귀족들의 행렬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레스터 공작과 세르티프 백작, 레드포드 자작이야 말할 것도 없는 레인가드의 실력자들이었고, 법무장관인 톨리 남작, 호민관 브라쇼브까지 착석하고 있었다.

“알타미라 백작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면 혹시 입학사를 못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베로 경이라 불린 카스티야 백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말했다. 가벼운 말투였지만 뼈가 담겨 있는 농담이었다.

레스터 공작가가 레인가드 제1의 귀족가문이라면 알타미라 후작가는 레인가드 귀족 중 2인자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알타미라 백작은 작년 입학식 때 쉽사리 입학사를 낭독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같은 경우에는 이런 쟁쟁한 귀족들이 많으니 알타미라 후작가도 어지간해서는 힘을 쓸 수 없지 않겠느냐는 알베로 경의 지적이었다.

“하하, 알베로 경은 제가 그런 명성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알타미라 백작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러자 알베로 경이 조금은 냉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성을 찾지 않으면 귀족이라 할 수 없지요. 명성을 갈구하고, 여성을 탐하는 게 귀족 아닌가요? 두 가지를 같은 거라 생각하는 바보들도 많지만 말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명성을 찾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데요."

"명성이라면 알베로 경이 더 높지 않습니까? 카시네예프 왕립학교의 수석학생으로 말이죠.”

"아, 그랬습니까? 요즘 들어 알타미라 백작님의 아첨이 심해지셨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 명성이 알타미라 백작님마저 추월했나 봅니다."

알베로 경이 여전히 공손한 말투였지만 약간의 빈정거림이 들어있는 어조로 말했다.

"백작님의 명성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비해 말 속에 뼈가 늘어나신 건 확실한 것 같군요."

알타미라 백작이 적당한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 둘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입학식의 시작을 기다렸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위화감이 느껴졌다. 알타미라 백작, 그러니까 세자르 경보다 알베로 경은 2살이 더 많았는데 세자르 경은 알베로 경에게 은근한 하대를 하고 있었다. 또한 알베로 경 역시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세자르 경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귀족 간의 보이지 않는 서열이었다. 같은 백작이라도 거대한 세력을 갖추고 있는 알타미라 후작가와 지방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카스티야 가문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작위가 더 높은 경우에도 세력이 작은 귀족은 하급 귀족에게 존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카스티야 가문의 경우 알타미라 가문의 살롱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알타미라 가문의 가신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것은 늘 카스티야 백작인 알베로 경을 불만스럽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알타미라 백작인 세자르 경은 알베로 경을 가신인 동시에 친구로 대했지만 알베로 경은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알타미라 백작에게 존대를 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언제나 불만을 가져왔다. 왕립학교의 수석까지 차지하고 있는 자신이 단지 가문이 좋은 어린 아이에게 허리를 굽혀야 하는 현실이 그는 영 탐탁치 않았다.

“아, 입학식이 시작되나 보군요.”

알타미라 백작의 말에 카스티야 백작은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입학식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우렁찬 트럼펫 소리와 함께 정문이 닫히고 일동은 자리에 착석했다. 먼저 왕립학교의 교장이 간단한 시작사를 읊조렸다. 그 뒤를 이어 국왕인 샤를이 연단에 서서 입학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마쳤다.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고 깔끔한 연설에 세자르 경과 알베로 경은 감탄할 수 빆에 없었다. 이윽고 2학년 수석인 로이 브라쇼브가 신입생 환영 인사를 끝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브라쇼브의 환영 인사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지만 일동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드디어 신입생의 입학사로군요. 누구일까요?”

알타미라 백작의 물음에 카스티야 백작은 평소처럼 냉담하게 대답했다.

“글쎄입니다. 지켜봐야 알겠죠.”

그들은 연단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일동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연단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입학사를 읽는 레인가드 제1의 귀족은 누구일 것인가? 레스터 후작인가, 레드포드 남작인가, 아니면 세르티프 자작일 것인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입학생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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