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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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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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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09.12.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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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로라시아 연대기 - 5.루크와 목걸이(3)

DUMMY

한참 뒤 그는 시계탑에서 울리는 은은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탑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어차피 수업이 끝났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함... 첫날은 이걸로 끝이군.”

그는 자리를 정리한 후 어슬렁어슬렁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이미 수업은 끝났겠지만 혹시 아르넷과 일행이 자신을 찾고 있을까 해서였다. 첫날부터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오페라하우스의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기대가 깨끗이 배반당했음을 깨달았다. 아르넷과 루크는 머리털 하나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고 대신 그가 발견한 것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의자를 살피고 있는 한 여자아이였다. 옷차림을 보았을 때 시녀는 아닌 듯했다. 아마도 음악 수업을 들었던 귀족영애인 모양이었는데 의자의 이쪽저쪽을 살피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귀족영애를 처음 보는 프레이르는 흥미를 갖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프레이르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몸집이 작았기 때문에 얼핏 보아서는 15살도 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머리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연한 갈색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내린 뒷머리와 살짝 구불구불하게 감긴 옆머리가 조화를 이루어서 산뜻하고 청초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봄의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빛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손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의자를 들었다 놓았다하면서 의자 아래를 뒤졌다. 프레이르는 그 이상한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여자아이는 그 알 수 없는 행위를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주저앉는 폼이 무언가 낙담한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동안이나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프레이르는 그 아이가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프레이르는 결국 그 아이에게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바로 그때, 프레이르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아이가 흐느끼는 소리였다. 그는 다시 뒤돌아서서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가냘프지만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그 울음소리에 프레이르는 차마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무슨 사정인지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을 옮기자 주머니 속에서 찰랑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내용물을 확인했다. 역시 목걸이는 그대로 주머니 안에 있었다. 그는 그 아름다운 목걸이를 통해 대충 상황을 짐작해낼 수 있었다. 저 소녀는 이 목걸이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프레이르는 짖궃은 장난을 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목걸이를 가지고 여자아이를 조금 놀려주다가 돌려주는 게 어떨까?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깜짝 놀란 소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프레이르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연갈색의 사랑스런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그녀의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은 부드러운 눈매와 조화를 이루며 고요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눈은 프레이르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누구보다도 더 순진무구하게 빛나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그 눈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이런 고귀한 출신의 여자아이와 대화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당황했던 프레이르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루크나 아르넷에게 썼던 오만방자한 말투와는 달리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였다. 짖궃은 장난을 쳐보겠다는 생각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뒤였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 여자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의 입술은 아직 채 피지 않은 샤프란의 꽃망울처럼 연한 분홍색이었는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비죽거리느라 프레이르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프레이르는 더욱 어조를 부드럽게 낮추었다.

“뭔가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는 중이었지?”

그녀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말을 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지만 프레이르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혹시 잃어버린 것이 목걸이가 아니야?”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의미가 분명했다. 이 순진한 여자아이는 감정변화를 전혀 숨기지 못하는 성격인 듯했다. 프레이르는 그 점이 자신이 상상해 왔던 귀족과 달라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아까의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짐짓 모른 체하며 장난을 치다가 나중에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이 소녀에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밖에 있는 분수대 근처에서 이런 것을 찾았거든? 확인해볼래?”

그 목걸이를 발견한 순간 소녀의 눈물 젖은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 웃음 짓는 얼굴을 보며 프레이르는 자신이 이 목걸이를 주웠던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목걸이를 푼 다음 소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녀는 프레이르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았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손쉽게 그녀에게 목걸이를 걸어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인 듯 얼굴에 홍조를 띤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찾아서인지 매우 기쁜 눈치였다.

“자, 이제 됐다. 소중한 것인 모양인데 잃어버리면 안 되지.”

프레이르는 다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프레이르의 성격에 맞지 않았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그녀가 그 자리에서 달아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프레이르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그녀의 입에서 자그맣게 목소리가 나왔다.

“...네...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나갈까? 어디에 살고 있어?”

프레이르는 그녀를 바래다 줄 작정으로 친절하게 물었다. 비록 평민 가정에서 생활했지만 메르센에게 ‘숙녀를 혼자 보내는 것은 귀족들에게 큰 불명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는 그 말을 충실히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얼굴이 빨개져있는 그녀는 들릴까 말까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오, 오빠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오빠? 오빠의 이름이 뭔데?”

“알베로... 알베로 드 노르베르 카스티야...”

모르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아직 1학년인지 고학년인지 아니면 이 궁성에서 일하는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알베로라는 인물을 찾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를 찾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어?”

“수, 수업이 끝나면... 저... 친구들을 따라가라고 했어요... 나... 길도 모르고... 길... 잘... 잃어버려서...”

뭔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문맥상 추정해보건데 ‘넌 길도 잘 모르고 잘 잃어버리니까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을 따라가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면 내가 데리러 갈게.’라고 오빠가 말한 듯했다. 프레이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한데. 난 여학생들이 끝나고 어디에 모이는지 몰라서...”

“저는... 괜찮아요...”

그녀는 프레이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미안해진 모양이었다. 생김새만큼이나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이, 이제 제가... 찾아서...”

“아니, 아니. 같이 가자. 딱히 급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프레이르는 오늘 알타미라 후작이 여는 살롱에 처음으로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마틴 경에게 오늘은 자중하고 수업이 끝나는 대로 빨리 돌아오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대로 그녀를 방치해두고 가기에 그녀는 너무 심약하고 순진해보였다. 보아하니 프레이르와 마찬가지로 이 궁성에 처음 와본 모양이었는데 그녀를 두고 가면 딱한 사정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르에게 그런 기사도는 없었지만 이 여자아이는 도저히 혼자 둘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원래 수업이 시작했던 곳으로 가보도록 하자. 그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으니까.”

프레이르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르는 그녀를 데리고 그녀가 처음 수업을 받았다는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소녀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그녀가 침묵하는 것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그녀가 수줍음을 타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떠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서로 모르네. 난 프레이르 드 세이비어 에인절이야. 넌 이름이 뭐야?”

프레이르는 자신의 이름을 대며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노린 것은 그녀의 이름이 아니었다. 이미 카시네예프 전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프레이르라는 이름을 듣고 그녀가 반응을 하여 무언가 이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목표였다.

하지만 이미 온갖 살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이 이름을 듣고도 그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프레이르’라는 작자가 왕자라는 사실은커녕 에인절이 왕족 가문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 프레이르는 이 귀족 같지 않은 여자아이를 보면서 모든 귀족 영애들이 이런 쪽에 둔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프레이르가 이름을 밝히자 그녀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버딘이에요. 카스티야 에버딘...”

예쁜 이름이었다. 카스티야라는 성이 상쾌한 이미지로 입술 끝에 울리면 에버딘이라는 이름이 살포시 감겨져 나왔다. 발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부드러운 이름이었다. 레인가드의 작명법에 따르면 ‘에버딘 카스티야’가 정확하겠지만 ‘카스티야 에버딘’ 쪽이 어감이 더 좋았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예쁜 이름이네.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스쳐갔지만 화제를 찾았다는 생각에 들뜬 프레이르는 깨닫지 못했다.

“좋은 아버지네. 아버지께서 고심하셔서 지은 이름이 분명해. 나 같은 경우에는 ‘샛별’이라는 뜻을 강조하느라 발음하기 너무 어렵게 지어놓으셨어. 프레~이르~라.”

프레이르가 익살맞게 이름을 길게 늘여 빼자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 미소의 의미를 잘못 판단한 프레이르는 그녀가 처음으로 미소를 짓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에버딘이 ‘아’하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긴 치마를 양 손으로 붙잡고 한 키 큰 남자에게 달려갔다.

“오빠!”

그녀는 그 남자에게 뛰어들듯이 안겼다. 아마도 그 키 큰 남자가 알베로 경인 모양이었다.

“에버딘! 어디 있었던 거야? 내가 아무데나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잖아?”

알베로 경은 에버딘을 책망했다. 그러나 따뜻한 말투로 보았을 때 그는 여동생을 찾은 것에 안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알베로 경은 약 18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으로서 훤칠한 키의 미남자였다. 총명하게 빛나는 연갈색의 눈은 에버딘과 비슷했지만 좀 더 지적이고 성숙해보였다. 그의 얼굴을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조각상과도 같은 턱이었는데 마치 솜씨 좋은 일류 조각가가 깎아 낸 듯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알베로 경은 여동생인 에버딘과 달리 차갑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그로 인해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 이미지야 어찌 되었든 프레이르는 이 정도의 미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알베로 경은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또래답지 않게 날카로운 감을 가지고 있는 프레이르는 그 눈빛에서 경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프레이르가 에버딘을 꾀어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곧 알베로 경은 그 표정을 감추고 프레이르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제 동생이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알베로 경. 오히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프레이르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알베로 경에게 웃으며 말했다. 프레이르의 말에 알베로 경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처음 보는 귀족소년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수상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아, 그런 눈으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스티야 양이 오빠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런 것이었습니까?”

알베로 경은 그제서야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프레이르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히 늦추지 않는 듯했다. 어지간히 여동생을 아끼는 것이 오빠임에 틀림없었다.

“실례지만 저도 귀공의 성명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알베로 경은 정중한 어조로 프레이르에게 질문했다. 프레이르의 신원을 확인해서 의심스러운 자인지를 판별해내려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숨길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순순히 대답했다.

“프레이르 드 세이비어 에인절입니다.”

“!!!”

알베로 경은 뒤로 반 발자국 정도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전 입학식에서 입학연설을 읽었던 한 소년의 얼굴과 눈 앞의 소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에버딘은 잠시 동안 의아한 눈치로 오빠를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무언가가 생각난 듯 프레이르의 신분을 이해하고 입을 손으로 가렸다.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해 있던 두 사람은 곧바로 머리를 숙였다. 처음보다 더욱 깍듯한 인사였다. 그리고 알베로 경이 말했다.

“전하께 여동생이 큰 폐를 끼쳤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뇨, 그런 게 아니니까요.”

프레이르는 조금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이 도도해 보이는 미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깊게 숙이고 용서를 구하자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카스티야 양 덕분에 저도 즐거웠으니까요.”

“그러셨다면 다행입니다만.”

“정말입니다.”

프레이르는 힘을 주어 말했다. 알베로 경은 그제서야 다시 머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리고 어리숙한 아이라 전하께 무례를 범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어리석은 아이지만 심성은 나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너무 깎아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알베로 경.”

프레이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프레이르의 말에 알베로 경은 다시 묘한 눈으로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프레이르는 다시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잣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알베로 경은 더욱 묘한 눈초리로 프레이르를 바라보았지만 감히 프레이르에게 질문하지는 않았다.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 프레이르는 알베로 경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았다. 이만 헤어지자는 작별인사였다. 보통은 친한 친구 사이에 하는 인사였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프레이르의 안중에 없었다. 알베로 경은 조금 당황했지만 무릎을 굽혀 프레이르의 키에 맞춘 다음 프레이르와 짧게 포옹했다.

“오늘 좋은 친구 둘을 사귄 것 같아. 너무나 기뻐요. 알베로... 그리고 에버딘.”

프레이르가 친근하게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자 두 남매는 다시 깜짝 놀랐다. 프레이르가 노렸던 반응이었다. 그는 일부러 그런 반응을 무시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친구 사이인데 성을 부르는 건 어색하잖아요. 알베로 경이나 카스티야 양보다는 알베로, 에버딘 이렇게 부른 것이 더 살갑고 좋지 않겠어요?”

“저, 전하께서 그렇게 부르시겠다면 저희는 영광입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프레이르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활짝 웃었다. 역시 그는 격식을 갖추는 것보다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알베로, 그리고 에버딘. 곧 다시 볼 기회가 있겠죠. 그때 가서 내 얼굴 잊어버렸다고 하면 안 돼요?”

“네? 하... 하하... 네, 알겠습니다, 전하.”

알베로는 약간 허탈하게 웃으며 프레이르에게 대답했다. 에버딘 역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두 사람에게 확답을 얻은 프레이르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는 마틴 경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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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 Stellar
    작성일
    09.12.10 12:05
    No. 1

    사실 제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프레이르가 에버딘을 부르는 부분입니다.

    "아가씨"라고 적긴했지만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레이디"라고 쓰는 것은 최대한 영어체 단어를 자제하려는 제 성격에 맞지 않았구요.

    결국 "아가씨"로 정했는데 혹시 다른 적합한 호칭을 아시는 분은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견리
    작성일
    09.12.10 19:50
    No. 2

    비평글 아직 안쓰고 있는 주제에 뭐라 하기는 그렇지만 아가씨라는 호칭이 가장 적당하다고 봅니다. 한자단어 쓰면 더 이상해질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Stellar
    작성일
    09.12.10 19:55
    No. 3

    天月流歌님, 감사합니다^^ 그럼 그냥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夢幻林
    작성일
    09.12.12 16:48
    No. 4

    잘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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